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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0일

바실레이아


 











오늘 밤 오목공원에 바실레이아가 임했다. 

2026년 9월 8일

나는 (거의) 신이다

Y에게 시간을 선물했다. (시간에 관한 책) 

J에게 빛을 선물했다. (이케아 스탠드)

오늘, 작은  Y에게 (아늑한) 어둠을 선물했다. (쿠팡에서 1+1으로 산 안대)

소중한 이들에게 시간, 빛, 어둠을 선물할 수 있다니! 

참 뿌듯, 행복하다.


2026년 8월 15일

어떤 하루













아침, 저녁으로 10분씩 양치, 아침 저녁으로 10분씩 눈찜질하고 있다.  

2026년 7월 26일

일어서는 사람


 











목사님,

2025년 11월 27일

금빛 바람


 



















어제 자기 전에 황동규 시인의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을 읽는데 <벽암록>의 제27칙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왔다. 시인은 먼저 현암사판 번역으로 상기 본문을 소개했는데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중이 운문을 찾아와 '나뭇잎이 시들어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자 운문이 대답했다.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바람만 가득하지' ". 황 시인은 이어서 자신이 직접 한 다음과 같은 번역을 소개했다. "한 중이 운문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이 말했다. '금빛 바람 속에 몸통을 드러내게 되지'" . ----- 나는 라디오국에서 라디오 다큐를 만들 때 북한산에서 비박(bivouac)을 하는 부부를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두 부부는 산에 올라가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되어 북한산의 바람을 맞으며 풍욕(風浴)을 했다.동행하는 취재자가 있었기에 남편과 부인은 각각 다른, 서로 떨어져 있는 바위 위에 올라 풍욕을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했다. (나도 모든 옷을 벗었다.) 수십 년 전 일이지만 그때 내 몸을 스치고, 간지르고 지나가던 바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서부터였을까. 바람을, 모든 종류의 바람을 좋아하게 된 나. 산들바람에서 폭풍까지, 모든 바람을. 하나 금빛 바람은 처음이다. 나도 맞아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바람이길래, 무성하던 잎 다 떨어지고 몸통과 가지만 남은 나무를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게 하는 거지? 나는 금빛 바람 속에서 몸통을 드러낸 나무가 지금 살짝 설레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까지 든다. 그늘은 더 못 줘도, 컬러의 강렬한 쾌감은 주지 못하지만, 몸통과 가지만으로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나무는 금빛 바람으로부터 지금 들었다. 그 비밀 듣고 싶어 나무 밑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2025년 10월 31일

온전한 사랑

 













