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방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고지서, 세금영수증, 온갖 서류들. (그걸 볼 때마다 약간의 불안이 느껴짐). 그것들을 분류하고, 필요하면 공단에 전화해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한 후 더 이상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서류들을 회사에서 파쇄했다. 다이소에서 투명 서류 박스를 사서 보관해야 할 서류들을 넣었다. 창고방이 아니라 내 삶이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몇 년 동안 대강 안 보이는 데 처박아 두고 외면했던 두려움과 불편함들이 점점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로 변한다는 느낌이 든다.
거짓말을 배우는 곳
2026년 7월 10일
어머니의 시계
금요일이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후배 동료가 만든 다큐 <우리는 섬으로 갔다>(2025)를 본 이후 나는 어머니와 식사를 할 때면 꼭 어머니가 차고 계신 시계의 시간이 맞는지 확인한다. 이상하게 오늘 시계를 보니 20분이 늦었다. (지난 주까지 맞았는데. 초침 가는 속도도 정상인데.) 맞게 고쳐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매주 이렇게 어머니 손을 잡고 시계를 확인해드리면 흡족해 하신다. 어머니 얼굴을 바라봤다. 지난 주에 보니 어머니가 쓰고 있는 안경의 코받침 하나가 빠져있었기에 점심 먹고 근처 안경원에 가서 고쳐드렸다. 오늘 보니 마치 새 안경인 것처럼 깨끗하고 잘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점심 먹으며 어머니를 많이 웃겨드렸다. 어머니는 내 조크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듣기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과거 추억 이야기도 하셨는데, 나는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얘기도 웃으며 들어드렸다. -------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난 주에는 얘기 중에 나도 모르게 '실수'로 엄마라고 호칭했다가 바로 어머니라고 정정했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 자라면서 대개의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받는 그 보호를 받지 못한 내 마음 속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가 외로워질 거 같다. 내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건, 내 마음 속 어린아이의 외로움을 성인인 지금의 내가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행위이다. 이렇게 행동할 때 내 마음 속 :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인정하기 (○). --- 이게 내가 상처 입지 않고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나님도 이런 나를 보며 "왜 더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묻지 않으실 거라고믿는다. 나를 정죄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
2026년 7월 6일
어리석음
시편 14편을 필사했다. 1절은,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보리의 성경' 해설을 보면 이렇다. --- "하나님이 없다" (1절). 이것은 철학적 무신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무신론이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행동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 이것이 시편이 말하는 어리석음이다. ---- 오늘 하루에,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라고 말하는 게 어리석음. 어리석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오늘 하루 살면서 얼마든지 어리석어질 수 있음.
2026년 7월 4일
앵커. anchor.
아침에 일어나 8시경부터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이 표현 마음에 든다. 필사는 의무이기에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채우는 시간). 나의 필사 과정은 이렇다. 그날 필사할 성경 본문을 (지금은 시편) ‘보리의 성경’으로 먼저 빠르게 읽는다. ‘보리의 성경’에는 중간중간 짧은 해설이 들어가 있어 전체 구조, 특징, 특정 단어의 ‘감동적인 뜻’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새번역으로 시편을 필사한다. 그러면 참 좋다. 아침을 먹고 12시까지 글을 썼다. 운동을 하러 갔다. 오목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회사에 갔다. ㅈㅎ 가 일하고 있었다. ai로 만들 장면의 레퍼런스 사진을 함께 봤다. 요한계시록 보좌와 어린양 찬양에 쓸 레퍼런스 사진을 찾았다. 잘잘법 a 강사에 대한 자막 작업을 했다. 이제 이 사람이 좀 무섭기까지 하다. 모든 문장에서 주부와 술부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고,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부사들을 사용한다. 안 틀린 문장이 하나도 없다. 6시에 ㅈㅎ 와 셱셱에서 저녁을 먹었다. 돌아와 계속 자막을 했다. 가끔 ㅈㅎ 와 ㅇ ㅈ 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케미가 좋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나도 행복해진다. 8시반쯤 회사를 나왔던 거 같다. 셱셱을 먹었기에 얼마 뒤면 출출할 거 같았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하나 샀다. 집에 와서 저녁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삼각김밥을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김부장’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 누웠을 때 이렇게 밤을 맞을 수 있다는 거, 이런 밤을 맞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 삶의 앵커인 필사,운동,글쓰기가 나를 지켜준다.만족을 준다.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먼 옛날도 아니다.
2025년 11월 27일
금빛 바람
2025년 11월 25일
<거룩한 행운> (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을 손에 쥐고.
