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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7일

금빛 바람


 



















어제 자기 전에 황동규 시인의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을 읽는데 <벽암록>의 제27칙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왔다. 시인은 먼저 현암사판 번역으로 상기 본문을 소개했는데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중이 운문을 찾아와 '나뭇잎이 시들어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자 운문이 대답했다.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바람만 가득하지' ". 황 시인은 이어서 자신이 직접 한 다음과 같은 번역을 소개했다. "한 중이 운문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이 말했다. '금빛 바람 속에 몸통을 드러내게 되지'" . ----- 나는 라디오국에서 라디오 다큐를 만들 때 북한산에서 비박(bivouac)을 하는 부부를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두 부부는 산에 올라가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되어 북한산의 바람을 맞으며 풍욕(風浴)을 했다.동행하는 취재자가 있었기에 남편과 부인은 각각 다른, 서로 떨어져 있는 바위 위에 올라 풍욕을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했다. (나도 모든 옷을 벗었다.) 수십 년 전 일이지만 그때 내 몸을 스치고, 간지르고 지나가던 바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서부터였을까. 바람을, 모든 종류의 바람을 좋아하게 된 나. 산들바람에서 폭풍까지, 모든 바람을. 하나 금빛 바람은 처음이다. 나도 맞아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바람이길래, 무성하던 잎 다 떨어지고 몸통과 가지만 남은 나무를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게 하는 거지? 나는 금빛 바람 속에서 몸통을 드러낸 나무가 지금 살짝 설레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까지 든다. 그늘은 더 못 줘도, 컬러의 강렬한 쾌감은 주지 못하지만, 몸통과 가지만으로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나무는 금빛 바람으로부터 지금 들었다. 그 비밀 듣고 싶어 나무 밑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2025년 11월 25일

<거룩한 행운> (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을 손에 쥐고.

 












주문했던 책이 도착했다. <거룩한 행운>(유진 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書 ). 오늘도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었고, 어제도 "메시지 성경"을 읽은 내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쓴 시집"을 읽는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 : ) : ) ----- "시를 쓰는 것은 평범한 것들에 깃든 하나님 나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좋은 방법이다". -----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거룩한 행운. 제2부 바스락거리는 풀 제3부 매끄러운 돌들. 나는 2부에 내가 좋아하는 제목 두 개를 발견했다. '시간'과 '이집트'. '시간'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했다. "인생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나는 /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다. ". 이런 구절도 등장한다. "죄라는 나의 다른 시계 속에서 나는 미루고 있다". 기다림과 미루기. 소망과 함께 하는 기다림과 정리되지 않은 삶에서 나오는 미루기. 마음에 훅 들어오는 대비이다. '이집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떠나라는 천사의 말은 아주 분명했지만 /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 이집트는 안전했지만 집은 아니었다". 안전을 최고선으로 좇는 내게 들려오는 천사의 음성. 나도 천사의 음성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 나귀에 태우고 믿음으로 출발하리. 늦은 밤 혹은 새벽에. -----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책을 " 잰(Jan)에게, 결혼 55주년을 맞아" 라고 하며 아내에게 바쳤다. 이 시집 덕분에 내가 59세로 맞이하는 2025년 겨울이 따뜻해질 거 같다. 꽉 찰 거 같다.

2025년 11월 17일

제7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폐막식 참석 후기

 










늘 개막식에만 참석한 나에게 폐막식은 처음이었다. 사회자의 진행이 참 유쾌하고 편안했다. 객석 전체가 그렇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폐막식 순서 중에 자원 활동가 네 분의 짧은 자기 소개와 소감 나눔이 있었는데, 내게는 이 시간이 참 감동적이었다. (소감은 짧았지만 메시지가 있었고 영화제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네 사람을 통해 영화제의 미래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집행부 세 분과의 이야기 시간을 통해 모기영이 올해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지원을 받을 때는 서울시에서 영화제에 실사를 나온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실사를 나온 서울시 관계자들이 매번 모기영의 내용과 진행의 퀄러티와 투명성에 감동 받고 돌아갔다는 것, 근데 서울시에 새롭게 정한 지원 원칙(*연속 지원에 제한 두기?)때문에 올해는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기영 정신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란 생각을 했다. 집행부 세 분 모두 제8회 모기영 이야기를 했고, 관객 모두 제8회 모기영을 마음에 담았다. 배우 강신일 집행위원장이 폐막 선언을 해주셨다. 영화평론가 최은 부집행위원장이 폐막작 <마지막 야구 경기>(원제: Eephus, 미국, 2024)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다. 사회인 야구팀 <리버독스>와 <애들러스>가 경기를 벌이는 영화다. 새 중학교가 들어서게 되어 야구장은 헐릴 예정이고, 그렇기에 오늘 경기가 이들에겐 마지막 야구 경기이다. 아래는 이 영화에 대한 아주 짧은 소감이다.나를 위한 영화였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3개월 뒤에 정년 퇴직을 한다. 그렇기에 요즘 내가 회사에서 하는 여러 일들 앞에는 늘 '마지막'이란 단어가 붙는다. (얼마 전에는 '마지막 생방송'을 진행했다. 요즘은 '마지막 11월'을 보내고 있다. ) 이렇게 매번 맞는 '마지막들'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르고 타석에 서야 후회하지 않을까. 요즘 내가 늘 하는 고민이었다.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너무 시간을 의식하며 심각하게 보내는 건 오히려 그 시간을 잃는 것이다. 유쾌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그 시간을 가장 예우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요즘 마지막 녹화, 마지막 낙엽 감상, 마지막 편집을 할 때도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 녹화, 가을, 편집을 그저 즐긴다. 그래서 몹시 궁금했다. 영화 속 남자들은 이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들의 <마지막에 대한 철학>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까.
어떤 사람은 집안 사람의 세례식이 있다고 먼저 간다. 심판은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다고 먼저 간다. 해가 져 볼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고온 차의 헤드라이트를 다 켠다. 여전히 어둡다. 계속 경기를 한다. 이제 타자가 공을 칠 때 수비팀에서 하는 말은 "공을 잡아!"가 아니라 "어서 공을 찾아!"이다. 사람들은, 말로는 어서 집에 가서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하면서도 피자를 먹으러 집으로 가지 않고 경기를 한다. 영화는 내가 예상,상상,기대 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영화는, 이퍼스라는 원제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느리게 날아와 나라는 타자를, 관객을 당황케 했다. 저것도 야구일까 라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차라리 멈추거나 집어치워 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들은 계속 경기를 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무엇일까. 어느 순간부터 예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자기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예의. 자기에게 즐거움과 의미를 주었던 것에 대한 예의. 마지막 경기는 마지막 예의였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냐에 따라 그때까지의 시간이 우스워지기도 하고 당당해지기도 한다. 잊고 싶어지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자랑스러워지기도 한다. 경기가 끝났다. 한국 사람들처럼 2차를 가지 않는다. 미국식이다. 각자 자기 차를 몰고 한 대씩 한 대씩 빠져나간다. 심판이 떠나자 대신 심판을 받던 노인이 중얼거린다. 나는 오늘 가장 멋진 경기를 봤어 라고 했던가. 아니면 나는 오늘 가장 행복한 사람들을 봤어 라고 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 어떤 말이든 이해가 간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025년 11월 7일

59세 PD와 새내기 인턴 (feat. 제임스 스미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내가 나온 IVF와 인턴이 나온 CCC 얘기를 함께 했다. 점심 후 오목공원 팀 산책을 했다. 공원 안 나무와 잎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J가 내가 Y와 주고 받는 짧은 대화를 폰으로 찍었다. Y가 쇼츠로 만들었다. 나는 댓글을 썼다. - - - - 막상 얼굴이 나오니 부끄럽습니다 ^^;; 곧 60세가 되는 저는 최근 몇 년간 '시간'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어요. 그중에서 제일 도움이 되었던 책은 < 시간 안에서 사는 법>(제임스 스미스 지음, 비아토르)이었어요.  지금 책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아 기억에 의지해서 저자의 얘기를 소개하면 이래요. "온갖 가능성으로 충만한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감상주의에 가깝습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에 계속 머물고 싶겠지만 그건 과거에 '고정'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가능성들을 놓치는 슬픈 과정이 아니라 촛점이 잡혀가는 보람된 과정입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한 시기도 아름답지만, 구체적인 모습으로 포커스 맞춰져서 주위 이웃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시기를 산다는 것 역시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잘잘법 구독자 여러분 모두의 삶이 그러하기를 기원드립니다 - S피디 드림




