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만나뵈었을 때 들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라,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내 삶의 본문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그분께 말했다. 허세,겉멋,어리석음의 문장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문장으로 본문을 채우고 싶었다. 출근길 횡단보도에 섰는데 오늘이 50대에 경험하는 마지막 "10월의 마지막 밤"(feat. 이용)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50대가 딱 두 달 남았다. 내일은 50대의 마지막 11월 1일이 될 것이다). 회사 앞 건널목에서 우연히 남자 후배 A를 만났고 "나 지금 커피 테이크아웃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 한 잔 사줄게." (A는 이미 출근하며 캔커피를 한 잔 마셨지만 또 마시겠다고 했다). 커피를 들고 회사로 걸어오는데 내 퇴직일을 물어 퇴직일 계산법을 알려주었다. "만60이 되는 생일 있는 달 다음 달 말일까지. 난 생일이 1월이니까 2.28까지"라고 하자 후배는 "마지막 달은 이틀 덜 일하고 한 달 월급 받으시네요"라고 해서 둘이 많이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오전에는 B교수의 영상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녹화 자체가 우리가 기대한 방향대로 나오지 않아 본편 편집을 하면서도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였다). 프롤로그를 정말 살려야 했기에 일단 프롤로그에 넣을 수 있는 부분은 다 모았다. 7분 분량을 모은 후 파일로 만들었다. 네이버 클로바에 넣고 텍스트로 변환해서 프린트 해서 줄치며 읽었다.(프롤로그 만들며 이런 과정을 거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더니 보였다! 찾았다! 그렇게 나온 프롤로그의 클로징 부분이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었다. C가 입시 설명회 참기 후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올리버 색스의 의학 에세이 중 허그와 포옹 부분에 대해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오바퀴를 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팀원들에게 커피를 쐈다. D가 어제 저녁에 참가했던 영화토론 모임 후기를 들려주었다.) 오후에는 E와 쇼츠를 함께 만들었다. E가 이미 만들어놓은 쇼츠의 구성을 함께 보며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섬네일과 글제목을 정하는 일인데 E와 호흡이 잘 맞아 작업이 늘 즐겁다. 오늘 이상하게 내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는지 맘에 드는 섬네일과 글제목이 정말 바로바로 나왔고, 그때마다 E가 찐으로 탄성의 소리를 냈기에 몹시 뿌듯했다. 쇼츠 제작을 마친 후 3층 편집실에 내려와 (E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F교수의 새로운 에피소드 편집을 시작했다. 나는 F교수의 인트로를 참 좋아한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그는 주어진 질문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인트로로 대답을 시작한다. 그의 영상을 들으면 <시야>가 넓어진다. 6시반까지 편집을 하고 4층에 올라가 옷과 책을 챙겼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후배 G가 편집실에서 혼자 편집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얘기였다. 인트로와 클로징 원고를 봤는데, 클로징의 마지막 멘트에서 빵 터져 큰 소리로 웃었다. G도 웃었다.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회사를 나와 밀크티집을 향해 걸었다. 오목교 횡단 보도 앞에 섰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오늘 무언가를 "만들어서" 참 행복했다. 슬퍼함, 아쉬워함은 시간을 소중히 여김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음. 시간을 진정하게 소중히 여김은 옆에서 볼 때 유쾌해 보이거나, 가벼워 보이거나, 수다스러워 보일 수 있음. 밀크티집에선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이다. --- 집에 와서 김창옥 쇼를 한 편 봤다. (내가 음악을 듣듯이 보는 영상이다. 매일 본다. 본 것도 또 본다.) 인스타에 뜬 반 고흐의 문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문장이었다.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예술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다". ---- 오늘 나는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행복을 누렸다. 근데, 고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오늘 정말 행복했던 건, 내가 그 소중한 일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해서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신뢰를 주고 받으며 해서 그랬다. 작은 목표가 생겼다. 두 달 남은 나의 50대라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친절,격려,(썰렁한) 조크를 시도하리라. 아쉬워하는 대신 조금은 수다스러워지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나의 50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랑 속에 있다면, 누구의 시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만이, 시간의 두려움을 내쫓으리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