주문했던 책이 도착했다. <거룩한 행운>(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 오늘도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었고, 어제도 "메시지 성경"을 읽은 내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쓴 시집"을 읽는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 : ) : ) ----- "시를 쓰는 것은 평범한 것들에 깃든 하나님 나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좋은 방법이다". -----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거룩한 행운. 제2부 바스락거리는 풀 제3부 매끄러운 돌들. 나는 2부에 내가 좋아하는 제목 두 개를 발견했다. '시간'과 '이집트'. '시간'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했다. "인생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나는 /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다. ". 이런 구절도 등장한다. "죄라는 나의 다른 시계 속에서 나는 미루고 있다". 기다림과 미루기. 소망과 함께 하는 기다림과 정리되지 않은 삶에서 나오는 미루기. 마음에 훅 들어오는 대비이다. '이집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떠나라는 천사의 말은 아주 분명했지만 /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 이집트는 안전했지만 집은 아니었다". 안전을 최고선으로 좇는 내게 들려오는 천사의 음성. 나도 천사의 음성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 나귀에 태우고 믿음으로 출발하리. 늦은 밤 혹은 새벽에. -----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책을 " 잰(Jan)에게, 결혼 55주년을 맞아" 라고 하며 아내에게 바쳤다. 이 시집 덕분에 내가 59세로 맞이하는 2025년 겨울이 따뜻해질 거 같다. 꽉 찰 거 같다.
2025년 11월 17일
제7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폐막식 참석 후기
2025년 11월 7일
59세 PD와 새내기 인턴 (feat. 제임스 스미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내가 나온 IVF와 인턴이 나온 CCC 얘기를 함께 했다. 점심 후 오목공원 팀 산책을 했다. 공원 안 나무와 잎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J가 내가 Y와 주고 받는 짧은 대화를 폰으로 찍었다. Y가 쇼츠로 만들었다. 나는 댓글을 썼다. - - - - 막상 얼굴이 나오니 부끄럽습니다 ^^;; 곧 60세가 되는 저는 최근 몇 년간 '시간'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어요. 그중에서 제일 도움이 되었던 책은 < 시간 안에서 사는 법>(제임스 스미스 지음, 비아토르)이었어요. 지금 책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아 기억에 의지해서 저자의 얘기를 소개하면 이래요. "온갖 가능성으로 충만한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감상주의에 가깝습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에 계속 머물고 싶겠지만 그건 과거에 '고정'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가능성들을 놓치는 슬픈 과정이 아니라 촛점이 잡혀가는 보람된 과정입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시기도 아름답지만, 구체적인 모습으로 포커스 맞춰져서 주위 이웃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시기를 산다는 것 역시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잘잘법 구독자 여러분 모두의 삶이 그러하기를 기원드립니다 - S피디 드림
2025년 11월 1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
새벽에 김기석 목사님이 나오는 꿈을 꿨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김기석 목사님한테 성경책에 싸인을 받고 있었고 나도 그 줄 가운데 있었다. 나는 어머니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받고자 했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시편 몇 편에 나오는지가 생각이 안 났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는데 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할 때마다 오타가 났다. (너무 괴로웠다). 내 차례가 됐고 나는 김기석 목사님에게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잠이 깼다.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가는 토요일이다. ---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 근처 '육회 바른 연어'에서 점심을 먹고 날씨가 쌀쌀해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옆 빠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뭐예요?" (실제로 나는 어머니가 평소 의지하며 떠올리는 성경구절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마 구원의 확신과 관련된 구절일 거라고 짐작했다. 어머니는 내 얼굴만 보시더니 "생각이 안 나는데"라고 하셨다. "아들이 먼저 하나 말해봐. 그러면 생각이 날 거 같아". "제 구절 듣고 떠올리면 안 되고, 그냥 지금 맘 속에 막 떠오르는 구절 말씀해 보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웃지 않으셨다.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어머니, 너 자신을 알라는 성경 어디에 나오나요?" "어딘지는 기억나지 않아. 그렇지만 성경에서 봤어." 나는 그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럼, 아들은?" 어머니가 물으셨다. "저는...저는 요즘 야곱 얘기에 끌려요. 야곱은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자기 답을 갖고 있었는데 인생이 그 답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나중에 그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에 끌려요" "참 좋네."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 어머니와 헤어져 시청 근처에 있는 오펠리스 웨딩컨벤션에 갔다.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20층은 사람들로 꽉 찼다. 내향인인 나는 혼주 부부와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주례를 맡은 (비교적) 젊은 목사의 주례사가 참 좋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사랑하는 법이 서로 다르기에, 상대의 사랑법을 이해하고 그걸 맞춰 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좋았다. 신랑 신부가 행진하기에 전에, 신부 아버지의 특별 순서가 있었다. 순서지에는 나오지 않은 순서였다.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가 하모니카 연주를 했고 곡목은 "은혜"였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딸과 사위 앞에서 온 몸으로 하모니카를 부는 아버지를 보는데 그분이 정말 은혜에 의지해 딸을 키웠다는 게 느껴졌다. 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이 하모니카 연주를 분명 잊지 못할 것이다. ---- 웨딩홀에서 나와 회사로 갔다. 오늘 어느 정도 편집을 마쳐놓고 싶은 영상이 있었다. 7시까지 편집을 해서 RT 28분까지 편집을 했다. 이제 월요일에 나머지 15분 정도만 추가 편집하면 된다. 저녁을 먹고 밀크티집에 가서 박영선 목사님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마저 읽었다. 183쪽 짜리 책인데 141쪽까지 읽었다. 내일 교회 가는 길에 다 읽을 것 같다. ---- 오늘 그런 상상을 했다. 야곱은 이집트로 내려간 후 임종 하기 전 두 손을 엇갈리게 교차해서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해 줄 때까지, 이집트에서의 그 기간을 어떤 얼굴 표정으로 지냈을까. 나는 야곱이 자꾸 피식피식 혼자 웃었을 것 같다. 자신이 세웠던 철저한 계획들은 다 어긋났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을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이국 땅에서 매일 매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도 퇴직을 하고 미국에 가면 피식피식 웃게 될까. 내 표정은 어떨까.
