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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7일

로버트 레드퍼드 (1936~2025)

 










부끄럽게도 난 참 오랫동안 누군가의 부고를 들을 때 "그는 죽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지"라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 했던 거 같다.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 느낀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내가 처음에 언급한 그런 '안심'과 '우월의식(?)"이라는 틀 안에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생각은 차츰 바뀌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더 낫다거나, 더 나은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것을 나이 많이 들어서야 깨닫다니 부끄럽다). '충만히' 세상을 살고 떠난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읽을 때, 누군가의 부고 기사에서 '사랑과 도전'이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이제 나는 우월의식 대신 부러움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혹은 피조물로서의) 사명을 다 이룬 삶이 몹시 부럽다. 한 사람의 부고 기사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그날 일기보다 더 생명으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는 걸 요즘 느낀다. 평생의 연기와 그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열과 꿈을 선물로 준 로버트 레드퍼드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부럽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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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키드’ 로버트 레드퍼드 별세…향년 89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로 스타덤
‘스팅’ ‘추억’ 등서 활약한 ‘할리우드 전설’
선댄스영화제 창립·환경운동도 펼쳐


미국 할리우드 스타이자 영화감독, 제작자이며 선댄스영화제의 설립자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별세했다. 향년 89. 뉴욕타임스는 16일(현지시각) 레드퍼드가 미국 유타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이날 보도했다. 젊은 시절 가장 미국적인 미남 배우로 사랑받았던 찰스 로버트 레드퍼드 주니어는 193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 야구와 미술 등에 두각을 나타내며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뒤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1960년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1969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평단의 찬사와 흥행 성공까지 거머쥐면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를 열어젖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단숨에 스타 배우로 부상했다. 훗날 그가 설립한 ‘선댄스영화제’는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했던 인물 ‘선댄스 키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스팅’(1973), ‘추억’(1973)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레드퍼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추억’과 ‘코드네임 콘돌’(1975),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등 많은 명작을 함께 만들어낸 시드니 폴락 감독은 평생의 친구이기도 했다. 또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보통 사람들’로 198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브래드 핏이 ‘제2의 로버트 레드퍼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 출세한 ‘흐르는 강물처럼’을 감독, 제작해 큰 호평을 받았다. 2017년에는 제인 폰다와 함께 황혼의 로맨스를 연기한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에 출연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함께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년에 들어서며 레드퍼드는 영화감독과 제작자뿐 아니라 환경보호 운동가로도 활동했다. 1980년에는 신진 영화인을 위해 선댄스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독립영화의 제작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곳에서 그가 창립한 선댄스영화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젊고 영향력 있는 영화제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꿈의 영화제가 되었다. (한겨레 신문) 김은형 선임기자

2025년 9월 13일

나쓰메 소세키를 읽고.

 최근 한 달 사이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5권을 읽었다. 먼저 <도련님>(1906), 이어서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산시로>(1908),<그후>(1909), <문>(1910)을 읽었다. 이어서 <마음>(1914)과 (큰애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 <명암>(1916)을 읽으려 했는데, <마음>만 읽고 멈췄다. 

오래 살다보니, 살면 살 수록, 용기가 절실하다. 용기가 없어서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사람은 아무리 무서워도, 아무리 부끄러워도,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그 사실을 무서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소세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건 인간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용기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의 결과들을 대처함에 있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결과를 직시할 용기, 그 결과의 한계 내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소세키가 그리는 또 다른 주인공의 얘기를 한 번 더 들을 마음과 시간이 내게는 없다. 

<그후>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대목인데, 이상하게 내게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고 느껴졌다.) "다이스케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는 않았다." (P.189,현암사)  

<문>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 건너 앞에 있던 사내가 일어나 갔을 때는 잠시 후 안쪽에서 악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거리가 멀어 소스케의 고막을 심하게 때릴 만큼 세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최대한의 위세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온 개인의 특색을 띄고 있었다. 자기 바로 앞의 사람이 일어났을 때는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는 의식에 압도되어 한층 불안해졌다."(p.240, 현암사) 이 문장 역시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대목을 읽는데 요한계시록의 한 대목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요한계시록 2:17)

2025년 9월 1일

퇴직 6개월 전에 하는 생각

오늘은 9월 1일. 정확하게 퇴직(2026.2.28) 6개월 전이다. 사랑하는 일, 애정하는 가까운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은 통증에 가까운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새벽에 눈을 떴을 때도 그런 통증이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 보고 싶을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고, 그러자 통증이 사라졌다.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나에게는 "내 모든 걸 쏟아부어 본 시간"들이 있다. 내게는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를 주고 받는 동료들"이 있다. 만약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런 관계들이 없었다면 내 재직 기간은 커다란 공허로 다가왔을 것이고, 남은 6개월은 그 공허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며, 퇴직은 정녕 날카로운 비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감사하게도 내 지난 30년은 "채워져"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떠남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퇴직을 앞 둔 이에게는 남은 기간보다 받은 은혜를 돌아보는 게 더 필요하구나.    

