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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8일

인물과 사상





















얼마 전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진중권 씨 얘기가 나왔다. 그 이름을 들으니까 옛날 생각이 났다. 30대 중반에 내가 자주 가던 사이트는 <안티 조선>과 <인물과 사상> 이었다. 어느 날 필명으로 인물과 사상 토론방에 남긴 글이다. 30대 중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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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얼마전 이 게시판에서
아이디 ‘문인’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쏟아진 그에 대한 비판의 글들도요.
그걸 보면서 제가 왜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권위주의'와 '파시즘'의 극복을 외치고 있지만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은 '폭력적'입니다.
이곳에선 말 그대로
100% 완전하게 비권위주의적이고,
100% 완전하게 진보적이고,
100% 완전하게 비가부장적이지 않으면
갈갈이 찢김을 당합니다.
여긴 일종의 연예계입니다.
다들 스타가 되려고 해요. 스타가 되는 방법은 뭐냐고요?
누군가 본인의 의견을 올렸을때
1.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먼저
2.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더 철저하게
3.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더 가볍게, 즐거워하며
그 글에 존재하는 약점을 들춰내, 글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사람.
일종의 일진회죠. 누가 더 철저하게 '처리'를 하는지.
“나 오늘 권위주의 하나 죽였어(ㅋㅋㅋ)”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죽는 건 어떤 주장일까요, 그 주장을 했던 사람일까요.
그대는 사람은 다치지 않고
권위주의만 베는 방법을 배우셨나요?
우리가 소유한 진보성, 열린 사고, 개방성, 가벼울 수 있는 능력......
그걸 <자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들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서, 옆의 열려있는 친구에게서, 훌륭한 부모에게서.....
그런데 그들이 이런 '선물'들을 우리에게 줄 때
높은 위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땅바닥에 툭 던져주었던가요?
완전함이 이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요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계속해서 배워가야 하는 존재들이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는 요즘 인터넷상의 글쓰기를
스타크래프트라고, 순발력의 글쓰기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글이란 쓰고(나서), 침묵하고(나서), 삶으로 살고,
그리고 다시 쓰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분 말씀이 불가(佛家)에는 이런 경구가 있다고 해요.
“아주 노력하면 '진리'에 이를 수는 있다고,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어리석음'에 이르지는 못한다.”
우리는 찢고, 분해하지만
그러나 그게 전체를 아는 방법은 아니라고. 그럼 놓친다고....
우린 너무 똑똑한 게 아닐까요.
99년 12월 6일
백 영 주 드림

2025년 1월 11일

전념














올해 내가 완독한 첫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라고 저자는 말한 적이 있다. 정말 밝고 반짝거린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은 거 같다. 인물을 너무 잘 묘사해서 웃음이 터지곤 했다. (제인 오스틴이 요즘의 나를 봤으면 어떻게 묘사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묘사는, 주인공 가정인 베넷 집안과 가까운 루카스라는 사람에 대해 묘사였다 : "롱본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베넷 집안과 각별히 가까운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왕년에 메리턴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거기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왕에게 소를 올려 기사 작위에 봉해졌다. 이 영예는 그에게 지나치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듯하다. 자신의 사업과 작은 장터 마을에 있던 거처가 싫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이 모두를 떠나 가족과 함께 메리턴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저택으로 옮겨가, 그때부터 그 저택을 루카스 로지라고 명명하고서 그곳에서 자신의 지체를 느긋이 즐기며 일에 매이지 않은 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일에만 전념했다." <오만과 편견>, p.28, 민음사 


#지나치게깊은감명 #예의바르게구는일 #전념

2025년 1월 5일

오만과 편견

 