며칠 전에 만나뵈었을 때 들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내 삶의 본문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그분께 말했다. 허세,겉멋,어리석음의 문장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문장으로 본문을 채우고 싶었다. 출근길 횡단보도에 섰는데 오늘이 50대에 경험하는 마지막 "10월의 마지막 밤"(feat. 이용)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50대가 딱 두 달 남았다. 내일은 50대의 마지막 11월 1일이 될 것이다). 회사 앞 건널목에서 우연히 남자 후배 A를 만났고 "나 지금 커피 테이크아웃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 한 잔 사줄게." (A는 이미 출근하며 캔커피를 한 잔 마셨지만 또 마시겠다고 했다). 커피를 들고 회사로 걸어오는데 내 퇴직일을 물어 퇴직일 계산법을 알려주었다. "만60이 되는 생일 있는 달 다음 달 말일까지. 난 생일이 1월이니까 2.28까지"라고 하자 후배는 "마지막 달은 이틀 덜 일하고 한 달 월급 받으시네요"라고 해서 둘이 많이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오전에는 B교수의 영상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녹화 자체가 우리가 기대한 방향대로 나오지 않아 본편 편집을 하면서도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였다). 프롤로그를 정말 살려야 했기에 일단 프롤로그에 넣을 수 있는 부분은 다 모았다. 7분 분량을 모은 후 파일로 만들었다. 네이버 클로바에 넣고 텍스트로 변환해서 프린트 해서 줄치며 읽었다.(프롤로그 만들며 이런 과정을 거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더니 보였다! 찾았다! 그렇게 나온 프롤로그의 클로징 부분이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C가 입시 설명회 참기 후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올리버 색스의 의학 에세이 중 허그와 포옹 부분에 대해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오바퀴를 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팀원들에게 커피를 쐈다. D가 어제 저녁에 참가했던 영화토론 모임 후기를 들려주었다.) 오후에는 E와 쇼츠를 함께 만들었다. E가 이미 만들어놓은 쇼츠의 구성을 함께 보며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섬네일과 글제목을 정하는 일인데 E와 호흡이 잘 맞아 작업이 늘 즐겁다. 오늘 이상하게 내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는지 맘에 드는 섬네일과 글제목이 정말 바로바로 나왔고, 그때마다 E가 찐으로 탄성의 소리를 냈기에 몹시 뿌듯했다. 쇼츠 제작을 마친 후 3층 편집실에 내려와 (E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F교수의 새로운 에피소드 편집을 시작했다. 나는 F교수의 인트로를 참 좋아한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그는 주어진 질문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인트로로 대답을 시작한다. 그의 영상을 들으면 <시야>가 넓어진다. 6시반까지 편집을 하고 4층에 올라가 옷과 책을 챙겼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후배 G가 편집실에서 혼자 편집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얘기였다. 인트로와 클로징 원고를 봤는데, 클로징의 마지막 멘트에서 빵 터져 큰 소리로 웃었다. G도 웃었다.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회사를 나와 밀크티집을 향해 걸었다. 오목교 횡단 보도 앞에 섰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오늘 무언가를 "만들어서" 참 행복했다. 슬퍼함, 아쉬워함은 시간을 소중히 여김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음. 시간을 진정하게 소중히 여김은 옆에서 볼 때 유쾌해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거나, 수다스러워 보일 수 있음. 밀크티집에선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이다. --- 집에 와서 김창옥 쇼를 한 편 봤다. (내가 음악을 듣듯이 보는 영상이다. 매일 본다. 본 것도 또 본다.) 인스타에 뜬 반 고흐의 문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문장이었다.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예술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다". ---- 오늘 나는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행복을 누렸다. 근데, 고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오늘 정말 행복했던 건, 내가 그 소중한 일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해서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신뢰를 주고 받으며 해서 그랬다. 작은 목표가 생겼다. 두 달 남은 나의 50대라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친절,격려,(썰렁한) 조크를 시도하리라. 아쉬워하는 대신 조금은 수다스러워지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나의 50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누구의 시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만이, 시간의 두려움을 내쫓으리라.

2025년 10월 25일

처음으로 귀를 막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카톡을 확인했는데 좋아하는 지인의 아들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이 와있었다. 사진 속 신랑과 신부가 아름다웠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내 눈에는 신랑도 그렇게 보였다. 35년 전 내 모습도, 당시 50, 60대 분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까.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 간식과 커피, 어머니에게 드릴 수필집을 챙겨 요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만나 함께 근처 연어덮밥 집으로 갔다. 연어덮밥 세트 2개 주문. 이제 말 안 해도 사장님은 밥 양을 조금 줄여주신다. 어머니가 늘 과식을 하셔서 내가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참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나는 사이드로 나온 연어초밥의 밥은 남기고 연어만 벗겨먹었는데, 어머니는 통째로 다 드셨다. 점심을 먹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탐앤탐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내가 사들고 간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맘에 들어하셨다. ---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어하신다. 20년 전부터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시집은 고사하고 아직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으니 아마 시집은 못 내고 돌아가실 것이다. 시집 출간에 대한 강렬한 소원이 있으신 어머니를 위해 지난 주 나는 "어머니, 시라는 게 사실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거라서 어쩌면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부담만 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필은 어떠세요?" 라고 했다. ----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반 전체가 갔던 봄 나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이야기, 50번을 들었을까, 60번을 들었을까. 봄 나들이 중에 초1이었던 7살 어머니가 언덕에 핀 꽃을 꺽어서 야마모토라는 일본 선생에게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어머니 뺨을 쳤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뺨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나는 그동안 뺨을 50번 맞은 것일까, 60번 맞은 것일까. 이상하게 오늘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몰래 손가락으로 내 두 귀를 막고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손을 떼면 여전히 야마모토였다. 그러면 다시 음. --- 야마모토가 끝났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수필집 내시면 책 제목은 뭘로 하실래요? 안도현의 '사람'이 좋았으니까 어머니는 '인간' 어떠세요?"라고 했고 어머니는 웃으셨다. 나는 밀크티를 남겼는데 어머니는 머그컵에 나온 커피를 다 드셨다. 탐앤탐스를 나와 요양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출국일자를 세 번 물으셨다. 아니 네 번 물으셨다. 요양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신발을 갈아 신겨드리고 안아드리고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 요양원 앞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두 개 있다. 6211과 640. 요즘 어깨 통증 때문인지 두 주 가까이 매일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거의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오늘은 밀크티 집에 들리지 않고 집에 가서 좀 자기로 했다. 내가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착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 버스에 올라왔다. 한 자리 좌석들만 있고 둘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앉았던 자리에서 미리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 전에 이들에게 내 자리를 주고 싶었다). 하차 카드를 찍고 출입구 앞에 섰는데 두 젊은 남녀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2025년 10월 24일

