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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3일

저녁 산책


 











저녁 산책을 다녀왔다 거의 쾌락이라고 불러야 할 즐거움을 준 한 시간 산책이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전에 달리던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했고 그러면서 주어지는 평화로운 쾌락에 많이많이 감사했다

2025년 5월 12일

책과 사과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 팔고 받은 돈을 손에 쥐고 흡족해 하는 1인 ---- 책 팔고 받은 만2천원으로 만2천원짜리 사과 사고 흡족해 하는 1인. 갑자기 집안의 책이 다 사과로 보인다

2025년 5월 11일

화이트 와인

 












오늘은 예배를 드린 후 교회 식당에서 교우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세대별 모임에 참석했다. 5,60대 모임은 찬양대실에서 열렸다. 15명 정도가 모였는데 모임을 진행하는 A목사가 "지난 6개월 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나누고 싶은 3장을 골라주세요. 사람도 괜찮고 장소도 괜찮습니다. 그럼 서너 사람씩 짝지어 앉은 후 서로 나눠주세요". 나는 우리 조의 청일점이었다. ---- 얼굴로만 알던 교우들의 소중한 시간, 소중한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 B가 얼마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에 보게 되면 C와 D에게 묻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A 목사의 제안, 정말로 좋은 모임 진행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 오늘 설교는 성찬에 대한 거였는데 성찬식에 사용하는 포도주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독일의 한 교회에선 레드 와인이 아니라 화이트 와인을 성찬식 때 사용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지역에서 재배하는 포도가 화이트 와인용이어서 그러하다고 함).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에 어떤 것이 적절할까. 나는 과거에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레드 와인이 적절하고 화이트 와인은 적절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포도주(A)는 주님의 피(B)를 상징한다. 우리는 평소 수많은 A들을 사용하여 수많은 B들을 상징한다. A가 B에 대한 적절한 상징물이 되기 위해선, B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A에 담겨있어야 한다. 피의 가장 큰 특징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만약 피의 가장 큰 특징을 "척척함"이라고 본다면 화이트 와인이나 막걸리도 괜찮다. 하지만 피의 특징을 "붉다"로 보려한다면 레드 와인이 적절하다. ---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가 교회에서의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만약 그 독일 교회에 다녔으면 담당 목사에게 한번은 질문을 할 거 같다. "피의 가장 큰 특징은 '붉음'에 있지 않을까요, 척척함이 아니라요?" 나는 어떤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답변이 내 생각이나 기대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나는 그 다음 주 성찬에 참석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시려는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기회를 사모하면서 화이트 와인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마셨을 것 같다.

2025년 5월 7일

어쩌면 마지막 녹화, 그와의


 











오늘 오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가 3편의 강의를 했다. 첫 편 녹화는 A가 진행했고 두번 째와 세번 째 녹화는 내가 했다. 다 좋았지만 마지막에 했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을 설명해 주는 강의가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과 도전이 될 거 같다. 미국에 있는 나의 둘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녹화 들어가기 전에 둘째와 통화를 했다. "오늘 권교수님이 오셔서 구원론에 관한 강의를 하셔". 아들과 함께, 기독교인은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인지, 아니면 최종 구원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눴다. "업로딩 되면 꼭 링크 보내줘") ---- 3편의 강의를 연속으로 하는 거라서, 추가 질문을 하기 위해선 집중해서 듣고 있어야 하기에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가 오늘 소중한 강의를 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식되었다. (내가 내년 1월 퇴직이라 권연경 교수를 이렇게 녹화장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녹화를 최대한 <느끼면서> 하고 싶었다. ---- 녹화는 6시 20분에 끝났고 권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저녁도 같이 먹었다. 권연경 교수는 십여 년 전 내가 총 60회를 제작한 신학펀치에 59회 출연해 주셨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꼭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겨자에 대하여, 집에 있는 책장에 대해, 책을 버린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남은 시간에 대하여, 상담에 대하여 이야기 나눴다. 일어설 무렵, 아까 녹화 중에 시간이 모자라 묻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거기에 대해 그가 한 답변, 나의 남은 인생 여정 중에 거듭거듭 생각할 것 같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게 과연 힘과 위안이 될까 했는데, 곧 동의하게 되었다. 그거야 말로 근원적인 힘과 위로라는 것을. 내가 했던 질문과 그가 한 답변은 이렇다. ---- "성경은 우리가 제대로 살지 않으면, 엉터리로 살면 최종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는 것 잘 알겠습니다. 그럼,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나가야 하는 이 절실한 신앙 여정에서 불완전한 우리에게 힘과 위안이 되는 건 무엇인가요?". "상상력이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꿈을 그려볼 줄 아는 상상력이요. 그게 우리에게 디그니티를 가져다 주지요." 나는 오랫동안 넘어짐-회개-넘어짐-회개-넘어짐의 반복을 이어왔다. 어쩌면 내게 은혜는 당장의 죄책감을 지울 때 한 장 뽑아 쓰는 물티슈 같은 것이었던 거 같다. (근원적인 힘을 잃고 물티슈로 전락한 은혜 ㅠㅠ).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꿈.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이 꿈이, 이 꿈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과 위안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신에 대해 디그니티를 갖는 걸 나도 넘 경험해 보고 싶다. ---- 긴 녹화를 끝냈기에 긴장을 풀고 가고 싶어 단골 카페에 들려 밀크티를 한 잔 시키고 고야 제4권을 읽었다. 권연경 교수로부터 카톡이 한 통 왔다. "요즘 갖고 계신 책들 다 처분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이번에 쓴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 한 권 보내드릴까요?" "오, 영광입니다!". 나를 위한 히브리서가 될 거 같다.

