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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4일

신앙 서적과 신학 서적

고등학교 때 제가 열심히 읽었던 신앙서적 몇 권을 꼽아보면 『사랑의 원자탄』(안용준 지음), 『삼박자 구원』 (조용기 지음), 『죽으면 죽으리라』(안이숙 지음),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최자실 지음) 등 입니다. 대학교 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존 스토트 지음), 『산상수훈』(로이드 존스 지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프란시스 쉐퍼 지음),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제임스 사이어 지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 (J.I.패커 지음) 등을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십여년 전부터는 성서학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성서학 관련 책들부터 읽었다면 어땠을까? 요사이 내가 알게 된 것들을 대학 때 알았다면? 선교 단체와 대학부에서 내가 (조원으로) 배우거나 (조장으로) 가르칠 때 사용하던 교재가 생각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 쓰는 교재였습니다. 질문 뒤에는 몇 장 몇 절을 보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다 나와 있습니다. 하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읽고 그 차이점에 대해 나누는, 그런 식의 성경 공부는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조장이 됐을 때도 시키지 않았구요....) 아니,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런 질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마태는 왕으로서의 예수, 마가는 종으로 오신 예수, 누가는 이방인과 온 세상을 위해 오신 예수, 라고 어디서 본 걸 외워서 썼습니다. (요한복음은 까먹었습니다.) 신기합니다. 복음서를 꽤 여러번 읽었는데 왜 각각의 문체와 강조점과 뉘앙스와 차이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보르헤스나 쿤데라나 하루키를 읽을 때는 본능적으로 그 특색과 차이점을 알아차렸는데 말입니다. 아마 제가 그날 ‘적용’을 하려고, 십자가를 져라, 이웃을 사랑해라, 성결해라, 같은 교훈과 명령이 나오는 문장만 관심 갖고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 - 그러니까 성경 본문 - 이 중요하지 그걸 쓴 저자 - 즉, 부각되면 괜히 하나님의 영광만 가리는 존재 - 가 뭐 중요한가, 라는 무의식이 제 독서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4. 9.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