쇼츠, 신체검사, 하늘

오늘 우리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A와 함께 쇼츠를 만들었다. 편집 프로그램인 에디우스 기능 중에 내가 아는데 A가 모르는 게 있었고, A가 아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두 기능 모두 아주 요긴한 기능이었다. 서로 알려주며 많이 웃었다. 점심을 은행골에서 같이 먹고 오목공원을 오바퀴 했다. -- 오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미국 이민 비자를 위한 신체 검사를 받았다. 출국 일자가 미뤄지면서 올해 초에 받았던 신체 검사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바람에 다시 받는 검사였다. 올해 4월 처음 신체 검사를 받으려고 세브란스로 가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였는지 버스 속에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중가에 내려, 허겁지겁 약국을 찾아 두드러기 약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오늘도 또 몰라 두드러기 약을 한 알 갖고 갔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올해 초 나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내가 정녕 너를 이집트로 인도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이집트' 자리에 '미국'을 넣고 읽었다. 오늘 신체 검사를 받으며 그 말씀을 생각했다. --- 회사로 돌아와 오늘 중으로 작가에게 보내야 할 잘잘법 영상을 편집했다. 마음에 들게 됐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편성부의 B와 C가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이번 주 일요일 생방송 진행이 내 마지막 생방송 진행이야"라고 하자 B와 C가 많이 놀라주어서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방송 사고 한번 내볼까" 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좀 하다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왔다. (한 조직의 일원이기에 나눌 수 있는 이런 대화가 참 즐겁고 소중하고 감사했다). ---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하늘이 참 푸르렀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데 "지금 네가 원하는 건 000를 가까이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야"라는 부드러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들리는 거 같았다. (내가 최근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경고의 말씀 때문에 오늘 온종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25년 10월 12일

신형철을 읽는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 평소와 달리 큰 갈등 없이 교회 가기로 결정함. (웃음포인트). 가면서 신형철이 32개의 시에 대해 해설한 <인생의 역사>를 읽으며 갔는데 너무 잘 써서 와,와 감탄 하면서 감. 오늘 예배 중에 와,와 한 적이 두 번 있었음. 참 아름다운 장면이었음. --- 오늘 성찬 봉사자는 내 대학 동기 P였음. 성찬을 다 받은 사람은 (앞에 나가 줄을 서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 후) 빈 포도주 잔을 봉사자가 들고 있는 함에 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음. 이것이 성찬의 절차인데, P의 아내가 성찬을 받는 모습이 눈에 띄였음. 포도주를 마신 그녀는 돌아서서 남편 쪽으로 걸어오더니 남편 P를 바라보며 남편을 향해 정말 부드러운 미소를 한번 지은 후에 포도주 잔을 함에 넣었음. 나중에 집에 가면 "P, 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문자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함. --- 성찬을 다 마치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음. 그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내 앞 쪽에 있던 두 젊은 부부가 손을 잡음. 참 아름다운 장면을 짧은 성찬 시간에 두 번 목격함. ---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가깝게 지내는 A와 차를 마시러 커피숍에 가서 주문하는 사이에 내가 "오늘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두 번 봤어요"라고 하며 P의 아내가 남편에게 지었던 미소 이야기를 했다. "아! 저도 봤어요!" "정말요!" 나는 P에게 문자를 보낼 거란 말을 했다 (ㅋㅋ) A가 "두 번째는 뭔가요!"라고 물어 내가 젊은 부부 얘기를 했더니 "아! 저도 봤어요!" (ㅋㅋㅋ) 이럴 수가! (ㅋㅋㅋ) 어쩌면 오늘 예배 중에 감동한 사람이 나와 A 둘만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A에게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 덧붙인다. (아까 그 예배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찬송을 부르던 내 앞의 젊은 부부가 손을 잡았다. 나도 마음 속으로 미국에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2025년 10월 11일