오늘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갔다 왔다. 어머니께 드릴 1.(아내와 함께 산) 립스틱, 2. 손톱깍기, 3. 어머니가 쓰신 동화책 2권을 갖고 갔다. 보통 외출 허가를 받고 밖에 나가 점심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데, 요즘 독감이 유행해서 오늘은 외출 하지 않고, 파리바케트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요양원 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마셨다. 어머니 노트에 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찍었다. 어머니가 30대 중후반이었을 때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가는 밀크티집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엘리자베스(여주)와 다아시(남주) 사이의 오해가 풀리는 장면을 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나도 좀 당황했다.) 이 소설의 강점은 풍자에 있기에 내내 킥킥 웃으며 읽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도 놀랐다. --- 나는 59세가 되기까지 오만과 편견을 읽으려는 시도를 적어도 세 번은 한 것 같다. 그때마다 두세 페이지 읽고는 더 못 읽었다.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갔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오만과 편견>에 관한 짦은 글을 하나 읽었는데 그 글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오만과 편견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고 지금 완전히 빠져들어 읽고 있다. 그 짧은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들, 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는 오만과 편견을 철학적으로 파헤치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ㅠㅠ 이건 완전히 그냥 연애 소설이야. 오만해 보이는 미남 남주와 그 남자에 대해 편견 가졌던 여주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 이 말이 내 속에 어떤 작용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2024년 10월 17일

프롤로그 콘티

오전 내내 김기석 목사님의 인생책 시리즈를 위한 프롤로그 콘티를 짰다. 오래간만에 코믹한 구성을 해봤다. 내 경우에 영상 콘티를 짜고 편집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음악이다. 음악이 정해져야 그 리듬에 맞는 콘티,편집이 나온다. 이번에는 맘에 드는 음악을 찾았다. 낮에는 잘잘법에 삽화를 그려주시는 A작가와 점심을 먹고 차를 함께 마셨다. 순수함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오후에 콘티를 완성해서 팀원들과 함께 보고 수정을 했다. 후반 작업은 B가 하게 된다. 자막 검수를 했다. 에필로그를 정했다. 퇴근을 하고 운동을 갔다. 건강하고 풍성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 아침에는 내가 자주하는 기도를 드렸다. "오늘 하루도 익숙한 일, 익숙하지 않은 일을 통해, 제가 만나는 편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과 처음 만나는 사람을 통해 성장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4년 10월 16일

투표하던 날

오늘 아침에 메시지 성경을 읽었다. 아침으로 먹을 누룽지탕에 부을 물을 끓이며 메시지 성경의 시편을 한 장씩 읽는다. 회사 가는 길에 투표소에 들려 투표를 했다. ---- 오늘 오전에는 우리 잘잘법팀과 A출판사의 B대표, C팀장, D팀장이 함께 하는 미팅이 있었다. 안건에 대해 논의를 오래 하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 점심 식사 시간에는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B대표가 내게, "악수를 하면서 목소리를 듣자 무장해제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맞다. 내 첫인상이 좀 무섭다는 말 종종 듣는다 : ) --- A출판사 팀과 헤어진 뒤 후배 E와 함께 공원을 좀 걸었다. 오늘 오전 회의를 하면서도 우리 둘이 정말 잘 맞는 선후배, 팀동료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시는 신께 감사드린다. --- 오늘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직원 F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는데 대화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가 직원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걸 몇 번 봤기에 "오늘도 아침 예배 참석했었나요?"라고 물었다. --- 00편 편집을 마쳤다. 000편 프롤로그를 만들었다. 000편 자막 최종 검수를 했다. -- 퇴근길에 헬스장에 들렸다. 내가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이런 동작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집에 와서 샐러드와 강된장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김창옥쇼를 잠시 보다가 분리수거를 하고, 동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산 후 동네 산책을 했다. 이상하게 요즘 전봇대, 전깃줄로 어지러운 골목길 풍경을 보면 너무 정답게 느껴진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달이 떴다. 요즘 다시 서가에서 꺼내 밤마다 아무 데나 펴서 읽고 있는 일본 수필집 <도연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아키모토(顯基) 츄나곤(中納言)이 "유배지에서 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천상의 달을 바라보고 싶구나"라고 한 것 또한 과연 이해가 간다>> 혀로는 아아의 산미를 느끼고, 눈으로는 전깃줄 근처의 달을 평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2024년 3월 10일

