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3일
『신약의 윤리적 비전』(리처드 헤이스, IVP) 제1부를 읽고.
리처드 헤이스가 쓴 『신약의 윤리적 비전』 을 읽고 있는데 참 좋다. 1부 다 읽고 이제 2부로 들어간다. 헤이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나는 독자들이 특정한 도덕적 사안(폭력,이혼,동성애,반유대주의,낙태)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후반부 다섯 장으로 즉각 건너뛰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기우였다. 내용이 좋아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 헤이스는 바울의 여러 서신들, 네 개의 복음서,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 등에 나타난 신학의 차이점을 대조하는데 ,( 4복음서 읽으면 같은 책 4번 읽은 느낌드는 내게는) 그런 선명한 차이가 충격이었다. 이제 2부에서는 이런 차이점에 대한 통합을 시도할 것 같다. 이런 웃긴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초대교회의 경우, 많은 이들이 복음서를 네 개 모두 갖고 있지 않았을텐데, 그러면, 그들보다 우리가 더 통합되고 풍부한 그리스도상을 갖고 있다는 말일까.
2014년 9월 29일
2014년 9월 25일
낸시랭의 신학펀치 페북 3천 라이크 기념

20-30대 때 저는 십자가와 보혈 이야기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성경이 기록된 ‘실제 과정’ 이야기를 들으며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책을 남기심에 있어서 ‘오류’와 ‘편견’과 ‘한계’ 있는 인간들 손에 그 작업을 맡기셨다는 걸 생각하면 참 놀랍습니다. 제가 신이라면 제 뜻이 조금이라도 왜곡 되거나,오해 되거나,불명료하게 전달되는 걸 참지 못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성경에 쓰인 모든 것은 완벽, 완전하다는 ‘편견’을 갖고 볼 때는 이성을 잘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 하나님을 어떻게 감히 제 이성으로 분석하나요! – 요즘은 성경을 찬찬히 읽는 가운데 이전에 못 보던 걸 조금씩 보는 것 같습니다. 20회에서, 바울의 논증 자체가 헷갈린다는 지적을 들으면서( 유튜브 20회, 24분23초 지점. 고전 11:6에서는 여자는 머 리를 가려라. 고전 11:15에서는 긴 머리는 가리는 걸 대신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경에서 모순을 보면 모순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모순이 저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성경을 더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모순된 표현까지도 허용하시는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마음.
2014년 9월 9일
『아담의 진화』(피터 엔즈 지음, 역자 밝히지 않겠음, CLC)를 읽고.
1. 출애굽은 중요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해 준. 출애굽기는 또 큐티하기도 좋다, 소위 ‘적용꺼리’가 많아서. 그런데 요즘 오십 평생, 성경 읽으며 별 관심 두지 않았던 사건에 점점 흥미가 간다. (관심 가져야만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기. 성경(이 갖고 있는 ‘문서’라는 특징)에 한정시켜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출애굽 사건보다 바빌론 포로 및 귀환 사건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창세기를 포함해 성경의 첫 다섯 권(흔히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 외 많은 성경 책들의 <최종적인 본문>이 포로기(주전 586- 444)를 전후해서야 <비로서> 완성됐다고 한다. 어떻게 선민이, 약속을 받은 민족이, 망해서 이방인의 포로가 될 수 있지? 기존의 신앙을 뿌리채 흔드는 질문 앞에서, 답이 안 보이는 곤혹스러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님 오기 불과 약 5백 년 전까지도 기존의 성경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편집되거나 수정되었다니!
기록된 것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제하는 걸 두려워하는 나였기에, 구약의 최종 편집자들의 이런 <반-요한계시록적> 행동(“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22:18)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게 구약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구약을 보고 바울은 <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이 책들을 보라>고 하였다. 또 바울은 얼마나 자주 자신의 논지를 펴기 위해 구약의 특정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몇 점 몇 획 변형 후> 인용했던가! 그런데 <교회>는 구약을 이렇게 <디스>한 그의 글을 <분서>하는 대신 <정경>으로 삼았다.
