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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4일

평범한 하루

 













어제 한 시까지 <트루먼 쇼>를 보느라 오늘 늦잠을 잤다. 11시 예배에 맞추려면 10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9시 반에 눈을 떴다. 집에서 10시 10분에 떠났다. 조금 늦겠지만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했다. 양평역에 도착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엘베 안에는 5,6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분이 있었다. 막 서둘러 걸어오는 중년 부부가 보여서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세 사람 사이의 인상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 중년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너무 추워요" 라고 하자 남편은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참 다정치도 못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먼저 타고 있던 중년 여성이 조용히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남자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질문을 한 거였다. 여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왜 자기만 추워해...? 자기 오늘 춥구나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데....그쵸?". "맞아요! 이 사람은 공감을 못 해줘요"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가 반갑게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처음 본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에 놀라고 감동했다. 여자 둘이 다정하게 말을 나누는 동안 남자는 멀뚱히 앞만 바라보고 서있었다. -----  나는 10분 늦은 11시 10분에 교회에 도착했고 주차장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셀카를 찍었다. 내가 예배당 자리에 앉고 얼마 뒤 부른 오늘의 찬송은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을 "오늘도 앞으로 전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로 끝맺어왔기에 "앞"이 아닌 "주께"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가사가 이상하게 크게 도전이 되었다. 왜 내 기도에는 앞으로 더 전진만 있고 주께로 더 가까이는 없었을까. 주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작사자의 고백이 참으로 귀한 고백이란 생각이 들었다. ----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받았다. 내가 한두 주 전에 깨달은 건데, 나는 주님이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했다. 갖고 있는 많은 것 중에서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살과 피를 주신다는 건 "모든 것"을 주셨다는 뜻이었다. 앞에 서서 성찬을 받으며 "주님, 저를 위해 주님의 모든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예배 시간 중에 내가 무척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성찬이 다 끝나고 목사가 이렇게 선포할 때다.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나는 이 선포가 참 힘이 된다. 이제 모든 죄책과 수치, 두려움을 주님이 감당하셨다. 이제는 평안히 가도 된다. 주님을 섬길 힘, 정결한 마음에서 오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게 감사하다. 내가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청년이 두 명 있었는데 오늘 그 둘과 식당에서 마주쳤다. 인사를 건넸다. 점심을 먹고 마음 통하는 교인들과 찻집에서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속에서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지만 특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날도 부럽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양평역에 내려서 만두를 2인분 포장했다. 집에 와서 만두를 먹으며 쿠팡플레이에서 <노 서든 무브>를 봤다. 

2025년 5월 3일

치즈 크래커













오늘도 11:30에 요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 근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양원 입소 다음 주 첫 점심 외출 때 발견한 식당인데 그후로 지금까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이곳에서만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가 이 식당의 볶음밥을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그렇다. 식당 주인 부부가 참 정이 많으시고 음식 맛도 훌륭하다. 이 식당을 알게 된 게 참 감사하다. ---- 식사 후 파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가방을 여시더니 리츠 크래커 두 통을 꺼내 내게 주셨다. 나는 크래커를 안 먹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 통은 받기로 했다. "한 통은 어머니 드세요". 어머니는 내가 돌려드린 나머지 한 통을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잠시 뒤 어머니는 다시 리츠 크래커를 꺼내시고는 "그래도 더 큰 거를 아들한테 줘야지" 하시며 내게 주셨던 크래커통 위에 당신의 크래커통을 겹쳐 놓으신 뒤 길이를 재셨다. "2026.02.05. E" 라는 동일한 사용기일이 찍혀 나온 동일 회사, 동일 종류 크래커였으니 길이가 다를 수는 없었다. 크기가 같다는 걸 확인하신 어머니는 민망하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크기가 같구나" 라고 하시고는 당신의 크래커를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2분 쯤 흘렀을까. "그래도 아들한테 더 큰 걸 줘야지" 하시며 어머니는 다시 당신의 가방에서 당신의 크래커를 꺼내 아들의 크래커와 크기를 재셨다. "아, 크기가 같구나" 어머니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2,3분이 또 흘렀다. "그래도 아들이 더 큰 크래커를 갖고 가야지"........그리고 커피숍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오늘 어머니는 총 네 번 크래커 크기를 재셨다. 나는 한 번도 아까 재셨잖아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 가는 단골 찻집에 가서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한 잔 시키고 아침에 내가 챙겨간 고야 제3권을 꺼내 읽었다. 조용히 고야를 읽고있자니 다시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저자 홋타 요시에가 고야의 <5월 3일>을 일종의 종교화에 빗대 해설하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구글로 그림을 찾아 같이 보면서 읽었다. 찻집에서 제3권을 다 읽었다. (이제 마지막 제4권만 읽으면 된다.) 책 뒷표지에는 헤밍웨이가 고야에 대해 쓴 이런 글이 소개돼 있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처럼 이 글도 단문으로 돼 있다. "그는 검정과 회색을 믿었고, 그 뉘앙스를 믿었으며, 빛과 어둠을 믿었고,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도시들을 믿었다. 그는 시골과 마드리드를 믿었고, 운동을, 자신의 고환을 믿었다. 그림과 동판 부식을 믿었다. 그는 보고,느끼고,만지고,쥐고,냄새 맡고, 먹고, 마시고,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부러뜨리고, 함께 자고, 의심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증오하고,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멸시하고,경탄하고,파괴했던 것을 믿었다. 어떤 화가도 이 모든 것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야는 바로 이것을 시도했다." ----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숨 잤다. 고야 제4권의 1장을 읽었다. 지금은 저녁 7:54. 다음 주 수요일에 잘잘법 녹화가 있는데, 강사가 보내준 녹화 사전 원고를 이제 살펴보려고 한다.           

