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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5일

처음으로 귀를 막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카톡을 확인했는데 좋아하는 지인의 아들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이 와있었다. 사진 속 신랑과 신부가 아름다웠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내 눈에는 신랑도 그렇게 보였다. 35년 전 내 모습도, 당시 50, 60대 분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까.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 간식과 커피, 어머니에게 드릴 수필집을 챙겨 요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만나 함께 근처 연어덮밥 집으로 갔다. 연어덮밥 세트 2개 주문. 이제 말 안 해도 사장님은 밥 양을 조금 줄여주신다. 어머니가 늘 과식을 하셔서 내가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참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나는 사이드로 나온 연어초밥의 밥은 남기고 연어만 벗겨먹었는데, 어머니는 통째로 다 드셨다. 점심을 먹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탐앤탐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내가 사들고 간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맘에 들어하셨다. ---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어하신다. 20년 전부터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시집은 고사하고 아직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으니 아마 시집은 못 내고 돌아가실 것이다. 시집 출간에 대한 강렬한 소원이 있으신 어머니를 위해 지난 주 나는 "어머니, 시라는 게 사실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거라서 어쩌면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부담만 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필은 어떠세요?" 라고 했다. ----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반 전체가 갔던 봄 나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이야기, 50번을 들었을까, 60번을 들었을까. 봄 나들이 중에 초1이었던 7살 어머니가 언덕에 핀 꽃을 꺽어서 야마모토라는 일본 선생에게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어머니 뺨을 쳤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뺨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나는 그동안 뺨을 50번 맞은 것일까, 60번 맞은 것일까. 이상하게 오늘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몰래 손가락으로 내 두 귀를 막고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손을 떼면 여전히 야마모토였다. 그러면 다시 음. --- 야마모토가 끝났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수필집 내시면 책 제목은 뭘로 하실래요? 안도현의 '사람'이 좋았으니까 어머니는 '인간' 어떠세요?"라고 했고 어머니는 웃으셨다. 나는 밀크티를 남겼는데 어머니는 머그컵에 나온 커피를 다 드셨다. 탐앤탐스를 나와 요양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출국일자를 세 번 물으셨다. 아니 네 번 물으셨다. 요양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신발을 갈아 신겨드리고 안아드리고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 요양원 앞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두 개 있다. 6211과 640. 요즘 어깨 통증 때문인지 두 주 가까이 매일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거의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오늘은 밀크티 집에 들리지 않고 집에 가서 좀 자기로 했다. 내가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착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 버스에 올라왔다. 한 자리 좌석들만 있고 둘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앉았던 자리에서 미리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 전에 이들에게 내 자리를 주고 싶었다). 하차 카드를 찍고 출입구 앞에 섰는데 두 젊은 남녀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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