2025년 5월 6일

봉투













나는 우리말 중에서 "봉투"라는 말을 좋아한다. 은근해서 그렇다. "선물을 사려다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용돈 좀 넣었습니다"는 너무 노골적이다. 반면에 "어버이날이어서 봉투 좀 마련했습니다"라는 말은 얼마나 은근하고 은은한가. 돈냄새가 아니라 봉투의 한지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말을 사용할 때마다 나 스스로 흡족해서 속으로 미소짓는다. 장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신 게 분명하다. 문제의 봉투를 드렸을 때 아주 기뻐하셨으니. ------ 어버이날엔 찾아뵙지 못할 거 같아 오늘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뵙고 왔다. 장모님은 내가 사간 꽃을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 현관에서 한 번, 식탁에 올려놓자 또 한 번, 그리고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한 번 더 너무 예쁘고 너무 맘에 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세 번 장모님이 오늘 점심 때 끓여주신 아욱국이 맛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밥 먹으면서 한 번, 다 먹고 소파에 앉아서 한 번, 장모님댁에서 나와 오목교 내 단골 카페에서 고야 제4권을 한 시간 정도가 읽다가 집에 돌아와서 장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전화로 다시 한 번. 

  

2025년 5월 4일

평범한 하루

 













어제 한 시까지 <트루먼 쇼>를 보느라 오늘 늦잠을 잤다. 11시 예배에 맞추려면 10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9시 반에 눈을 떴다. 집에서 10시 10분에 떠났다. 조금 늦겠지만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했다. 양평역에 도착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엘베 안에는 5,6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분이 있었다. 막 서둘러 걸어오는 중년 부부가 보여서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세 사람 사이의 인상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 중년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너무 추워요" 라고 하자 남편은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참 다정치도 못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먼저 타고 있던 중년 여성이 조용히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남자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질문을 한 거였다. 여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왜 자기만 추워해...? 자기 오늘 춥구나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데....그쵸?". "맞아요! 이 사람은 공감을 못 해줘요"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가 반갑게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처음 본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에 놀라고 감동했다. 여자 둘이 다정하게 말을 나누는 동안 남자는 멀뚱히 앞만 바라보고 서있었다. -----  나는 10분 늦은 11시 10분에 교회에 도착했고 주차장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셀카를 찍었다. 내가 예배당 자리에 앉고 얼마 뒤 부른 오늘의 찬송은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을 "오늘도 앞으로 전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로 끝맺어왔기에 "앞"이 아닌 "주께"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가사가 이상하게 크게 도전이 되었다. 왜 내 기도에는 앞으로 더 전진만 있고 주께로 더 가까이는 없었을까. 주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작사자의 고백이 참으로 귀한 고백이란 생각이 들었다. ----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받았다. 내가 한두 주 전에 깨달은 건데, 나는 주님이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했다. 갖고 있는 많은 것 중에서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살과 피를 주신다는 건 "모든 것"을 주셨다는 뜻이었다. 앞에 서서 성찬을 받으며 "주님, 저를 위해 주님의 모든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예배 시간 중에 내가 무척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성찬이 다 끝나고 목사가 이렇게 선포할 때다.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나는 이 선포가 참 힘이 된다. 이제 모든 죄책과 수치, 두려움을 주님이 감당하셨다. 이제는 평안히 가도 된다. 주님을 섬길 힘, 정결한 마음에서 오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게 감사하다. 내가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청년이 두 명 있었는데 오늘 그 둘과 식당에서 마주쳤다. 인사를 건넸다. 점심을 먹고 마음 통하는 교인들과 찻집에서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속에서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지만 특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날도 부럽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양평역에 내려서 만두를 2인분 포장했다. 집에 와서 만두를 먹으며 쿠팡플레이에서 <노 서든 무브>를 봤다. 

