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8일
인물과 사상
2025년 1월 11일
전념
올해 내가 완독한 첫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라고 저자는 말한 적이 있다. 정말 밝고 반짝거린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은 거 같다. 인물을 너무 잘 묘사해서 웃음이 터지곤 했다. (제인 오스틴이 요즘의 나를 봤으면 어떻게 묘사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묘사는, 주인공 가정인 베넷 집안과 가까운 루카스라는 사람에 대해 묘사였다 : "롱본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베넷 집안과 각별히 가까운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왕년에 메리턴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거기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왕에게 소를 올려 기사 작위에 봉해졌다. 이 영예는 그에게 지나치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듯하다. 자신의 사업과 작은 장터 마을에 있던 거처가 싫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이 모두를 떠나 가족과 함께 메리턴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저택으로 옮겨가, 그때부터 그 저택을 루카스 로지라고 명명하고서 그곳에서 자신의 지체를 느긋이 즐기며 일에 매이지 않은 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일에만 전념했다." <오만과 편견>, p.28, 민음사
2025년 1월 5일
오만과 편견
오늘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갔다 왔다. 어머니께 드릴 1.(아내와 함께 산) 립스틱, 2. 손톱깍기, 3. 어머니가 쓰신 동화책 2권을 갖고 갔다. 보통 외출 허가를 받고 밖에 나가 점심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데, 요즘 독감이 유행해서 오늘은 외출 하지 않고, 파리바케트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요양원 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마셨다. 어머니 노트에 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찍었다. 어머니가 30대 중후반이었을 때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가는 밀크티집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엘리자베스(여주)와 다아시(남주) 사이의 오해가 풀리는 장면을 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나도 좀 당황했다.) 이 소설의 강점은 풍자에 있기에 내내 킥킥 웃으며 읽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도 놀랐다. --- 나는 59세가 되기까지 오만과 편견을 읽으려는 시도를 적어도 세 번은 한 것 같다. 그때마다 두세 페이지 읽고는 더 못 읽었다.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갔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오만과 편견>에 관한 짦은 글을 하나 읽었는데 그 글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오만과 편견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고 지금 완전히 빠져들어 읽고 있다. 그 짧은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들, 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는 오만과 편견을 철학적으로 파헤치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ㅠㅠ 이건 완전히 그냥 연애 소설이야. 오만해 보이는 미남 남주와 그 남자에 대해 편견 가졌던 여주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 이 말이 내 속에 어떤 작용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2024년 10월 17일
프롤로그 콘티
2024년 10월 16일
투표하던 날
오늘 아침에 메시지 성경을 읽었다. 아침으로 먹을 누룽지탕에 부을 물을 끓이며 메시지 성경의 시편을 한 장씩 읽는다. 회사 가는 길에 투표소에 들려 투표를 했다. ---- 오늘 오전에는 우리 잘잘법팀과 A출판사의 B대표, C팀장, D팀장이 함께 하는 미팅이 있었다. 안건에 대해 논의를 오래 하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 점심 식사 시간에는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B대표가 내게, "악수를 하면서 목소리를 듣자 무장해제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맞다. 내 첫인상이 좀 무섭다는 말 종종 듣는다 : ) --- A출판사 팀과 헤어진 뒤 후배 E와 함께 공원을 좀 걸었다. 오늘 오전 회의를 하면서도 우리 둘이 정말 잘 맞는 선후배, 팀동료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시는 신께 감사드린다. --- 오늘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직원 F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는데 대화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가 직원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걸 몇 번 봤기에 "오늘도 아침 예배 참석했었나요?"라고 물었다. --- 00편 편집을 마쳤다. 000편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000편 자막 최종 검수를 했다. -- 퇴근길에 헬스장에 들렸다. 내가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이런 동작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집에 와서 샐러드와 강된장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김창옥쇼를 잠시 보다가 분리수거를 하고, 동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산 후 동네 산책을 했다. 이상하게 요즘 전봇대, 전깃줄로 어지러운 골목길 풍경을 보면 너무 정답게 느껴진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달이 떴다. 요즘 다시 서가에서 꺼내 밤마다 아무 데나 펴서 읽고 있는 일본 수필집 <도연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아키모토(顯基) 츄나곤(中納言)이 "유배지에서 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천상의 달을 바라보고 싶구나"라고 한 것 또한 과연 이해가 간다>> 혀로는 아아의 산미를 느끼고, 눈으로는 전깃줄 근처의 달을 평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2024년 3월 10일
부부 이야기
나는 부부가 함께 맞는 우승 소식을 들으면 괜히 눈물이 난다. 이전에 이런 짧은 이야기를 지은 적도 있다.
