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취재지는 성공회대성당으로 정했다. 6.10 항쟁 때 민주 시민들이 모였던 곳. 그때도 종을 쳤다고 들었다. 제대로 된 종소리와 교회 목소리,를 취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문을 보내 취재 허락을 받고 성당을 찾았다. 신부님의 안내를 받으며 종탑의 나선형 계단을 올가가는데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성적 흥분을 느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비밀한 곳. 너무 맘에 들었다. 종 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고 해서 일단 인터뷰부터 하기로 했다. 종탑 위에서 신부님을 인터뷰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이 근처를 지날 때, 지금 저기 저 종탑 종소리 들리지, 옛날에 아빠가 저 종탑에서 인터뷰 하면서 종탑 나무 틀 사이에 몰래 아빠 볼펜을 하나 숨겨 놨어, 지금도 그 자리에 아빠 볼펜이 있는 거야, 하면 아이가 얼마나 신기해할까. 신부님이 딴 곳을 볼 때 몰래 내 모나미 볼펜을 종을 매단 나무 틈 사이에 살짝 숨겼다. 가슴이 막 뛰었다. 신부님을 따라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차, 싶었다. 저 거대한 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엄청난 소리로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 바로 옆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는 내 볼펜은...그 소리에 영원히 시달리게 되고...벌써부터 내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볼펜을 이대로 놔두고 갈 수 없어, 이대로 가면 난 밤마다 종소리에 시달릴 거야...“저 신부님...” “왜 그러시나요?” “종의 구조를 다시 한 번 봐야 제대로 된 원고를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친절한 신부님과 함께 다시 한 번 긴 나선형 계단을 거쳐 종탑에 올랐다. 종 구조 살피는 척 하다가 신부님 몰래 볼펜을 다시 꺼냈다. 요즘도 시청 앞 대성당을 근처를 지날 때면 그 때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볼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2014년 7월 5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2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2
점점 상투적으로 돼가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만의 언어를 갖고 싶었다. 라이코스에 my_own_language@lycos.co.kr 이란 메일을 만들었다.
점점 상투적으로 돼가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만의 언어를 갖고 싶었다. 라이코스에 my_own_language@lycos.co.kr 이란 메일을 만들었다.
2014년 7월 4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0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0
개편을 한 달 앞두고 피디들은 편성국 출입구 앞에 붙은 프로그램 배당표를 확인했다. 각자의 이름 옆에, 배정된 프로명이 적혀있었다. 내 이름이 보였다. 내 이름 옆에, 프로명이 없었다. 1995년 가을 난 프로그램을 배정 받지 못했다. ( ‘내가 아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퇴직하신 ‘어떤 한 분’의 결정을 내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건 공평하지 않을 것 같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선배 B가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을 사줬다. 밥을 먹으러 가기 전만 해도 난,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좋아, 월급 나오겠다, 그래 푹 쉬어주지”라고 생각했다. B 선배가 사준 점심을 먹고 회사로 오며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 긴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을 가지고 너 뭐 할래?” 다큐였다. 내가 피디가 된 가장 큰 이유. 다큐멘터리. FM 라디오 개국을 석 달 앞두고 있었다. 무언가 감동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종소리가 떠올랐다. 새벽마다 경쟁적으로 울리는 한국 교회의 차임벨 소리는 이미 공해였다. 성공, 성장, 복을 외치는 설교는 그보다 더한 공해였다. 교회가 안 그러던 시기가 있을 거 같았다. 안 그러는 교회가 있을 거 같았다. 그런 교회의 종소리를 - 그런 교회에는 왠지 종이 있을 거 같았다 - 그 교회가 겪은 스토리와 함께 들려주면 무척 라디오다큐적일 것 같았다. 그렇게해서 CBS-FM 개국특집 다큐멘터리 <한국 교회의 종(鐘)을 찾아서>. 1995년 12월 15일 방송
