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4월 30일

애니메이션 < 바람의 검심(추억편) >을 보고.

1. 20대에 자주 썼던 말이 "외롭다, 혼란스럽다, 방황하는 중입니다" 등이었다면 요즘 30대에 들어선 제가 자주 쓰는 말은 단연코 <피곤하다>입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피곤합니다. 흑흑흑. 그리고 30대에는 '자주 쓰는 말'뿐만 아니라 '자주 보는 영화'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2. 요즘 < 살인의 추억 > < 터미네이터3 > < 매트릭스2 > 같은 화제작들의 개봉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제가 영화를 하나 본다면 < 갈갈이 삼형제와 드라큘라 > 가 될 확률이 큽니다. 아내가 애들 둘을 데리고 < 니모를 찾아서 > 를 본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렇죠, 뭐. 다른 30대 부부들처럼 이렇게 아이들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도 아이들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영화 보겠다고 DVD 플레이어를 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사준 게임기에 DVD 플레이어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제가 자랑을 했더니 옆자리 후배 K가 DVD를 하나 빌려줬구요. < 바람의 검심 > 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어느날 밤 거실에 혼자 앉아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날도 무척 피곤했습니다). 자신의 약혼남을 살해한 남자 검객을 사랑하게 된 여자가 등장했습니다.

4. 남자의 품에 안긴 여자는 죽어가면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단도를 집어듭니다. 여자가 남자의 뺨에 가로로 상처를 냅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이미 남자의 뺨에는 세로로 난 칼 자국이 하나 있었기에, 이 가로 상처가 더해지면서, 상처는 십자가 형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기독교적 상처‘가 탄생한 걸까요? (농담입니다). 어쨌든 이 애니메이션의 제4막 소제목은 '십자 상처(十字傷)’입니다.

5. 첫 번째 세로 칼자국은 남자가 '확신'에 차서 사람들을 죽일 때 얻은 상처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을 칼로 죽였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얻었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칼로 세상의 악을 다 잘라내야 한다고 확신하던 때, 남자는 부지불식 간에 여자의 약혼남까지 죽였어요. 이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날을 대신 몸으로 막는 여인을 보며 - 그리고 자신의 품에서 그 여인이 죽어가는 걸 보며 - 남자는 <흔들립니다>. 남자는 그 순간 절망한다, 고뇌한다, 비통해 한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상하게 제 눈에 남자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최근 흔들리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저의 20대 삶 대부분을 지배했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제 안에서 많이 흔들려서 그런가 봐요.

6. < 어리석은 확신 > 을 상징하는 남자 뺨의 세로 칼 자국.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그 위에 가로 칼 자국을 냅니다. 옆자리 후배 K는 그 장면을 놓고 < 한을 풀어주는 > 상처 내기라고 했는데 저는 똑같은 그 장면이 < 부끄러움을 씻어주는 > 상처 내기로 보였어요. < 세상을 백퍼센트 기독교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았다는 확신에 차서, 그렇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오염된 이웃들>을 내심 무시했던 저의 20대. 그때 가졌던 어리석은 확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이상하게 씻겨나가는 것 같았어요, 여자가 남자의 얼굴에 가로 칼 자국을 그어주는 장면을 보는데.

7. 후배에게 DVD를 돌려준지 꽤 지났는데도 영화를 봤을 때 받은 감동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적 전투'와 '선한 싸움'을 치르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 동료들 뺨에는 어떤 상처들이 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세로 상처뿐일지 아니면 가로 상처도 있을지. (그런데 나에게는 과연 가로 상처가 있기는 한 걸까? 여전히 확신에 찬 세로 상처만 있는 거면 어떡하지? ) 어떻게 글을 맺을까 고민하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며칠째 수염을 깎지 않아 꺼칠꺼칠해 진 뺨에 손을 대보았습니다. 그 어떤 칼자국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끝)



* 30대 후반에 한국기독학생회(IVF) 학사회에서 발행하는 <소리>지에 기고한 영화평입니다. 30대...(또르르).

30대 중반에 보는 일본만화 - < H2 > 와 < 5년생 >


1. < H2 > 는 오래전에 봤습니다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전34권을 다시 보았습니다제가 옛날에 왜 < H2 >를 좋아했는지이번에 볼 때 이해가 되었습니다전 < H2 > (혹은 일본만화)의 일상성이 마음에 듭니다한 낮 주택가의 정적혹은 점심때 혼자 컵라면을 끓여먹는 (소리없는전 과정...이런 것들이 마음에 듭니다< H2 > 에서는 (제 기억이 맞다면겨울이 나오지 않습니다항상 한 여름매미의 울음 소리계속 반복되는 그 땡볕의 주택가 풍경한 곳에서는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는데또 한 곳에서는 이렇게 지루한평소와 똑같은, <풍경>이 존재합니다.

2013년 4월 28일

스케치

1. 길 자모라(Gil Zamora)는 미연방수사국(FBI)에서 훈련받았던 화가입니다.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산 호세 경찰서(San jose Police Department)에서 일하며 범죄 수사에 필요한 그림들을 스케치했습니다. 몽타주가 대표적이겠네요. 길 자모라는 얼마전 비누로 유명한 클린징 용품 브랜드 도브(Dove)와 함께 독특한 작업을 하나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아름답습니다(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라는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든 것입니다. 3분짜리 이 다큐멘터리는 dove.com/realbeautysketches 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길 자모라가 한 여자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자모라와 여자 사이에는 커텐이 드리워져 있어 자모라는 여자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의 턱은 어떻게 생겼나요? 자모라가 묻고 여자는 대답합니다. 제 턱은 너무 커요. 이마는요? 이마는 많이 튀어나왔어요. 당신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자모라는 이렇게 여자가 묘사하는 설명만 듣고 여자의 얼굴을 상상하며 스케치합니다. 여자는 완성된 스케치를 보지 않고 떠나고, 자모라는 여자가 떠날 때도 끝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자모라는 이렇게 셜리, 플로렌스, 제니스, 켈라, 라니, 멀린다, 마리아 7명의 여자 얼굴을 보지 않고 그렸습니다. 얼마 뒤 자모라는 일곱 명의 여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그가 그린 스케치를 보여줍니다. 여자들은 넓은 전시 공간에서, 자모라와 단 둘이서 천천히, 자기 얼굴 스케치를 감상합니다. 그때 감동하는 표정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절정입니다.

