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인 A가 sns에 <아라비아로 간 바울>(벤 위더링턴 3세, 제이슨 마이어스 지음, 오현미 번역, 북오븐)에 대해 언급한 짧은 글을 하나 발견했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부터 밝히면: "회심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까지, 감춰진 시간을 찾아서".
어제 지인 A가 sns에 <아라비아로 간 바울>(벤 위더링턴 3세, 제이슨 마이어스 지음, 오현미 번역, 북오븐)에 대해 언급한 짧은 글을 하나 발견했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부터 밝히면: "회심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까지, 감춰진 시간을 찾아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후배들과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행복했음. 동료 A가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요? 라고 물었는데 내 30년은, 이웃이나 내 스스로가 조금만 원칙을 벗어나도 용납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배움으로써 이웃 그리고 나를 용납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함.
내일은 내가 신입PD 교육을 맡은 날. 회의실을 예약함. 원래 신입 피디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잘잘법 팀원들도 같이 듣는 걸로 정해졌음. --- 오늘 같이 점심을 먹던 편성부의 두 동료도 강의 얘기를 듣더니 참석하고 싶다고 함. --- 또 다른 입사 2년차 후배 두 명도 소식을 듣고는 참석 의사를 밝힘 --- 그래서 총 8명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됐음 : ) 참고로 강의 제목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프로그램 제작 및 기독교 출연자 섭외, 발굴을 하기 위한 PD의 지도". 내가 30년 동안 이 회사에서 피디로 일하며 알게 된 좋은 사람들과 고민했던 주제와 질문들을 전달하려고 한다.
새롭게 섭외한 A 목사님의 네 편의 강의 중 두 번째 편 편집을 마치고, 오늘 업로딩 되는 영상 섬네일을 팀원들과 함께 정한 후 퇴근했다. 오늘도 퇴근길에 단골 카페에 들려 <주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로버타 본디 지음, 비아)를 읽었다. 3세기~6세기 무렵 사막에 들어가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소위 사막의 교부들과 수도사들)의 삶과 신앙을 소개하는 책인데 이상하게 몹시 빠져들어 읽고 있다. 사실 나는 사막의 교부들 금언집들은 이전에 이미 꽤 읽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새롭게 다가온다. 아주 짧은 서문(이 책에선 '들어가며'라는 이름이 붙어있다)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천천히 세 번을 읽었다. 너무 짧은 서문이라 통째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난 건 2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두고 씨름하고 있었지만 말이지요. 다시 저는 제 지성과 마음을 모두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신앙의 형태를 찾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 저는 6세기 마부그의 필록세누스(Philoxenos of Mabbug)가 쓴 설교집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하느님과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흐릿하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저는 최대한 많이 이 전통에 속한 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제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계심을,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있음을 가르쳐주었지요. 그들의 따뜻함, 통찰, 도움은 제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이었고, 제 삶 속의 지속적인 원천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려운 현대 세계에서 이들은 여러분을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 저자 로버타 번디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1941년생이었다. 이름 때문에 난 저자가 남성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었다. 암산이 안 돼 계산기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저자가 이 책 속 인물들을 처음 만난 건('20년 전') 그녀가 26세였을 때였다. 도서관에서 1500년 전 설교문을 '놀란 눈'으로 갈급하게 읽어내려가는 20대의 저자를 상상해 보았다. 어떤 마음이면, 수천 년 돼 돼 바스락거리는 글을 마치 생수를 들이키듯이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란에 이런 글이 보였다. "신학자 패트릭 헨리는 [그녀를] '기억의 마법사', '학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벽을 무너뜨린 학자'로 평가했다." 그녀가 쓴 책 중에는 <고양이 닉>(Nick the Cat)도 있었다. ----- 1장 시작, 2장 사랑, 3장 겸손, 4장 정념,을 다 읽고 지금 5장 기도,를 읽고 있다. 마지막 6장은 '하느님'이다. 사막의 교부들에 따르면 겸손은 " '나'를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차별화된 존재라고 여길 필요가 없음을 뜻합니다 (....)