개편을 한 달 앞두고 피디들은 편성국 출입구 앞에 붙은 프로그램 배당표를 확인했다. 각자의 이름 옆에, 배정된 프로명이 적혀있었다. 내 이름이 보였다. 내 이름 옆에, 프로명이 없었다. 1995년 가을 난 프로그램을 배정 받지 못했다. ( ‘내가 아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퇴직하신 ‘어떤 한 분’의 결정을 내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건 공평하지 않을 것 같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선배 B가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을 사줬다. 밥을 먹으러 가기 전만 해도 난,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좋아, 월급 나오겠다, 그래 푹 쉬어주지”라고 생각했다. B 선배가 사준 점심을 먹고 회사로 오며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 긴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을 가지고 너 뭐 할래?” 다큐였다. 내가 피디가 된 가장 큰 이유. 다큐멘터리. FM 라디오 개국을 석 달 앞두고 있었다. 무언가 감동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종소리가 떠올랐다. 새벽마다 경쟁적으로 울리는 한국 교회의 차임벨 소리는 이미 공해였다. 성공, 성장, 복을 외치는 설교는 그보다 더한 공해였다. 교회가 안 그러던 시기가 있을 거 같았다. 안 그러는 교회가 있을 거 같았다. 그런 교회의 종소리를 - 그런 교회에는 왠지 종이 있을 거 같았다 - 그 교회가 겪은 스토리와 함께 들려주면 무척 라디오다큐적일 것 같았다. 그렇게해서 CBS-FM 개국특집 다큐멘터리 <한국 교회의 종(鐘)을 찾아서>. 1995년 12월 15일 방송
2014년 6월 24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9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9
아마 대학로에 있는 흥사단 강당이었을 것이다. 강사도, 그날 강연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선배의 목소리. “강연 좀 따와”. 강대상 앞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청중석 중앙에 자리가 하나 비었다.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마이크 달린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사방을 살펴보니 강사 목소리는 천장에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내 머리 위에도 하나가 있었다. 머리를 굴렸다. 가까이에 대면 더 깨끗하게 녹음되겠지. 갈등했다. 마이크 든 오른손을 천천히 쳐들었다. 강사는 힐끗 날 한 번 쳐다보더니, 하던 강연을 계속 했다. 그랬다. 한 명의 수습 피디가 강연 한 시간 내내 청중석 중앙에서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아마 대학로에 있는 흥사단 강당이었을 것이다. 강사도, 그날 강연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선배의 목소리. “강연 좀 따와”. 강대상 앞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청중석 중앙에 자리가 하나 비었다.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마이크 달린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사방을 살펴보니 강사 목소리는 천장에 달려있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내 머리 위에도 하나가 있었다. 머리를 굴렸다. 가까이에 대면 더 깨끗하게 녹음되겠지. 갈등했다. 마이크 든 오른손을 천천히 쳐들었다. 강사는 힐끗 날 한 번 쳐다보더니, 하던 강연을 계속 했다. 그랬다. 한 명의 수습 피디가 강연 한 시간 내내 청중석 중앙에서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2014년 6월 22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8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8
처음 삼 년은 힘들었다. 첫 일 년은 특히 고되었다. 입사 동기 J와는 같은 동네에 살아 함께 퇴근할 때가 많았다. (아, 그녀는 2007년에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가 붙은 『침대와 책』을 냈다. 그녀의 첫 책이었다. 최근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그의 슬픔과 기쁨』과, 라디오 피디로 일하며 느낀 걸 쓴 『마술 라디오』를 동시에 냈다.) 둘 모두 피곤에 지쳐 버스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침을 흘리며 잤다.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건 큰 힘이었다. 어느날 자다 전화를 받았다. 새벽 2시였다. 오빠 나야. 무슨 일이야. 지금 집으로 와줄 수 있어? 평소와 다른 목소리였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누가 옆에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을 입었다. 옷을 입고 부엌으로 가 식칼을 챙겼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 신혼이었다. 나는 자고 있는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어쩌면 마지막 키스가 될지도 몰랐다. 옆 단지 J의 아파트로 갔다. 현관 손잡이를 돌렸더니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 거실에는 상이 쭉 펼쳐져 있었다. 이상하게 상마다 먹다 남긴 음식들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낮에 사무실에서 봤던 부장과 선배들이 일렬로 앉아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J가 미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식칼까지 가슴에 품던 수습시절이었다.