3. 한 장의 그림을 기대하고 온 여자들 눈 앞에는 두 장의 스케치가 걸려 있습니다. "이건 당신 얘기를 듣고 그린 당신의 얼굴이고요(this is the sktech you helped me to create)", 자모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합니다, "이건 다른 누군가가 묘사한 당신 얼굴입니다(and that's the sketch that somebody descirbed of you)". 아,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처음엔 제가 이해하지 못한 낯선이들의 증언들, 예를 들어 "눈이 참 깊고 아름다워요" 같은 증언들을 듣고 오른 쪽 얼굴들을 스케치한 것이었군요!  여자들의 자아상이 반영되어 있는 왼쪽 그림들은 광대뼈와 이마가 튀어나와 있고, 살이 쪘으며, 어둡고 방어적입니다. 오른 쪽 얼굴들은, 한 여자의 말대로, 열려있고(opened), 행복해보입니다(happy). 제가 볼 때 오른 쪽 얼굴들은 무엇보다 고요하고 그리고 각자의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여러 번 다시 봤습니다. 여자들의 작은 손 떨림. 이슬 맺힌 눈동자. 얼굴은 상기됐습니다. 모든 여자들의 입이 조금씩 벌어져 있습니다.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맞닥뜨린 여성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단순한' 몽타주 스케치 능력을 갖고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낸 자모라와 그 동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제 평생 '비교'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답게, 고맙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4.무서운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 위치를 바꿔봤습니다. 제 가슴은 서늘해졌습니다. 여전히 왼편에는 자기가 묘사한 - 이제 남자들도 포함됩니다 - 얼굴이 걸려있습니다. 자모라에게 이렇게 설명했을 것입니다. 제 코는 오뚝합니다. 초롱초롱한 두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합니다. 조용히 다문 입술은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를, 그 입술에 살며시 걸려있는 미소는 유우머를 잃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를 반영합니다. 역시 자모라입니다. 스케치가 멋지게 나왔습니다. 제가 봐도 맘에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얼굴 오른쪽에 걸려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요? 처음 보는 낯선 이의 얼굴이 걸려있습니다. 보자마자 불쾌감이 치솟습니다. 조화를 깨트리는 커다란 코.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처진 턱살. 불안으로 가득한 두 눈은 바쁘게 무언가를 쫓고 있습니다. 탐욕과 권태가 동시에 묻어나는 입술에는 거만한 미소가 걸려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한없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건 다른 누군가가 묘사한 당신 얼굴입니다(that's the sketch that somebody descirbed of you)".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5. 자모라가 스케치한 두 장의 그림을 보면서 C. S.루이스가 들려준 스토리를 떠올렸습니다. '공장' 비유 이야기인데,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생에서 생산한 물건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간다. 그 '생산품'에는 우리의 인격,업적,사랑 모든 것이 포함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제가 100개나 만들었어요. 그 분은, 네게 허락한 그 좋은 설비- 그러니까 좋은 가정환경, 성품, 건강 - 를 갖고 100개 밖에 만들지 않았니? 라고 하실지 모른다. 2개 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하며 두려워하는 자에게 그 분은, 그 오래된 설비와 다 쓰러져 가는 공장에서 2개를 만든 건 기적이란다, 라고 말하실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모든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깜짝 놀랄 일이 많이 생기겠지요."(C.S.루이스,『순전한 기독교』p.151) 그러면서 루이스는 이런 사실이 어떤 이에게는 위로로,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어렸을 때 성격이 비뚤어지는 바람에 잔인함이 몸에 밴 어떤 사람이 동료들의 조롱을 무릅쓰고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거나 어떤 잔인한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p.150) 예, 제게는 이런 사실이, 제 삶의 일정 영역에서는 위로로, 또 다른 영역에서는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천성적으로 숫기가 없고 넉살이 좋지 않은 제가 지금 생에서 누군가에게 몇 번 먼저 다가갔던 걸 보시고, 그때 군인처럼 용감했지, 넌! , 이라고 말씀해주실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이어받은 글재주를 갖고 쓴 제 글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 하실까요. 그래서 미래의 어느 시점, 제가 하나님과 함께 감상하는 스케치 전시회 주제는 두 개일것입니다. '내 마음,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아팠단다'(You are uglier than you think)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아름다워'(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양자 모두에서 제 손은 각각 다른 이유에서 떨릴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떨리든지, 제 손을 잡아주소서. )

(후기)
원래 저는 윗 글 마지막 부분에서, 첫 번째 전시회의 주제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추해'(You are uglier than you think) 일 거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상기 프로젝트 캐치프레이즈와 대구(句)가 잘 맞습니다. 어글리와 뷰티풀. 그런데 그 글을 쓰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 마음 여전히 꺼림칙했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 천국에서, 우리 면전에서, 너는 추해,라고 말씀하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악했단다' 로 고쳤다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마음,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아팠단다'로 바꿨습니다. 영어 문장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3.5.8.)

2013년 4월 25일

율리시스


1. 얼마 전 오마르 보르칸이라는 아랍에미리트 청년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열린 한 축제에 참가했다가 종교 경찰에 의해 강제로 추방 당했다. 너무 잘 생겨서 여성들이 홀릴 수 있겠다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덕의 장려와 죄악 방지 위원회(Commission for the Promotion of Virtue and Prevention of Vices)’ 결정 때문이었다.

2013년 4월 24일

두 개의 운동, 두 개의 노래


1. 지금 <봄여름가을겨울>7집 앨범 < Bravo, My Life! > 를 듣고 있다. 10개월 전에 읽었던 앨범 발매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꽤 긴 기사였는데 중간에 < 이번에는 블러링(blurring)효과를 많이 썼습니다 > 라는 말이 나왔다. 재미있다. 음과 음 사이를 < 뭉개며 > , < 모호하게 > 한다는 블러링 기법을 많이 썼다는 얘기가 아직도 < 선명하게 >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샤프한 음 처리보다는 블러링된 음에 더 끌리네요. 그때 한 멤버가 이런 식으로 말했다.