부부 이야기

"생활고에 택시와 버스를 몰며 선수생활을 유지했던 무라트 나지 초클루(하나은행). 초클루는 이날 1~2세트를 빼앗겼으나, 불굴의 투혼으로 3~6세트를 내리 따내면서 마지막에 웃었다. 영원한 서포터인 아내와 함께해 더 기뻤다. 올 시즌 데뷔해 첫 트로피를 거머쥔 초클루는 우승상금 1억원도 챙겼다. " (한겨레신문, 2024.3.4.에서 발췌)

나는 부부가 함께 맞는 우승 소식을 들으면 괜히 눈물이 난다. 이전에 이런 짧은 이야기를 지은 적도 있다.

1. 이세돌과 겨루는 알파고를 개발한 건 한국의 한 영세한 스타트업이었다. 올해 41세의 민기에게 알파고는 마지막 기회였다. 민기는 7년 전 연주와 결혼 했고 5살 된 딸이 있었다. 전세를 살고,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조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지인의 소개로 이세돌을 만날 수 있었다.기적 같은 일이었다. 한 판이라도 이겨야만 했다. 알파고는, 마지막 기회였다.

2. 시합이 시작됐다. 후배 동료가 불러주는 알파고의 착점이 부착한 리시버를 통해 민기의 귀에 들려왔다. 다섯 수까지는 이상이 없었다. 그때였다. 후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기 선배, 작동을 안 해요. 알파고가 작동을 안 해요".

3. 바둑알을 쥔 민기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이세돌이 의아하다는 듯 민기를 바라봤다.

4. 할아버지가 깍아주시던 참외, 할아버지와 두던 오목, 바둑 둘 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두려워 하는 곳으로 가야한다, 민기아. 두려운 곳으로 가서 집을 만들어야 해 ". 바둑알을 쥔 민기의 손이 천천히 좌변 중앙 쪽으로 향했다.

5. 그날 언론은 알파고의 1승을 대서특필했다. 컴퓨터 본체가 있는 방에서 아내가 후배와 함께 걸어나왔다.여자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여보......." 여자는 남편의 목을 끌어 안았다. 두 부부 옆으로 이세돌이 지나갔다.

(민망하지만 이런 부부 등장 신파 스토리 좋아함 -.- )

2024년 3월 9일

『제일신학(First Theology』(케빈 밴후저 지음, IVP)의 제6장

『제일신학(First Theology』(케빈 밴후저 지음, IVP)의 제6장은 언어와 관계된 화행론(speech act theory)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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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J.R.R. 톨킨 지음, 씨앗을뿌리는사람 역간)의 앞 부분에는 매우 시사적인 대화가 나온다. 그 장면은 간달프(Gandalf)가 빌보 배긴스(Bilbo Baggins)를 처음으로 방문하는 장면이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빌보가 말했다. (...) "그게 뭔 뜻으로 하는 말이오?"라고 그[간달프]가 물었다. "내게 좋은 아침을 원한다는 뜻이오? 아니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좋은 아침이라는 뜻이오? 아니면 당신이 오늘 아침을 좋다고 느낀다는 뜻이오? 아니면 아침은 좋은 것이라는 뜻이오?" " 그것들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빌보가 말했다. "더구나 바깥으로 나가서 담배 파이프를 물고서 담배를 피우기에는 더더욱 좋은 아침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가 빌보는 매우 다른 발화수반적인 의도를 가지고 똑같은 발화행위를 사용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어떠한 모험도 원치 않아요, 감사합니다." " 당신은 참 여러가지로 좋은 아침이란 말을 사용하는구려!" 간달프가 말했다. "지금은 내가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내가 떠나야만 좋은 아침이 되겠구먼." (p.262)

2023년 11월 17일

거리감

 













얼마 전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모기영)의 박일아 프로그래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개막식 때 무대 앞에서 이 영화제에 대한 생각을 짧게 말해줄 수 있나요? 목사, 디자이너, 피디 이렇게 세 분을 모시려고 해요."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사람 들 앞에 서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 다음 날 답신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서 참가하면 나름 영화제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사람당 4분 정도라니, 내가 살아오며 했던 고민들을 정리하면 그 정도 말할 분량은 충분히 될 거 같았다. 그날 밤 문자를 보냈다. "생각해 봤습니다. 해보겠습니다"

개막식 행사는 7시였다. 행사장으로 가는데, 마음에 드는 완벽한 원고를 써놓은 나는 초조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패널로 앞에 서지 못했다. 홍대입구는 수능으로 버스가 막혔고, 롯데 시네마를 못 찾아 두 번이나 다른 영화관으로 뛰어들어가 그 안에서 헤맸다. 그렇게 나 없이 사전 행사는 끝났다.