2025년 11월 1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

새벽에 김기석 목사님이 나오는 꿈을 꿨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김기석 목사님한테 성경책에 싸인을 받고 있었고 나도 그 줄 가운데 있었다. 나는 어머니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받고자 했는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시편 몇 편에 나오는지가 생각이 안 났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는데 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할 때마다 오타가 났다. (너무 괴로웠다). 내 차례가 됐고 나는 김기석 목사님에게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잠이 깼다.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가는 토요일이다. ---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 근처 '육회 바른 연어'에서 점심을 먹고 날씨가 쌀쌀해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옆 빠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뭐예요?" (실제로 나는 어머니가 평소 의지하며 떠올리는 성경구절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마 구원의 확신과 관련된 구절일 거라고 짐작했다. 어머니는 내 얼굴만 보시더니 "생각이 안 나는데"라고 하셨다. "아들이 먼저 하나 말해봐. 그러면 생각이 날 거 같아". "제 구절 듣고 떠올리면 안 되고, 그냥 지금 맘 속에 막 떠오르는 구절 말씀해 보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웃지 않으셨다.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어머니, 너 자신을 알라는 성경 어디에 나오나요?" "어딘지는 기억나지 않아. 그렇지만 성경에서 봤어." 나는 그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럼, 아들은?" 어머니가 물으셨다. "저는...저는 요즘 야곱 얘기에 끌려요. 야곱은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자기 답을 갖고 있었는데 인생이 그 답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나중에 그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에 끌려요" "참 좋네."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 어머니와 헤어져 시청 근처에 있는 오펠리스 웨딩컨벤션에 갔다.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20층은 사람들로 꽉 찼다. 내향인인 나는 혼주 부부와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주례를 맡은 (비교적) 젊은 목사의 주례사가 참 좋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사랑하는 법이 서로 다르기에, 상대의 사랑법을 이해하고 그걸 맞춰 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좋았다. 신랑 신부가 행진하기에 전에, 신부 아버지의 특별 순서가 있었다. 순서지에는 나오지 않은 순서였다.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가 하모니카 연주를 했고 곡목은 "은혜"였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딸과 사위 앞에서 온 몸으로 하모니카를 부는 아버지를 보는데 그분이 정말 은혜에 의지해 딸을 키웠다는 게 느껴졌다. 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이 하모니카 연주를 분명 잊지 못할 것이다. ---- 웨딩홀에서 나와 회사로 갔다. 오늘 어느 정도 편집을 마쳐놓고 싶은 영상이 있었다. 7시까지 편집을 해서 RT 28분까지 편집을 했다. 이제 월요일에 나머지 15분 정도만 추가 편집하면 된다. 저녁을 먹고 밀크티집에 가서 박영선 목사님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마저 읽었다. 183쪽 짜리 책인데 141쪽까지 읽었다. 내일 교회 가는 길에 다 읽을 것 같다. ---- 오늘 그런 상상을 했다. 야곱은 이집트로 내려간 후 임종 하기 전 두 손을 엇갈리게 교차해서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해 줄 때까지, 이집트에서의 그 기간을 어떤 얼굴 표정으로 지냈을까. 나는 야곱이 자꾸 피식피식 혼자 웃었을 것 같다. 자신이 세웠던 철저한 계획들은 다 어긋났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신을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이국 땅에서 매일 매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도 퇴직을 하고 미국에 가면 피식피식 웃게 될까. 내 표정은 어떨까.

2025년 10월 31일

온전한 사랑

 













며칠 전에 만나뵈었을 때 들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내 삶의 본문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그분께 말했다. 허세,겉멋,어리석음의 문장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문장으로 본문을 채우고 싶었다. 출근길 횡단보도에 섰는데 오늘이 50대에 경험하는 마지막 "10월의 마지막 밤"(feat. 이용)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50대가 딱 두 달 남았다. 내일은 50대의 마지막 11월 1일이 될 것이다). 회사 앞 건널목에서 우연히 남자 후배 A를 만났고 "나 지금 커피 테이크아웃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 한 잔 사줄게." (A는 이미 출근하며 캔커피를 한 잔 마셨지만 또 마시겠다고 했다). 커피를 들고 회사로 걸어오는데 내 퇴직일을 물어 퇴직일 계산법을 알려주었다. "만60이 되는 생일 있는 달 다음 달 말일까지. 난 생일이 1월이니까 2.28까지"라고 하자 후배는 "마지막 달은 이틀 덜 일하고 한 달 월급 받으시네요"라고 해서 둘이 많이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오전에는 B교수의 영상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녹화 자체가 우리가 기대한 방향대로 나오지 않아 본편 편집을 하면서도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였다). 프롤로그를 정말 살려야 했기에 일단 프롤로그에 넣을 수 있는 부분은 다 모았다. 7분 분량을 모은 후 파일로 만들었다. 네이버 클로바에 넣고 텍스트로 변환해서 프린트 해서 줄치며 읽었다.(프롤로그 만들며 이런 과정을 거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더니 보였다! 찾았다! 그렇게 나온 프롤로그의 클로징 부분이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C가 입시 설명회 참기 후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올리버 색스의 의학 에세이 중 허그와 포옹 부분에 대해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오바퀴를 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팀원들에게 커피를 쐈다. D가 어제 저녁에 참가했던 영화토론 모임 후기를 들려주었다.) 오후에는 E와 쇼츠를 함께 만들었다. E가 이미 만들어놓은 쇼츠의 구성을 함께 보며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섬네일과 글제목을 정하는 일인데 E와 호흡이 잘 맞아 작업이 늘 즐겁다. 오늘 이상하게 내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는지 맘에 드는 섬네일과 글제목이 정말 바로바로 나왔고, 그때마다 E가 찐으로 탄성의 소리를 냈기에 몹시 뿌듯했다. 쇼츠 제작을 마친 후 3층 편집실에 내려와 (E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F교수의 새로운 에피소드 편집을 시작했다. 나는 F교수의 인트로를 참 좋아한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그는 주어진 질문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인트로로 대답을 시작한다. 그의 영상을 들으면 <시야>가 넓어진다. 6시반까지 편집을 하고 4층에 올라가 옷과 책을 챙겼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후배 G가 편집실에서 혼자 편집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얘기였다. 인트로와 클로징 원고를 봤는데, 클로징의 마지막 멘트에서 빵 터져 큰 소리로 웃었다. G도 웃었다.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회사를 나와 밀크티집을 향해 걸었다. 오목교 횡단 보도 앞에 섰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오늘 무언가를 "만들어서" 참 행복했다. 슬퍼함, 아쉬워함은 시간을 소중히 여김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음. 시간을 진정하게 소중히 여김은 옆에서 볼 때 유쾌해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거나, 수다스러워 보일 수 있음. 밀크티집에선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이다. --- 집에 와서 김창옥 쇼를 한 편 봤다. (내가 음악을 듣듯이 보는 영상이다. 매일 본다. 본 것도 또 본다.) 인스타에 뜬 반 고흐의 문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문장이었다.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예술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다". ---- 오늘 나는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행복을 누렸다. 근데, 고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오늘 정말 행복했던 건, 내가 그 소중한 일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해서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신뢰를 주고 받으며 해서 그랬다. 작은 목표가 생겼다. 두 달 남은 나의 50대라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친절,격려,(썰렁한) 조크를 시도하리라. 아쉬워하는 대신 조금은 수다스러워지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나의 50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누구의 시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만이, 시간의 두려움을 내쫓으리라.

2025년 10월 30일

은중과 상연의 감동

 














라디오국 후배 A와 점심을 먹었다. 아무리 오래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후배이다. 내가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냐요 얘기를 하며 요즘 무슨 드라마 보냐는 내 물음에 A는 최근에 은중과 상연을 아내와 함께 봤다고 했다. (나는 보지 않았다). A는 이 드라마의 구성과 대사, 그리고 마지막 15화의 결론이 참 인상적이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마지막 15화를 봤는데, 15화가 끝나고 아내가 가만히 있더니 저한테 여보, 나 좀 안아줘 라고 말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앞자리에 앉은 A의 팔을 잡고 "너무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드라마가 끝났으니 광고가 나오고 있을 TV 스크린 앞에서 두 중년의 부부가 서로 말없이 꽉 껴안고 있는 장면이 내게는 넘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2025년 10월 25일

