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진중권 씨 얘기가 나왔다. 그 이름을 들으니까 옛날 생각이 났다. 30대 중반에 내가 자주 가던 사이트는 <안티 조선>과 <인물과 사상> 이었다. 어느 날 필명으로 인물과 사상 토론방에 남긴 글이다. 30대 중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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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아이디 ‘문인’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쏟아진 그에 대한 비판의 글들도요.
그걸 보면서 제가 왜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권위주의'와 '파시즘'의 극복을 외치고 있지만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은 '폭력적'입니다.
이곳에선 말 그대로
100% 완전하게 비권위주의적이고,
100% 완전하게 진보적이고,
100% 완전하게 비가부장적이지 않으면
갈갈이 찢김을 당합니다.
여긴 일종의 연예계입니다.
다들 스타가 되려고 해요. 스타가 되는 방법은 뭐냐고요?
누군가 본인의 의견을 올렸을때
1.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먼저
2.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더 철저하게
3.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더 가볍게, 즐거워하며
그 글에 존재하는 약점을 들춰내, 글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사람.
일종의 일진회죠. 누가 더 철저하게 '처리'를 하는지.
“나 오늘 권위주의 하나 죽였어(ㅋㅋㅋ)”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죽는 건 어떤 주장일까요, 그 주장을 했던 사람일까요.
그대는 사람은 다치지 않고
권위주의만 베는 방법을 배우셨나요?
우리가 소유한 진보성, 열린 사고, 개방성, 가벼울 수 있는 능력......
그걸 <자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들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서, 옆의 열려있는 친구에게서, 훌륭한 부모에게서.....
그런데 그들이 이런 '선물'들을 우리에게 줄 때
높은 위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땅바닥에 툭 던져주었던가요?
완전함이 이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요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계속해서 배워가야 하는 존재들이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는 요즘 인터넷상의 글쓰기를
스타크래프트라고, 순발력의 글쓰기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글이란 쓰고(나서), 침묵하고(나서), 삶으로 살고,
그리고 다시 쓰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분 말씀이 불가(佛家)에는 이런 경구가 있다고 해요.
“아주 노력하면 '진리'에 이를 수는 있다고,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어리석음'에 이르지는 못한다.”
우리는 찢고, 분해하지만
그러나 그게 전체를 아는 방법은 아니라고. 그럼 놓친다고....
우린 너무 똑똑한 게 아닐까요.
99년 12월 6일
백 영 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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