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은 스테이크는 다 먹지 않고 한 입만 먹어봐도 알 수 있듯이, 『제일신학』(케빈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IVP )은 제1장만 <씹었는데도> - 논문집이라서 말 그대로 <씹어야> 한다 - <일등급 한우>로 만들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미국 신학자의 글은 한우에 비유하는 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라! (ㅋㅋ)) 밴후저는 각 시대마다 철학에서는 중요한 핵심 질문이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고대에는, 실재의 궁극적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가장 중요했는데 (예: 만물은 물로 돼 있다, 아니다, 공기다, 아니다, 불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만물이 '존재'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는데 여전히 사용하는 많은 범주인 실체(substance), 본질(essence), 실존(existence) 등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실재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 [즉, 형이상학이] 고대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 '제1철학(first philosophy)'이었다. 우리는 한 시대의 제1철학이 무엇인지를 확인함으로써 그 시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 12세기와 13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업과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중세의 많은 신학자가 형이상학을, 혹은 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1신학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p.28-29). 지적 허세 있는 나,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축약본까지 사서 읽었지만 아퀴나스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파고들었는지 그 <연유>를 몰랐는데 상기 설명이 참 <시원했다>.
2021년 2월 22일
『제일신학』(케빈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IVP )의 제1장을 읽고.
2021년 2월 4일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벤 위더링턴 3세 지음, 이레서원)을 읽고
1.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1세기 고린도의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소설 형식으로 소개하는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흥미로웠던 대목 한 군데를 소개하면 이렇다. (총독 갈리오가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열리는 만찬회에 참석하려고 신전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신전 입구, 첫 번째 계단 옆에는 새 석판이 세워져 있고, 아스클레피오스 신과 이 신의 상징인 뱀이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만찬회에 늦은 갈리오는 급히 계단을 올라 신전으로 들어가면서 테라코타 봉헌물이 놓이 방을 지나갔다. 이 방에는 순례자들이 치유를 위한 봉헌과 기도 용도로 바친 여러 부위의 인체 모형들이 놓여 있었다" (테라코타는 점토로 형상을 빚은 후 구워서 만든 모형인데, 당시에는 병이 난 부위를 테라코타로 만들어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치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 여기까지 읽은 내 머릿속에선 <음란마귀>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안 좋아진 부위? 그럼, 그 봉헌 모형들 가운데는 <그 모형>도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쓰레기일까...흑흑흑" .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갈리오는 팔과 다리 모형이 눈에 익은 모습으로 죽 늘어서 있는 것은 거의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가장 흔한 인체 부위 복제품인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는 늘 그랬듯 그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 휴. 나만 쓰레기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트리클리니움, 또는 식당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뒷편에 있었는데, 그런 연회에서 늘 그러듯 크게 떠드는 소리와 흥청거리며 노는 소리가 갈리오의 귀에 들려왔다."
2021년 1월 15일
나의 아저씨
나랑 친한 조연출 한 명이 <나의 아저씨>를 다봤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누가 <나의 아저씨>를 다봤다고 하면, 그가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다읽었다고 하는 것만큼 반갑다. 내가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제일 많이 생각한 것은 <위치>였다. 기성세대로서의 위치, 남편으로서의 위치. 거기서 벗어남은, 처음엔 쾌락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은 고통이라는 것. 그 위치를 지키고 있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실 평안이 가장 큰 쾌락이라는 것.
2020년 11월 21일
신학펀치 시즌2를 마치며 드리는 감사의 인사
오늘은 늦잠과 넷플릭스 다큐와 설거지와 대청소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토요일인데 회사 안 나가니까 너무 이상했어요. 지난 6개월, 주말은 제가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던 날이었거든요.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 낯선 즐거움을 잘 음미하려고 합니다.
2020년 10월 21일
신학펀치 마지막회 질문지
10월 18일 일요일. 1시쯤 회사에 도착해, 9회 10회 질문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 또 해보고 싶어도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몹시 피곤한데도, 원고가 끝나간다는 사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잠시 4층 정원에 나갔는데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밤11시에 최종 질문지 원고가 완성돼 두 게스트와 진행자에게 발송하고, 회사를 나와 - 나오기 전에, 빈 사무실 내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렸다 - 집으로 향했다. 오목교를 걸으며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조나단 집에 막 도착했다고 했다. 아들은, 시즌2 마지막 방송을 위해 시청자들의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해 권연경 교수가 답변하는 짧은 Q&A 영상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했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미국 감과 한국 홍시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눴다. 어제 감을 샀는데 캘리포니아 산불 때문에 겉에 탄 자국이 있다고 했다. 내 9회 10회 질문 내용을 듣고는 무척 지적이라고 했다. 어렵다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그런 질문 아무나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뜻이야, 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집에 와서 누룽지를 끓여먹고 작은 싸이즈 칭따오 맥주를 한 캔 마셨다. 페북에서 얼마전 과로로 숨진 택배 노동자의 마지막 카톡 메시지를 보는데 - 새벽4시반에 퇴근하며 남긴 메시지였다 - 부끄러워졌다. 두 전도사가 나와서 새 관점과 옛 관점의 차이를 설명하는 짧은 영상 하나를 봤다. 이제 맥주 캔과 허니버터 봉지를 치우고 이를 닦고 자려고 한다. (2020.10.18)
2020년 9월 30일
신학펀치 제7회 프리뷰
오늘은 회사 나와서 보름 후에 업로딩될 신학펀치 제7회 프리뷰를 했어요. (프리뷰는 녹화한 영상을 보면서 출연자의 대사를 모두 적는 거예요. 녹취록을 만드는 거죠. 이렇게 해놔야 내일서부터 편집할 때 편해요. 어느 멘트가 어디에 있는지, 영상을 다 돌려보지 않아도, 금방 찾을 수 있거든요.) 성경의 영감과 관련해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 권연경 교수와 김근주 교수가 한마디씩 하는 대목이 있었어요. 다른 부분은 (나중에 저만 알아보면 되기에) 맞춤법을 무시하고 적는데, 이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정확하게 제대로 적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