처음으로 귀를 막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카톡을 확인했는데 좋아하는 지인의 아들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이 와있었다. 사진 속 신랑과 신부가 아름다웠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내 눈에는 신랑도 그렇게 보였다. 35년 전 내 모습도, 당시 50, 60대 분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까.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 간식과 커피, 어머니에게 드릴 수필집을 챙겨 요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만나 함께 근처 연어덮밥 집으로 갔다. 연어덮밥 세트 2개 주문. 이제 말 안 해도 사장님은 밥 양을 조금 줄여주신다. 어머니가 늘 과식을 하셔서 내가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참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나는 사이드로 나온 연어초밥의 밥은 남기고 연어만 벗겨먹었는데, 어머니는 통째로 다 드셨다. 점심을 먹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탐앤탐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내가 사들고 간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맘에 들어하셨다. ---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어하신다. 20년 전부터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시집은 고사하고 아직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으니 아마 시집은 못 내고 돌아가실 것이다. 시집 출간에 대한 강렬한 소원이 있으신 어머니를 위해 지난 주 나는 "어머니, 시라는 게 사실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거라서 어쩌면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부담만 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필은 어떠세요?" 라고 했다. ----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반 전체가 갔던 봄 나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이야기, 50번을 들었을까, 60번을 들었을까. 봄 나들이 중에 초1이었던 7살 어머니가 언덕에 핀 꽃을 꺽어서 야마모토라는 일본 선생에게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어머니 뺨을 쳤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뺨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나는 그동안 뺨을 50번 맞은 것일까, 60번 맞은 것일까. 이상하게 오늘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몰래 손가락으로 내 두 귀를 막고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손을 떼면 여전히 야마모토였다. 그러면 다시 음. --- 야마모토가 끝났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수필집 내시면 책 제목은 뭘로 하실래요? 안도현의 '사람'이 좋았으니까 어머니는 '인간' 어떠세요?"라고 했고 어머니는 웃으셨다. 나는 밀크티를 남겼는데 어머니는 머그컵에 나온 커피를 다 드셨다. 탐앤탐스를 나와 요양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출국일자를 세 번 물으셨다. 아니 네 번 물으셨다. 요양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신발을 갈아 신겨드리고 안아드리고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 요양원 앞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두 개 있다. 6211과 640. 요즘 어깨 통증 때문인지 두 주 가까이 매일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거의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오늘은 밀크티 집에 들리지 않고 집에 가서 좀 자기로 했다. 내가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착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 버스에 올라왔다. 한 자리 좌석들만 있고 둘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앉았던 자리에서 미리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 전에 이들에게 내 자리를 주고 싶었다). 하차 카드를 찍고 출입구 앞에 섰는데 두 젊은 남녀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2025년 10월 24일

쇼츠, 신체검사, 하늘

오늘 우리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A와 함께 쇼츠를 만들었다. 편집 프로그램인 에디우스 기능 중에 내가 아는데 A가 모르는 게 있었고, A가 아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두 기능 모두 아주 요긴한 기능이었다. 서로 알려주며 많이 웃었다. 점심을 은행골에서 같이 먹고 오목공원을 오바퀴 했다. -- 오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미국 이민 비자를 위한 신체 검사를 받았다. 출국 일자가 미뤄지면서 올해 초에 받았던 신체 검사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바람에 다시 받는 검사였다. 올해 4월 처음 신체 검사를 받으려고 세브란스로 가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였는지 버스 속에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중가에 내려, 허겁지겁 약국을 찾아 두드러기 약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오늘도 또 몰라 두드러기 약을 한 알 갖고 갔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올해 초 나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내가 정녕 너를 이집트로 인도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이집트' 자리에 '미국'을 넣고 읽었다. 오늘 신체 검사를 받으며 그 말씀을 생각했다. --- 회사로 돌아와 오늘 중으로 작가에게 보내야 할 잘잘법 영상을 편집했다. 마음에 들게 됐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편성부의 B와 C가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이번 주 일요일 생방송 진행이 내 마지막 생방송 진행이야"라고 하자 B와 C가 많이 놀라주어서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방송 사고 한번 내볼까" 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좀 하다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왔다. (한 조직의 일원이기에 나눌 수 있는 이런 대화가 참 즐겁고 소중하고 감사했다). ---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하늘이 참 푸르렀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데 "지금 네가 원하는 건 000를 가까이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야"라는 부드러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들리는 거 같았다. (내가 최근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경고의 말씀 때문에 오늘 온종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25년 10월 22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황동규 시인의 산문을 읽다가 그가 브람스의 소나타를 묘사한 글을 읽고는 유튜브에서 브람스의 소나타를 찾아들었고 그러다가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총 16회를 울면서 봤다. 네 사람이 각각 '(그게 사람이든, 목표, 욕망이든) 자기만의 '내려놓음'을 통해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요즘 내게 내려놓음이 필요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제8화 중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박은빈과 박지현이 나눈 연주의 흐름과 확신에 대한 대화를 받아적었다 : 확신은 어떻게 해야 생길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답을 찾으시면 저한테도 알려주시겠어요? 네, 꼭 그럴게요. --- 네 사람 모두 진실하다는 것도 멋졌다. 진실하게 살기에 플레이하는 연주에, 하는 말에, 내리는 선택에 힘이 실렸다 --- 박지현은 어떻게 이렇게 우아할까.     

2025년 10월 12일

신형철을 읽는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 평소와 달리 큰 갈등 없이 교회 가기로 결정함. (웃음포인트). 가면서 신형철이 32개의 시에 대해 해설한 <인생의 역사>를 읽으며 갔는데 너무 잘 써서 와,와 감탄 하면서 감. 오늘 예배 중에 와,와 한 적이 두 번 있었음. 참 아름다운 장면이었음. --- 오늘 성찬 봉사자는 내 대학 동기 P였음. 성찬을 다 받은 사람은 (앞에 나가 줄을 서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 후) 빈 포도주 잔을 봉사자가 들고 있는 함에 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음. 이것이 성찬의 절차인데, P의 아내가 성찬을 받는 모습이 눈에 띄였음. 포도주를 마신 그녀는 돌아서서 남편 쪽으로 걸어오더니 남편 P를 바라보며 남편을 향해 정말 부드러운 미소를 한번 지은 후에 포도주 잔을 함에 넣었음. 나중에 집에 가면 "P, 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문자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함. --- 성찬을 다 마치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음. 그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내 앞 쪽에 있던 두 젊은 부부가 손을 잡음. 참 아름다운 장면을 짧은 성찬 시간에 두 번 목격함. ---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가깝게 지내는 A와 차를 마시러 커피숍에 가서 주문하는 사이에 내가 "오늘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두 번 봤어요"라고 하며 P의 아내가 남편에게 지었던 미소 이야기를 했다. "아! 저도 봤어요!" "정말요!" 나는 P에게 문자를 보낼 거란 말을 했다 (ㅋㅋ) A가 "두 번째는 뭔가요!"라고 물어 내가 젊은 부부 얘기를 했더니 "아! 저도 봤어요!" (ㅋㅋㅋ) 이럴 수가! (ㅋㅋㅋ) 어쩌면 오늘 예배 중에 감동한 사람이 나와 A 둘만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A에게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 덧붙인다. (아까 그 예배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찬송을 부르던 내 앞의 젊은 부부가 손을 잡았다. 나도 마음 속으로 미국에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2025년 10월 11일

<우리가 기댄 모든 것>(마쓰모토 도시히코,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김영사)을 읽고

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는데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에게는 술 외에도 도벽, 섹스, 과식 등의 의존증도 있(었)다. 

모든 챕터가 흥미롭지는 않았다. 나는 제2장이 좋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나는 제2장만 좋았다. 2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몇 구절을 아래 정리한다. 

"왜 일부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고 특정 약물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도박이나 게임에 집착해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해버리는 걸까요? 생각건대, 그들을 약물로 몰아넣는 것은 쾌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쾌감이라면 금방 싫증이 날 테니까요. 아마도 그것은 쾌감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가 아닐까요? 즉, 사람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아찔한 쾌감을 얻으려 약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겪어온 고통이 그 약물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라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에 빠지는 것입니다. 쾌감이라면 질리겠지만, 고통의 완화는 질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그 고통의 완화를 놓을 수 없게 되겠지요." (p.37)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들게 되는 데는 반드시 위기가 존재합니다. 그것이 소중한 관계의 상실이나 파탄 같은 중대한 사건일 수도 있고, 조금 무리를 하거나 현재 있는 곳이 왠지 불편하다는 정도의 작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것이 위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p.38).

"이 서신 교환을 통해 '끊는다/끊지 못한다'라는 단순한 의존증 담론을 넘어,의존증 이면에 있는 심연에 줄을 드리워 들어가보고자 합니다." (p.39)

내게 있어 '오래전부터 겪어온 고통'은 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위기가 반드시 중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교회에서 참 만족스러운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후에도 의존증이 발생한다면, 예배도 내게 진정한 치유가 아니었던 건가. 