2025년 5월 1일

두 마리 토끼


 











노동절에 출근한 우리 팀은 오늘도 멋진 팀워크를 발휘하였다. 일과 관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우리 팀. 너무 감사하다 ---- 사람들이 없는 사무실에서 글을 썼고, 5시쯤 퇴근해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와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편의점 도시락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2025년 4월 29일

점심과 저녁













오늘 A와 점심을 먹고 오목공원을 산책했다. 요즘 우리팀이 오공을 산책할 때는 미니멈 오바퀴이다. A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 가슴도 뛰었다. ---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안양천을 산책했다. 아들이 오면 같이 가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캔커피를 다 마셨는데 계속 들고 산책을 하기가 뭐해서 표지판 밑에 숨겨두었다가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다시 주워왔다. 

2025년 4월 27일

떡의 위치



 








오늘 예배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을 불렀는데 참 좋았다. 경쾌한데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사 중에 "갈릴리로 가요", "죄로 상처나고 더러워진 모습 그대로 갈릴리로 가요"가 있었다. 정확한 제목을 몰라 내가 마음대로 붙여본 제목은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천사가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이전에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셔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찬양을 듣기, 찬양을 부르기, 말씀을 듣기, 성찬에 참여하기. 모든 예배 순서를 통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 오늘은 지난 주에 세례를 받은 A가 나와서 세례를 받은 소감을 나누었다. 소박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소감이었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특히, 어머님 장례에 참석해 준 교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를 표할 때 그의 마음과 진정이 느껴져서 감동이 됐다. 또 하나, 내 옆 자리의 나이드신 남자 분이 나이드신 아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 모습도 너무 아름다웠다.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린다는 건 타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서 혼자 푹(?) 쉴 때는 경험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감동들. ----- 주보에 오늘 점심 식사 후 설거지는 '50대'라고 나와 있어서, 그리고 내가 59세라서, 점심을 빨리 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50대 교우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7,8년 전 내가 루터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전 교인이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공동의회 시간에 나는 손을 들고 전 교인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는데, 오! 감동! 바로 채택이 됐다. 2주 전 종려주일 때마다 하는 교회 대청소는 가볍게 "쨌지만"(ㅋㅋ), 내가 제안했던 설거지를 쨀 수는 없는 일이었다 (ㅋㅋㅋ) -----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마음의 교우 A, 그리고 오늘 설교를 한 B 목사와 셋이서 정말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피와 살에서부터 자동청소기까지 정말 다양했다. 나는 전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루터교회 예배 시에 행하는 이런저런 전례들에 대해 궁금한 걸 다 물어봤다. 가톨릭과 루터회의 성호 긋는 방법의 차이,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례 형식도 하나 있었다. 루터회의 성찬식에서 목사가 교인에게 떡을 건넬 때 그 떡을 목사와 교인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주고 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B목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목사가 손을 쭉 뻗어 교인 손에 쥐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해요. 목사와 교인 딱 중간 지점에서 멈추고 거기서 떡을 건네요. 목사도, 교인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주님의 몸을 통해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거죠". 