2025년 5월 3일

치즈 크래커













오늘도 11:30에 요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 근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양원 입소 다음 주 첫 점심 외출 때 발견한 식당인데 그후로 지금까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이곳에서만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가 이 식당의 볶음밥을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그렇다. 식당 주인 부부가 참 정이 많으시고 음식 맛도 훌륭하다. 이 식당을 알게 된 게 참 감사하다. ---- 식사 후 파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가방을 여시더니 리츠 크래커 두 통을 꺼내 내게 주셨다. 나는 크래커를 안 먹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 통은 받기로 했다. "한 통은 어머니 드세요". 어머니는 내가 돌려드린 나머지 한 통을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잠시 뒤 어머니는 다시 리츠 크래커를 꺼내시고는 "그래도 더 큰 거를 아들한테 줘야지" 하시며 내게 주셨던 크래커통 위에 당신의 크래커통을 겹쳐 놓으신 뒤 길이를 재셨다. "2026.02.05. E" 라는 동일한 사용기일이 찍혀 나온 동일 회사, 동일 종류 크래커였으니 길이가 다를 수는 없었다. 크기가 같다는 걸 확인하신 어머니는 민망하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크기가 같구나" 라고 하시고는 당신의 크래커를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2분 쯤 흘렀을까. "그래도 아들한테 더 큰 걸 줘야지" 하시며 어머니는 다시 당신의 가방에서 당신의 크래커를 꺼내 아들의 크래커와 크기를 재셨다. "아, 크기가 같구나" 어머니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2,3분이 또 흘렀다. "그래도 아들이 더 큰 크래커를 갖고 가야지"........그리고 커피숍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오늘 어머니는 총 네 번 크래커 크기를 재셨다. 나는 한 번도 아까 재셨잖아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 가는 단골 찻집에 가서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한 잔 시키고 아침에 내가 챙겨간 고야 제3권을 꺼내 읽었다. 조용히 고야를 읽고있자니 다시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저자 홋타 요시에가 고야의 <5월 3일>을 일종의 종교화에 빗대 해설하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구글로 그림을 찾아 같이 보면서 읽었다. 찻집에서 제3권을 다 읽었다. (이제 마지막 제4권만 읽으면 된다.) 책 뒷표지에는 헤밍웨이가 고야에 대해 쓴 이런 글이 소개돼 있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처럼 이 글도 단문으로 돼 있다. "그는 검정과 회색을 믿었고, 그 뉘앙스를 믿었으며, 빛과 어둠을 믿었고,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도시들을 믿었다. 그는 시골과 마드리드를 믿었고, 운동을, 자신의 고환을 믿었다. 그림과 동판 부식을 믿었다. 그는 보고,느끼고,만지고,쥐고,냄새 맡고, 먹고, 마시고,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부러뜨리고, 함께 자고, 의심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증오하고,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멸시하고,경탄하고,파괴했던 것을 믿었다. 어떤 화가도 이 모든 것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야는 바로 이것을 시도했다." ----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숨 잤다. 고야 제4권의 1장을 읽었다. 지금은 저녁 7:54. 다음 주 수요일에 잘잘법 녹화가 있는데, 강사가 보내준 녹화 사전 원고를 이제 살펴보려고 한다.           

2025년 5월 1일

두 마리 토끼


 











노동절에 출근한 우리 팀은 오늘도 멋진 팀워크를 발휘하였다. 일과 관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우리 팀. 너무 감사하다 ---- 사람들이 없는 사무실에서 글을 썼고, 5시쯤 퇴근해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와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편의점 도시락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2025년 4월 29일

점심과 저녁













오늘 A와 점심을 먹고 오목공원을 산책했다. 요즘 우리팀이 오공을 산책할 때는 미니멈 오바퀴이다. A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 가슴도 뛰었다. ---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안양천을 산책했다. 아들이 오면 같이 가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캔커피를 다 마셨는데 계속 들고 산책을 하기가 뭐해서 표지판 밑에 숨겨두었다가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다시 주워왔다. 

