최근 한 달 사이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5권을 읽었다. 먼저 <도련님>(1906), 이어서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산시로>(1908),<그후>(1909), <문>(1910)을 읽었다. 이어서 <마음>(1914)과 (큰애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 <명암>(1916)을 읽으려 했는데, <마음>만 읽고 멈췄다.
오래 살다보니, 살면 살 수록, 용기가 절실하다. 용기가 없어서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사람은 아무리 무서워도, 아무리 부끄러워도,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그 사실을 무서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소세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건 인간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용기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의 결과들을 대처함에 있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결과를 직시할 용기, 그 결과의 한계 내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소세키가 그리는 또 다른 주인공의 얘기를 한 번 더 들을 마음과 시간이 내게는 없다.
<그후>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대목인데, 이상하게 내게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고 느껴졌다.) "다이스케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는 않았다." (P.189,현암사)
<문>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 건너 앞에 있던 사내가 일어나 갔을 때는 잠시 후 안쪽에서 악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거리가 멀어 소스케의 고막을 심하게 때릴 만큼 세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최대한의 위세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온 개인의 특색을 띄고 있었다. 자기 바로 앞의 사람이 일어났을 때는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는 의식에 압도되어 한층 불안해졌다."(p.240, 현암사) 이 문장 역시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대목을 읽는데 요한계시록의 한 대목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요한계시록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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