생각해 보니 오늘 떡을 건넨 B 목사, 지난 주에 떡을 건넨 C 목사 모두 그와 나 사이에서 떡을 건네 주었다. A 그리고 B 목사와 헤어져 지하철 역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대화를 들었으면 뭐라고 말하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 생각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다. "이런, 난 그날 밤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줬는데! ㅋㅋㅋ 그런데 지금 말을 듣고 보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애! 진작 알았다면 나도 그날 밤에 중간에서 건넬 걸 그랬네! ㅋㅋㅋ ". 물론 주님은 인간 목사가 아니니 중간에서 건네실 필요 없다. 팔 쭉 뻗어 건네셔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배의 동작과 형식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것이 하나의 전통, 전례가 될 때, 그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작은 동작과 행동 하나를 통해서도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거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사람들 앞에선 성호도 그어본 적이 없는 전례 초보자다. 천천히 전례를 배워가며 전례가 품고 있는 신앙의 신비 속으로 더 들어가보고 싶다. 지하철 안에서 B 목사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카페에서 들은 전례 이야기 넘 흥미진진했습니다! : ) 형식에 관한 전례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참 신비로워요 정말 인간은 몸,형식과 마음,믿음이 서로 깊이 연결된 존재같아요! 다음에도 또 알려주세요! : ) " ----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찬양과 관련된 짧은 글 하나를 첨부한다. 7년 전 쯤 <갈릴리>라는 짧은 글을 하나 블로그에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갈릴리>
오늘 처음 깨달은 사실인데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면서
몹시 화도 내시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무척 어이없어 하시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정말 놀라기도 하시며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답답해 하기도 하셨지만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결코 하지 않으셨던 한 가지 행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님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셔도
결코 경멸하거나 비웃지는 않으셨어요!
책망은 하시되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으시는 주님.
어제 또 죄를 지은 제게
이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자신을 버린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 기다려 주신 주님.
저도 오늘 믿음으로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2025년 4월 26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지음, IVP)를 읽고


 











1. 미생을 만화로도, 드라마로도 봤다. 누군가 내게 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냐고 묻는다면, 내겐 그건 다음 장면이다.

누군가 장그래가 속해 있는, 그러니까 오과장이 이끄는 팀에 합류했다. 기존 팀원들과 이 사람 사이에 긴장이 느껴진다. 이 남자는 일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신다. 그러나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집에 가면 꼭 맥주 한 캔을 혼자 마신다. 회사에선 일 때문에 마신 거고, 자신의 술을 즐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점차 신뢰가 쌓여가고 한 팀이 되어간다. 이 사람이 이 팀에 완전히 마음을 연 날이었다. 회사 일로 팀원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간 이 남자가 침대에 조용히 눕자 아내가 묻는다. "웬일이야, 일로 먹은 술은 먹어도 먹은 게 아니라고, 늘 맥주 한 캔은 하고 자는 사람이....".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은 충분히 마셨어". 남자의 "충분히"라는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 이제 따로 혼자 더 안 마셔도 될만큼 신뢰하는 사람들을 만났구나.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업무만은 아니구나.  너무 다행이다. 

2. 토요일이면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 허락을 받고 함께 외출을 해서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두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어머니와 헤어진다. 그러고 나는 집 근처 찻집에 가서 혼자 다시 차를 마신다. 그때부터 나만의 차를 마신다. 자주 혼자 묻는다. "아까 충분히 마셨어"라고 하며 그냥 집으로 가는 날이 올까? 

