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연 소장 두 번째 녹화 때는 내려가 뒤에 앉아 들었다. 마지막 사례 - 아버지와 딸 사이의 카톡 - 를 듣는데 눈물이 났다. 눈물이 계속 흘러 창고에 들어가서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닦는데 과자 봉지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 A가 당이 떨어진다고 과자를 들고 창고로 가던 게 기억나서였다. 김학철 교수와 즐겁게 인사를 나눴다. 프리랜서로는 첫 만남. 나는 인사만 하고 위로 올라와 B와 함께 강연 나눔을 했다. 참 좋은 나눔이었다. 퇴근 길에 운동을 했고, 서브웨이에서 에그마요를 주문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행복했다. 오늘 하루 내 삶에 대해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유년기에 받지 못했던 칭찬과 수용, 이제 "내"가 해주기로 했다. 놀랍게도 나는 나이든 뒤에도 나를 평가하고 다그쳐 왔다. 유년기에 내가 경험한 그것을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그 경험을) 내가 나에게 행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 그러련다.
거짓말을 배우는 곳
2026년 7월 15일
2026년 7월 11일
새한글성경
오늘부터 필사하는 성경을 <새번역성경>에서 <새한글성경>으로 바꾸었다. 새한글은 젊은 세대를 위한 번역인데, 과감하게 도치법을 많이 사용해서 특히 시편을 읽을 때 진짜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현재 시편 18편을 필사 중. 시편에서 가장 긴 시 중 하나. 하루에 다 필사하지 못하고 나누어서 하는 중. 오늘 본문 중 28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2026년 7월 10일
두려움 정리하기
창고방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고지서, 세금영수증, 온갖 서류들. (그걸 볼 때마다 약간의 불안이 느껴짐). 그것들을 분류하고, 필요하면 공단에 전화해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한 후 더 이상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서류들을 회사에서 파쇄했다. 다이소에서 투명 서류 박스를 사서 보관해야 할 서류들을 넣었다. 창고방이 아니라 내 삶이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몇 년 동안 대강 안 보이는 데 처박아 두고 외면했던 두려움과 불편함들이 점점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로 변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의 시계
금요일이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후배 동료가 만든 다큐 <우리는 섬으로 갔다>(2025)를 본 이후 나는 어머니와 식사를 할 때면 꼭 어머니가 차고 계신 시계의 시간이 맞는지 확인한다. 이상하게 오늘 시계를 보니 20분이 늦었다. (지난 주까지 맞았는데. 초침 가는 속도도 정상인데.) 맞게 고쳐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매주 이렇게 어머니 손을 잡고 시계를 확인해드리면 흡족해 하신다. 어머니 얼굴을 바라봤다. 지난 주에 보니 어머니가 쓰고 있는 안경의 코받침 하나가 빠져있었기에 점심 먹고 근처 안경원에 가서 고쳐드렸다. 오늘 보니 마치 새 안경인 것처럼 깨끗하고 잘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점심 먹으며 어머니를 많이 웃겨드렸다. 어머니는 내 조크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듣기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과거 추억 이야기도 하셨는데, 나는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얘기도 웃으며 들어드렸다. -------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난 주에는 얘기 중에 나도 모르게 '실수'로 엄마라고 호칭했다가 바로 어머니라고 정정했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 자라면서 대개의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받는 그 보호를 받지 못한 내 마음 속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가 외로워질 거 같다. 내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건, 내 마음 속 어린아이의 외로움을 성인인 지금의 내가 인정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행위이다. 이렇게 행동할 때 내 마음 속 :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인정하기 (○). --- 이게 내가 상처 입지 않고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나님도 이런 나를 보며 "왜 더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묻지 않으실 거라고믿는다. 나를 정죄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
2026년 7월 6일
어리석음
시편 14편을 필사했다. 1절은,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보리의 성경' 해설을 보면 이렇다. --- "하나님이 없다" (1절). 이것은 철학적 무신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무신론이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행동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 이것이 시편이 말하는 어리석음이다. ---- 오늘 하루에,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라고 말하는 게 어리석음. 어리석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오늘 하루 살면서 얼마든지 어리석어질 수 있음.
2026년 7월 4일
앵커. anchor.