"5년이 더 주어진다면 좋겠니?"라는 질문도 내게 도움이 됐다. 아니오,가 내 대답이었다. 나는 나의 재직 기간을 더 완전하게 <보수>하기 위해 시간을 더 요청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는, 즉  피조물이다. 유한한 상태에서 입사했다가 유한한 상태로 퇴직하는 유한한 피조물이다. 5년이 더 내게 주어지더라도 그 5년 때문에 내가 지금의 나보다 완전한 존재가 될 거 같지는 않다. 불완전한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보수될 거 같지도 않다. 어떤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 퇴직을 꿈꾼다면, 그러지 못함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어리석고 건강하지 못한 생각일 거 같다. 늘 그래왔듯이, 나는 아쉬움도 느끼겠지만 '괜찮다'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함께 경험할 것이며, 그분께 또 한 번, 나의 <완벽하지 않은 퇴직 후 계획>을 들려드릴 것이다. 1993년 한 명의 어리숙한 신입사원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그분께서는 2026년, 이번에는 (여전히 어리숙한ㅠㅠ) 한 명의 퇴직자를 또 한 번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것이다.   

남은 6개월이, 한 명의 피조물이 완전해지려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한계까지도 향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2025.9.1. 

신동주 드림


* '내 자신의 결핍을 향유함'이란 말은 도심 속 수도 교회 '신비와 저항'의 박총 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2025.8.18)에 나옵니다.


2025년 8월 27일

<산시로>(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를 읽고.

"하숙집 2층으로 올라가 자기 방에 들어가 앉아 보니 역시 바람소리가 들린다. 산시로는 이러한 바람소리를 들을 때마다 운명이라는 글자를 떠올린다. '윙-'하고 울려 올 적마다 움츠러든다. 자기 스스로도 결코 강한 남자라고는 여기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면, 상경한 이래 자신의 운명은 대개 요지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다소간 화기애애한 우롱을 받는 것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요지로는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다. 앞으로도 이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에게 자기 운명이 쥐어져 있을 것같이 여겨진다. 바람이 계속 불어댄다. 확실히 요지로 이상의 바람이다." (p.210)

소세키의 책을 처음으로 읽고 있다. 먼저 <도련님>(1906)을 읽고 이어서 <산시로>(1908)를 읽었다. 전자에선 24세, 후자에선 23세 남자가 주인공이다. 도련님에선J.D.샐린저 냄새가 났고, 산시로에선 하루키 냄새가 났다. (출생 연도를 따지자면 거꾸로 말해야 맞을 것이다). ---- 산시로의 미숙함. 그것에 끌렸다. 그가 불완전하게 그려졌기에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 같다. 몹시도 미숙하고 불완전했던 20대 초반 내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마음껏 불완전해도 됐던 그 젊음의 시기.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몹시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2025년 8월 17일

ABC 살인사건

 

최근 심한 무기력증 때문에 교회에 못 가다가 오늘 한 달만에 교회에 갔다. 아내의 조언대로 지난 월요일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운동의 효과가 있었다. ---- 교회 가는 길 지하철에서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었다. '도련님'이란 단어의 등장 순간이 절묘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의 첫 등장 순간만큼이나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렸다. --- 예배를 마치고, 준비해간 생일 선물을 00에게 주었다. 점심도 00와 같이 먹었다. 요즘은 "우르르 용병단"이라는 어드벤처 RPG 게임에 빠져있다고 했다. 내게 전략적으로 게임을 운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줬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나도 초5때 이랬을까. ---- 교회 가기 전 유튜브에서 동기 부여에 관한 짧은 쇼츠를 하나 봤다. 의지력에 관한 거였다. (의지력이 약한 나는 의지력에 관한 영상을 자주 본다). 출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의지력이 강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의지력이 강한 게 아니라 그게 그냥 습관이 돼서 그런 거예요. 아침에 의지력을 갖고 이를 닦는 사람이 있나요. 습관적으로 닦는 거지요." 이 지적에 공감이 됐다. 당분간 예배(참석)에 큰 의미 부여 하지 않고 그냥 이를 닦는 거라고 여겨야겠다.

2025년 5월 28일

비자 인터뷰


 











비자 인터뷰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아들과 통화하고 오목공원을 산책하고 편집을 하고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걸었다. 안양천을 걸으면서 로마서 말씀을 묵상했다. 