3.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가 쓴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를 지난 겨울 우연히 손에 쥐게 되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신 즈음이었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였다. 책의 부제는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이었고 나는 제목보다는 부제에 끌렸다. 책은 총 9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첫 장은 배회를 다뤘다. 왜 치매 환자들은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는지. 둘째 장은 옷차림을 다뤘다. 그들의 옷차림은 왜 종종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두 장을 읽고 검색을 통해 저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은 후 짧은 메일을 보냈다. 이런 내용이었다.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마다 저희 어머님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어머님의 존엄, 저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묻게 됩니다. 참 외로운 질문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힘이 되고 감사합니다." (*환자와 가족의 "존엄을 지킨다"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4.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는 저자의 아주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와 사회학적인 분석의 글이 번갈아 가며 한 챕터씩 등장한다. 전자를 읽을 때는 위로가 되었고 후자를 읽을 때는 우리 사회 내 나의 위치가 그려졌다. 양쪽 모두가 힘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내 경우엔 제7장 '돌보는 자의 신학'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먼저 이렇게 말을 했다. "돌보는 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능력이 있다. (...) 그[치매에 걸린 부모]가 어떻게 나를 키워 냈는지, 어떻게 나와 함께 살았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를 돌볼 수 있는 인내심이 조금은 더 생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실망했다. 대뜸 내 속에선 이런 반론들이 튀어나왔다. "누구나 다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대안이 너무 나이브한 거 아니야? 누군가에겐 과거는, 함께한 시간은, 양육받은 <그 긴 시간>은 기억할 때 힘이 되는 시간이 아닐 수 있다고. 추억함이 오히려 고통과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저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기억에 기대어 돌볼 수 있다면, 그 환자와 돌보는 가족은 모두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부모나 배우자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존재로 각인된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래서 돌보는 이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억력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5. 잘 돌보기 위해 기억보다는 상상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손가락으로 상상력이란 방향을 가리켜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그 상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기억과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상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배우고 싶다. 
 
진심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2025.4.26.
신동주

2025년 4월 25일

달력





 








회사에서 안 쓰는 달력을 하나 챙겼다. 내일 토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뵈면 드리려고 챙겼다. 요즘 어머니의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셔서 오늘이 며칠인지도 말씀하지 못하신다. 요일도 마찬가지다. 달력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쳐나가면 그날 날짜와 요일을 알 수 있으실 테고, 그러면 어머니의 자신감도 좀 더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 ----- 집에 와서 달력 오늘 날짜에 미리 동그라미 하나를 치는데 문득, 정말 문득, 내가 옛날에 달력을 한번 그린 적 있다는 기억이 났다. 내가 20대 중반일 때 부모님이 카자흐스탄으로 발령 받아 떠나셨다. 어머니 생일은 10월 2일이고, 그해 10월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 생각이 나서 10월달 달력을 그렸다. 눈물을 통해 2일을 보는 장면과 2일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그렸다. ---- 달력을 그리던 그날은 몹시 슬펐다. 오늘 집에 와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칠 땐 이상하게 거의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인생에서 달력이 나를 두 번 찾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4월 23일

출애굽

 


























오늘 오전 가편을 하는데 강사가 구직하던 시기에 경험한 신의 손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32년 전 신께서 나를 인도해주셨던 일이 떠올라 4층 공원에 나가 10분 정도 기도를 드렸다. 모든 구직자에게 구직은 하나의 출애굽 경험인 거 같다. 그 바다...그 애굽 군대...그 막막함


















2025년 4월 13일

소년이 부러웠다


 











2025년 4월 12일

신의 자비하심

 













아침부터 누군가에 대한 섭섭함, 분노, 원망이 생겨 어머니와 요양원에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편지를 썼다. 완벽하게 썼다. 나는 괜찮은 사람,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완벽한 글을 썼다. 읽으면 읽을 수록 그는 잘못했고, 나는 잘못한 게 없어지는 글.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쓴 것에 나도 설득이 됐다. 하지만 전송을 누를 수는 없었다. 이 말이 기억나서였다."겨울에 나무를 베지 말라. 하강의 시기에 결정을 내리지 말라".  내 마음이 가장 밑바닥일 때 누군가와의 관계에 영향을 줄 결정을 내리는 건 어리석었다. ----- 알고 지낸 지 꽤 되는 타부서 직원이었다. 그가 한 말에 내 자존심이 상해서 생긴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내 섭섭함을 과장하고 극대화하고 있었다. 그가 한 말 중에 맞는 말은, 맞는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에게 고마워 해야 할 부분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 마음이 순간 들었고, 나는 신이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비를, 내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거부하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반드시 붙잡고 싶다). 내가 처음에 기억했던 글의 후반부는 이렇다.  "기분이 최저로 내려갔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라. 기다리라. 참을성을 가져라. 폭풍우는 지나간다. 봄이 올 것이다. - 로버트 슐러". 내가 12년 전에 처음 본 글인데, 계속 기억이 나고 계속 나를 도와준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