헤밍웨이가 멈추라고 한 곳에서 멈췄다


 











2025년 10월 6일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민음사)를 읽으며.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야의 이리'라는 별명을 가진 하리 할러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일터에서 오시는 길인가 보지요? 그래요, 그 방면에 대해선 나는 아는 게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나는 좀 옆 길에, 이를테면 가장자리에 살고 있지요." (p.26)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일터'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나는 책 제일 뒷장에 연필로 이런 메모를 남겼다. "일터에서, 그러니까 직장 생활 가운데서 가장자리 삶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등장해도 좋을 거 같음".  

(참고) 주제 의식은 좋았으나 글의 전개 방식이 내 취향이 전혀 아니어서 읽기 중단. 

2025년 9월 17일

로버트 레드퍼드 (1936~2025)

 










부끄럽게도 난 참 오랫동안 누군가의 부고를 들을 때 "그는 죽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지"라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 했던 거 같다.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 느낀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내가 처음에 언급한 그런 '안심'과 '우월의식(?)"이라는 틀 안에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생각은 차츰 바뀌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더 낫다거나, 더 나은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것을 나이 많이 들어서야 깨닫다니 부끄럽다). '충만히' 세상을 살고 떠난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읽을 때, 누군가의 부고 기사에서 '사랑과 도전'이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이제 나는 우월의식 대신 부러움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혹은 피조물로서의) 사명을 다 이룬 삶이 몹시 부럽다. 한 사람의 부고 기사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그날 일기보다 더 생명으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는 걸 요즘 느낀다. 평생의 연기와 그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열과 꿈을 선물로 준 로버트 레드퍼드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부럽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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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키드’ 로버트 레드퍼드 별세…향년 89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로 스타덤
‘스팅’ ‘추억’ 등서 활약한 ‘할리우드 전설’
선댄스영화제 창립·환경운동도 펼쳐


미국 할리우드 스타이자 영화감독, 제작자이며 선댄스영화제의 설립자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별세했다. 향년 89. 뉴욕타임스는 16일(현지시각) 레드퍼드가 미국 유타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이날 보도했다. 젊은 시절 가장 미국적인 미남 배우로 사랑받았던 찰스 로버트 레드퍼드 주니어는 193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 야구와 미술 등에 두각을 나타내며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뒤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1960년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1969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평단의 찬사와 흥행 성공까지 거머쥐면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를 열어젖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단숨에 스타 배우로 부상했다. 훗날 그가 설립한 ‘선댄스영화제’는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했던 인물 ‘선댄스 키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스팅’(1973), ‘추억’(1973)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레드퍼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추억’과 ‘코드네임 콘돌’(1975),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등 많은 명작을 함께 만들어낸 시드니 폴락 감독은 평생의 친구이기도 했다. 또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보통 사람들’로 198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브래드 핏이 ‘제2의 로버트 레드퍼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 출세한 ‘흐르는 강물처럼’을 감독, 제작해 큰 호평을 받았다. 2017년에는 제인 폰다와 함께 황혼의 로맨스를 연기한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에 출연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함께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년에 들어서며 레드퍼드는 영화감독과 제작자뿐 아니라 환경보호 운동가로도 활동했다. 1980년에는 신진 영화인을 위해 선댄스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독립영화의 제작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곳에서 그가 창립한 선댄스영화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젊고 영향력 있는 영화제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꿈의 영화제가 되었다. (한겨레 신문) 김은형 선임기자

2025년 9월 13일

나쓰메 소세키를 읽고.

 최근 한 달 사이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5권을 읽었다. 먼저 <도련님>(1906), 이어서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산시로>(1908),<그후>(1909), <문>(1910)을 읽었다. 이어서 <마음>(1914)과 (큰애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 <명암>(1916)을 읽으려 했는데, <마음>만 읽고 멈췄다. 

오래 살다보니, 살면 살 수록, 용기가 절실하다. 용기가 없어서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사람은 아무리 무서워도, 아무리 부끄러워도,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그 사실을 무서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소세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건 인간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용기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의 결과들을 대처함에 있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결과를 직시할 용기, 그 결과의 한계 내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소세키가 그리는 또 다른 주인공의 얘기를 한 번 더 들을 마음과 시간이 내게는 없다. 

<그후>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대목인데, 이상하게 내게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고 느껴졌다.) "다이스케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는 않았다." (P.189,현암사)  

<문>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 건너 앞에 있던 사내가 일어나 갔을 때는 잠시 후 안쪽에서 악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거리가 멀어 소스케의 고막을 심하게 때릴 만큼 세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최대한의 위세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온 개인의 특색을 띄고 있었다. 자기 바로 앞의 사람이 일어났을 때는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는 의식에 압도되어 한층 불안해졌다."(p.240, 현암사) 이 문장 역시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대목을 읽는데 요한계시록의 한 대목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요한계시록 2:17)

2025년 9월 1일

퇴직 6개월 전에 하는 생각

오늘은 9월 1일. 정확하게 퇴직(2026.2.28) 6개월 전이다. 사랑하는 일, 애정하는 가까운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은 통증에 가까운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새벽에 눈을 떴을 때도 그런 통증이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 보고 싶을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고, 그러자 통증이 사라졌다.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나에게는 "내 모든 걸 쏟아부어 본 시간"들이 있다. 내게는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를 주고 받는 동료들"이 있다. 만약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런 관계들이 없었다면 내 재직 기간은 커다란 공허로 다가왔을 것이고, 남은 6개월은 그 공허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며, 퇴직은 정녕 날카로운 비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감사하게도 내 지난 30년은 "채워져"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떠남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퇴직을 앞 둔 이에게는 남은 기간보다 받은 은혜를 돌아보는 게 더 필요하구나.    

"5년이 더 주어진다면 좋겠니?"라는 질문도 내게 도움이 됐다. 아니오,가 내 대답이었다. 나는 나의 재직 기간을 더 완전하게 <보수>하기 위해 시간을 더 요청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는, 즉  피조물이다. 유한한 상태에서 입사했다가 유한한 상태로 퇴직하는 유한한 피조물이다. 5년이 더 내게 주어지더라도 그 5년 때문에 내가 지금의 나보다 완전한 존재가 될 거 같지는 않다. 불완전한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보수될 거 같지도 않다. 어떤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 퇴직을 꿈꾼다면, 그러지 못함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어리석고 건강하지 못한 생각일 거 같다. 늘 그래왔듯이, 나는 아쉬움도 느끼겠지만 '괜찮다'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함께 경험할 것이며, 그분께 또 한 번, 나의 <완벽하지 않은 퇴직 후 계획>을 들려드릴 것이다. 1993년 한 명의 어리숙한 신입사원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그분께서는 2026년, 이번에는 (여전히 어리숙한ㅠㅠ) 한 명의 퇴직자를 또 한 번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것이다.   

남은 6개월이, 한 명의 피조물이 완전해지려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한계까지도 향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2025.9.1. 

신동주 드림


* '내 자신의 결핍을 향유함'이란 말은 도심 속 수도 교회 '신비와 저항'의 박총 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2025.8.18)에 나옵니다.


2025년 8월 27일

<산시로>(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를 읽고.

"하숙집 2층으로 올라가 자기 방에 들어가 앉아 보니 역시 바람소리가 들린다. 산시로는 이러한 바람소리를 들을 때마다 운명이라는 글자를 떠올린다. '윙-'하고 울려 올 적마다 움츠러든다. 자기 스스로도 결코 강한 남자라고는 여기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면, 상경한 이래 자신의 운명은 대개 요지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다소간 화기애애한 우롱을 받는 것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요지로는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다. 앞으로도 이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에게 자기 운명이 쥐어져 있을 것같이 여겨진다. 바람이 계속 불어댄다. 확실히 요지로 이상의 바람이다." (p.210)

소세키의 책을 처음으로 읽고 있다. 먼저 <도련님>(1906)을 읽고 이어서 <산시로>(1908)를 읽었다. 전자에선 24세, 후자에선 23세 남자가 주인공이다. 도련님에선J.D.샐린저 냄새가 났고, 산시로에선 하루키 냄새가 났다. (출생 연도를 따지자면 거꾸로 말해야 맞을 것이다). ---- 산시로의 미숙함. 그것에 끌렸다. 그가 불완전하게 그려졌기에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 같다. 몹시도 미숙하고 불완전했던 20대 초반 내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마음껏 불완전해도 됐던 그 젊음의 시기.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몹시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2025년 8월 17일

ABC 살인사건

 

최근 심한 무기력증 때문에 교회에 못 가다가 오늘 한 달만에 교회에 갔다. 아내의 조언대로 지난 월요일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운동의 효과가 있었다. ---- 교회 가는 길 지하철에서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었다. '도련님'이란 단어의 등장 순간이 절묘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의 첫 등장 순간만큼이나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렸다. --- 예배를 마치고, 준비해간 생일 선물을 00에게 주었다. 점심도 00와 같이 먹었다. 요즘은 "우르르 용병단"이라는 어드벤처 RPG 게임에 빠져있다고 했다. 내게 전략적으로 게임을 운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줬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나도 초5때 이랬을까. ---- 교회 가기 전 유튜브에서 동기 부여에 관한 짧은 쇼츠를 하나 봤다. 의지력에 관한 거였다. (의지력이 약한 나는 의지력에 관한 영상을 자주 본다). 출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의지력이 강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의지력이 강한 게 아니라 그게 그냥 습관이 돼서 그런 거예요. 아침에 의지력을 갖고 이를 닦는 사람이 있나요. 습관적으로 닦는 거지요." 이 지적에 공감이 됐다. 당분간 예배(참석)에 큰 의미 부여 하지 않고 그냥 이를 닦는 거라고 여겨야겠다.

