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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7일

금빛 바람


 



















어제 자기 전에 황동규 시인의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을 읽는데 <벽암록>의 제27칙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왔다. 시인은 먼저 현암사판 번역으로 상기 본문을 소개했는데 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중이 운문을 찾아와 '나뭇잎이 시들어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자 운문이 대답했다.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바람만 가득하지' ". 황 시인은 이어서 자신이 직접 한 다음과 같은 번역을 소개했다. "한 중이 운문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이 말했다. '금빛 바람 속에 몸통을 드러내게 되지'" . ----- 나는 라디오국에서 라디오 다큐를 만들 때 북한산에서 비박(bivouac)을 하는 부부를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두 부부는 산에 올라가 옷을 다 벗고 알몸이 되어 북한산의 바람을 맞으며 풍욕(風浴)을 했다.동행하는 취재자가 있었기에 남편과 부인은 각각 다른, 서로 떨어져 있는 바위 위에 올라 풍욕을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했다. (나도 모든 옷을 벗었다.) 수십 년 전 일이지만 그때 내 몸을 스치고, 간지르고 지나가던 바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서부터였을까. 바람을, 모든 종류의 바람을 좋아하게 된 나. 산들바람에서 폭풍까지, 모든 바람을. 하나 금빛 바람은 처음이다. 나도 맞아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바람이길래, 무성하던 잎 다 떨어지고 몸통과 가지만 남은 나무를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게 하는 거지? 나는 금빛 바람 속에서 몸통을 드러낸 나무가 지금 살짝 설레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까지 든다. 그늘은 더 못 줘도, 컬러의 강렬한 쾌감은 주지 못하지만, 몸통과 가지만으로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나무는 금빛 바람으로부터 지금 들었다. 그 비밀 듣고 싶어 나무 밑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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