아침에 일어나 8시경부터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이 표현 마음에 든다. 필사는 의무이기에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채우는 시간). 나의 필사 과정은 이렇다. 그날 필사할 성경 본문을 (지금은 시편) ‘보리의 성경’으로 먼저 빠르게 읽는다. ‘보리의 성경’에는 중간중간 짧은 해설이 들어가 있어 전체 구조, 특징, 특정 단어의 ‘감동적인 뜻’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새번역으로 시편을 필사한다. 그러면 참 좋다. 아침을 먹고 12시까지 글을 썼다. 운동을 하러 갔다. 오목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회사에 갔다. ㅈㅎ 가 일하고 있었다. ai로 만들 장면의 레퍼런스 사진을 함께 봤다. 요한계시록 보좌와 어린양 찬양에 쓸 레퍼런스 사진을 찾았다. 잘잘법 a 강사에 대한 자막 작업을 했다. 이제 이 사람이 좀 무섭기까지 하다. 모든 문장에서 주부와 술부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고,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부사들을 사용한다. 안 틀린 문장이 하나도 없다. 6시에 ㅈㅎ 와 셱셱에서 저녁을 먹었다. 돌아와 계속 자막을 했다. 가끔 ㅈㅎ 와 ㅇ ㅈ 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케미가 좋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나도 행복해진다. 8시반쯤 회사를 나왔던 거 같다. 셱셱을 먹었기에 얼마 뒤면 출출할 거 같았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하나 샀다. 집에 와서 저녁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삼각김밥을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김부장’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 누웠을 때 이렇게 밤을 맞을 수 있다는 거, 이런 밤을 맞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 삶의 앵커인 필사,운동,글쓰기가 나를 지켜준다.만족을 준다.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먼 옛날도 아니다.
2025년 11월 27일
금빛 바람
2025년 11월 25일
<거룩한 행운> (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을 손에 쥐고.
주문했던 책이 도착했다. <거룩한 행운>(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 오늘도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었고, 어제도 "메시지 성경"을 읽은 내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쓴 시집"을 읽는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 : ) : ) ----- "시를 쓰는 것은 평범한 것들에 깃든 하나님 나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좋은 방법이다". -----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거룩한 행운. 제2부 바스락거리는 풀 제3부 매끄러운 돌들. 나는 2부에 내가 좋아하는 제목 두 개를 발견했다. '시간'과 '이집트'. '시간'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했다. "인생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나는 /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다. ". 이런 구절도 등장한다. "죄라는 나의 다른 시계 속에서 나는 미루고 있다". 기다림과 미루기. 소망과 함께 하는 기다림과 정리되지 않은 삶에서 나오는 미루기. 마음에 훅 들어오는 대비이다. '이집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떠나라는 천사의 말은 아주 분명했지만 /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 이집트는 안전했지만 집은 아니었다". 안전을 최고선으로 좇는 내게 들려오는 천사의 음성. 나도 천사의 음성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 나귀에 태우고 믿음으로 출발하리. 늦은 밤 혹은 새벽에. -----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책을 " 잰(Jan)에게, 결혼 55주년을 맞아" 라고 하며 아내에게 바쳤다. 이 시집 덕분에 내가 59세로 맞이하는 2025년 겨울이 따뜻해질 거 같다. 꽉 찰 거 같다.
2025년 11월 17일
제7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폐막식 참석 후기
2025년 11월 7일
59세 PD와 새내기 인턴 (feat. 제임스 스미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내가 나온 IVF와 인턴이 나온 CCC 얘기를 함께 했다. 점심 후 오목공원 팀 산책을 했다. 공원 안 나무와 잎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J가 내가 Y와 주고 받는 짧은 대화를 폰으로 찍었다. Y가 쇼츠로 만들었다. 나는 댓글을 썼다. - - - - 막상 얼굴이 나오니 부끄럽습니다 ^^;; 곧 60세가 되는 저는 최근 몇 년간 '시간'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어요. 그중에서 제일 도움이 되었던 책은 < 시간 안에서 사는 법>(제임스 스미스 지음, 비아토르)이었어요. 지금 책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아 기억에 의지해서 저자의 얘기를 소개하면 이래요. "온갖 가능성으로 충만한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감상주의에 가깝습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에 계속 머물고 싶겠지만 그건 과거에 '고정'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가능성들을 놓치는 슬픈 과정이 아니라 촛점이 잡혀가는 보람된 과정입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시기도 아름답지만, 구체적인 모습으로 포커스 맞춰져서 주위 이웃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시기를 산다는 것 역시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잘잘법 구독자 여러분 모두의 삶이 그러하기를 기원드립니다 - S피디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