2025년 5월 28일

비자 인터뷰


 











비자 인터뷰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아들과 통화하고 오목공원을 산책하고 편집을 하고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걸었다. 안양천을 걸으면서 로마서 말씀을 묵상했다. 

2025년 5월 25일

검은 용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다. 집에서 지하철 양평역까지 걸어가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공든 탑을 쌓는 게 아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우리가 넘어진다는 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게, 그래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게,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건 바울의 말처럼, 권연경 교수의 지적처럼, 달리기일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 다시 달려가면 된다. 넘어졌다고 다시 출발선까지 돌아가서 다시 달릴 필요가 없다. 이 생각이 내게 격려가 되었다. 아, 다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나를 얼마나 낙심케 해왔던가. 교회에 도착했는데 복도에 불판이 쌓여있었다. 아싸, 어쩌면 오늘 점심 때 고기를 먹는 건가!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 설교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예수님은 묻고 명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수없이 들은 설교였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네 자리'에 꽂혔다. 그 38년된 병자는, 병이 길어지자, 자기 자리에서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누렸을 것이다. 텀블러를 올려놓고, 핸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콘센트를 마련하고, 와이파이 비번을 알아두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니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잊어먹은 채, 쇼츠와 릴스를 보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하루종일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자기 자리를 들고 연못가에 가서 자리를 잡은 뒤, 사건과 변화 없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을 즐겼으리라 믿는다. 내 삶의 자리에서 쇼츠와 릴스와 온갖 오락을 치우고 불편한 자세로,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보겠다. 내 자리에 만족하지 않겠다. ---- 점심은 기대했던대로 삼겹살이었다! 삼겹살, 상추,깻잎,쌈장,오이고추,잘 익은 김치와 뜨거운 밥을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A와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나는 어떤 게임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주로 나의 질문과 A의 답변으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집을 짓는 거지?" "네". "자기 집을 짓는 과정 중에 어떤 고난이 있어? 그러니까 방해물이 존재해?" A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가방에서 마인크래프트 책자를 꺼내 방해자들의 리스트를 보여줬다. 다 영어 이름이라서 기억은 하지 못하는데 여러 종류의 나쁜 놈 캐릭터들이 있었다. 검은 용도 있었다. 설명을 듣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A는 지하에 집을 짓고 있다고 하면서 지하에 집을 지을 때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자기 집을 짓고 그 안에 머물면 정말 안정감이 들겠는데?" "예.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 같은 곳이예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나도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 난생 처음이었다). 지하에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실제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로그인한 후 그 안전한 은신처 - 이곳에는 당연히 책장이 있다! - 안에 있는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캐릭터로 변신해서 하루 10분~15분 정도 보내면 마음이 무척 안정될 거 같다. 거의 큐티를 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특히, 지지상의 하늘에선 검은 용이 날아다닌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위험이 존재해야 은신이 더 달콤한 법이다. "그런데, 캐릭터들끼리 대화도 가능하니?" "예, 가능해요".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기에 "그럼, 게임을 하다가 다른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니?" "예, 있어요" "오, 진짜! 누구랑? "엄마요. 엄마도 게임을 해요". A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완전히 한방 먹었다. "엄마는 아니지, 엄마 말고 ㅋㅋㅋ" 빵 터진 나는 웃고 있는 A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고 그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집에 와서 책을 좀 읽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아름답고 행복했다. 오늘은 특별히 더 그랬다.

2025년 5월 23일

내가 차지 않을 시계


 











내일 정말 몇년 만에 남서울교회 청년부 시절의 동기들을 점심 때 보기로 했기에 오늘 오전 반휴를 내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하루 미리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베트남쌀국수집 사장님은 이제 우리 모자와 친해졌고 또 우리 사정도 어느 정도 아시기에 "아, 다음 주에는 어머님께서 아들을 7일이 아니라 8일만에 보시겠군요"라고 웃으며 조크를 날리셨다. 어머니에게 간식과 믹스 커피와 빳데리를 간 손목 시계를 전해드리고 회사로 왔다. ---- 회사에 와서 권연경 교수 제2강 최종 가편을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잘잘법 커뮤니티에 상담 답변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권교수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 더 '큰 지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아, 역시 신학자는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권교수가 이 강의에서 그려주는 지도. 너무너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 편집을 하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복도에 나가서 받았다. "아들, 우리가 언제 만났지? 어제 만났나?" 오늘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놀라실 거 같아 나는 말을 바꿨다. "어머니, 혹시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들. 지금 내가 찬 이 시계,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장남에게 꼭 물려주고 싶어." 김영삼 대통령 싸인이 들어가 있는 청와대 시계였다.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셨다는 어머니의 기억은 맞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신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은색 시계를 차셨다. "예, 어머니, 다음 주 토요일에 제가 어머니 뵈면 그때 제가 잘 받아서 간직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시계. 시간. 기억. 그에게 맞았던 기억. 대걸레가 부러졌던 시간. ----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길, 안양천에 들려 한 시간 산책을 했다. 

2025년 5월 22일

복된 하루



 












(시로 표현하면)

오늘은 신께서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아주셨다 

내가 됐어요 하는데도
더 담아주시려한다

(산문으로 기록하면)
오늘 오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김영봉 목사님의 강의를 네 편 녹화했다. 네 편 모두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녹화 후에 김목사님, 스탭들과 함께 추어탕을 먹었다. 다들 한 그릇씩을 다 비웠는데 나만 너무 많이 남겨서 조연출들이 놀랬다. 녹화 때 너무 집중을 했는데 그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서 밥이 잘 안 넘어갔다.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움에 가까운 긴장이었다. 적게 먹었기에 속이 편했다. 목사님을 배웅하고 스탭들과 함께 오목공원을 "오바퀴"(다섯바퀴 돌기의 우리팀 은어)했다. ----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편성팀 후배 넷이 내게 와서 오목공원 안에 있는 <오목한 미술관>에서 양예준 개인전 "눈빛으로 전하는 작은 기도" 색연필 그림 전시회를 본 소감을 이야기해 줬다. (며칠 전 나도 이 그림 전시회에 갔었고 큰 감동을 받아 작가에게 짧은 감사의 메일을 보냈었다.) 후배들의 말에 따르면, 양예준 작가의 어머니가 그림을 해설해 주는 과정에 내가 메일로 보낸 감상평을 소개했고, 후배들은 그 감상평을 듣다가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이 나라는 건 알게 됐다고 했다. 후배들이 그 전시회를 즐긴 것이 기뻤고, 내가 보낸 감상의 이메일이 양예준 작가와 그의 어머니가 써 나가는 "스토리"를 조금이나마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몹시 감사했다. - - - 2시반부터 오늘 업로딩 되는 본편 검수 및 섬네일 회의를 했다. 섬네일은 "불안형 크리스천이 진짜 쉬는 법"으로 했고 제목은 "쉬어도 쉬어도 계속 피곤한 당신에게"로 했다. A가 이번 편에는 에필로그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에필로그를 썼다. 1안,2안,3안을 썼는데 3안으로 정해졌다. B가 에필로그를 위해 고른 배경영상과 글씨체가 문장과 너무 잘 어울렸다. --- 퇴근길. 회사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길에 멈춰 서서 서두에 썼던 시를 썼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오늘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다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안양천에 가는 길에 거치는 상가 골목들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산책길 풀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런닝 크루를 제일 많이 만난 날이었다. 한 여섯 팀 정도 본 거 같다. 제일 흥미로웠던 크루는, 뛰어오다가 내 옆에서 멈춰선 크루였는데 "멈출게요"라고 제일 앞에서 뛰던 여성이 말하자 다들 멈춰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가 나와 같아서 한 2분 정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다음에는 뚝섬 근처에서 뛰자는 얘기를 했다. 한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크루. 갑자기 아까 그 여성이 "십 초 전"이라고 말하자 다들 "네" 하며 하던 말을 멈추었고, 정말 십 초 쯤 지나 여성이 "뛸게요"라고 하자 다시 모두들 "네"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목격한 런닝 크루였는데 정말 흥미진진했다. 