겸손을 익힌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견주어 애써 특별한 존재가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 다른 사람이 어떤 부분에 있어 나보다 무언가를 더 잘한다 해서 괘념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교만은 결국 상처를 남기지만 , 겸손은 두려움을 없앱니다. 우리를 진실로 용감하고 강하게 만드는 것은 겸손입니다". (p.182-183). 그녀 덕분에, 나도 오래 돼 바스락거리는 지혜에 쫑긋 귀기울이고 있다.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아들과 긴 통화를 하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모시고 근처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잘잘법 강연회 잠언 편 자막 작성을 하고 있다 -- 배 고파서 배민 통해 우렁된장찌게 백반을 하나 시켰는데 라이더가 음식을 다른 오피스텔 (같은 호수 앞)에 갖다 놓는 바람에 원하던 시간보다 약 15분 정도 늦게 저녁을 먹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배민 문의전화 담당자와 통화한 건 배민 사용 후 처음이었다 배는 고팠지만 바삐 배달하느라 오피스텔을 착각하는 라이더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기에 내 입에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 강풀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새벽 4시에 작업실에 도착하면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는 페북 카드뉴스 기사를 읽고는 바로 바탕화면으로 삼았다. 내가 지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애굽의 바로 왕이다. (썰렁) 한 단어를 신이 내게 선물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젊음 대신 바로 를 선택할 거 같다. 강풀 작가는 지금 십 년째 자신의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내가 완독한 첫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라고 저자는 말한 적이 있다. 정말 밝고 반짝거린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은 거 같다. 인물을 너무 잘 묘사해서 웃음이 터지곤 했다. (제인 오스틴이 요즘의 나를 봤으면 어떻게 묘사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묘사는, 주인공 가정인 베넷 집안과 가까운 루카스라는 사람에 대해 묘사였다 : "롱본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베넷 집안과 각별히 가까운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왕년에 메리턴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거기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왕에게 소를 올려 기사 작위에 봉해졌다. 이 영예는 그에게 지나치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듯하다. 자신의 사업과 작은 장터 마을에 있던 거처가 싫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이 모두를 떠나 가족과 함께 메리턴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저택으로 옮겨가, 그때부터 그 저택을 루카스 로지라고 명명하고서 그곳에서 자신의 지체를 느긋이 즐기며 일에 매이지 않은 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일에만 전념했다." <오만과 편견>, p.28, 민음사
오늘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갔다 왔다. 어머니께 드릴 1.(아내와 함께 산) 립스틱, 2. 손톱깍기, 3. 어머니가 쓰신 동화책 2권을 갖고 갔다. 보통 외출 허가를 받고 밖에 나가 점심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데, 요즘 독감이 유행해서 오늘은 외출 하지 않고, 파리바케트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요양원 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마셨다. 어머니 노트에 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찍었다. 어머니가 30대 중후반이었을 때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가는 밀크티집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엘리자베스(여주)와 다아시(남주) 사이의 오해가 풀리는 장면을 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나도 좀 당황했다.) 이 소설의 강점은 풍자에 있기에 내내 킥킥 웃으며 읽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도 놀랐다. --- 나는 59세가 되기까지 오만과 편견을 읽으려는 시도를 적어도 세 번은 한 것 같다. 그때마다 두세 페이지 읽고는 더 못 읽었다.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갔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오만과 편견>에 관한 짦은 글을 하나 읽었는데 그 글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오만과 편견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고 지금 완전히 빠져들어 읽고 있다. 그 짧은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들, 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는 오만과 편견을 철학적으로 파헤치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ㅠㅠ 이건 완전히 그냥 연애 소설이야. 오만해 보이는 미남 남주와 그 남자에 대해 편견 가졌던 여주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 이 말이 내 속에 어떤 작용을 불러일으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