파이널컷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양화진대화> 편집 시작. 내가 파이널컷으로 편집할 때 자주 쓰는 기능은 탁 누르면 파일 전체가 타임 라인 전체에 탁 펼쳐지는”(내가 들어도 참 막연한 설명이다 ;;;) 기능인데 미국 갔다온 후 까먹었다. 수십군 데를 눌러봤는데도 안 됐다. ㅠㅠ. 파컷 고수들에게 물어봐도 다 모름. 갑자기 저 멀리 있던 AD 한 명이 다가오더니 피디님이 설명하는 내용(그 막연한 설명!! )을 들었어요, 쉬프트 제트를 눌러보세요, 했다. 됐다! 난 내 막연한 설명을 그녀가 이해했다는 것에 놀라 입이 벌어짐. 혹 파컷 사용하는 분들 꼭 쉬프트 제트 한 번 눌러보삼. 그러고보니, 나에게 파컷을 가르쳐준 사람도 AD 였다. 일대일 편집만 하던 내게도 어느날 비선형편집을 배워야 하는 순간이 다가옴.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그녀가 말함. 그래 고마워, 그럼 나중에 시간 한 번 내줘. 아니에요, 지금 여기 앉으세요. 단호한 그녀의 지시에 따라 엄청 단호했음!  - 그날 내가 앉았던 테이블과 의자 위치, 지금까지 기억함. 딱 두 개만 가르쳐줬다. 더 이상 가르쳐주지도 않았음. 더 가르쳐줬으면 헷갈렸으리. 그래서 < 그 자리 > 에서 배웠고, 그 이후 비선형편집이 선사하는 편집의 자유라는 새로운 세계에 완전히 빠짐. 너무 재미있어서 지하철 타고 가면서도 <새롭게하소서> 편집. 지하철에서 편집했다는 말 듣고 나의 파컷 스승 AD  뒤로넘어감. 방금 어제 나의 분노 게이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던 외주 PD로부터 사과의 전화 받음.

2013년 4월 22일

택배 기사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 안개로 유명한 무진(霧津)의 한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일하던 중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K(남·52세)가 취한 행동은 이러했다. 제일 먼저 K는 자신이 담임목사로 초빙될 당시 마지막까지 함께 후보로 올랐던 지원자 세 명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목사님께 가야할 기회를 제가 가로챘습니다." 십 년도 더 된 일에 대해 사과를 받은 세 사람은 처음에는 당황해했으나 헤어질 땐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K는 자신이 무단으로 논문을 인용한 국내 저자 두 명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그 중 한 명은 교수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고 K는 그의 연구실 앞에 서서 삼십 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K는 자신이 이십 여쪽 넘게 표절한 외국 논문의 원저자 켄 블레이크에게는 장문의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여섯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 후 K는 자신을 후임으로 추천해준 원로 목사 Y가 묻혀있는 강원도 홍천을 찾았다. 우리는 그가 사부(師父)의 묘소 앞에 한 식경 넘게 아무 말없이 서 있었다는 것만 알지 그가 무슨 생각 혹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모른다. 산을 내려온 K는 아직도 아랫 마을에서 홀로 살고 있는 원로 목사의 아내를 찾아가서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여든이 넘은 사모는 “아직 식사 전이지?” 라고만 묻고는 그를 마루 위로 이끌었다. K는 묵묵히 사모가 해준 밥을 먹었다. 밥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물을 많이 마셨다. 외투를 챙겨입고 원로 목사의 집을 떠나며 K가 – 사모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 말한 것은 이것이 다였다. “당회에 비전센터 건립 원점부터 다시 재고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노(老)사모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미소는 아주 오래전 주일학교 시절 K를 가르치던 젊은 사모의 얼굴에 떠오르던 그 미소였다. K는 선생들을 미소짓게 하던 아이였다. 이 모든 게 K가 교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2. 노(老)사모를 만나고 무진으로 내려온 날은 토요일이었다. 저녁이 지나 밤이 깊어질수록 K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졌다. 요 며칠 K의 얼굴에는 지난 몇년간 볼 수 없었던 평화가 넘쳤으나 이제 그의 얼굴엔 두려움과 초조 뿐이었다. 그는 기도를 시작했다. 밤 열시가 넘자 그의 기도는 헐떡거림으로 변했다. 가끔 이런 말이 그의 입에서 새나왔다. “제가 꼭...”, “주님, 그렇지만 그건...” K가 침실에서 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그녀는 남편이 저녁 먹으며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십 분 넘게 같은 접시를 닦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녀의 눈가는 젖었으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3. 주일예배가 시작됐는데도 K는 여전히 교회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눈을 감지는 않았으나 그의 시선은 정면이 아니라 서너 걸음 앞 땅을 향하고 있었다. 아침 7시반부터 오후 1시까지, 네 차례의 예배가 끝나는 동안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자기가 담임하던 교회 정문에 서있었다. 장로들과 행정목사들과 찬양대원들과 청년부원들이 교회에 들어서며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서있는 K를 발견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시선 또한 K의 시선 마냥 땅으로 향했고 빠른 걸음으로 교회 앞 마당을 가로질러 교회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전임 담임목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함. 그건 K에 대한 교인들의 말없는 예우였다. 그러나 나이 많은 권사들 중 일부는 K의 팔을 잡고 "목사님, 왜 여기서 이러세요. 어서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만은 K도 질끈 눈을 감았다. 한편 그날 교회 정문을 통과한 2만여 명의 교인들은 신비롭다 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을 했다. 땅만 쳐다보며 서있던 K와, 종종 걸음으로 정문을 지나쳤던 교인들의 시선이 마주쳤을 리 없건만 이상하게 많은 이들은 그 사건이 있은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구동성 K와 눈길이 마주쳤다고 말하고 있다. “저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것 같았어요. 제 가슴이 뭉클해졌었지요.” 심지어 어떤 이는 K가 교회 정문을 들어서는 교인들과 일일이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고 기억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그날 K와 교인들 사이에 모종의 깊은 교감이 있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날 있었던 네 번의 예배 또한 특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배의 분위기는 물론 무거웠다. 그러나 침울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 될 것이다. 공기는 무거웠지만 가라앉지 않고 소용돌이 쳤다. 뜨거운 열기가 교인들이 앉은 좌석 사이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녔고 이윽고 사람들의 가슴속까지 헤집기 시작했다. 감사하는 성도가 되자. 흔하디 흔한 설교 주제였고 갑작스레 설교단에 선 젊은 부목사는 긴장해서 땀까지 흘렸다. 하나 설교를 듣는 이들 모두 이상하게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교회 정문 앞에 서 있는 K의 존재도 잊은 채 하나님이 젊은 부목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하는 말씀에 귀기울였다. 같은 일이 다음 주에도 반복됐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교인 중 한 사람이 K에 대한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가 바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최근 보름 동안 K를 떠올린 게 그때가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두 달이 지났다. 교회는 추수감사절 부서별 찬양대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교회에는 완벽한 일상이 찾아왔다. 

