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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31일

온전한 사랑

 













며칠 전에 만나뵈었을 때 들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내 삶의 본문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그분께 말했다. 허세,겉멋,어리석음의 문장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문장으로 본문을 채우고 싶었다. 출근길 횡단보도에 섰는데 오늘이 50대에 경험하는 마지막 "10월의 마지막 밤"(feat. 이용)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50대가 딱 두 달 남았다. 내일은 50대의 마지막 11월 1일이 될 것이다). 회사 앞 건널목에서 우연히 남자 후배 A를 만났고 "나 지금 커피 테이크아웃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 한 잔 사줄게." (A는 이미 출근하며 캔커피를 한 잔 마셨지만 또 마시겠다고 했다). 커피를 들고 회사로 걸어오는데 내 퇴직일을 물어 퇴직일 계산법을 알려주었다. "만60이 되는 생일 있는 달 다음 달 말일까지. 난 생일이 1월이니까 2.28까지"라고 하자 후배는 "마지막 달은 이틀 덜 일하고 한 달 월급 받으시네요"라고 해서 둘이 많이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오전에는 B교수의 영상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녹화 자체가 우리가 기대한 방향대로 나오지 않아 본편 편집을 하면서도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였다). 프롤로그를 정말 살려야 했기에 일단 프롤로그에 넣을 수 있는 부분은 다 모았다. 7분 분량을 모은 후 파일로 만들었다. 네이버 클로바에 넣고 텍스트로 변환해서 프린트 해서 줄치며 읽었다.(프롤로그 만들며 이런 과정을 거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더니 보였다! 찾았다! 그렇게 나온 프롤로그의 클로징 부분이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C가 입시 설명회 참기 후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올리버 색스의 의학 에세이 중 허그와 포옹 부분에 대해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오바퀴를 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팀원들에게 커피를 쐈다. D가 어제 저녁에 참가했던 영화토론 모임 후기를 들려주었다.) 오후에는 E와 쇼츠를 함께 만들었다. E가 이미 만들어놓은 쇼츠의 구성을 함께 보며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섬네일과 글제목을 정하는 일인데 E와 호흡이 잘 맞아 작업이 늘 즐겁다. 오늘 이상하게 내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는지 맘에 드는 섬네일과 글제목이 정말 바로바로 나왔고, 그때마다 E가 찐으로 탄성의 소리를 냈기에 몹시 뿌듯했다. 쇼츠 제작을 마친 후 3층 편집실에 내려와 (E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F교수의 새로운 에피소드 편집을 시작했다. 나는 F교수의 인트로를 참 좋아한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그는 주어진 질문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인트로로 대답을 시작한다. 그의 영상을 들으면 <시야>가 넓어진다. 6시반까지 편집을 하고 4층에 올라가 옷과 책을 챙겼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후배 G가 편집실에서 혼자 편집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얘기였다. 인트로와 클로징 원고를 봤는데, 클로징의 마지막 멘트에서 빵 터져 큰 소리로 웃었다. G도 웃었다.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회사를 나와 밀크티집을 향해 걸었다. 오목교 횡단 보도 앞에 섰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오늘 무언가를 "만들어서" 참 행복했다. 슬퍼함, 아쉬워함은 시간을 소중히 여김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음. 시간을 진정하게 소중히 여김은 옆에서 볼 때 유쾌해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거나, 수다스러워 보일 수 있음. 밀크티집에선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이다. --- 집에 와서 김창옥 쇼를 한 편 봤다. (내가 음악을 듣듯이 보는 영상이다. 매일 본다. 본 것도 또 본다.) 인스타에 뜬 반 고흐의 문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문장이었다.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예술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다". ---- 오늘 나는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행복을 누렸다. 근데, 고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오늘 정말 행복했던 건, 내가 그 소중한 일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해서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신뢰를 주고 받으며 해서 그랬다. 작은 목표가 생겼다. 두 달 남은 나의 50대라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친절,격려,(썰렁한) 조크를 시도하리라. 아쉬워하는 대신 조금은 수다스러워지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나의 50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누구의 시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만이, 시간의 두려움을 내쫓으리라.

2025년 10월 30일

은중과 상연의 감동

 














라디오국 후배 A와 점심을 먹었다. 아무리 오래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후배이다. 내가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냐요 얘기를 하며 요즘 무슨 드라마 보냐는 내 물음에 A는 최근에 은중과 상연을 아내와 함께 봤다고 했다. (나는 보지 않았다). A는 이 드라마의 구성과 대사, 그리고 마지막 15화의 결론이 참 인상적이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마지막 15화를 봤는데, 15화가 끝나고 아내가 가만히 있더니 저한테 여보, 나 좀 안아줘 라고 말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앞자리에 앉은 A의 팔을 잡고 "너무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드라마가 끝났으니 광고가 나오고 있을 TV 스크린 앞에서 두 중년의 부부가 서로 말없이 꽉 껴안고 있는 장면이 내게는 넘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2025년 10월 25일