1. 이세돌과 겨루는 알파고를 개발한 건 한국의 한 영세한 스타트업이었다. 올해 41세의 민기에게 알파고는 마지막 기회였다. 민기는 7년 전 연주와 결혼 했고 5살 된 딸이 있었다. 전세를 살고,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조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지인의 소개로 이세돌을 만날 수 있었다.기적 같은 일이었다. 한 판이라도 이겨야만 했다. 알파고는, 마지막 기회였다.
2. 시합이 시작됐다. 후배 동료가 불러주는 알파고의 착점이 부착한 리시버를 통해 민기의 귀에 들려왔다. 다섯 수까지는 이상이 없었다. 그때였다. 후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기 선배, 작동을 안 해요. 알파고가 작동을 안 해요".
3. 바둑알을 쥔 민기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이세돌이 의아하다는 듯 민기를 바라봤다.
4. 할아버지가 깍아주시던 참외, 할아버지와 두던 오목, 바둑 둘 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두려워 하는 곳으로 가야한다, 민기아. 두려운 곳으로 가서 집을 만들어야 해 ". 바둑알을 쥔 민기의 손이 천천히 좌변 중앙 쪽으로 향했다.
5. 그날 언론은 알파고의 1승을 대서특필했다. 컴퓨터 본체가 있는 방에서 아내가 후배와 함께 걸어나왔다.여자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여보......." 여자는 남편의 목을 끌어 안았다. 두 부부 옆으로 이세돌이 지나갔다.
(민망하지만 이런 부부 등장 신파 스토리 좋아함 -.- )
2024년 3월 9일
『제일신학(First Theology』(케빈 밴후저 지음, IVP)의 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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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J.R.R. 톨킨 지음, 씨앗을뿌리는사람 역간)의 앞 부분에는 매우 시사적인 대화가 나온다. 그 장면은 간달프(Gandalf)가 빌보 배긴스(Bilbo Baggins)를 처음으로 방문하는 장면이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빌보가 말했다. (...) "그게 뭔 뜻으로 하는 말이오?"라고 그[간달프]가 물었다. "내게 좋은 아침을 원한다는 뜻이오? 아니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좋은 아침이라는 뜻이오? 아니면 당신이 오늘 아침을 좋다고 느낀다는 뜻이오? 아니면 아침은 좋은 것이라는 뜻이오?" " 그것들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빌보가 말했다. "더구나 바깥으로 나가서 담배 파이프를 물고서 담배를 피우기에는 더더욱 좋은 아침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가 빌보는 매우 다른 발화수반적인 의도를 가지고 똑같은 발화행위를 사용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어떠한 모험도 원치 않아요, 감사합니다." " 당신은 참 여러가지로 좋은 아침이란 말을 사용하는구려!" 간달프가 말했다. "지금은 내가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내가 떠나야만 좋은 아침이 되겠구먼." (p.262)
2023년 11월 17일
거리감
얼마 전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모기영)의 박일아 프로그래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개막식 때 무대 앞에서 이 영화제에 대한 생각을 짧게 말해줄 수 있나요? 목사, 디자이너, 피디 이렇게 세 분을 모시려고 해요."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사람 들 앞에 서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 다음 날 답신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서 참가하면 나름 영화제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사람당 4분 정도라니, 내가 살아오며 했던 고민들을 정리하면 그 정도 말할 분량은 충분히 될 거 같았다. 그날 밤 문자를 보냈다. "생각해 봤습니다. 해보겠습니다"
개막식 행사는 7시였다. 행사장으로 가는데, 마음에 드는 완벽한 원고를 써놓은 나는 초조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패널로 앞에 서지 못했다. 홍대입구는 수능으로 버스가 막혔고, 롯데 시네마를 못 찾아 두 번이나 다른 영화관으로 뛰어들어가 그 안에서 헤맸다. 그렇게 나 없이 사전 행사는 끝났다.