4. K가 사임하고 석 달이 지났을 때 몇몇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일이 발생했다. K는 종종 아내와 시내 파스타 전문점을 찾아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그가 ‘너무 맛있게’ 먹는 게 구설에 올랐다. “좋은 일로 사임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사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입에 크림 묻는 줄도 모르고...” 신앙이 뜨거운 이들은 K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침울하지 않은 K의 얼굴과 크림 묻은 K의 입술과 가끔 아내 앞에서 터트리는 K의 웃음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독교계의 원로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말없이 차를 마시던 원로가 K에게 물었다. “이봐 K목사, <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서 장애인을 돌보거나 빈곤 퇴치 운동 > 같은 걸 하고 오면 어떻겠나?” 찻잔에 시선을 둔 K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2,3년 봉사 하고 오면 내 K목사 복권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봄세. 스파게티나 먹으며 한가하게 시간 보내고 있다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려. ” 그 말을 들은 K는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행동은 조심스러웠지만 목소리는 차라리 쾌활했다. “목사님, 사실 제가 사임하고 제일 먼저 떠올린 단어가 아프리카였어요.” “아, 그런가?” 원로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에서 지금도 말없이 섬기고 있는 분들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프리카가 내 개인적인 재기를 위한 장소인가, 거기는 죄 지은 사람이 가는 게 아니라 사랑이 많은 사람이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찻잔을 집는 원로의 손이 조금 떨렸다. “제가 자꾸 무의식 중에 고행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거 같아서, 그럴 때마다 오히려 영화도 더 보고, 예, 제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일부러 쾌활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그게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덕이 되지는 않지” “예, 그래서 일을 해보려고요." "일? 그래, 자네가 좋아하는 스파게티집이라도 해보겠다 이건가?" K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원로는 자신의 말이 과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평생 설교만 하던 자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 말이지” "택배를 해보려고요" 고개를 든 K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월요일부터 출근해요, 목사님. ” 

5. 택배를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고 K가 오늘 배달한 수화물은 78개였다. 오늘 하루 2건의 클레임이 들어왔고 주차딱지 1장을 뗐다. “이봐 K씨, 지금이라도 다른 거 알아봐. 당신에겐 안 맞아.” 하루 평균 150개 이상을 배달하는 고참이 K에게 충고했다. “일단 전화를 받지마. 전화는 다 자기 일정에 맞춰달라는 거야. 안그래? 요청 받고 못 맞춰주면 클레임이야. 맞추다 보면 당신 스케쥴 꼬이는 거고.” 모든 전화는 비서가 받았었다. “바쁘시다고 전할까요?” 인터폰을 통해 들리던 젊은 비서의 목소리는 가끔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니, 영주씨. 연결해줘. 그리고 오후에 우리 비서진 전부 차 한잔 같이 할까” 기뻐하는 젊은 비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통화 대기자와 연결됐다. 무진 지역의 모든 사람이 그와 단 몇 분만이라도 연결되기를 바랐다. 이제 사람들은 K보다 먼저 전화를 끊는다. 3개월 동안 배운 건 아쉬운 소리하는 법이었다. 경비원들의 불친절한 말을 들어 넘기고 경비실에 짐 맡기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K는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이상하게 K는 헬라어와 제자양육법을 배울 때만큼 보람을 느꼈다. 그는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고 종종 김밥과 함께 파스를 샀다. 매일 밤 10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K는 짧은 글 하나 씩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루 종일 혼자 일하다보니 대화가 그리웠다. 누군가 답을 해주지 않더라도 맘에 있던 말을 적으면 긴장이 조금 풀리는 거 같았다. 