2025년 5월 18일

여성용 스킨 로션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매주 일요일 두 교회의 주일예배를 생중계하는데 오늘은 내가 주조 근무 당번이었다. 10시부터 꿈의교회 예배를 생중계하고, 11시부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생중계했다. ---- 진행 당번인 피디들은 9시까지 출근한다. 주조와 부조 상황을 미리 점검해야 해서 그렇다. 9시 반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내 방에 스킨로션이 하나 있는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어머니, 어머니 세수하고 쓰시라고 제가 어제 드린 거예요." "그렇구나. 아들 고마워. 잘 쓸게". --- 생중계 당번은 서너 달에 한 번 돌아오는데 아마 퇴직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게 될 거 같다. 12시에 생중계를 마치고 점심은 오목공원 옆에 있는 셱셱버거에서 먹었다. 너무 좋은 날씨였고 나는 점심을 먹은 뒤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다음 주에 있을 미대사관 비자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무척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는 내 카톡 상태 메시지를 '차근차근'으로 바꿨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를 한글로 발급 받은 뒤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했다.외교부 사이트에서 '증명서 용어 번역 가이드'를 하나 다운 받은 후 참고하면서 증명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완성했더니 뿌듯했고, 이런 때 스스로 내게 주는 선물은 단골 밀크티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찻집에 도착해서 밀크티를 시키고 갖고 간 시집을 읽었다. (나는 요즘 시집 읽는 데 푹 빠져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빠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시집을 읽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나가서 받았다. "예, 어머니". "아들, 누가 내 방에 스킨 로션을 하나 갖다 놨는데 누가 갖다 놨을까?"

차를 한 번만 마셨다, 처음으로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 함께 외출을 했다.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는 그동안 늘 가던 빠리바케트가 아니라 지난 주 어버이날에 동생과 함께 처음 갔던 탐앤탐스에서 마셨다. 매장 크기가 엄청 큰 곳인데 어머니는 넓어서 좋다고 하셨다. 2층에서 마셨다. 어머니는 창문 가까이에 놓여있던 의자를 실내 쪽으로 옮기셨다. 너무 창가에 있으면 잘못하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가 사가지고 간 스쿠알렌, 맥심 커피, 간식용 과자, 팥빵, 세수 하고 바르는 여성용 스킨 로션을 어머니에게 전해 드렸다. 어머니는 오늘 기분이 좋으신지 농담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나도 찐으로 빵 터진 괜찮은 농담이었다. ---- 오늘은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나는 어머니와 차를 마시고 헤어지고 나면 으레 단골 밀크티집에 가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왔다. 몇 년째 그래왔다. 오늘은 곧장 집으로 왔다. 혼자만의 차 마시는 시간을 안 가져도 될 거 같았다.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데 당연히 에너지가 들어갔다. 근데 방전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과연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나는 회의했는데 이런 날이 왔다.

2025년 5월 16일

퇴근길


 











퇴근길에 어머니와 통화했다. 어머니의 몸에서 점점 힘이 없어진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십자가를 손에 쥐고 걸으며 기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도가 나왔다. 지난 60년간 이 여성과 나눈 시간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서로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나눈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고통 없지 않은 그 모든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저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제 모습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려요. 그러니, 이 여성과 나눈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합니다 ㅡㅡ 낮에 회사 사무실에 이규현 목사의 설교가 나왔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설교이다.


아들과의 통화, 성물(聖物)













회사 1층 로비에 있는 우리은행 앞에서 아들과 긴 통화를 했다. 아들은 지금 하는 경험을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들려 줄 실패가 있는 삶은 얼마나 축복인가. 실패가 없어 승리만을 들려줘야 하는 삶은 얼마나 가난한가. ----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에 갔을 때 내 자리에 A가 주는 선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 십자가를 손에 쥘 때 두 가지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평화가 제게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가 제가 아는 이웃에게 임하게 하소서" 

2025년 5월 15일

오늘, 기적


 











내가 아끼는 A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가 기뻤던 순간. 

2025년 5월 14일

드라마틱한 오전




















오늘 셰익스피어 희곡 3권(맥베스,리어왕,햄릿)을 갖고 가서 잘잘법팀원 세 명에게 나누어주었다 ---- 개인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했던 일은 오전에 일어났다. 사무실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조연출 A가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피디님, 편집실에 벌레가 나타났어요". 나는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세 번 정도 빠르게 풀어 손에 쥐고는 편집실에 가서 커텐 뒤에 숨어 있는 바퀴벌레 닮은 벌레를 막대기로 쳐서 떨어뜨린 다음 휴지로 꽉 누르며 그대로 휴지로 싸서 내 자리로 돌아와 내 책상 옆 휴지통에 버렸다. 원샷원킬 스킬로 조연출 두 사람을 찐 감동시켰고, 편집실 문을 열고 나올 때 숨죽이고 안의 상황을 살피던 편성부원 둘의 박수를 받았던, 오늘 오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 )

 

2025년 5월 13일

저녁 산책


 











저녁 산책을 다녀왔다 거의 쾌락이라고 불러야 할 즐거움을 준 한 시간 산책이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전에 달리던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했고 그러면서 주어지는 평화로운 쾌락에 많이많이 감사했다

2025년 5월 12일

책과 사과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 팔고 받은 돈을 손에 쥐고 흡족해 하는 1인 ---- 책 팔고 받은 만2천원으로 만2천원짜리 사과 사고 흡족해 하는 1인. 갑자기 집안의 책이 다 사과로 보인다

2025년 5월 11일

화이트 와인

 












오늘은 예배를 드린 후 교회 식당에서 교우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세대별 모임에 참석했다. 5,60대 모임은 찬양대실에서 열렸다. 15명 정도가 모였는데 모임을 진행하는 A목사가 "지난 6개월 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나누고 싶은 3장을 골라주세요. 사람도 괜찮고 장소도 괜찮습니다. 그럼 서너 사람씩 짝지어 앉은 후 서로 나눠주세요". 나는 우리 조의 청일점이었다. ---- 얼굴로만 알던 교우들의 소중한 시간, 소중한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 B가 얼마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에 보게 되면 C와 D에게 묻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A 목사의 제안, 정말로 좋은 모임 진행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 오늘 설교는 성찬에 대한 거였는데 성찬식에 사용하는 포도주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독일의 한 교회에선 레드 와인이 아니라 화이트 와인을 성찬식 때 사용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지역에서 재배하는 포도가 화이트 와인용이어서 그러하다고 함).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에 어떤 것이 적절할까. 나는 과거에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레드 와인이 적절하고 화이트 와인은 적절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포도주(A)는 주님의 피(B)를 상징한다. 우리는 평소 수많은 A들을 사용하여 수많은 B들을 상징한다. A가 B에 대한 적절한 상징물이 되기 위해선, B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A에 담겨있어야 한다. 피의 가장 큰 특징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만약 피의 가장 큰 특징을 "척척함"이라고 본다면 화이트 와인이나 막걸리도 괜찮다. 하지만 피의 특징을 "붉다"로 보려한다면 레드 와인이 적절하다. ---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가 교회에서의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만약 그 독일 교회에 다녔으면 담당 목사에게 한번은 질문을 할 거 같다. "피의 가장 큰 특징은 '붉음'에 있지 않을까요, 척척함이 아니라요?" 나는 어떤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답변이 내 생각이나 기대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나는 그 다음 주 성찬에 참석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시려는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기회를 사모하면서 화이트 와인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마셨을 것 같다.