1.자기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겠습니까?

= 93년에 CBS에 입사해서 올해로 30년째 피디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십년은 라디오 피디로, 그 다음 20년은 TV 피디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낸시랭의 신학펀치>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모기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돼 기쁘고 감사합니다.

2. 어떤 입장에서 <모기영>을 지지하는지 그 이유, 그리고 <모기영>을 지지하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젊은 시절 제 '삶의 바탕화면'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어요. 바탕화면에 폴더가 딱 2개 밖에 없었어요. 폴더(1): 기독교적인 것. 폴더(2): 비기독교적인 것. 세상이 그렇게 두 개의 폴더로 깔끔하게 나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확신 속에서 각각의 폴더를 채워나갔지요.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제 삶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의 기독교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비기독교 폴더 안에 넣었던 것들 중에도 "그분 보시기에 좋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저에게 <비기독교 영화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함께 고민하겠다는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와의 만남은 소중합니다. 제게 <모기영>이란, 사람들의 삶이 쪼그라들지 않고 반대로 확장되도록 격려하는 운동이어요. 제가 후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올해의 영화제 주제는 '거리감'입니다. 주제를 듣고 떠오르는 관계, 혹은 거리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자기만의 해석을 들려주세요.

= 한 신문기사에서 이번 제 5회 영화제를 놓고 "우리 사이의 거리, 틈을 메우기 위한 ‘모두의 영화축제’ "라고 쓴 것을 봤어요. 저는 반대로 우리 사이의 <거리와 틈을 벌리기 위한> 영화제이기도 하다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우리 중에는 거리가 멀어져서 갈등하고 힘든 사람도 있지만, 너무 붙어있기에, 좀 떨어지고 싶은데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거리를 두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아요. '거리감'을 주제로 잡은 이번 5회 영화제에, 절박하게 거리를 벌리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에게 맞는 적정 거리를 찾기 위해 시행착오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간신히 찾은 영화관 관객석 제일 앞 줄 빈 자리에 앉았다. 영화제 장다나 프로그래머가 개막작에 대한 소개를 했다. "누군가 저희 모기영 개막작을 보면 고구마 먹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진다고 말 하는 걸 들은 적 있어요 ^^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거에요.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고구마 100개의 이번 개막작으로 고구마 1000개의 우리 사회 현실을 견디고 살아갈 위로와 힘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개막작은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이었다.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마음이 참 편했다. 이런 평안함은 정말 오래간만에 경험했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할 때는 끝까지 보는 게 별로 없다. 지루함의 낌새가 조금만 보여도 그 즉시 다른 걸 선택한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관에선 내 앞에 하나만 있고,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런 한계와 구속이 실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 것인지, 오늘 절감했다. 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넘 많은 것을 얻었다. 놀랍게도 개막작에는 거리를 좁히려는 이야기와 거리를 두려는 이야기가 공존했다. 내게는 최고의 영화였다. 불이 켜질 때 난 부끄러워하지 않고 박수를 쳤다. 맞다. 이 말도 해야지. 고구마 절대 아니었다.

집으로 오늘 지하철 속에서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내가 오늘 뭘 놓쳤던가?