처음으로 귀를 막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카톡을 확인했는데 좋아하는 지인의 아들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이 와있었다. 사진 속 신랑과 신부가 아름다웠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내 눈에는 신랑도 그렇게 보였다. 35년 전 내 모습도, 당시 50, 60대 분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까.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 간식과 커피, 어머니에게 드릴 수필집을 챙겨 요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만나 함께 근처 연어덮밥 집으로 갔다. 연어덮밥 세트 2개 주문. 이제 말 안 해도 사장님은 밥 양을 조금 줄여주신다. 어머니가 늘 과식을 하셔서 내가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참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나는 사이드로 나온 연어초밥의 밥은 남기고 연어만 벗겨먹었는데, 어머니는 통째로 다 드셨다. 점심을 먹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탐앤탐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내가 사들고 간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맘에 들어하셨다. ---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어하신다. 20년 전부터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시집은 고사하고 아직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으니 아마 시집은 못 내고 돌아가실 것이다. 시집 출간에 대한 강렬한 소원이 있으신 어머니를 위해 지난 주 나는 "어머니, 시라는 게 사실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거라서 어쩌면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부담만 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필은 어떠세요?" 라고 했다. ----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반 전체가 갔던 봄 나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이야기, 50번을 들었을까, 60번을 들었을까. 봄 나들이 중에 초1이었던 7살 어머니가 언덕에 핀 꽃을 꺽어서 야마모토라는 일본 선생에게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어머니 뺨을 쳤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뺨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나는 그동안 뺨을 50번 맞은 것일까, 60번 맞은 것일까. 이상하게 오늘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몰래 손가락으로 내 두 귀를 막고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손을 떼면 여전히 야마모토였다. 그러면 다시 음. --- 야마모토가 끝났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수필집 내시면 책 제목은 뭘로 하실래요? 안도현의 '사람'이 좋았으니까 어머니는 '인간' 어떠세요?"라고 했고 어머니는 웃으셨다. 나는 밀크티를 남겼는데 어머니는 머그컵에 나온 커피를 다 드셨다. 탐앤탐스를 나와 요양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출국일자를 세 번 물으셨다. 아니 네 번 물으셨다. 요양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신발을 갈아 신겨드리고 안아드리고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 요양원 앞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두 개 있다. 6211과 640. 요즘 어깨 통증 때문인지 두 주 가까이 매일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거의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오늘은 밀크티 집에 들리지 않고 집에 가서 좀 자기로 했다. 내가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착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 버스에 올라왔다. 한 자리 좌석들만 있고 둘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앉았던 자리에서 미리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 전에 이들에게 내 자리를 주고 싶었다). 하차 카드를 찍고 출입구 앞에 섰는데 두 젊은 남녀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2025년 10월 24일

쇼츠, 신체검사, 하늘

오늘 우리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A와 함께 쇼츠를 만들었다. 편집 프로그램인 에디우스 기능 중에 내가 아는데 A가 모르는 게 있었고, A가 아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두 기능 모두 아주 요긴한 기능이었다. 서로 알려주며 많이 웃었다. 점심을 은행골에서 같이 먹고 오목공원을 오바퀴 했다. -- 오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미국 이민 비자를 위한 신체 검사를 받았다. 출국 일자가 미뤄지면서 올해 초에 받았던 신체 검사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바람에 다시 받는 검사였다. 올해 4월 처음 신체 검사를 받으려고 세브란스로 가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였는지 버스 속에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중가에 내려, 허겁지겁 약국을 찾아 두드러기 약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오늘도 또 몰라 두드러기 약을 한 알 갖고 갔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올해 초 나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내가 정녕 너를 이집트로 인도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이집트' 자리에 '미국'을 넣고 읽었다. 오늘 신체 검사를 받으며 그 말씀을 생각했다. --- 회사로 돌아와 오늘 중으로 작가에게 보내야 할 잘잘법 영상을 편집했다. 마음에 들게 됐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편성부의 B와 C가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이번 주 일요일 생방송 진행이 내 마지막 생방송 진행이야"라고 하자 B와 C가 많이 놀라주어서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방송 사고 한번 내볼까" 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좀 하다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왔다. (한 조직의 일원이기에 나눌 수 있는 이런 대화가 참 즐겁고 소중하고 감사했다). ---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하늘이 참 푸르렀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데 "지금 네가 원하는 건 000를 가까이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야"라는 부드러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들리는 거 같았다. (내가 최근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경고의 말씀 때문에 오늘 온종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25년 10월 22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황동규 시인의 산문을 읽다가 그가 브람스의 소나타를 묘사한 글을 읽고는 유튜브에서 브람스의 소나타를 찾아들었고 그러다가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총 16회를 울면서 봤다. 네 사람이 각각 '(그게 사람이든, 목표, 욕망이든) 자기만의 '내려놓음'을 통해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요즘 내게 내려놓음이 필요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제8화 중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박은빈과 박지현이 나눈 연주의 흐름과 확신에 대한 대화를 받아적었다 : 확신은 어떻게 해야 생길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답을 찾으시면 저한테도 알려주시겠어요? 네, 꼭 그럴게요. --- 네 사람 모두 진실하다는 것도 멋졌다. 진실하게 살기에 플레이하는 연주에, 하는 말에, 내리는 선택에 힘이 실렸다 --- 박지현은 어떻게 이렇게 우아할까.     

