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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일

마스크













오늘 예배드릴 때 3개월 동안 늘 쓰고 있던 마스크를, 오늘도 벗을 생각 없었는데, 처음으로 벗었다. 자리에 앉아서 예배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각선으로 내 앞에 앉은 여집사님이 내게 인사를 해오셨다. 처음 받아보는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오신지 6개월 정도 되셨죠?", "안녕하세요. 3개월 정도 된 거 같습니다", "늘 뒤에 앉으시다가 요즘 앞 쪽으로 앉아주셔서 감사해요. 한번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이 집사님은 찬양대 4명 중 가장 젊은 여집사님. 몇 주 전에 대표 기도를 하신 분. 그 기도가 너무 좋아서 내가 감동했고 그날 내 일기에도 썼던 분. "얼마 전에 대표 기도하셨죠? 참 감동 받았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 사람이 여러가지를 해야 해요". 내게 누군가 처음으로 다가 온 것. 내심 나는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를 않았으면,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상하게 이 집사님이 자리로 돌아가신 후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내게 이렇게 다가와주었는데, 계속 나만 마스크를 쓰는 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예배를 드리면서 너무 편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 주에도 교회 나오자'. 다음 주에는 김기석 목사님이 이 교회에 설교자로 오시기에, 나는 내가 피디인게 드러나는 게 싫어서 다음 주는 안 올 생각했음. 그 마음이 바뀌었음. 엄청난 왕족의 비밀도 아니고 그냥 피디였다는 거 알려지는 건데 뭐 굳이 안 오고 그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내가 3개월간 꾸준히 나올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는, 누구와도 교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어쩌면 다음 주부터는 그러지 못할 수도 있을 거 같음. 그래도 '새로운 선택'을 해보겠음. the road less traveled 걸어보겠음. 마음의 힘과 여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림.

 
      

2026년 7월 16일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다 읽어간다. 오늘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두 번째로 읽을 심리 상담을 책을 샀다. 


2026년 7월 15일

잘잘법 녹화


박재연 소장 두 번째 녹화 때는 내려가 뒤에 앉아 들었다. 마지막 사례 - 아버지와 딸 사이의 카톡 - 를 듣는데 눈물이 났다. 눈물이 계속 흘러 창고에 들어가서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닦는데 과자 봉지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 A가 당이 떨어진다고 과자를 들고 창고로 가던 게 기억나서였다. 김학철 교수와 즐겁게 인사를 나눴다. 프리랜서로는 첫 만남. 나는 인사만 하고 위로 올라와 B와 함께 강연 나눔을 했다. 참 좋은 나눔이었다. 퇴근 길에 운동을 했고, 서브웨이에서 에그마요를 주문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행복했다. 오늘 하루 내 삶에 대해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유년기에 받지 못했던 칭찬과 수용, 이제 "내"가 해주기로 했다. 놀랍게도 나는 나이든 뒤에도 나를 평가하고 다그쳐 왔다. 유년기에 내가 경험한 그것을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그 경험을) 내가 나에게 행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 그러련다. 

2026년 7월 11일

새한글성경

오늘부터 필사하는 성경을 <새번역성경>에서 <새한글성경>으로 바꾸었다. 새한글은 젊은 세대를 위한 번역인데, 과감하게 도치법을 많이 사용해서 특히 시편을 읽을 때 진짜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현재 시편 18편을 필사 중. 시편에서 가장 긴 시 중 하나. 하루에 다 필사하지 못하고 나누어서 하는 중. 오늘 본문 중 28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참으로 주님이 켜주십니다,
내 등불을.
여호와 곧 나의 하나님이 밝혀주십니다,
내 어둠을.  

2026.7.11.토. 8:10am.

2026년 7월 10일

두려움 정리하기



창고방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고지서, 세금영수증, 온갖 서류들. (그걸 볼 때마다 약간의 불안이 느껴짐). 그것들을 분류하고, 필요하면 공단에 전화해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한 후 더 이상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서류들을 회사에서 파쇄했다. 다이소에서 투명 서류 박스를 사서 보관해야 할 서류들을 넣었다. 창고방이 아니라 내 삶이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몇 년 동안 대강 안 보이는 데 처박아 두고 외면했던 두려움과 불편함들이 점점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로 변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의 시계

 금요일이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후배 동료가 만든 다큐 <우리는 섬으로 갔다>(2025)를 본 이후 나는 어머니와 식사를 할 때면 꼭 어머니가 차고 계신 시계의 시간이 맞는지 확인한다. 이상하게 오늘 시계를 보니 20분이 늦었다. (지난 주까지 맞았는데. 초침 가는 속도도 정상인데.) 맞게 고쳐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매주 이렇게 어머니 손을 잡고 시계를 확인해드리면 흡족해 하신다. 어머니 얼굴을 바라봤다. 지난 주에 보니 어머니가 쓰고 있는 안경의 코받침 하나가 빠져있었기에 점심 먹고 근처 안경원에 가서 고쳐드렸다. 오늘 보니 마치 새 안경인 것처럼 깨끗하고 잘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점심 먹으며 어머니를 많이 웃겨드렸다. 어머니는 내 조크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듣기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과거 추억 이야기도 하셨는데, 나는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얘기도 웃으며 들어드렸다. -------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난 주에는 얘기 중에 나도 모르게 '실수'로 엄마라고 호칭했다가 바로 어머니라고 정정했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 자라면서 대개의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받는 그 보호를 받지 못한 내 마음 속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가 외로워질 거 같다. 내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건, 내 마음 속 어린아이의 외로움을 성인인 지금의 내가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행위이다. 이렇게 행동할 때 내 마음 속 :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인정하기 (○). --- 이게 내가 상처 입지 않고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나님도 이런 나를 보며 "왜 더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묻지 않으실 거라고믿는다. 나를 정죄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 


   

2026년 7월 6일

어리석음

시편 14편을 필사했다. 1절은,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보리의 성경' 해설을 보면 이렇다. --- "하나님이 없다" (1절). 이것은 철학적 무신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무신론이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행동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 이것이 시편이 말하는 어리석음이다. ---- 오늘 하루에,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라고 말하는 게 어리석음. 어리석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오늘 하루 살면서 얼마든지 어리석어질 수 있음.    