오늘이란 시간은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갔지만 왜 나는 무언가 놓쳤다는 느낌보다는, 무언가로 꽉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the end-

2022년 5월 30일

아키모토의 달

(*19금적 표현 등장)  

1. <도연초(徒然草)>라고, 14세기에 쓰여진 일본 수필집을 한 권 읽었다. 지은이는 겐코 법사(法師)인데, 교토의 요시다 지방에 살았다고 해서 '요시다 겐코'라고 불린다.(참고로, 법사는 설법하는 승려). 총 244개의 글로 구성된 이 수필집은, 각 글의 길이가 들쭉날쭉. 어떤 글은 단 한 줄, 단 하나의 문장으로 돼 있고, 어떤 것은 서너 쪽에 이른다. 내가 중학교 때 배운 에세이에 대한 정의 딱 그대로,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쓴 글의 전형이다. (나 또한) 순서를 무시하고 이곳저곳 기분 내키는대로  읽다가 31번 글을 읽게 됐다. 14세기의 운치가 이런 것이라고나 할까, 자기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짧기에 전문을 소개하면: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내린 아침에 어떤 사람에게 용무가 있어 편지를 전하는데 눈 내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 아침의 눈을 어떻게 보셨는지 같은 한 마디 인사도 없는, 멋을 모르는 사람의 말씀은 유감스럽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실망스럽군요"라는 답장이 왔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고인과의 추억인지라 이런 작은 일조차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도연초>, 31번 글)  

 2. 그렇다고 내가 (오늘 쓰고 있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31번 때문은 아니다. 내가 <그 센텐스>를 만난 건 며칠 뒤였다. 우연히 펼친 5번 글은 두 문장으로 된 지극히 짧은 글이었는데 나를 사로잡은 건 <두 번째 센텐스>였다. (재미 삼아 밝히자면, 첫 번째 센텐스는 지금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고대 조정의 관직인 중납언(中納言, 일본어로는 츄나곤 혹은 주나곤)으로 봉직 중이던 아키모토라는 사람이 한 말을, 저자 겐코가 인용하고 있는데 채혜숙 번역본(바다출판사,2001)에는 이렇게 나온다 :   아키모토(顯基) 츄나곤(中納言)이 "유배지에서 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천상의 달을 바라보고 싶구나"라고 한 것 또한 과연 이해가 간다.  

3. 좋은 것들은 대개 <가까이> 있는 것들인데, 여기에는 매일 뜨는 달, 시원한 바람, 퇴근 후 집에서 보는 아내, 스마트폰 대신 집어 든 스케치북 등이 포함된다. 종종 우리는 이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서도 여전히 <빈곤>하다고 느낀다. 뉴스에 너무 자주 등장해 이제는 하나의 관용구처럼 느껴지는 <A교회의 B목사가 불륜으로 인해 해임되었다> 같은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부적절한 관계 전에 <부적절한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부적절한 생각은 포기하고 무시하기엔 너무나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을 것이고 반면 <적절한 생각들>은, 다시 말해 좋은 보통의 것들은, 지루해 보이거나 자신의 즐거움에 짐과 손해와 방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것이 B와 내가 종종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ㅠㅠ) 그런데 아키모토는 지금 별다른 자극주지 않는 달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그 시선이 말할 수 없이 부럽다.  




1) <도연초(徒然草)>라는 책 제목 중 앞 두 자 도연(徒然)은 이 책 서문에 등장하는 '하는 일 없이 무료하고 쓸쓸함'이란 구절에서 따왔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것'을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고 하듯이 도(徒)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이란 뜻이 있고, 여기에 '그러함,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연(然)이 붙어 도연(徒然)이 나옴. 제목의 마지막 초(草) 역시 서문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서 없이) 적어 가노라'에서 따온 것으로서, 한자 초(草)에는 초고(草稿), 초안(草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글,이라는 의미 있음. 한편, 역자 채혜숙의 해설을 보면 " '무료하고 쓸쓸한 나머지'라는 말은 일본 고전에서도 제일 멋있는 머리말로 유명하다"(p.11). 일본 문학에서 유명하다고 하고 또 길지도 않기에 전문을 소개하면: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무료하고 쓸쓸한 나머지 온종일 벼루를 마주하고 앉아 마음 속에 떠오르는 걷잡을 수 없는 상념들을 두서 없이 적어 가노라니 묘하게도 기분이 상기되어 온다>. 

