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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7일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문예출판사)를 읽고.

1. 내 경우에는 소설을 읽을 때, 사건에 대한 결정적 묘사도 아닌데, 그저 한 인물에 대한 묘사일 뿐인데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데미안>에서는 교실에 앉아 있는 데미안을 묘사하는 장면이 그랬다. <데미안>의 줄거리는 모두 잊었는데, 그 인물 묘사만큼은 지금도 기억 난다. 40년 전에 읽은 그 대목의 마지막 문장은 분명히 이랬다. "다시 이제 그의 몸에서 가장 생기 없어 보이는 부분은 그의 머리카락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또 다른 장면은 <롤리타>에서 롤리타가 테니스 치는 장면에 대한 긴 묘사. 누군가가 테니스를 치는 그 단순한 행위를 이렇게 절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데 그의 간절한 욕망에 내가 물들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테니스장 씬, 거기서 읽기를 멈췄던 것 같다.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젬과 스카웃 남매가 듀보스 할머니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었다. 


2. 듀보스 할머니가 젬과 스카웃 남매에게 "네 아빠는 네 아빠가 도와주고 있는 쓰레기 같은 깜둥이들보다 나을 게 없어!"라고 말했고, 격분한 젬은 듀보스 할머니 화단의 동백꽃들을 모조리 꺽어버린다.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은 젬은 할머니에게 사과하러 갔는데 할머니가 요청한 것은 놀랍게도: 

"아빠, 할머니께서 책을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오빠가 말했다.   
"책을 읽어달라고?"
"네, 아빠. 학교가 끝난 뒤 오후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와 두 시간 동안 큰 소리로 책을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두 남매는 노인의 집을 찾아갔고, 작가 하퍼 리는 어린 소녀 스카웃의 눈을 빌어 노인의 방과 세면대와 노인의 얼굴과 침 흘리는 입과 노인이 내는 소리를 두 페이지에 걸쳐 묘사한다. 어두운 방에 누워있는 노인. 두려워하면서도 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두 남매.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아마 이런 이유에서였던 거 같다. 두 남매의 아버지를 비난했던 노인. 그 노인에게 분노했던 두 남매. 근데 이 어두운 방 안 세 사람에 대한 작가의 묘사를 읽다 보면 '저 사람이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젬과 스카웃과) '내' 마음에 싹트는 것 같아서.   

두 남매와 아버지의 대화를 조금 더 적는다.

"아빠,아빠가 틀리셨는지도 모르잖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글쎄,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돼."
아빠가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3. 아버지와 두 자녀의 관계가 나는 좋았다. 해도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없는 것을 구분해 주는 아버지. 듣는 자녀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해주는 아버지. 해주는 대답이 있고, 미루는 대답이 있었다. 그런 <지혜>, 그런 <질서> 속에서 <자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런 질서 속에서 자라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원망은 없다.)

4. 등장 인물들과 독자들이 모두 입을 반 쯤 벌리게 되는 p.289~p.292. 스카웃은 총을 든 어른들 앞에서 <횡설수설>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내가 사내 어른 모두를 상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몇 사람은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스카웃이 말을 마치자 정적이 찾아든다. 성인 사내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자, 가세. 자, 여기를 떠나자고". 누군가 외쳤고, 사내들은 떠났다. 

나는 이 "자, 가세. 자,여기를 떠나자고"라는 말을 무척 사랑한다. 내게는 이 말이 "자, 우리 돌아가자고. 자, 우리 원래 자신에게로 돌아가자고"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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