2025년 5월 25일

검은 용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다. 집에서 지하철 양평역까지 걸어가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공든 탑을 쌓는 게 아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우리가 넘어진다는 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게, 그래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게,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건 바울의 말처럼, 권연경 교수의 지적처럼, 달리기일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 다시 달려가면 된다. 넘어졌다고 다시 출발선까지 돌아가서 다시 달릴 필요가 없다. 이 생각이 내게 격려가 되었다. 아, 다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나를 얼마나 낙심케 해왔던가. 교회에 도착했는데 복도에 불판이 쌓여있었다. 아싸, 어쩌면 오늘 점심 때 고기를 먹는 건가!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 설교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예수님은 묻고 명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수없이 들은 설교였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네 자리'에 꽂혔다. 그 38년된 병자는, 병이 길어지자, 자기 자리에서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누렸을 것이다. 텀블러를 올려놓고, 핸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콘센트를 마련하고, 와이파이 비번을 알아두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니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잊어먹은 채, 쇼츠와 릴스를 보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하루종일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자기 자리를 들고 연못가에 가서 자리를 잡은 뒤, 사건과 변화 없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을 즐겼으리라 믿는다. 내 삶의 자리에서 쇼츠와 릴스와 온갖 오락을 치우고 불편한 자세로,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보겠다. 내 자리에 만족하지 않겠다. ---- 점심은 기대했던대로 삼겹살이었다! 삼겹살, 상추,깻잎,쌈장,오이고추,잘 익은 김치와 뜨거운 밥을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A와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나는 어떤 게임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주로 나의 질문과 A의 답변으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집을 짓는 거지?" "네". "자기 집을 짓는 과정 중에 어떤 고난이 있어? 그러니까 방해물이 존재해?" A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가방에서 마인크래프트 책자를 꺼내 방해자들의 리스트를 보여줬다. 다 영어 이름이라서 기억은 하지 못하는데 여러 종류의 나쁜 놈 캐릭터들이 있었다. 검은 용도 있었다. 설명을 듣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A는 지하에 집을 짓고 있다고 하면서 지하에 집을 지을 때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자기 집을 짓고 그 안에 머물면 정말 안정감이 들겠는데?" "예.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 같은 곳이예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나도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 난생 처음이었다). 지하에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실제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로그인한 후 그 안전한 은신처 - 이곳에는 당연히 책장이 있다! - 안에 있는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캐릭터로 변신해서 하루 10분~15분 정도 보내면 마음이 무척 안정될 거 같다. 거의 큐티를 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특히, 지지상의 하늘에선 검은 용이 날아다닌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위험이 존재해야 은신이 더 달콤한 법이다. "그런데, 캐릭터들끼리 대화도 가능하니?" "예, 가능해요".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기에 "그럼, 게임을 하다가 다른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니?" "예, 있어요" "오, 진짜! 누구랑? "엄마요. 엄마도 게임을 해요". A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완전히 한방 먹었다. "엄마는 아니지, 엄마 말고 ㅋㅋㅋ" 빵 터진 나는 웃고 있는 A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고 그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집에 와서 책을 좀 읽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아름답고 행복했다. 오늘은 특별히 더 그랬다.

2025년 5월 23일

내가 차지 않을 시계


 











내일 정말 몇년 만에 남서울교회 청년부 시절의 동기들을 점심 때 보기로 했기에 오늘 오전 반휴를 내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하루 미리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베트남쌀국수집 사장님은 이제 우리 모자와 친해졌고 또 우리 사정도 어느 정도 아시기에 "아, 다음 주에는 어머님께서 아들을 7일이 아니라 8일만에 보시겠군요"라고 웃으며 조크를 날리셨다. 어머니에게 간식과 믹스 커피와 빳데리를 간 손목 시계를 전해드리고 회사로 왔다. ---- 회사에 와서 권연경 교수 제2강 최종 가편을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잘잘법 커뮤니티에 상담 답변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권교수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 더 '큰 지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아, 역시 신학자는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권교수가 이 강의에서 그려주는 지도. 너무너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 편집을 하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복도에 나가서 받았다. "아들, 우리가 언제 만났지? 어제 만났나?" 오늘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놀라실 거 같아 나는 말을 바꿨다. "어머니, 혹시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들. 지금 내가 찬 이 시계,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장남에게 꼭 물려주고 싶어." 김영삼 대통령 싸인이 들어가 있는 청와대 시계였다.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셨다는 어머니의 기억은 맞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신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은색 시계를 차셨다. "예, 어머니, 다음 주 토요일에 제가 어머니 뵈면 그때 제가 잘 받아서 간직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시계. 시간. 기억. 그에게 맞았던 기억. 대걸레가 부러졌던 시간. ----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길, 안양천에 들려 한 시간 산책을 했다. 