헤밍웨이가 멈추라고 한 곳에서 멈췄다


 











2025년 9월 1일

퇴직 6개월 전에 하는 생각

오늘은 9월 1일. 정확하게 퇴직(2026.2.28) 6개월 전이다. 사랑하는 일, 애정하는 가까운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은 통증에 가까운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새벽에 눈을 떴을 때도 그런 통증이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 보고 싶을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고, 그러자 통증이 사라졌다.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나에게는 "내 모든 걸 쏟아부어 본 시간"들이 있다. 내게는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를 주고 받는 동료들"이 있다. 만약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런 관계들이 없었다면 내 재직 기간은 커다란 공허로 다가왔을 것이고, 남은 6개월은 그 공허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며, 퇴직은 정녕 날카로운 비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감사하게도 내 지난 30년은 "채워져"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떠남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퇴직을 앞 둔 이에게는 남은 기간보다 받은 은혜를 돌아보는 게 더 필요하구나.    

"5년이 더 주어진다면 좋겠니?"라는 질문도 내게 도움이 됐다. 아니오,가 내 대답이었다. 나는 나의 재직 기간을 더 완전하게 <보수>하기 위해 시간을 더 요청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는, 즉  피조물이다. 유한한 상태에서 입사했다가 유한한 상태로 퇴직하는 유한한 피조물이다. 5년이 더 내게 주어지더라도 그 5년 때문에 내가 지금의 나보다 완전한 존재가 될 거 같지는 않다. 불완전한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보수될 거 같지도 않다. 어떤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 퇴직을 꿈꾼다면, 그러지 못함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어리석고 건강하지 못한 생각일 거 같다. 늘 그래왔듯이, 나는 아쉬움도 느끼겠지만 '괜찮다'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함께 경험할 것이며, 그분께 또 한 번, 나의 <완벽하지 않은 퇴직 후 계획>을 들려드릴 것이다. 1993년 한 명의 어리숙한 신입사원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그분께서는 2026년, 이번에는 (여전히 어리숙한ㅠㅠ) 한 명의 퇴직자를 또 한 번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것이다.   

남은 6개월이, 한 명의 피조물이 완전해지려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한계까지도 향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2025.9.1. 

신동주 드림


* '내 자신의 결핍을 향유함'이란 말은 도심 속 수도 교회 '신비와 저항'의 박총 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2025.8.18)에 나옵니다.


2025년 8월 17일

ABC 살인사건

 

최근 심한 무기력증 때문에 교회에 못 가다가 오늘 한 달만에 교회에 갔다. 아내의 조언대로 지난 월요일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운동의 효과가 있었다. ---- 교회 가는 길 지하철에서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었다. '도련님'이란 단어의 등장 순간이 절묘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의 첫 등장 순간만큼이나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렸다. --- 예배를 마치고, 준비해간 생일 선물을 00에게 주었다. 점심도 00와 같이 먹었다. 요즘은 "우르르 용병단"이라는 어드벤처 RPG 게임에 빠져있다고 했다. 내게 전략적으로 게임을 운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줬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나도 초5때 이랬을까. ---- 교회 가기 전 유튜브에서 동기 부여에 관한 짧은 쇼츠를 하나 봤다. 의지력에 관한 거였다. (의지력이 약한 나는 의지력에 관한 영상을 자주 본다). 출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의지력이 강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의지력이 강한 게 아니라 그게 그냥 습관이 돼서 그런 거예요. 아침에 의지력을 갖고 이를 닦는 사람이 있나요. 습관적으로 닦는 거지요." 이 지적에 공감이 됐다. 당분간 예배(참석)에 큰 의미 부여 하지 않고 그냥 이를 닦는 거라고 여겨야겠다.