2025년 10월 31일
온전한 사랑
며칠 전에 만나뵈었을 때 들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내 삶의 본문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그분께 말했다. 허세,겉멋,어리석음의 문장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문장으로 본문을 채우고 싶었다. 출근길 횡단보도에 섰는데 오늘이 50대에 경험하는 마지막 "10월의 마지막 밤"(feat. 이용)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50대가 딱 두 달 남았다. 내일은 50대의 마지막 11월 1일이 될 것이다). 회사 앞 건널목에서 우연히 남자 후배 A를 만났고 "나 지금 커피 테이크아웃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 한 잔 사줄게." (A는 이미 출근하며 캔커피를 한 잔 마셨지만 또 마시겠다고 했다). 커피를 들고 회사로 걸어오는데 내 퇴직일을 물어 퇴직일 계산법을 알려주었다. "만60이 되는 생일 있는 달 다음 달 말일까지. 난 생일이 1월이니까 2.28까지"라고 하자 후배는 "마지막 달은 이틀 덜 일하고 한 달 월급 받으시네요"라고 해서 둘이 많이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오전에는 B교수의 영상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녹화 자체가 우리가 기대한 방향대로 나오지 않아 본편 편집을 하면서도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였다). 프롤로그를 정말 살려야 했기에 일단 프롤로그에 넣을 수 있는 부분은 다 모았다. 7분 분량을 모은 후 파일로 만들었다. 네이버 클로바에 넣고 텍스트로 변환해서 프린트 해서 줄치며 읽었다.(프롤로그 만들며 이런 과정을 거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더니 보였다! 찾았다! 그렇게 나온 프롤로그의 클로징 부분이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C가 입시 설명회 참기 후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올리버 색스의 의학 에세이 중 허그와 포옹 부분에 대해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오바퀴를 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팀원들에게 커피를 쐈다. D가 어제 저녁에 참가했던 영화토론 모임 후기를 들려주었다.) 오후에는 E와 쇼츠를 함께 만들었다. E가 이미 만들어놓은 쇼츠의 구성을 함께 보며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섬네일과 글제목을 정하는 일인데 E와 호흡이 잘 맞아 작업이 늘 즐겁다. 오늘 이상하게 내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는지 맘에 드는 섬네일과 글제목이 정말 바로바로 나왔고, 그때마다 E가 찐으로 탄성의 소리를 냈기에 몹시 뿌듯했다. 쇼츠 제작을 마친 후 3층 편집실에 내려와 (E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F교수의 새로운 에피소드 편집을 시작했다. 나는 F교수의 인트로를 참 좋아한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그는 주어진 질문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인트로로 대답을 시작한다. 그의 영상을 들으면 <시야>가 넓어진다. 6시반까지 편집을 하고 4층에 올라가 옷과 책을 챙겼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후배 G가 편집실에서 혼자 편집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얘기였다. 인트로와 클로징 원고를 봤는데, 클로징의 마지막 멘트에서 빵 터져 큰 소리로 웃었다. G도 웃었다.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회사를 나와 밀크티집을 향해 걸었다. 오목교 횡단 보도 앞에 섰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오늘 무언가를 "만들어서" 참 행복했다. 슬퍼함, 아쉬워함은 시간을 소중히 여김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음. 시간을 진정하게 소중히 여김은 옆에서 볼 때 유쾌해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거나, 수다스러워 보일 수 있음. 밀크티집에선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이다. --- 집에 와서 김창옥 쇼를 한 편 봤다. (내가 음악을 듣듯이 보는 영상이다. 매일 본다. 본 것도 또 본다.) 인스타에 뜬 반 고흐의 문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문장이었다.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예술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다". ---- 오늘 나는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행복을 누렸다. 근데, 고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오늘 정말 행복했던 건, 내가 그 소중한 일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해서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신뢰를 주고 받으며 해서 그랬다. 작은 목표가 생겼다. 두 달 남은 나의 50대라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친절,격려,(썰렁한) 조크를 시도하리라. 아쉬워하는 대신 조금은 수다스러워지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나의 50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누구의 시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만이, 시간의 두려움을 내쫓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