2025년 5월 7일

어쩌면 마지막 녹화, 그와의


 











오늘 오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가 3편의 강의를 했다. 첫 편 녹화는 A가 진행했고 두번 째와 세번 째 녹화는 내가 했다. 다 좋았지만 마지막에 했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을 설명해 주는 강의가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과 도전이 될 거 같다. 미국에 있는 나의 둘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녹화 들어가기 전에 둘째와 통화를 했다. "오늘 권교수님이 오셔서 구원론에 관한 강의를 하셔". 아들과 함께, 기독교인은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인지, 아니면 최종 구원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눴다. "업로딩 되면 꼭 링크 보내줘") ---- 3편의 강의를 연속으로 하는 거라서, 추가 질문을 하기 위해선 집중해서 듣고 있어야 하기에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가 오늘 소중한 강의를 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식되었다. (내가 내년 1월 퇴직이라 권연경 교수를 이렇게 녹화장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녹화를 최대한 <느끼면서> 하고 싶었다. ---- 녹화는 6시 20분에 끝났고 권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저녁도 같이 먹었다. 권연경 교수는 십여 년 전 내가 총 60회를 제작한 신학펀치에 59회 출연해 주셨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꼭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겨자에 대하여, 집에 있는 책장에 대해, 책을 버린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남은 시간에 대하여, 상담에 대하여 이야기 나눴다. 일어설 무렵, 아까 녹화 중에 시간이 모자라 묻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거기에 대해 그가 한 답변, 나의 남은 인생 여정 중에 거듭거듭 생각할 것 같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게 과연 힘과 위안이 될까 했는데, 곧 동의하게 되었다. 그거야 말로 근원적인 힘과 위로라는 것을. 내가 했던 질문과 그가 한 답변은 이렇다. ---- "성경은 우리가 제대로 살지 않으면, 엉터리로 살면 최종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는 것 잘 알겠습니다. 그럼,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나가야 하는 이 절실한 신앙 여정에서 불완전한 우리에게 힘과 위안이 되는 건 무엇인가요?". "상상력이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꿈을 그려볼 줄 아는 상상력이요. 그게 우리에게 디그니티를 가져다 주지요." 나는 오랫동안 넘어짐-회개-넘어짐-회개-넘어짐의 반복을 이어왔다. 어쩌면 내게 은혜는 당장의 죄책감을 지울 때 한 장 뽑아 쓰는 물티슈 같은 것이었던 거 같다. (근원적인 힘을 잃고 물티슈로 전락한 은혜 ㅠㅠ).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꿈.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이 꿈이, 이 꿈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과 위안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신에 대해 디그니티를 갖는 걸 나도 넘 경험해 보고 싶다. ---- 긴 녹화를 끝냈기에 긴장을 풀고 가고 싶어 단골 카페에 들려 밀크티를 한 잔 시키고 고야 제4권을 읽었다. 권연경 교수로부터 카톡이 한 통 왔다. "요즘 갖고 계신 책들 다 처분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이번에 쓴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 한 권 보내드릴까요?" "오, 영광입니다!". 나를 위한 히브리서가 될 거 같다.

2025년 5월 6일

봉투













나는 우리말 중에서 "봉투"라는 말을 좋아한다. 은근해서 그렇다. "선물을 사려다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용돈 좀 넣었습니다"는 너무 노골적이다. 반면에 "어버이날이어서 봉투 좀 마련했습니다"라는 말은 얼마나 은근하고 은은한가. 돈냄새가 아니라 봉투의 한지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말을 사용할 때마다 나 스스로 흡족해서 속으로 미소짓는다. 장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신 게 분명하다. 문제의 봉투를 드렸을 때 아주 기뻐하셨으니. ------ 어버이날엔 찾아뵙지 못할 거 같아 오늘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뵙고 왔다. 장모님은 내가 사간 꽃을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 현관에서 한 번, 식탁에 올려놓자 또 한 번, 그리고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한 번 더 너무 예쁘고 너무 맘에 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세 번 장모님이 오늘 점심 때 끓여주신 아욱국이 맛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밥 먹으면서 한 번, 다 먹고 소파에 앉아서 한 번, 장모님댁에서 나와 오목교 내 단골 카페에서 고야 제4권을 한 시간 정도가 읽다가 집에 돌아와서 장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전화로 다시 한 번. 

  

2025년 5월 4일

평범한 하루

 













어제 한 시까지 <트루먼 쇼>를 보느라 오늘 늦잠을 잤다. 11시 예배에 맞추려면 10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9시 반에 눈을 떴다. 집에서 10시 10분에 떠났다. 조금 늦겠지만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했다. 양평역에 도착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엘베 안에는 5,6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분이 있었다. 막 서둘러 걸어오는 중년 부부가 보여서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세 사람 사이의 인상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 중년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너무 추워요" 라고 하자 남편은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참 다정치도 못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먼저 타고 있던 중년 여성이 조용히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남자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질문을 한 거였다. 여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왜 자기만 추워해...? 자기 오늘 춥구나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데....그쵸?". "맞아요! 이 사람은 공감을 못 해줘요"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가 반갑게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처음 본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에 놀라고 감동했다. 여자 둘이 다정하게 말을 나누는 동안 남자는 멀뚱히 앞만 바라보고 서있었다. -----  나는 10분 늦은 11시 10분에 교회에 도착했고 주차장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셀카를 찍었다. 내가 예배당 자리에 앉고 얼마 뒤 부른 오늘의 찬송은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을 "오늘도 앞으로 전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로 끝맺어왔기에 "앞"이 아닌 "주께"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가사가 이상하게 크게 도전이 되었다. 왜 내 기도에는 앞으로 더 전진만 있고 주께로 더 가까이는 없었을까. 주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작사자의 고백이 참으로 귀한 고백이란 생각이 들었다. ----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받았다. 내가 한두 주 전에 깨달은 건데, 나는 주님이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했다. 갖고 있는 많은 것 중에서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살과 피를 주신다는 건 "모든 것"을 주셨다는 뜻이었다. 앞에 서서 성찬을 받으며 "주님, 저를 위해 주님의 모든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예배 시간 중에 내가 무척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성찬이 다 끝나고 목사가 이렇게 선포할 때다.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나는 이 선포가 참 힘이 된다. 이제 모든 죄책과 수치, 두려움을 주님이 감당하셨다. 이제는 평안히 가도 된다. 주님을 섬길 힘, 정결한 마음에서 오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게 감사하다. 내가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청년이 두 명 있었는데 오늘 그 둘과 식당에서 마주쳤다. 인사를 건넸다. 점심을 먹고 마음 통하는 교인들과 찻집에서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속에서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지만 특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날도 부럽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양평역에 내려서 만두를 2인분 포장했다. 집에 와서 만두를 먹으며 쿠팡플레이에서 <노 서든 무브>를 봤다. 

2025년 5월 3일

치즈 크래커













오늘도 11:30에 요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 근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양원 입소 다음 주 첫 점심 외출 때 발견한 식당인데 그후로 지금까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이곳에서만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가 이 식당의 볶음밥을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그렇다. 식당 주인 부부가 참 정이 많으시고 음식 맛도 훌륭하다. 이 식당을 알게 된 게 참 감사하다. ---- 식사 후 파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가방을 여시더니 리츠 크래커 두 통을 꺼내 내게 주셨다. 나는 크래커를 안 먹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 통은 받기로 했다. "한 통은 어머니 드세요". 어머니는 내가 돌려드린 나머지 한 통을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잠시 뒤 어머니는 다시 리츠 크래커를 꺼내시고는 "그래도 더 큰 거를 아들한테 줘야지" 하시며 내게 주셨던 크래커통 위에 당신의 크래커통을 겹쳐 놓으신 뒤 길이를 재셨다. "2026.02.05. E" 라는 동일한 사용기일이 찍혀 나온 동일 회사, 동일 종류 크래커였으니 길이가 다를 수는 없었다. 크기가 같다는 걸 확인하신 어머니는 민망하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크기가 같구나" 라고 하시고는 당신의 크래커를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2분 쯤 흘렀을까. "그래도 아들한테 더 큰 걸 줘야지" 하시며 어머니는 다시 당신의 가방에서 당신의 크래커를 꺼내 아들의 크래커와 크기를 재셨다. "아, 크기가 같구나" 어머니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2,3분이 또 흘렀다. "그래도 아들이 더 큰 크래커를 갖고 가야지"........그리고 커피숍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오늘 어머니는 총 네 번 크래커 크기를 재셨다. 나는 한 번도 아까 재셨잖아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 가는 단골 찻집에 가서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한 잔 시키고 아침에 내가 챙겨간 고야 제3권을 꺼내 읽었다. 조용히 고야를 읽고있자니 다시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저자 홋타 요시에가 고야의 <5월 3일>을 일종의 종교화에 빗대 해설하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구글로 그림을 찾아 같이 보면서 읽었다. 찻집에서 제3권을 다 읽었다. (이제 마지막 제4권만 읽으면 된다.) 책 뒷표지에는 헤밍웨이가 고야에 대해 쓴 이런 글이 소개돼 있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처럼 이 글도 단문으로 돼 있다. "그는 검정과 회색을 믿었고, 그 뉘앙스를 믿었으며, 빛과 어둠을 믿었고,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도시들을 믿었다. 그는 시골과 마드리드를 믿었고, 운동을, 자신의 고환을 믿었다. 그림과 동판 부식을 믿었다. 그는 보고,느끼고,만지고,쥐고,냄새 맡고, 먹고, 마시고,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부러뜨리고, 함께 자고, 의심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증오하고,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멸시하고,경탄하고,파괴했던 것을 믿었다. 어떤 화가도 이 모든 것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야는 바로 이것을 시도했다." ----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숨 잤다. 고야 제4권의 1장을 읽었다. 지금은 저녁 7:54. 다음 주 수요일에 잘잘법 녹화가 있는데, 강사가 보내준 녹화 사전 원고를 이제 살펴보려고 한다.           

