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실내화가 닳아서 새 실내화를 사갖고 갔다. (240mm). 지난 주에 크록스를 사다드렸더니 요양보호사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해서 실내화를 다시 샀다. 오늘 어머니는 점심을 잘 드시지 못했다. 그냥 바로 헤어지기가 그래서 투썸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와 커피를 마시는 거, 오래간만이었다.
한때는 매번 어머니와 식사 후에는 함께 카페에 갔다. 식사 하며 한 시간, 차 마시며 한 시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럼 카페는 가지 마세요". 상담사가 가벼운 톤으로 말했다. 상상 못해 본 옵션이었다. 어머니와 식사만 하고 헤어진다? 그건 예의가 아니지. 이게 내 생각에는 모두가 지켜야 하는 상식이었다. 하나, 꾸역꾸역 어머니의 모든 이야기를 식당과 카페에서 들어드리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로 달려갔다. 쉬어야 했다. 정말 쉬어야 했다. 방금 한 여인과 커피를 마셨는데, 살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이제는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 내 현실이 외롭고 안됐고 슬펐다. 그래서 상식을 깨보기로 했다. 내게는 몹시 어려운 시도였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차는 못 마실 거 같아요"라고 처음 말하던 날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죄책감과 수치감에 시달렸다. 계속 용기를 냈다. 한 주 한 주 한 주.... 훨씬 부담이 덜했다. 점심 식사 한 시간 정도는 내 마음이 힘들지 않으면서 최고로 섬길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는 모든 조크와 스윗함으로 여인을 즐겁게 해주는 게 가능했다.
귀여운 아이 하나가 입술로 푸루룩, 푸루룩 소리를 내며 테이블 사이를 걸어다녔다. 귀엽다고 했더니 아이 엄마가, 지금 아이가 동물원에서 본 말 흉내를 내는 거라고 했다. 어머니와 나, 아이와 아이 엄마는 5~6분 즐거운 수다를 즐겼다. 커피를 다 마시고, 요양원에 모시고 가서 사갖고 온 새 실내화를 신겨드렸다. 어머니를 안아드리며 다음 주에 오겠다고 인사드렸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효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나는 내 행동을 효도라는 단어로 묘사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뿐이다. 한때 내가 살의를 느낄만큼 증오했던 한 여인을 나는 매주 찾아와 점심을 함께 먹는다. 어떤 이들은 내 루틴을 듣고 효자네요, 한다. 그들은 내가 주중에는 어머니에게 절대 전화하지 않고, 오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걸 알면 무어라 말할까. 냉혈인이라고 할까. 천하의 불효자라고 할까. 그런 6일간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이 여인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신발을 벗겨드리고 신겨드린다. 손을 잡고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같이 먹으며 멋진 조크로 웃겨드린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화제와 추억들로 여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린다. 여인이 하는 모든 말에 스윗하게 대답한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 안 가면 배터리를 교체해 드린다. 안경 코받침대가 맞지 않으면 안경점에 가서 고쳐드린다. 만날 때, 헤어질 때 따뜻하게 안아드린다. 이런 주중과 금요일, 두 시간대 사이의 괴리 때문에 죄책감 들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게,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최대치다. (주님도 아신다). 아니 어쩌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거 이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실제는 주님만 아신다).
내 삶은 효도로도, 불효로도 설명되지 않을 것 같다. 정확한 단어는 아직 찾지 못했다. 찾는 과정 중에 누군가 내 삶을 그의 시각으로 재단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개의치 않을 수 있게 됐다. 이 사실을 적고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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