6. 어느날 택배를 든 K의 손이 몹시 떨렸다. 택배 수신처와 수신자 이름을 확인한 그의 심장은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시간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가 데리고 있던 부목사였다. 그는 택배를 땅에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는 아프리카로 가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무실은 6개월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는 택배 수신자 무진제일교회 청년2부 김형주 목사의 자리를 알았지만 이젠 남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길을 잃은 사람마냥 복사기 옆에 서있었다. “어느 분 찾아...” 문에서 제일 가까운 사무간사 지혜가 무심코 ‘현대퀵’이라고 쓰인 노란 조끼 입은 K를 향해 묻다가, 놀라, 미처 말을 맺지 못했다. 사무실 안을 메우고 있던 부드럽고 평화로운 소음이 빠르게 사그라져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기의 변화를 눈치챘고,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한 명씩 한 명씩 돌처럼 굳어졌다.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딱딱해진 정적이 마침내 한 사내 앞까지 와닿았고 뒤늦게 낯선 침묵을 감지한 펑퍼짐한 얼굴의 그 사내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카라멜 마끼아또를 좋아했다. 설교는 못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잘했고 족구할 때 리시브는 약했다. 그 사이에 얼굴엔 살이 더 붙은 듯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는 무언가 발음하려 했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K가 건네는 택배를 두 손으로 받았다. 택배를 건네 준 K는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나와서는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안에서 나는 소리일까? 아니다. 웃음소리는 K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그에게 몰려왔고 K의 입가에는 웃음이, 눈가에는 이슬이. 그날 열 시 K는 “오늘 가장 무거운 택배를 배달했습니다. 무겁지만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주님, 힘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가 트윗에 기독교적 용어를 쓴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7. 내가 트위터에서 ‘늦게 도착한 택배기사’라는 아이디를 발견한 건 한 달 전이었다. 택배 기사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난 지금 택배뿐만 아니라 중국집 배달 , 우편 배달 , 신문 배달 등 갖가지 배달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다 만나고 있는 중이다. 화장 짙게 한 여성들 잔뜩 태운 봉고차 조수석에 앉아보기도 했다. 선인세를 받고 쓰고 있는 시집때문이었다. '욕망의 배달, 배달의 욕망'이란 주제로 연작시를 쓰고 있다. 이상하게 그의 트윗은 항상 밤 열시 경에만 올라왔다. 올라오는 트윗들에 깊이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모든 택배가 투명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오늘 택배에 보아뱀이 들어 있었을까요?"라는 식의 소녀취향적 글이거나 아니면 그날 배달한 택배 개수 등을 기록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성경을 인용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그의 감상은 평범하다 못해 무의미할 정도였다. 세례자 요한이 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말을 써놓고는 이어서 "이제 저의 목표는 쇠하는 것입니다"라고 쓰는 식이었다. 해석이라기 보다는 동어반복이었다. 난 대번에 그가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의 동어반복에는 내게 없는 게 하나 있었고 난 그게 못견디게 부러웠다. 그는 흥분했다. 그는 매 구절에서 가볍게 흥분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며 다시 흥분할 수만 있다면! 그는 성경을 읽으며 마치 첫날밤 신부의 옷을 하나 하나 벗기는 신랑 마냥 흥분했고, 상기됐고, 감격했고, 고마워했다. 그에게는 매번 상대를 절정에 다다르게 할 기술은 없을지 몰라도 그는 흥분에 떨며 키스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초신자의 깊이 없는 시각이 못견디게 부러웠고 그래서 그의 트위터 계정의 팔로잉 단추를 눌렀다. 

8. "족발과 여자가 한 시간 간격을 두고 / 같은 장소로 배달된다 / 여기는 307호 // 애비와 아들이 / 19년 간격을 두고 / 똑같이 여자를 시켰다 / 어쩌면 / 같은 모텔에서". 지난 주 나는 드디어 연작시의 마지막 편을 완성하고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다. 하나, 난 지금도 여전히 '늦게 도착한 택배기사'를 팔로잉하고 있다. 글 쓰는 친구들이나 평론가들 트윗은 빼먹어도 택배기사의 트윗만큼은 챙겨 본다. 매일 그가 트위터에 올리는 구체적인 숫자들은 - 이를테면, 그가 하루 배달하는 택배 갯수나 그가 편의점에서 산 파스 숫자,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주택에 밀가루 부대 메고 걸어 올라갈 때 센 계단 숫자 등 -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언젠가 4일 동안 그의 트윗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은 때가 있었는데 난 괜히 신경이 쓰여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 나흘간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다. 닷새째 되던 날 밤 - 역시 열시경이었다 - 그가 올린 트윗을 발견하고 난 반가움의 탄성을 질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늦게 도착한 택배기사'의 전직(前職)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봤다. 처음에는 목사를 생각했으나 평소 성경에 대한 그의 감상이나 평을 떠올리고 그 생각은 접었다. 아마 유명한 학원강사였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날 그는 처음으로 트윗롱거(TwitLonger)를 이용해서 글을 올렸다. 그가 140자 이상의 글을 올린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봤어요. 제 온 몸은 경직됐습니다. 40분 내내 제 얼굴만 나오는 영상이었습니다. 제 성기가 노출된 영상이었어도 이렇게까지 부끄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배달 일도 접고 스마트폰도 끈 채 삼 일을 방 안에만 있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나흘 째 되던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무엇이 최악일까. 최악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제 속에 작은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최악은 지나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최악은, 지금도 새로운 동영상을 녹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도 그 영상들이 업데이트 되는 것. 그것이 최악입니다. 저의 거짓이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남자답게 방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아, 그리고 기뻐해주세요. 오늘 저 백두 개를 배달했습니다. 네,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하루 백 개를 넘긴 날입니다. " 

9. K가 택배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난 K가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입을 약간 벌린 채 곤히 자고 있다. 조용히 방을 나온 K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한다. 고참은 며칠전부터 명절에 비하면 평소 배달은 장난이라고 겁을 잔뜩 줬다. 문득 명절이면 목양실과 사택에 잔뜩 쌓였던 선물 택배들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때는 그 많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배달됐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들어오는 물건이 너무 많아 이름 확인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일년에 서너차례는 받는 뻔한 선물들이라 식상했지만 나중에 비서가 정리해준 발송자 리스트에서 잘 아는 장로나 집사 이름이 보이지 않으면 내심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과일이나 식용품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부목사들이나 각 부서장들에게 넘겼다. 세수를 하던 K가 갑자기 무엇엔가 놀란 표정이다. K는 신기하다는 듯이 거울 가까이 얼굴을 갖다대기도 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보기도 했다. K는 한동안 말없이 거울 속 사내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도 자신이 미소 짓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웃는 얼굴을 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K는 기억나지 않았다. 거울 속 사내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사내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 "바꾸지 않을래요" K가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지금이 더 맘에 들어요. " 