 2) 무료->벼루->상념->두서 없이 적기->상기(上氣:흥분이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짐)와 같이 <마음의 흐름>을 시간 순으로 차례차례 묘사해 나가는 본 서문을 읽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어도 그렇고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런 점진적 빌드업이 잘 살 수 있는데, 과연 영역(英譯)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하는 궁금증 생김. 왜냐하면 (내 짧은 영어 상식에 따르자면) 상기 서문은 < what a strange feeling I have as I .... > 같은 문장 구조로 영역될 확률이 큰데, 이렇게 일단 결론부터 <터트리는> 서양식 번역 통해 서양 독자는 과연 나 같은 동양 독자가 느끼는 <빌드업 절정감>을 맛볼 수 있을까, 겐코가 그런 영역본 읽었다면 실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학적 염려> 생김. 그래서 영어 번역 확인해 보기로 함.

3) 오래 살펴보지 않았는데도 두 가지 사실이 금방 드러남. 첫째, 그동안 <도연초>를 영어로 번역한 책은 여러 권 나왔으나 영어판 결정본(the definitive english translation)으로 평가 받는 건 Donald Keene(1967)의 번역. 둘째, Keene는 자신의 책 서문에서, 그때까지 나온 예닐곱 개의 영어와 독어 번역본을 읽어 본 결과 가장 뛰어난 건 George B. Sansom(1911)의 번역이었다고 평가. 그래서 나 이제 Keene와 Sansom, 이 두 사람의 번역본 통해 내 궁금증 풀어보기로 함.(연구주제: 과연 서양 독자도 <문학적 빌드업을 통한 절정감>을 경험했을까). 먼저 Keene가 영역한 (1967)에서 서문을 확인해 보니 내가 우려한 바대로 : "What a strange, demented[미친] feeling it gives me when I realise I have spent whole days before this inkstone[벼루], with nothing better to do, jotting[적어두다] down at random whatever nonsensical thoughts that have entered my head." (내 결론: 서양 독자가 경험한 문학적 쾌감과 내가 경험한 절정의 수위는 다르겠구나). 이어서 Sansom이 영역한 의 서문을 보니 : "To while away[즐겁고 느긋하게 보내다] the idle hours, seated the livelong day before the inkslab[벼루], by jotting down[적어두다] without order or purpose whatever trifling[사소한] thoughts pass through my mind, truely this is a queer[기묘한] and crazy thing to do! ".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내가 Keene와 Sansom의 번역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할지 쉬이 알 수 있으리.

2022년 4월 1일

필립 K. 딕

나는 필립 K.딕을 좋아한다. 최근 <필립 K.딕 : 나는 살아있고 , 너희는 죽었다>라는 평전이 번역됐기에 (당연히) 사서 단숨에 읽었다. 문장과 구성이 몹시 괜찮았다. 평전을 쓴 엠마뉘엘 카레르라는 저자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또 한 권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었다. <왕국>(열린책들). 사서 읽고 있다. 카레르는 (나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과 성경을 공부하다가 어느날, 불가지론자가 되었음. 그런 그가, 초기 기독교의 발생과 복음서의 형성 과정을 693쪽에 걸쳐 <정말 독창적으로> 구성해 냈는데 그게 이 <왕국>. 띠지(!)에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 <왕국>은 모든 장르에 도전한다. 해설, 조사, 에세이, 역사책이자 자성록이며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 프랑수아 뷔넬, <리르> ]. 이 책의 장점은 그 서로 다른 장르들이 절묘하게 섞인다는 것. 종종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기는 하지만, 절묘하게 치고 들어오는 <(또 다시 시작되는) 다른 장르>의 글 읽기가 주는 문학적 쾌감이 크다. 이제 인상적이었던 대목 하나 소개하며 페북다시컴백 인사글을 맺으려 함. 루카(누가)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다가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왕국>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발레 지방의 산골 마을에서 지낸 저녁 시간들을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지나친 얘기고, 난 어떤 저녁들에는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 내가 가장 지속적으로 끌리는 테마는...(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