2025년 5월 1일

두 마리 토끼


 











노동절에 출근한 우리 팀은 오늘도 멋진 팀워크를 발휘하였다. 일과 관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우리 팀. 너무 감사하다 ---- 사람들이 없는 사무실에서 글을 썼고, 5시쯤 퇴근해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와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편의점 도시락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2025년 4월 29일

점심과 저녁













오늘 A와 점심을 먹고 오목공원을 산책했다. 요즘 우리팀이 오공을 산책할 때는 미니멈 오바퀴이다. A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 가슴도 뛰었다. ---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안양천을 산책했다. 아들이 오면 같이 가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캔커피를 다 마셨는데 계속 들고 산책을 하기가 뭐해서 표지판 밑에 숨겨두었다가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다시 주워왔다. 

2025년 4월 27일

떡의 위치



 








오늘 예배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을 불렀는데 참 좋았다. 경쾌한데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사 중에 "갈릴리로 가요", "죄로 상처나고 더러워진 모습 그대로 갈릴리로 가요"가 있었다. 정확한 제목을 몰라 내가 마음대로 붙여본 제목은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천사가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이전에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셔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찬양을 듣기, 찬양을 부르기, 말씀을 듣기, 성찬에 참여하기. 모든 예배 순서를 통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 오늘은 지난 주에 세례를 받은 A가 나와서 세례를 받은 소감을 나누었다. 소박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소감이었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특히, 어머님 장례에 참석해 준 교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를 표할 때 그의 마음과 진정이 느껴져서 감동이 됐다. 또 하나, 내 옆 자리의 나이드신 남자 분이 나이드신 아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 모습도 너무 아름다웠다.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린다는 건 타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서 혼자 푹(?) 쉴 때는 경험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감동들. ----- 주보에 오늘 점심 식사 후 설거지는 '50대'라고 나와 있어서, 그리고 내가 59세라서, 점심을 빨리 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50대 교우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7,8년 전 내가 루터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전 교인이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공동의회 시간에 나는 손을 들고 전 교인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는데, 오! 감동! 바로 채택이 됐다. 2주 전 종려주일 때마다 하는 교회 대청소는 가볍게 "쨌지만"(ㅋㅋ), 내가 제안했던 설거지를 쨀 수는 없는 일이었다 (ㅋㅋㅋ) -----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마음의 교우 A, 그리고 오늘 설교를 한 B 목사와 셋이서 정말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피와 살에서부터 자동청소기까지 정말 다양했다. 나는 전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루터교회 예배 시에 행하는 이런저런 전례들에 대해 궁금한 걸 다 물어봤다. 가톨릭과 루터회의 성호 긋는 방법의 차이,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례 형식도 하나 있었다. 루터회의 성찬식에서 목사가 교인에게 떡을 건넬 때 그 떡을 목사와 교인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주고 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B목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목사가 손을 쭉 뻗어 교인 손에 쥐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해요. 목사와 교인 딱 중간 지점에서 멈추고 거기서 떡을 건네요. 목사도, 교인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주님의 몸을 통해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거죠". 생각해 보니 오늘 떡을 건넨 B 목사, 지난 주에 떡을 건넨 C 목사 모두 그와 나 사이에서 떡을 건네 주었다. A 그리고 B 목사와 헤어져 지하철 역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대화를 들었으면 뭐라고 말하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 생각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다. "이런, 난 그날 밤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줬는데! ㅋㅋㅋ 그런데 지금 말을 듣고 보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애! 진작 알았다면 나도 그날 밤에 중간에서 건넬 걸 그랬네! ㅋㅋㅋ ". 물론 주님은 인간 목사가 아니니 중간에서 건네실 필요 없다. 팔 쭉 뻗어 건네셔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배의 동작과 형식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것이 하나의 전통, 전례가 될 때, 그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작은 동작과 행동 하나를 통해서도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거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사람들 앞에선 성호도 그어본 적이 없는 전례 초보자다. 천천히 전례를 배워가며 전례가 품고 있는 신앙의 신비 속으로 더 들어가보고 싶다. 지하철 안에서 B 목사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카페에서 들은 전례 이야기 넘 흥미진진했습니다! : ) 형식에 관한 전례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참 신비로워요 정말 인간은 몸,형식과 마음,믿음이 서로 깊이 연결된 존재같아요! 다음에도 또 알려주세요! : ) " ----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찬양과 관련된 짧은 글 하나를 첨부한다. 7년 전 쯤 <갈릴리>라는 짧은 글을 하나 블로그에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갈릴리>
오늘 처음 깨달은 사실인데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면서
몹시 화도 내시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무척 어이없어 하시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정말 놀라기도 하시며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답답해 하기도 하셨지만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결코 하지 않으셨던 한 가지 행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님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셔도
결코 경멸하거나 비웃지는 않으셨어요!
책망은 하시되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으시는 주님.
어제 또 죄를 지은 제게
이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자신을 버린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 기다려 주신 주님.
저도 오늘 믿음으로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2025년 4월 26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지음, IVP)를 읽고


 











1. 미생을 만화로도, 드라마로도 봤다. 누군가 내게 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냐고 묻는다면, 내겐 그건 다음 장면이다.

누군가 장그래가 속해 있는, 그러니까 오과장이 이끄는 팀에 합류했다. 기존 팀원들과 이 사람 사이에 긴장이 느껴진다. 이 남자는 일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신다. 그러나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집에 가면 꼭 맥주 한 캔을 혼자 마신다. 회사에선 일 때문에 마신 거고, 자신의 술을 즐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점차 신뢰가 쌓여가고 한 팀이 되어간다. 이 사람이 이 팀에 완전히 마음을 연 날이었다. 회사 일로 팀원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간 이 남자가 침대에 조용히 눕자 아내가 묻는다. "웬일이야, 일로 먹은 술은 먹어도 먹은 게 아니라고, 늘 맥주 한 캔은 하고 자는 사람이....".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은 충분히 마셨어". 남자의 "충분히"라는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 이제 따로 혼자 더 안 마셔도 될만큼 신뢰하는 사람들을 만났구나.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업무만은 아니구나.  너무 다행이다. 

2. 토요일이면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 허락을 받고 함께 외출을 해서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두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어머니와 헤어진다. 그러고 나는 집 근처 찻집에 가서 혼자 다시 차를 마신다. 그때부터 나만의 차를 마신다. 자주 혼자 묻는다. "아까 충분히 마셨어"라고 하며 그냥 집으로 가는 날이 올까? 

3.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가 쓴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를 지난 겨울 우연히 손에 쥐게 되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신 즈음이었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였다. 책의 부제는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이었고 나는 제목보다는 부제에 끌렸다. 책은 총 9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첫 장은 배회를 다뤘다. 왜 치매 환자들은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는지. 둘째 장은 옷차림을 다뤘다. 그들의 옷차림은 왜 종종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두 장을 읽고 검색을 통해 저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은 후 짧은 메일을 보냈다. 이런 내용이었다.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마다 저희 어머님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어머님의 존엄, 저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묻게 됩니다. 참 외로운 질문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힘이 되고 감사합니다." (*환자와 가족의 "존엄을 지킨다"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4.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는 저자의 아주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와 사회학적인 분석의 글이 번갈아 가며 한 챕터씩 등장한다. 전자를 읽을 때는 위로가 되었고 후자를 읽을 때는 우리 사회 내 나의 위치가 그려졌다. 양쪽 모두가 힘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내 경우엔 제7장 '돌보는 자의 신학'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먼저 이렇게 말을 했다. "돌보는 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능력이 있다. (...) 그[치매에 걸린 부모]가 어떻게 나를 키워 냈는지, 어떻게 나와 함께 살았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를 돌볼 수 있는 인내심이 조금은 더 생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실망했다. 대뜸 내 속에선 이런 반론들이 튀어나왔다. "누구나 다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대안이 너무 나이브한 거 아니야? 누군가에겐 과거는, 함께한 시간은, 양육받은 <그 긴 시간>은 기억할 때 힘이 되는 시간이 아닐 수 있다고. 추억함이 오히려 고통과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저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기억에 기대어 돌볼 수 있다면, 그 환자와 돌보는 가족은 모두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부모나 배우자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존재로 각인된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래서 돌보는 이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억력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5. 잘 돌보기 위해 기억보다는 상상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손가락으로 상상력이란 방향을 가리켜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그 상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기억과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상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배우고 싶다. 
 
진심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2025.4.26.
신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