2. 욥기나 전도서, 잠언 등 소위 성경에 나오는 지혜 문학의 상당 부분은 - 오래 전 책에서 읽은 내 기억이 맞다면 약 70~80% - 당시 이집트 등 고대 근동의 지혜 문학 내용과 겹친다. 겹친다는 말은, 거기서 갖고 왔다는 말이다. 아, 그럼 다시 그 유명한 구약에 대한 바울의 평가는 어떻게 될까?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영어로 하면,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당혹스럽지만 바울은 지금 비기독교인으로부터 유래한 지혜서 70% 분량의 <이교 문장들>(pagan sentences)을 보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다고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동안 견지해왔던 <기독교-비기독교> 구분법은, 어쩌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감>을 담기엔 너무 좁은 것이었을 수 있단 생각이 요즘 든다. 이제 난 이렇게 생각한다. 성경 속 하나님의 신(holy spirit)은, 이집트의 어느 오래된 흙집 앞 의자에 앉은 노인이 인생을 돌아보며 겸손히 짧은 경구를 남길 때도, 그 옆에서 바람으로, 숨으로, 그의 얼굴을, 그의 문장을 간지러 주었을 것이라고.
3. 『아담의 진화』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을 쓴 피터 엔즈의 책이다. 두 책 모두 우리가 신앙의 근거 - 종종 타인에 대한 비판의 근거, 더 나아가 저주의 근거 - 로 삼는 성경, 이란 책이 <실제로는> 어떻게 쓰여진 책인가, 하는 점을 다루고 있다. 성경의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 무엇을 참고하는지, 천지창조와 홍수 이야기는 왜 그렇게 타 종교 신화와 유사한지, 왜 유사해도 되는지,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약을 얼마나 <자유롭게> 해석했는지,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지 등등 흥미로운 - 사실 우리에게 절박한 - 주제들에 대해 설득력 있게 해설했다. 비록 책 제목과 부제에 <진화>와 <인류의 기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성서학과 구약학을 다루고 있다. 훌륭한 입문서란 생각이 들어 강추한다.
4. 저자가 곁다리로 소개한 에피소드 하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디모데후서 3장8절은 모세 시대에 바로를 위해 활동했던 마술사의 이름을 ‘얀네’와 얌브레'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이름, 구약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여기에만 나온다. 진짜 3,4천 년 전에 살았던 두 사람의 이름 맞을까? 3,4천 년 동안 그 둘의 이름이 교회에 전승돼 왔다고 하는 주장을 펼 수도 있겠다. 하나 아닐 것이다. “익명의 인물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성경의 에피소드를 보다 구체화하려는 현상은 제2성전기에 흔한 일”(p.285)이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기입한 성경. 재차 묻게 된다. 성경은 어떤 책일까.
5. 옥에 티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번역. 개정판에선 문장을 많이 다듬어주기를 기대하며.
2014.9.9.
신동주
2014년 9월 3일
『아담의 진화』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매하고.
어제 책을 두 권 샀어요. 먼저, 『아담의 진화』 .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을 쓴 피터 엔즈 교수가 썼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을, 나아가 창세기 자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를 다루고 있어요. (아담을 보편적 인류를 의미한다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인을 의미한다고 봐야 하는지 등등). 무척 기대가 돼요. 아, 교보에서 책 사다가 좀 놀랐어요. 비싸서 ㅋㅋ 2만원. 두 번째 책을 소개하면 이래요. 어제 페북을 보는데 페친 S님이 “제 신약 공부는 허타도의 주 예수 그리스도 읽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라고 쓰셨어요. 세 번을 읽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이 처음 들어보는 허타도 라는 이름의 중국 신학자가 누군인지 궁금해졌어요. 검색을 했더니 윽 ㅠㅠ Larry W. Hurtado. 영국의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초기 기독교 연구의 최고 권위자. 현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부인 뉴 칼리지의 학장으로 재직. 원제 : Lord Jesus Christ: Devotion to Jesus in Earliest Christianity. 다루는 질문들은, 예수의 신성화는 언제 처음 이뤄졌는가,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론적 견해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형성기의 기독교는 후대의 기독교 전통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가, 초기 기독교는 주위 종교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등등. 추천사를 쓰신 분 중에는 현재 신학펀치에 출연 중이신 권연경 교수님의 이름도 보였어요. “이 책은 단순히 눈에 띄는 지표석 하나를 세우는 정도로 기여하는 것을 넘어, 논의의 풍경 전체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 막스 터너 (런던 바이블 칼리지) ”. “이 분야 연구를 일생의 연구 과제로 삼고 줄곧 매진해온 래리 허타도 교수의 가장 핵심적인 작품이자 이후에 이어진 후속 연구들의 출발 기준선이 된 책이다 / 최재덕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바로 샀어요. 새물결플러스에서 번역, 출간했어요.