10. "택배 왔었어요?" 여자가 들어오면서 묻는다. "복도에서 보니까 선생님 댁에서 택배 기사가 나오던데요?" 매주 수업 시간에 듣는 목소리이지만 내 집 거실에서 들을 땐 색다른 맛이 난다. 이제 여자는 내 집 현관문 비번을 알고, 내가 하루에 쓰는 원고 매수를 알고, 아내가 지방에 내려가 있는 요일을 안다. 여자가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놓고는 스스럼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내 마신다. 난 얇은 윈피스 위로 그대로 드러나는 20대 여자의 몸매를 힐끔거린다. "명절이고 해서 집에 있던 포도주 한 병 편집장한테 보냈어. 이번에 선인세를 꽤 높게 책정해 줬거든".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자가 내 서재로 쏙 들어간다. "뭘 먹을 래?" 라고 소리 높여 묻자 "선생님, 치맥 어때요?"라는 목소리만 서재에서 들려온다. 난 핸드폰을 들고 배달 스티커가 붙어 있는 냉장고 앞으로 갔다. 목요일 시(詩)반 수강생 중에서 제일 뛰어났다. 스물아홉 국어교사였다. 내가 그녀의 싱싱한 육체에 빠져있다면 그녀는 내 오래 된 책으로 가득찬 서재에 빠져있다. "이건 대학 신입생 때 사신 거네요. 오늘의 책이란 서점이 신촌에 있었어요?" 여자는 서재의 모든 책을 한 권 한 권 뽑아 내가 남긴 메모를 읽었다. 여자는 서재에서 하는 걸 좋아했다. "여기서 하면 여기 있는 책들의 모든 문장들이 한꺼번에 제 몸을 간지르는 거 같아요." 언젠가 여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주문을 하고 서재로 들어갔을 때 여자는 책장 앞에 선 채로 책을 읽고 있다. 뒤에서 안았다. 이미 하드커버보다 더 단단해진 내 성기를 20대 젊은 여자의 탄탄한 엉덩이가 밀어냈다. 양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두 검지로 젖꼭지를 건드리자 여자는 책을 쥔 채 몸을 떨며 신음했다. 처음 몇 번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선생님, 온 거 같아요" 이제 내 귀에도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웃으며 재빨리 내 입술에 묻은 루즈를 닦아줬다. 현관에서 치킨과 맥주를 받았다. 맥주를 마신 여자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 먹는 입술이 붉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한 주 내내 기다려온 질펀한 정사를 앞두고 있건만 더 이상 흥이 나지 않는다. 표정 때문이었다. 분명 누군가의 시선에서 경멸을 읽었다. 누구였지? 그래, 그 배달원 자식. 분명 경멸의 시선이었어. 눈치를 챈 걸까? 나는 분명 서재 문을 닫고 현관문을 땄다. 내 방에 여자가 있다는 건 아무도 알 수 없다. "선생님, 왜 안 드세요?" 아뿔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재수 없는 놈이 확실히 떠났던가? 아니, 마음이 급했던 나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이미 돌아섰었다! "쉬, 가만 있어 봐" 난 소리를 죽이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소리를 죽이며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내 손엔 골프채가 들려있다. 천천히 현관 중문을 밀었다. 한 걸음 안으로 내디뎠다. 조금은 어두운 현관 한 쪽 구석에서, 여전히 경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으나 사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어둑한 현관에 서서, 신발장 전신 거울 속 사내의 시선을 받아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난 행복하니까 그런 눈으로 날 볼 필요 없어! 알았어? 지금 아주 행복하다고!" 감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을 그런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다니. 마흔 후반에 찾아온 이 소중한 사랑을 말이다. “난 내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 이 사랑에 모든 걸 걸었단 말이야. 뭘 안다고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봐”. 난 천천히 골프채를 쳐들었다. 골프채를 꽉 쥔 내 양 손과 거울 속 사내의 시선이 동시에 조금 흔들렸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그 순간 거실을 가로질러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신비로운 일이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내 안의 모든 분노와 불안을 쫓아주었다. "아니야, 금방 가!" 내 입에선 다시 생기 가득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강한 욕정,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내리덮을 만한 강렬한 욕정에 휩싸였다. 허겁지겁 돌아서며 급히 현관 중문을 닫다가 한 번 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 내가 본 게 맞다면 그건 경멸이 아니라 애원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2013. 4.21.

신동주


서플먼트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가상의 공간 무진(霧津)에서 벌어진 허구이듯이, 무진의 한 목사와 서울의 한 시인이 등장하는 이 글 역시 전적으로 허구입니다. 제 글 중에서 꺽쇠 < > 로 표시한 부분은 손봉호 교수가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 죽었으면 살았을 걸 > (2013.3.28.)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지만, 제 글에 등장하는 ‘원로’는 손봉호 교수와는 무관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진실한 회개 이후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할 수 있으며 저는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 제가 상상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1차적으로 저를 위해서 구상해봤습니다. ‘택배’는 제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작위적으로 선택한 소재이나 글을 쓰다보니 ‘거울’은 회개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마칠 때까지, 제가 마음 속으로 계속 했던 질문은 “이웃 앞에서 죄를 인정하면 과연 죽는 것일까?” 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2013년 4월 18일

4월,5월


몹시 피곤하다. 조금만 더 읽으면 끝인데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 마저 읽어야겠다. 낮에 한강에 갔다. 까치가 가로등 위에 집을 완성했다. 둥지 안에서 까치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까치집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나뭇가지는 어느 가지였을까. 까치가 자기 집이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왜 나는 내 소설을 끝내지 못하는 것일까까치가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는 왜 저렇게 보기가 좋을까. 사람이 모아놓은 나뭇가지도 저런 감동을 줄까. 만약, 가로등 위에 올라가 , 내가 옷을 다 벗고 입으로 물어온 가지로 둥지를 만든다면 그건 < 자연 > 일까. 그것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까.
2005.4.2.
 
 
the two horizons
by anthony thiselton
드디어 완독, 세번째 완독이다.
2005. 4. 3. 02:11 am
 

불편한 마음을 떨어버리려고
비가 오는 강변을 40분동안 자전거타고 달렸다.
홀딱 젖었다. 기분이 좋다.
2005.4.9.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쾌감은 신비롭다.
얼굴에 닿는 바람,의 다양한 터치.
오르가즘은 5-6초 밖에 지속 안되지만
이 즐거움은 20-30분 넘게, 끊기지 않고 지속된다.
그래서 오늘 자전거를 타던 나의 얼굴 표정이 궁금하다.
, 그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눈을 감는다.
2005. 5.1.