1.자기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겠습니까?
= 93년에 CBS에 입사해서 올해로 30년째 피디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십년은 라디오 피디로, 그 다음 20년은 TV 피디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낸시랭의 신학펀치>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모기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돼 기쁘고 감사합니다.
2. 어떤 입장에서 <모기영>을 지지하는지 그 이유, 그리고 <모기영>을 지지하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젊은 시절 제 '삶의 바탕화면'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어요. 바탕화면에 폴더가 딱 2개 밖에 없었어요. 폴더(1): 기독교적인 것. 폴더(2): 비기독교적인 것. 세상이 그렇게 두 개의 폴더로 깔끔하게 나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확신 속에서 각각의 폴더를 채워나갔지요.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제 삶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의 기독교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비기독교 폴더 안에 넣었던 것들 중에도 "그분 보시기에 좋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저에게 <비기독교 영화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함께 고민하겠다는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와의 만남은 소중합니다. 제게 <모기영>이란, 사람들의 삶이 쪼그라들지 않고 반대로 확장되도록 격려하는 운동이어요. 제가 후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올해의 영화제 주제는 '거리감'입니다. 주제를 듣고 떠오르는 관계, 혹은 거리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자기만의 해석을 들려주세요.
= 한 신문기사에서 이번 제 5회 영화제를 놓고 "우리 사이의 거리, 틈을 메우기 위한 ‘모두의 영화축제’ "라고 쓴 것을 봤어요. 저는 반대로 우리 사이의 <거리와 틈을 벌리기 위한> 영화제이기도 하다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우리 중에는 거리가 멀어져서 갈등하고 힘든 사람도 있지만, 너무 붙어있기에, 좀 떨어지고 싶은데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거리를 두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아요. '거리감'을 주제로 잡은 이번 5회 영화제에, 절박하게 거리를 벌리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에게 맞는 적정 거리를 찾기 위해 시행착오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간신히 찾은 영화관 관객석 제일 앞 줄 빈 자리에 앉았다. 영화제 장다나 프로그래머가 개막작에 대한 소개를 했다. "누군가 저희 모기영 개막작을 보면 고구마 먹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진다고 말 하는 걸 들은 적 있어요 ^^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거에요.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고구마 100개의 이번 개막작으로 고구마 1000개의 우리 사회 현실을 견디고 살아갈 위로와 힘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개막작은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이었다.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마음이 참 편했다. 이런 평안함은 정말 오래간만에 경험했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할 때는 끝까지 보는 게 별로 없다. 지루함의 낌새가 조금만 보여도 그 즉시 다른 걸 선택한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관에선 내 앞에 하나만 있고,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런 한계와 구속이 실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 것인지, 오늘 절감했다. 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넘 많은 것을 얻었다. 놀랍게도 개막작에는 거리를 좁히려는 이야기와 거리를 두려는 이야기가 공존했다. 내게는 최고의 영화였다. 불이 켜질 때 난 부끄러워하지 않고 박수를 쳤다. 맞다. 이 말도 해야지. 고구마 절대 아니었다.
집으로 오늘 지하철 속에서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내가 오늘 뭘 놓쳤던가?
오늘이란 시간은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갔지만 왜 나는 무언가 놓쳤다는 느낌보다는, 무언가로 꽉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