2025년 4월 27일

떡의 위치



 








오늘 예배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을 불렀는데 참 좋았다. 경쾌한데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사 중에 "갈릴리로 가요", "죄로 상처나고 더러워진 모습 그대로 갈릴리로 가요"가 있었다. 정확한 제목을 몰라 내가 마음대로 붙여본 제목은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천사가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이전에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셔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찬양을 듣기, 찬양을 부르기, 말씀을 듣기, 성찬에 참여하기. 모든 예배 순서를 통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 오늘은 지난 주에 세례를 받은 A가 나와서 세례를 받은 소감을 나누었다. 소박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소감이었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특히, 어머님 장례에 참석해 준 교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를 표할 때 그의 마음과 진정이 느껴져서 감동이 됐다. 또 하나, 내 옆 자리의 나이드신 남자 분이 나이드신 아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 모습도 너무 아름다웠다.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린다는 건 타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서 혼자 푹(?) 쉴 때는 경험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감동들. ----- 주보에 오늘 점심 식사 후 설거지는 '50대'라고 나와 있어서, 그리고 내가 59세라서, 점심을 빨리 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50대 교우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7,8년 전 내가 루터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전 교인이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공동의회 시간에 나는 손을 들고 전 교인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는데, 오! 감동! 바로 채택이 됐다. 2주 전 종려주일 때마다 하는 교회 대청소는 가볍게 "쨌지만"(ㅋㅋ), 내가 제안했던 설거지를 쨀 수는 없는 일이었다 (ㅋㅋㅋ) -----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마음의 교우 A, 그리고 오늘 설교를 한 B 목사와 셋이서 정말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피와 살에서부터 자동청소기까지 정말 다양했다. 나는 전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루터교회 예배 시에 행하는 이런저런 전례들에 대해 궁금한 걸 다 물어봤다. 가톨릭과 루터회의 성호 긋는 방법의 차이,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례 형식도 하나 있었다. 루터회의 성찬식에서 목사가 교인에게 떡을 건넬 때 그 떡을 목사와 교인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주고 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B목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목사가 손을 쭉 뻗어 교인 손에 쥐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해요. 목사와 교인 딱 중간 지점에서 멈추고 거기서 떡을 건네요. 목사도, 교인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주님의 몸을 통해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거죠". 생각해 보니 오늘 떡을 건넨 B 목사, 지난 주에 떡을 건넨 C 목사 모두 그와 나 사이에서 떡을 건네 주었다. A 그리고 B 목사와 헤어져 지하철 역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대화를 들었으면 뭐라고 말하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 생각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다. "이런, 난 그날 밤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줬는데! ㅋㅋㅋ 그런데 지금 말을 듣고 보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애! 진작 알았다면 나도 그날 밤에 중간에서 건넬 걸 그랬네! ㅋㅋㅋ ". 물론 주님은 인간 목사가 아니니 중간에서 건네실 필요 없다. 팔 쭉 뻗어 건네셔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배의 동작과 형식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것이 하나의 전통, 전례가 될 때, 그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작은 동작과 행동 하나를 통해서도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거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사람들 앞에선 성호도 그어본 적이 없는 전례 초보자다. 천천히 전례를 배워가며 전례가 품고 있는 신앙의 신비 속으로 더 들어가보고 싶다. 지하철 안에서 B 목사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카페에서 들은 전례 이야기 넘 흥미진진했습니다! : ) 형식에 관한 전례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참 신비로워요 정말 인간은 몸,형식과 마음,믿음이 서로 깊이 연결된 존재같아요! 다음에도 또 알려주세요! : ) " ----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찬양과 관련된 짧은 글 하나를 첨부한다. 7년 전 쯤 <갈릴리>라는 짧은 글을 하나 블로그에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갈릴리>
오늘 처음 깨달은 사실인데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면서
몹시 화도 내시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무척 어이없어 하시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정말 놀라기도 하시며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답답해 하기도 하셨지만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결코 하지 않으셨던 한 가지 행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님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셔도
결코 경멸하거나 비웃지는 않으셨어요!
책망은 하시되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으시는 주님.
어제 또 죄를 지은 제게
이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자신을 버린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 기다려 주신 주님.
저도 오늘 믿음으로 갈릴리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