 
12시간 넘게 Carver T. YU 가 쓴 Being and Relation을 읽었더니 토할 것 같다.
부제는 a theological critique of western dualism and individualism.
내 방에서 책을 읽을 시간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아서 좀 슬펐다.
카자흐스탄에서 읽을 책을 몇권 뽑았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사람이 없길래 재빨리 웃옷을 벗고 한강변을 달렸다.
맨살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좋았다. 가슴이 뛰었다. 멀리서 사람이 보여 다시 옷을 입었다.
2005.5.4.
 

Being and Relation을 읽는데 졸음이 와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갔다.
인적이 없는 송전탑 아래서 웃옷을 벗고 풍욕을 즐겼다.
바람이 겨드랑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좋았다.
간지러우면서도 좋았다.
2005.5.4.
 


2013년 4월 17일

아내가 고른 것들

퇴근길에 여의도 환승역 계단을 오르다가 우연히 내 신발을 봤다. 아내가 골라 준 것이다. 그 위 바지를 봤더니 아내가 골랐고, 그 위 벨트도 이번 겨울에 골라 줬고, 메고 있는 가방도 그렇고, 쓰고 있는 모자도 그렇고, 가죽잠바도 그렇다. 잠바 안의 셔츠도 그렇다. 조금 더 걸어가다가 혼자 미소 지었다. 셔츠의 안의 나,를 아내가 골랐다.

2013년 4월 16일

황무지 4

컵화분에 기르던 열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방금 먹었다. 가는, 여린 연두빛 줄기에서 쓴 무맛이 났다. 오늘 저녁엔 입사 20주년을 기념하는 동기들 회식 있음. 난 다른 약속 있음.  

2013년 4월 15일

한 사람의 인격

< 한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지표는 (a) 자신에게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b) 자신에게 맞서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 둘을 살펴보는 것이다. -- 애비게일 반 뷰렌 > . 누구든지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쉽다. 그렇지만 화를 내야 마땅한 사람에게 알맞은 정도로 알맞는 시간에 알맞는 목적으로 알맞는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아리스토텔레스 > .

2013년 4월 14일

안녕하세요 2

내가 한겨레신문에서 꼭 챙겨읽는 꼭지 중에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비평하는  <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  가 있다. 상주로 내려가는 버스 속에서 읽는데 이번 주에는 이영자를  다뤘다. 이영자가 겪은 힘든 시기를 소개하다가 이렇게 썼다. << 고난의 시간들은 역으로 게스트를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슈퍼스타케이(K) 2>의 우승자 허각에게, 그가 환풍기 수리공으로 일하던 시절의 고생담을 묻는 토크쇼 호스트는 많았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이영자만큼 그 질문을 진실하게 던진 사람은 없었다. “각이는 돌아보니까 어때? 좀 잘 살아낸 것 같아?” >> . 질문을 진실하게 던지다, 부분을 읽는데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이들 수록 아는 것은 많아지는데 그 지식을 진실하게 나누거나 전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 거 같다. 어머니가 해 주신 저녁 먹고 수많은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이영자가 진행하는 안녕하세요,를 봤다.  

안녕하세요 1

어제 장인어른과 장모님 모시고 신세계10층에 있는 한우리에 가서 샤부샤부 사드림. 장인어른 생신. 두 분 모두 아주 좋아하심. 두 분은 집으로 가시고 난 잠시 머리 식히려고 센트럴시티 1층에 있는 만화가게 찾았는데 이럴 수가! 만화가게 사라지고 대신 까페. 둘째 아들은 원피스를 보고 난 시마과장을 보던 곳. 내가 남성잡지 GQ를 처음 봤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꼭 찾았고, 그러다가 한 섹스 칼럼에 분노해서 GQ는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로 그 곳,이 사라졌음. 영풍문고에 이어 두번 째 우리 가족의 역사 상실. 터미널에서 3시20분 상주행 우등 타고 6시에 상주 도착.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 먹고, 어머니가 미리 사놓으신 수미감자칩 먹고, 이영자 안녕하세요 보다가 잠이 듦. 오늘 어머니가 해주신 아침 먹고 어머니와 함께 1시간 정도 북천길을 따라 산책. 엄청난 강풍.  벚꽃 보며 버스커버스커 생각. 어머니와 횡단보도 건너는데  저 앞에 짙은 감색 치마 입은 젊은 여성. 바람 여전히 잦지 않고.

2013년 4월 13일

가장 슬픈 꽃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무는 경계선을 나타내기 위해 목책으로 쓰이는 나무,라는 말을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꽃은, 대한문 앞 화단에 심기운 꽃.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이 "나를 밟아"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2013년 4월 11일

박샘의 위대한 수다

오늘 후배 둘이 찾아왔어요. 이 후배들은 < 박샘의 위대한 수다 > 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있어요. ( 원래 이름은 박샘의 위대한 상담,이었는데 최근에 수다로 바뀌었어요.) 한 달에 네 번 업데이트 되는 방송인데 영화 - 책(고전) - 영화 - 책(일반) 순서로 진행돼요. 한달에 한 번씩 책 이야기 시간에 나와달라고 해서 , 세 번만 하기로 했어요. (3개월). 삼십 권은 몰라도 세 권 정도는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5월6일에 첫녹화해서 5월10일에 업데이트. 이런 이야기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둘째 아들 전화. 지금 막 2박3일 10학년 수학여행  떠난다고. 큰 애는 어제 12학년 수학여행 떠났음. 아내는 이제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함.

2013년 4월 9일

블로그의 이름

오늘 후배의 메시지를 받고 제가 중요한 걸 하나 빠트렸다는 걸 알게 됐어요.^^;; 후배의 질문은 "그런데 왜 <거짓말을 배우는 곳>이어요?"