덧붙임: "만약 진화론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책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진화가 옳다고 전제하는 책이지 진화가 옳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진화론이 거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인정하게 되었기에, 신앙이 흔들린다면, 본서는 여러분이 신앙을 유지[하]도록 큰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저자는 진화와 성경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진화』의 역자 서문 중에서 )
2014년 8월 30일
길

회사 동료와 함께 5시 쯤에 종교인 동조 단식장에서 단식 중이신 방인성 목사님을 찾아뵈었어요 ^^ 방목사님은 그저께 뵈었을 때와는 달리 조금 피곤해보이셨어요. 오늘은, 저희 신학펀치의 패널이신 권연경 교수님도 함께 단식 중이셨어요. 어제는 녹화하면서, 오늘은, 단식장에서 뵈니 반가왔습니다. 권교수님과 회사 후배와 셋이서 5시반 경부터 시작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 시작하고 바로 한 여성 가수분이 노래를 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는데, 가사 시작하자 마자 갑자기 가슴이 찡하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길이 안 보인다면 제대로 걸어온거야". 이 가수분과 노래제목이 넘 궁금해서 범국민대책위에 페북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은 못 받았어요.ㅎㅎ 아시는 분 있으면 부디 알려주세요 ^^ 집회 마치고 귀가할 때 지하철을 잘못 타 난생 처음 와보는 청구 라는 곳에서일단 내렸어요. 저도 방향 관련 뇌부위를 100% 쓰고 싶어요 요한슨처럼요.어느 불꺼진 편의점 앞에서 ㅠㅠ
2014년 8월 21일
PD와 조연출
오늘 신학펀치 피디와 조연출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와서
피디는 조연출에게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심부름 하나만 해줘. 이 책좀 발송해줘.
주소는 안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놨어. / 피디는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 지하에 있는 교보에서
폴 투르니에의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샀습니다. 포스트 잇에 조연출의 주소를 적었습니다.
마지막에 조연출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마지막에 생일 축하해 ㅋㅋㅋ 라고 적었습니다 ^^
2014년 8월 14일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중 제3장과 제4장을 (다시) 읽고.
1. 메스로 환자의 배를 가르고 잘라내야 할 부위를 찾는다. 조심스럽게 소장을 들춰내자 곪은 부위가 눈에 띈다. 나직한 목소리로 “가위”하며 의사는 장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간호사 쪽으로 손을 내민다. 간호사가 가위를 건넨다. 의사는 날카로운 수술용 가위로 소장을 삭둑 잘라낸다. 날카로운 가위날에 의해 소장이 잘려나가는 그 절삭감은 의사의 손에 <그대로> 전달됐다. 이상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짧게 스케치해보았다. 하루에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 수만 건씩 벌어지는 이런 수술 장면은 마이클 폴라니(1891~1976)가 자신의 <인식론>을 구축하며 제시한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다. 폴라니는 상기 수술실에서 의사가 경험하는 인식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잘라내야 할 <장기에 대한> 인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장기를 자르는 <가위에 대한> 인식인데 , 폴라니에 따르면, 의사는 장기는 초점적(focal)으로 인식하고, 가위는 부차적(subsidiary)으로 인식한다.