2025년 5월 28일

비자 인터뷰


 











비자 인터뷰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아들과 통화하고 오목공원을 산책하고 편집을 하고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걸었다. 안양천을 걸으면서 로마서 말씀을 묵상했다. 

2025년 5월 25일

검은 용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다. 집에서 지하철 양평역까지 걸어가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공든 탑을 쌓는 게 아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우리가 넘어진다는 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게, 그래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게,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건 바울의 말처럼, 권연경 교수의 지적처럼, 달리기일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 다시 달려가면 된다. 넘어졌다고 다시 출발선까지 돌아가서 다시 달릴 필요가 없다. 이 생각이 내게 격려가 되었다. 아, 다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나를 얼마나 낙심케 해왔던가. 교회에 도착했는데 복도에 불판이 쌓여있었다. 아싸, 어쩌면 오늘 점심 때 고기를 먹는 건가!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 설교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예수님은 묻고 명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수없이 들은 설교였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네 자리'에 꽂혔다. 그 38년된 병자는, 병이 길어지자, 자기 자리에서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누렸을 것이다. 텀블러를 올려놓고, 핸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콘센트를 마련하고, 와이파이 비번을 알아두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니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잊어먹은 채, 쇼츠와 릴스를 보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하루종일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자기 자리를 들고 연못가에 가서 자리를 잡은 뒤, 사건과 변화 없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을 즐겼으리라 믿는다. 내 삶의 자리에서 쇼츠와 릴스와 온갖 오락을 치우고 불편한 자세로,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보겠다. 내 자리에 만족하지 않겠다. ---- 점심은 기대했던대로 삼겹살이었다! 삼겹살, 상추,깻잎,쌈장,오이고추,잘 익은 김치와 뜨거운 밥을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A와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나는 어떤 게임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주로 나의 질문과 A의 답변으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집을 짓는 거지?" "네". "자기 집을 짓는 과정 중에 어떤 고난이 있어? 그러니까 방해물이 존재해?" A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가방에서 마인크래프트 책자를 꺼내 방해자들의 리스트를 보여줬다. 다 영어 이름이라서 기억은 하지 못하는데 여러 종류의 나쁜 놈 캐릭터들이 있었다. 검은 용도 있었다. 설명을 듣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A는 지하에 집을 짓고 있다고 하면서 지하에 집을 지을 때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자기 집을 짓고 그 안에 머물면 정말 안정감이 들겠는데?" "예.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 같은 곳이예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나도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 난생 처음이었다). 지하에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실제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로그인한 후 그 안전한 은신처 - 이곳에는 당연히 책장이 있다! - 안에 있는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캐릭터로 변신해서 하루 10분~15분 정도 보내면 마음이 무척 안정될 거 같다. 거의 큐티를 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특히, 지지상의 하늘에선 검은 용이 날아다닌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위험이 존재해야 은신이 더 달콤한 법이다. "그런데, 캐릭터들끼리 대화도 가능하니?" "예, 가능해요".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기에 "그럼, 게임을 하다가 다른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니?" "예, 있어요" "오, 진짜! 누구랑? "엄마요. 엄마도 게임을 해요". A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완전히 한방 먹었다. "엄마는 아니지, 엄마 말고 ㅋㅋㅋ" 빵 터진 나는 웃고 있는 A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고 그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집에 와서 책을 좀 읽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아름답고 행복했다. 오늘은 특별히 더 그랬다.