장정일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 (1996)를 썼고장선우가 거짓말 > (1999)을 만들어 우리 사회가 소위 예술과 음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벌이던 그 무렵 <거짓말을 배우는 곳>이란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그 이야기는 제가 쓴 에세이 5번 당신의 육체적 반응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단은 거짓말 논쟁에서 배우자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지었어요그리고(!) –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요 교회에서 맞다고 하지만 거짓말인 것, 교회가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진실인 것을 차근차근 소개하고 싶어서...^^;;

2013년 4월 8일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 (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 폴 니터 지음 클리어마인드 출판사 / 19,000.

머리카락


센트럴시티 맥도널드. 아이스커피 천원이면, 두 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의자와 적당한 소음을 제공해준다. 내 옆에 긴 생머리 여자가 앉았고, 앞에 남자는 그 여자의 생머리를 끊임없이 쓰다듬는다. 지금도. 머리카락에 대한 김훈의 묘사가 떠오른다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의 속옷에 가끔씩 여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염색기가 없는 통통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었다 … 끄트머리까지 힘이 들어 있었다 … 겨울 속옷의 섬유 올 틈에 파묻힌 머리카락을 손톱으로 떼어내자 더운 방바닥 위에서 머리카락은 탄력을 받고 꿈틀거렸다.” (김훈의 묘사). 겨울 방바닥의 정전기와 긴 머리카락의 탄성젊은 여성의 육체중년의 부부 관계남편의 정사를 알게 된 아내이 상황이 머리카락에 다 있다. (정희진의 평가). 

침묵의 행성 밖에서


오후 1:52
"방금 목동 교보문고에서 '그 가공할 힘'(C.S.루이스 우주3부작 중 마지막 권)을 샀다. 내가 계산을 하는데 한 30대 중반 여성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옆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밤, 두 사람이, 지상에는 없는 이야기를 좇아, 긴 여행을 떠난다


오전 12:35
"방금 C.S.루이스의 우주 3부작 중 두번 째 책인 <페렐란드라>를 다 읽었다. 1<침묵의 행성 밖에서>와는 달리 좀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 책의 반 이상이 금성의 자연 환경에 대한 묘사로 채워져있는 거 같다. (나의 스승이여,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신지요? ) 그러나 악과 악마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는 전율을 느꼈다. 3<그 가공할 힘>을 드디어 읽는다. 오래전부터 이 제3권에 대한 호평을 자주 들었기에 기대가 된다. 1권은 두 번 읽었다.“
 
엄마 위한 포르노그레이…〉 정말 야해? : : 문화 : 뉴스 : 한겨레. www.hani.co.kr.
"(기자의 글) : "애석하게도, 이 책은 전통적인 할리퀸 로맨스들이 갖고 있던 클리셰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의 성공 요인일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매번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폭발적인 섹스가 더해진 로맨스다." // '폭발적인 섹스'도 클리셰 Top 5에 들어갈 듯아빠들을 위한 포르노 집필 중. 조크. 썰렁.
 

다윈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제임스 무어가 공저한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을 오늘 낮(2012.9.16.12:58. 1)에 다 읽었어요. 44장으로 이뤄져있는데, 지루하단 생각이 한번도 들지 않은 것은 다윈의 삶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두 저자가 글을 참 재미있게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구체적인 진화의 절차,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합니다. 주로 시대상, 인간 관계, 비방과 방어, 연구의 진척을 둘러싼 갈등 등을 소개합니다. 인간의 마음, 도덕()까지도 동물로부터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했다고 확신하는 다윈. 그러나 (인용) < 이 경우에도 늘 그랬듯이 "무시무시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마음이 진화한 것이라면 , 그러한 확신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원숭이의 마음에 확신이라는 게 있다 한들, 그것을 누가 믿을까?" 이 문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이것이 다윈의 입장이었다. > (p.1081). 정가 5만원.

위조지폐


늦은 점심을 먹고는 식당 노트에 이름 싸인. 연휴 근무자를 위한 회사의 배려.
식당을 나와서 던킨에서 오리지날 블랙 작은 컵 한잔 테이크아웃.
두 아들 잘 있음. 둘째와의 통화는 항상 이런 식.
아부지 . , 이게 둘째냐 셋째냐 . 아버지 이제 그만 하지, 이 조크.
이눔아, 아빠가 미국가서 셋째 만들 수도 있어. 대답없음.
첫째와는 오늘 학교 수업 숙제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 외계의 다른 행성으로
보낼, 지구 인류를 대표하는 물건 5가지를 정하고, 그 선정 이유를 써라.
아빠라면 뭘 보내고 싶어? 아빠는....우선 바하 음악. 그리고 콘돔? 내가 말하고 내가 웃음. 이 콘돔이 사회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어. 여성해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그럼 너는? 아들의 다섯번째 아이템이 인상적. 위조지폐.
왜 그걸 보내고 싶은거냐. 위조지폐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짜와 가짜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라는 걸 말해줘서.
, 그 콘셉 정말 재미있는데! (아차, 위조지폐를 진짜 돈과 함께 클립으로
묶어서 같이 보내야 외계인이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을거라고 말하는 걸 까먹었다.
....로케트는 뜨지 않지. 신동주 흥분하지 말자...) 그런데, 말이야,
진실과 거짓의 공존이라는 개념이 흥미롭게 다가온거야?
그러니까,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있잖아. 그런데 비기독교인이 더 기독교적으로 살기도 하잖아. (우리 기독인들 안의 기독교성과 비기독교성의 공존, 비기독교인들 안의 기독교성과 비기독교성의 공존을 말했던 것일까? 아들은.)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더니 생각이 위조지폐에 까지 가 닿았어. 그래, 아빠도 지금 C.S.루이스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 '경건한 이교도'라는 말이 나와. 한 이교도가 정말 간절하게 신을 구한다면, 신을 두려워하며 산다면, 형식적인 기독인보다 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고 해. (이런 저런 이야기 잠시 더 나누다가 전화 끊음.) 아 이 말도 아들에게 해줬다. 지금 이 주제 참 흥미롭다. 이 주제 참 흥미롭고 중요해서, 이 주제로 세미나를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