2025년 5월 22일

복된 하루



 












(시로 표현하면)

오늘은 신께서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아주셨다 

내가 됐어요 하는데도
더 담아주시려한다

(산문으로 기록하면)
오늘 오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김영봉 목사님의 강의를 네 편 녹화했다. 네 편 모두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녹화 후에 김목사님, 스탭들과 함께 추어탕을 먹었다. 다들 한 그릇씩을 다 비웠는데 나만 너무 많이 남겨서 조연출들이 놀랬다. 녹화 때 너무 집중을 했는데 그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서 밥이 잘 안 넘어갔다.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움에 가까운 긴장이었다. 적게 먹었기에 속이 편했다. 목사님을 배웅하고 스탭들과 함께 오목공원을 "오바퀴"(다섯바퀴 돌기의 우리팀 은어)했다. ----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편성팀 후배 넷이 내게 와서 오목공원 안에 있는 <오목한 미술관>에서 양예준 개인전 "눈빛으로 전하는 작은 기도" 색연필 그림 전시회를 본 소감을 이야기해 줬다. (며칠 전 나도 이 그림 전시회에 갔었고 큰 감동을 받아 작가에게 짧은 감사의 메일을 보냈었다.) 후배들의 말에 따르면, 양예준 작가의 어머니가 그림을 해설해 주는 과정에 내가 메일로 보낸 감상평을 소개했고, 후배들은 그 감상평을 듣다가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이 나라는 건 알게 됐다고 했다. 후배들이 그 전시회를 즐긴 것이 기뻤고, 내가 보낸 감상의 이메일이 양예준 작가와 그의 어머니가 써 나가는 "스토리"를 조금이나마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몹시 감사했다. - - - 2시반부터 오늘 업로딩 되는 본편 검수 및 섬네일 회의를 했다. 섬네일은 "불안형 크리스천이 진짜 쉬는 법"으로 했고 제목은 "쉬어도 쉬어도 계속 피곤한 당신에게"로 했다. A가 이번 편에는 에필로그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에필로그를 썼다. 1안,2안,3안을 썼는데 3안으로 정해졌다. B가 에필로그를 위해 고른 배경영상과 글씨체가 문장과 너무 잘 어울렸다. --- 퇴근길. 회사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길에 멈춰 서서 서두에 썼던 시를 썼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오늘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다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안양천에 가는 길에 거치는 상가 골목들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산책길 풀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런닝 크루를 제일 많이 만난 날이었다. 한 여섯 팀 정도 본 거 같다. 제일 흥미로웠던 크루는, 뛰어오다가 내 옆에서 멈춰선 크루였는데 "멈출게요"라고 제일 앞에서 뛰던 여성이 말하자 다들 멈춰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가 나와 같아서 한 2분 정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다음에는 뚝섬 근처에서 뛰자는 얘기를 했다. 한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크루. 갑자기 아까 그 여성이 "십 초 전"이라고 말하자 다들 "네" 하며 하던 말을 멈추었고, 정말 십 초 쯤 지나 여성이 "뛸게요"라고 하자 다시 모두들 "네"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목격한 런닝 크루였는데 정말 흥미진진했다. 


2025년 5월 18일

여성용 스킨 로션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매주 일요일 두 교회의 주일예배를 생중계하는데 오늘은 내가 주조 근무 당번이었다. 10시부터 꿈의교회 예배를 생중계하고, 11시부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생중계했다. ---- 진행 당번인 피디들은 9시까지 출근한다. 주조와 부조 상황을 미리 점검해야 해서 그렇다. 9시 반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내 방에 스킨로션이 하나 있는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어머니, 어머니 세수하고 쓰시라고 제가 어제 드린 거예요." "그렇구나. 아들 고마워. 잘 쓸게". --- 생중계 당번은 서너 달에 한 번 돌아오는데 아마 퇴직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게 될 거 같다. 12시에 생중계를 마치고 점심은 오목공원 옆에 있는 셱셱버거에서 먹었다. 너무 좋은 날씨였고 나는 점심을 먹은 뒤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다음 주에 있을 미대사관 비자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무척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는 내 카톡 상태 메시지를 '차근차근'으로 바꿨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를 한글로 발급 받은 뒤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했다.외교부 사이트에서 '증명서 용어 번역 가이드'를 하나 다운 받은 후 참고하면서 증명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완성했더니 뿌듯했고, 이런 때 스스로 내게 주는 선물은 단골 밀크티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찻집에 도착해서 밀크티를 시키고 갖고 간 시집을 읽었다. (나는 요즘 시집 읽는 데 푹 빠져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빠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시집을 읽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나가서 받았다. "예, 어머니". "아들, 누가 내 방에 스킨 로션을 하나 갖다 놨는데 누가 갖다 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