2. 이런 <초점적-부차적 인식>의 이중구조는 실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망치로 못을 박을 때 망치를 쥔 손바닥에 전해지는 정보를 통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건 벽에 박히(고 있)는 못의 상태이지, 현재 쥐고 있는 망치 손잡이의 질감이 아니다. 우리는 못을 초점적으로 인식하고 망치의 손잡이를 부차적으로 인식한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짚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팡이의 손잡이는 부차적으로, 지팡이 끝을 통해 전달되는 지표면의 상황은 초점적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만약 상기 두 경우에서 초점적-부차적 인식 대상을 서로 뒤바꾸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즉, 망치 손잡이와 지팡이 손잡이를 부차적이 아니라 초점적으로 인식하고, 못과 지표면을 초점적이 아니라 부차적으로 인식하려 한다면? 의사가 수술실에서 장기를 부차적으로, 가위를 초점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못질은 빗나가고, 걸음걸이는 불안해지고, 장기는 제대로 절삭되지 못한다..
3. 폴라니는 여기서 우리가 가위를 초점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의사가 가위의 성능을 의심하며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 즉, 초점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 결함을 발견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나 폴라니가 여기서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의사가 환자의 장기를 초점적으로 인식하며 절삭이라는 의미있는 행동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부차적 인식 대상인 가위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은『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레슬리 뉴비긴 지음, IVP)에서 마이클 폴라니의 인식론을 소개하면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제대로 집어내고 있다. (1) 의사들은 학생시절 수많은 의료 기구들의 사용법을 배우는데 “처음 배웠을 때에는 그 기구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숙련된 외과 의사가 된 다음에는 그것을 <암묵적으로> 의식할 뿐이고, 의식의 초점은 그것을 통해 발견하는 것에 맞추어질 것이다”. (2) 한편 의사가 가위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은 그 기구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그것이 적절한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을 버리고 다른 기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한 그것을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것을 신뢰하는 동시에 의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그것을 <무비판적>(a-critical)으로 사용한다. (p.74~75에서 인용했고 꺽쇠는 내가 첨가했다.)
4.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불기시작한 ‘기독교세계관운동’을 잠시 언급하자면 이렇다. 나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을 <‘세계관’을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초점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의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하나 <의미있는 대화>는 자신의 ‘기독교세계관’조차도 <부차적>으로, <암묵적>으로 취급하면서, 오직 상대와 그리고 세상과 나누는 이야기를 <초점적으로> 주목할 때 - 그런 모험(?)을 감수할 때 - 비로서 가능하다. 그 순간은, 내가 나의 ‘기독교세계관’과 상대의 ‘비-기독교세계관’에 무비판적(a-critical)이 되는 순간이다. <이야기에만 주목하는 순간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무비판적인 순간에 내 기독교가 상대의 비기독교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이미 <완벽한 안전을 제공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이 있다는 환상에 오염된 생각>이라고 본다. 세월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어떤 오염은 <어떤 성숙>이다.
서플먼트
1) 나는 위에서 마이클 폴라니의 방대한 사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개념 중 하나를 간략하게 <스케치>했다. 다시 읽어보니 스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캐리커처처럼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 못지않게 내 속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폴라니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천구백 년대에 태어난 현대인의 어리석은 교만이었겠지만 난 한때 천팔백 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오래됐다고’ 무시하고 깔봤다. C.S.루이스(1898~1963)와 마이클 폴라니(1891~1976)를 읽으며 나의 이런 교만이 깨졌다.
2) 폴라니의 책 가운데 세 권이 우리말로 번역됐는데 - 『개인적 지식』(Personal Knowledge),『지적 자유와 의미』(Meaning),『과학,신념,사회』(Science,Faith,And Society) - 세 번역본 모두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번역서를 모두 읽었으되 이해를 할 수 없어 다시 영어로 읽은 경험이 있다.) 폴라니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추천하는 순서는 이렇다. 먼저 레슬리 뉴비긴의『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제3장과 제4장을 읽은 뒤에 영문판 『Meaning』을 읽기. 그의 주저 『개인적 지식』은 입문자가 읽기에는 벅차다. 『Meaning』은 폴라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인데 언어, 예술, 종교, 과학, 사회에 대한 그의 방대한 사상이 잘 요약돼 있다. 13장으로 이뤄져 있고 난 13번의 절정을 경험했다.