처음 삼 년은 힘들었다. 첫 일 년은 특히 고되었다. 입사 동기 J와는 같은 동네에 살아 함께 퇴근할 때가 많았다. (아, 그녀는 2007년에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가 붙은 『침대와 책』을 냈다. 그녀의 첫 책이었다. 최근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그의 슬픔과 기쁨』과, 라디오 피디로 일하며 느낀 걸 쓴 『마술 라디오』를 동시에 냈다.) 둘 모두 피곤에 지쳐 버스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침을 흘리며 잤다.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건 큰 힘이었다. 어느날 자다 전화를 받았다. 새벽 2시였다. 오빠 나야. 무슨 일이야. 지금 집으로 와줄 수 있어? 평소와 다른 목소리였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누가 옆에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을 입었다. 옷을 입고 부엌으로 가 식칼을 챙겼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 신혼이었다. 나는 자고 있는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어쩌면 마지막 키스가 될지도 몰랐다. 옆 단지 J의 아파트로 갔다. 현관 손잡이를 돌렸더니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 거실에는 상이 쭉 펼쳐져 있었다. 이상하게 상마다 먹다 남긴 음식들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낮에 사무실에서 봤던 부장과 선배들이 일렬로 앉아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J가 미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식칼까지 가슴에 품던 수습시절이었다.
2014년 6월 14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3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3
극장에 가서 레옹을 봤다. 레옹이 그림자처럼 악당 뒤로 나타나 칼을 목에 갖다대었다. 벌벌 떠는 악당에게 레옹이 이런 말을 했다. 하수는 멀리서 총을 쏘지만 고수는 이런 칼 한자루 들고 표적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실력 있는 피디가 돼야지. 원수의 땀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집에 돌아와 다음에 dando@hanmail.net 이라는 메일을 만들었다.
극장에 가서 레옹을 봤다. 레옹이 그림자처럼 악당 뒤로 나타나 칼을 목에 갖다대었다. 벌벌 떠는 악당에게 레옹이 이런 말을 했다. 하수는 멀리서 총을 쏘지만 고수는 이런 칼 한자루 들고 표적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실력 있는 피디가 돼야지. 원수의 땀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집에 돌아와 다음에 dando@hanmail.net 이라는 메일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8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2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2
밤에 하는 한 시간 짜리 CCM음악 프로그램을 맡았다. 사람의 멘트는 종종 공허했다. 하나 삼사 분짜리 음악 뒤에는 삼사 개월의 작곡과 녹음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공간과 시간을 꽉 채운다는 느낌을 줬다. 종종 LP판을 틀었다. 헝겊으로 레코드판을 닦았다. 돌아가는 판 위에 조심스레 바늘을 올렸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3층 주조정실 큰 창가에 걸터앉아 레코드가 돌아가는 턴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헝겊은 그 어떤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하는구나. 바늘처럼 날카로워야 소리를 낼 수 있구나. 내 비판은 헝겊과 바늘 중 무엇을 닮았을까. 그날 집에 와서 야후에 stylus(바늘)라는 아이디로 메일을 하나 만들었다. 누군가 이미 사용중이라고 해서 내 생일을 뒤에 붙였다.
밤에 하는 한 시간 짜리 CCM음악 프로그램을 맡았다. 사람의 멘트는 종종 공허했다. 하나 삼사 분짜리 음악 뒤에는 삼사 개월의 작곡과 녹음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공간과 시간을 꽉 채운다는 느낌을 줬다. 종종 LP판을 틀었다. 헝겊으로 레코드판을 닦았다. 돌아가는 판 위에 조심스레 바늘을 올렸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3층 주조정실 큰 창가에 걸터앉아 레코드가 돌아가는 턴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헝겊은 그 어떤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하는구나. 바늘처럼 날카로워야 소리를 낼 수 있구나. 내 비판은 헝겊과 바늘 중 무엇을 닮았을까. 그날 집에 와서 야후에 stylus(바늘)라는 아이디로 메일을 하나 만들었다. 누군가 이미 사용중이라고 해서 내 생일을 뒤에 붙였다.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
20년전 CBS라디오에 함께 입사한 정혜윤PD가 <마술 라디오>라는 책을 냈다. 오늘부터 나도 내 라디오 시절 추억을 떠올려 천 피스(?)짜리 퍼즐을 완성시켜보려한다. (될까?) 어쨌든 내 손에 잡힌 첫번 째 피스는...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
단체로 보도국에 가서 기자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기로 했다. 쭉 돌며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선배 한 분이 사무실이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는 이름이 등장했다. "야 신동주 너 뭔데 선배한테 그 따위로 인사하는 거야 인사가" 첫 직장이었다. 수습 출근 첫 날이었다.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
단체로 보도국에 가서 기자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기로 했다. 쭉 돌며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선배 한 분이 사무실이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는 이름이 등장했다. "야 신동주 너 뭔데 선배한테 그 따위로 인사하는 거야 인사가" 첫 직장이었다. 수습 출근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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