2025년 10월 12일

신형철을 읽는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 평소와 달리 큰 갈등 없이 교회 가기로 결정함. (웃음포인트). 가면서 신형철이 32개의 시에 대해 해설한 <인생의 역사>를 읽으며 갔는데 너무 잘 써서 와,와 감탄 하면서 감. 오늘 예배 중에 와,와 한 적이 두 번 있었음. 참 아름다운 장면이었음. --- 오늘 성찬 봉사자는 내 대학 동기 P였음. 성찬을 다 받은 사람은 (앞에 나가 줄을 서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 후) 빈 포도주 잔을 봉사자가 들고 있는 함에 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음. 이것이 성찬의 절차인데, P의 아내가 성찬을 받는 모습이 눈에 띄였음. 포도주를 마신 그녀는 돌아서서 남편 쪽으로 걸어오더니 남편 P를 바라보며 남편을 향해 정말 부드러운 미소를 한번 지은 후에 포도주 잔을 함에 넣었음. 나중에 집에 가면 "P, 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문자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함. --- 성찬을 다 마치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음. 그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내 앞 쪽에 있던 두 젊은 부부가 손을 잡음. 참 아름다운 장면을 짧은 성찬 시간에 두 번 목격함. ---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가깝게 지내는 A와 차를 마시러 커피숍에 가서 주문하는 사이에 내가 "오늘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두 번 봤어요"라고 하며 P의 아내가 남편에게 지었던 미소 이야기를 했다. "아! 저도 봤어요!" "정말요!" 나는 P에게 문자를 보낼 거란 말을 했다 (ㅋㅋ) A가 "두 번째는 뭔가요!"라고 물어 내가 젊은 부부 얘기를 했더니 "아! 저도 봤어요!" (ㅋㅋㅋ) 이럴 수가! (ㅋㅋㅋ) 어쩌면 오늘 예배 중에 감동한 사람이 나와 A 둘만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A에게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 덧붙인다. (아까 그 예배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찬송을 부르던 내 앞의 젊은 부부가 손을 잡았다. 나도 마음 속으로 미국에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2025년 10월 11일

<우리가 기댄 모든 것>(마쓰모토 도시히코,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김영사)을 읽고

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는데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에게는 술 외에도 도벽, 섹스, 과식 등의 의존증도 있(었)다. 

모든 챕터가 흥미롭지는 않았다. 나는 제2장이 좋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나는 제2장만 좋았다. 2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몇 구절을 아래 정리한다. 

"왜 일부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고 특정 약물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도박이나 게임에 집착해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해버리는 걸까요? 생각건대, 그들을 약물로 몰아넣는 것은 쾌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쾌감이라면 금방 싫증이 날 테니까요. 아마도 그것은 쾌감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가 아닐까요? 즉, 사람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아찔한 쾌감을 얻으려 약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겪어온 고통이 그 약물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라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에 빠지는 것입니다. 쾌감이라면 질리겠지만, 고통의 완화는 질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그 고통의 완화를 놓을 수 없게 되겠지요." (p.37)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들게 되는 데는 반드시 위기가 존재합니다. 그것이 소중한 관계의 상실이나 파탄 같은 중대한 사건일 수도 있고, 조금 무리를 하거나 현재 있는 곳이 왠지 불편하다는 정도의 작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것이 위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p.38).

"이 서신 교환을 통해 '끊는다/끊지 못한다'라는 단순한 의존증 담론을 넘어,의존증 이면에 있는 심연에 줄을 드리워 들어가보고자 합니다." (p.39)

내게 있어 '오래전부터 겪어온 고통'은 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위기가 반드시 중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교회에서 참 만족스러운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후에도 의존증이 발생한다면, 예배도 내게 진정한 치유가 아니었던 건가. 


헤밍웨이가 멈추라고 한 곳에서 멈췄다


 











2025년 10월 6일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민음사)를 읽으며.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야의 이리'라는 별명을 가진 하리 할러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일터에서 오시는 길인가 보지요? 그래요, 그 방면에 대해선 나는 아는 게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나는 좀 옆 길에, 이를테면 가장자리에 살고 있지요." (p.26)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일터'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나는 책 제일 뒷장에 연필로 이런 메모를 남겼다. "일터에서, 그러니까 직장 생활 가운데서 가장자리 삶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등장해도 좋을 거 같음".  

(참고) 주제 의식은 좋았으나 글의 전개 방식이 내 취향이 전혀 아니어서 읽기 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