2014년 8월 13일
2014년 8월 2일
『정통』을 (오래 전에 두 번) 읽고.
1. 조우(遭遇)한다,는 말이 있다. 우연히 서로 만난다는 말.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 속 주인공 브라운 신부(가톨릭)와, 내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C.S. 루이스(개신교)가 그렇게 <조우>하는 순간을 목격한 적 있다. 루이스의 인터뷰 중에서: “워트: 어떤 기독교 작가들이 교수님에게 도움을 주었습니까? 루이스: 제게 가장 큰 도움을 준 현대의 책은 체스터튼의 『영원한 인간』입니다. 다른 책으로는 에드윈 비번의 『상징과 믿음』,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 그리고 도로시 세이어즈의 희곡들이 있습니다. (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 중 '16. 질의 응답' 중에서)”. 내가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던 체스터턴이 기독교 작품도 썼다니! 브라운 신부와 루이스가 G.K.체스터튼 안에서 이렇게 조우했다.
2. 『정통』(G.K.체스터튼 지음, 상상북스)을 읽으며 여러 번 웃음을 터트렸다. 내 웃음, 내 고정 관념이 깨지는 소리. <미친 사람에 대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은 그의 행동에 이유가 없다는 소리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 이유가 없는 행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취하는 사소한 행동들이다. 가령, 걸을 때 휘파람을 부는 행위나, 막대기로 잔디를 내리치는 행위나, 신발 뒤꿈치로 차는 행위나 손을 비비는 행위 같은 것들이다. 행복한 사람이라야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지, 병든 사람은 그런 한가한 짓을 할만큼 강하지가 않다. 미친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처럼 이유가 없는, 태평스러운 행동들이다. >(p.51, 제2장 ‘미치광이’ 중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나서 체스터튼은 이성과 믿음과 신앙의 관계로 넘어간다. <쑥 들어간다>. 당신과 내가 습관적으로 견지해온 <나태한 신념> 속으로. 그래서 필립 얀시는 『정통』이 자신의 영적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 했고, C.S.루이스는 혹 누군가 무신론자로 남고 싶다면 체스터튼의 책을 경계해야 한다 했다.
3.『정통』은 두 번 읽었다. 첫 완독은 강원도 예수원에서 했다. 처음 가 본 태백, 길눈 어두운 내가 간신히 예수원 가는 길목으로 들어섰을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내가 제작하던 <성서학당>에 고정 강사로 출연하고 있던 K교수였다. 어떤 일이신가요? 네, 제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하차해야 할 것 같아요. 쉼을 얻으러 가는 길에 걸려온 고정 출연자의 하차 소식.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했다. 대신 제가 괜찮은 사람 한 분 추천해 드릴께요. 아, 누군가요? 권연경 교수라고 계세요. 어떤 분이신가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짙은 안개에 가려 아직 예수원은 보이지 않았다.
2014. 8.2.
신동주
서플먼트
1) 체스터튼의 『Orthodoxy』는 2003년에 『오소독시』라는 제목으로 이미 한 번 나온 적 있음. 그 책으로도 읽으려 한 적 있으나 번역 때문에 중간에 포기. 완독은 홍병룡이 번역하고 상상북스에서 출간한 『정통』으로 했다. 당연히 후자를 추천한다. 2011.7.19 예수원에서 1독을 했고, 2011.8.29.에 2독.
2) 체스터튼은 ‘역설의 대가’라고 불리는데 역설과 비유의 진하기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루이스는 투샷, 체스터튼은 에스프레소, 톰 라이트는 - 굳이 여기에서까지 디스를 하다니, 나도 참 - 다 마신 커피 잔에 남은, 얼음 녹아 생긴 미지근한 물.
3) 필립 얀시에 따르면 체스터튼은 “100권도 넘는 책을 썼는데, 그 대부분을 비서에게 받아쓰게 하고 초고를 거의 고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작기 얀시, “몇 주 동안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아, 그래서 나에게도 여비서가 있어야 돼! 강추한다.
4) 그렇게 권연경 교수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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