2026년 7월 4일

앵커. anchor.

 아침에 일어나 8시경부터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이 표현 마음에 든다. 필사는 의무이기에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채우는 시간). 나의 필사 과정은 이렇다. 그날 필사할 성경 본문을 (지금은 시편) ‘보리의 성경’으로 먼저 빠르게 읽는다. ‘보리의 성경’에는 중간중간 짧은 해설이 들어가 있어 전체 구조, 특징, 특정 단어의 ‘감동적인 뜻’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새번역으로 시편을 필사한다. 그러면 참 좋다. 아침을 먹고 12시까지 글을 썼다. 운동을 하러 갔다. 오목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회사에 갔다. ㅈㅎ 가 일하고 있었다. ai로 만들 장면의 레퍼런스 사진을 함께 봤다. 요한계시록 보좌와 어린양 찬양에 쓸 레퍼런스 사진을 찾았다. 잘잘법 a 강사에 대한 자막 작업을 했다. 이제 이 사람이 좀 무섭기까지 하다. 모든 문장에서 주부와 술부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고,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부사들을 사용한다. 안 틀린 문장이 하나도 없다. 6시에 ㅈㅎ 와 셱셱에서 저녁을 먹었다. 돌아와 계속 자막을 했다. 가끔 ㅈㅎ 와 ㅇ ㅈ 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케미가 좋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나도 행복해진다. 8시반쯤 회사를 나왔던 거 같다. 셱셱을 먹었기에 얼마 뒤면 출출할 거 같았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하나 샀다. 집에 와서 저녁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삼각김밥을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김부장’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 누웠을 때 이렇게 밤을 맞을 수 있다는 거, 이런 밤을 맞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 삶의 앵커인 필사,운동,글쓰기가 나를 지켜준다.만족을 준다.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먼 옛날도 아니다.

2025년 11월 27일

금빛 바람


 



















어제 자기 전에 황동규 시인의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을 읽는데 <벽암록>의 제27칙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왔다. 시인은 먼저 현암사판 번역으로 상기 본문을 소개했는데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중이 운문을 찾아와 '나뭇잎이 시들어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자 운문이 대답했다.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바람만 가득하지' ". 황 시인은 이어서 자신이 직접 한 다음과 같은 번역을 소개했다. "한 중이 운문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이 말했다. '금빛 바람 속에 몸통을 드러내게 되지'" . ----- 나는 라디오국에서 라디오 다큐를 만들 때 북한산에서 비박(bivouac)을 하는 부부를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두 부부는 산에 올라가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되어 북한산의 바람을 맞으며 풍욕(風浴)을 했다.동행하는 취재자가 있었기에 남편과 부인은 각각 다른, 서로 떨어져 있는 바위 위에 올라 풍욕을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했다. (나도 모든 옷을 벗었다.) 수십 년 전 일이지만 그때 내 몸을 스치고, 간지르고 지나가던 바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서부터였을까. 바람을, 모든 종류의 바람을 좋아하게 된 나. 산들바람에서 폭풍까지, 모든 바람을. 하나 금빛 바람은 처음이다. 나도 맞아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바람이길래, 무성하던 잎 다 떨어지고 몸통과 가지만 남은 나무를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게 하는 거지? 나는 금빛 바람 속에서 몸통을 드러낸 나무가 지금 살짝 설레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까지 든다. 그늘은 더 못 줘도, 컬러의 강렬한 쾌감은 주지 못하지만, 몸통과 가지만으로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나무는 금빛 바람으로부터 지금 들었다. 그 비밀 듣고 싶어 나무 밑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2025년 11월 25일

<거룩한 행운> (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을 손에 쥐고.

 












주문했던 책이 도착했다. <거룩한 행운>(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 오늘도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었고, 어제도 "메시지 성경"을 읽은 내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쓴 시집"을 읽는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 : ) : ) ----- "시를 쓰는 것은 평범한 것들에 깃든 하나님 나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좋은 방법이다". -----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거룩한 행운. 제2부 바스락거리는 풀 제3부 매끄러운 돌들. 나는 2부에 내가 좋아하는 제목 두 개를 발견했다. '시간'과 '이집트'. '시간'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했다. "인생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나는 /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다. ". 이런 구절도 등장한다. "죄라는 나의 다른 시계 속에서 나는 미루고 있다". 기다림과 미루기. 소망과 함께 하는 기다림과 정리되지 않은 삶에서 나오는 미루기. 마음에 훅 들어오는 대비이다. '이집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떠나라는 천사의 말은 아주 분명했지만 /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 이집트는 안전했지만 집은 아니었다". 안전을 최고선으로 좇는 내게 들려오는 천사의 음성. 나도 천사의 음성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 나귀에 태우고 믿음으로 출발하리. 늦은 밤 혹은 새벽에. -----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책을 " 잰(Jan)에게, 결혼 55주년을 맞아" 라고 하며 아내에게 바쳤다. 이 시집 덕분에 내가 59세로 맞이하는 2025년 겨울이 따뜻해질 거 같다. 꽉 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