2025년 5월 23일

내가 차지 않을 시계


 











내일 정말 몇년 만에 남서울교회 청년부 시절의 동기들을 점심 때 보기로 했기에 오늘 오전 반휴를 내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하루 미리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베트남쌀국수집 사장님은 이제 우리 모자와 친해졌고 또 우리 사정도 어느 정도 아시기에 "아, 다음 주에는 어머님께서 아들을 7일이 아니라 8일만에 보시겠군요"라고 웃으며 조크를 날리셨다. 어머니에게 간식과 믹스 커피와 빳데리를 간 손목 시계를 전해드리고 회사로 왔다. ---- 회사에 와서 권연경 교수 제2강 최종 가편을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잘잘법 커뮤니티에 상담 답변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권교수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 더 '큰 지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아, 역시 신학자는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권교수가 이 강의에서 그려주는 지도. 너무너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 편집을 하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복도에 나가서 받았다. "아들, 우리가 언제 만났지? 어제 만났나?" 오늘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놀라실 거 같아 나는 말을 바꿨다. "어머니, 혹시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들. 지금 내가 찬 이 시계,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장남에게 꼭 물려주고 싶어." 김영삼 대통령 싸인이 들어가 있는 청와대 시계였다.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셨다는 어머니의 기억은 맞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신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은색 시계를 차셨다. "예, 어머니, 다음 주 토요일에 제가 어머니 뵈면 그때 제가 잘 받아서 간직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시계. 시간. 기억. 그에게 맞았던 기억. 대걸레가 부러졌던 시간. ----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길, 안양천에 들려 한 시간 산책을 했다. 

2025년 5월 22일

복된 하루



 












(시로 표현하면)

오늘은 신께서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아주셨다 

내가 됐어요 하는데도
더 담아주시려한다

(산문으로 기록하면)
오늘 오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김영봉 목사님의 강의를 네 편 녹화했다. 네 편 모두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녹화 후에 김목사님, 스탭들과 함께 추어탕을 먹었다. 다들 한 그릇씩을 다 비웠는데 나만 너무 많이 남겨서 조연출들이 놀랬다. 녹화 때 너무 집중을 했는데 그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서 밥이 잘 안 넘어갔다.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움에 가까운 긴장이었다. 적게 먹었기에 속이 편했다. 목사님을 배웅하고 스탭들과 함께 오목공원을 "오바퀴"(다섯바퀴 돌기의 우리팀 은어)했다. ----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편성팀 후배 넷이 내게 와서 오목공원 안에 있는 <오목한 미술관>에서 양예준 개인전 "눈빛으로 전하는 작은 기도" 색연필 그림 전시회를 본 소감을 이야기해 줬다. (며칠 전 나도 이 그림 전시회에 갔었고 큰 감동을 받아 작가에게 짧은 감사의 메일을 보냈었다.) 후배들의 말에 따르면, 양예준 작가의 어머니가 그림을 해설해 주는 과정에 내가 메일로 보낸 감상평을 소개했고, 후배들은 그 감상평을 듣다가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이 나라는 건 알게 됐다고 했다. 후배들이 그 전시회를 즐긴 것이 기뻤고, 내가 보낸 감상의 이메일이 양예준 작가와 그의 어머니가 써 나가는 "스토리"를 조금이나마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몹시 감사했다. - - - 2시반부터 오늘 업로딩 되는 본편 검수 및 섬네일 회의를 했다. 섬네일은 "불안형 크리스천이 진짜 쉬는 법"으로 했고 제목은 "쉬어도 쉬어도 계속 피곤한 당신에게"로 했다. A가 이번 편에는 에필로그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에필로그를 썼다. 1안,2안,3안을 썼는데 3안으로 정해졌다. B가 에필로그를 위해 고른 배경영상과 글씨체가 문장과 너무 잘 어울렸다. --- 퇴근길. 회사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길에 멈춰 서서 서두에 썼던 시를 썼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오늘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다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안양천에 가는 길에 거치는 상가 골목들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산책길 풀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런닝 크루를 제일 많이 만난 날이었다. 한 여섯 팀 정도 본 거 같다. 제일 흥미로웠던 크루는, 뛰어오다가 내 옆에서 멈춰선 크루였는데 "멈출게요"라고 제일 앞에서 뛰던 여성이 말하자 다들 멈춰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가 나와 같아서 한 2분 정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다음에는 뚝섬 근처에서 뛰자는 얘기를 했다. 한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크루. 갑자기 아까 그 여성이 "십 초 전"이라고 말하자 다들 "네" 하며 하던 말을 멈추었고, 정말 십 초 쯤 지나 여성이 "뛸게요"라고 하자 다시 모두들 "네"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목격한 런닝 크루였는데 정말 흥미진진했다. 


2025년 5월 18일

여성용 스킨 로션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매주 일요일 두 교회의 주일예배를 생중계하는데 오늘은 내가 주조 근무 당번이었다. 10시부터 꿈의교회 예배를 생중계하고, 11시부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생중계했다. ---- 진행 당번인 피디들은 9시까지 출근한다. 주조와 부조 상황을 미리 점검해야 해서 그렇다. 9시 반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내 방에 스킨로션이 하나 있는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어머니, 어머니 세수하고 쓰시라고 제가 어제 드린 거예요." "그렇구나. 아들 고마워. 잘 쓸게". --- 생중계 당번은 서너 달에 한 번 돌아오는데 아마 퇴직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게 될 거 같다. 12시에 생중계를 마치고 점심은 오목공원 옆에 있는 셱셱버거에서 먹었다. 너무 좋은 날씨였고 나는 점심을 먹은 뒤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다음 주에 있을 미대사관 비자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무척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는 내 카톡 상태 메시지를 '차근차근'으로 바꿨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를 한글로 발급 받은 뒤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했다.외교부 사이트에서 '증명서 용어 번역 가이드'를 하나 다운 받은 후 참고하면서 증명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완성했더니 뿌듯했고, 이런 때 스스로 내게 주는 선물은 단골 밀크티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찻집에 도착해서 밀크티를 시키고 갖고 간 시집을 읽었다. (나는 요즘 시집 읽는 데 푹 빠져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빠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시집을 읽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나가서 받았다. "예, 어머니". "아들, 누가 내 방에 스킨 로션을 하나 갖다 놨는데 누가 갖다 놨을까?"

차를 한 번만 마셨다, 처음으로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 함께 외출을 했다.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는 그동안 늘 가던 빠리바케트가 아니라 지난 주 어버이날에 동생과 함께 처음 갔던 탐앤탐스에서 마셨다. 매장 크기가 엄청 큰 곳인데 어머니는 넓어서 좋다고 하셨다. 2층에서 마셨다. 어머니는 창문 가까이에 놓여있던 의자를 실내 쪽으로 옮기셨다. 너무 창가에 있으면 잘못하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가 사가지고 간 스쿠알렌, 맥심 커피, 간식용 과자, 팥빵, 세수 하고 바르는 여성용 스킨 로션을 어머니에게 전해 드렸다. 어머니는 오늘 기분이 좋으신지 농담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나도 찐으로 빵 터진 괜찮은 농담이었다. ---- 오늘은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나는 어머니와 차를 마시고 헤어지고 나면 으레 단골 밀크티집에 가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왔다. 몇 년째 그래왔다. 오늘은 곧장 집으로 왔다. 혼자만의 차 마시는 시간을 안 가져도 될 거 같았다.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데 당연히 에너지가 들어갔다. 근데 방전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과연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나는 회의했는데 이런 날이 왔다.

2025년 5월 16일

아들과의 통화, 성물(聖物)













회사 1층 로비에 있는 우리은행 앞에서 아들과 긴 통화를 했다. 아들은 지금 하는 경험을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들려 줄 실패가 있는 삶은 얼마나 축복인가. 실패가 없어 승리만을 들려줘야 하는 삶은 얼마나 가난한가. ----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에 갔을 때 내 자리에 A가 주는 선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 십자가를 손에 쥘 때 두 가지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평화가 제게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가 제가 아는 이웃에게 임하게 하소서" 

2025년 5월 15일

오늘, 기적


 











내가 아끼는 A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가 기뻤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