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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8일

증오

(11.27) 내 삶은 내 타임라인과 달리 깔끔하지 못하다. 오늘은 새벽4시반에 잠이 깼다. 난 내가 그를 용서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한 장년이,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방황 중.

(11.28) 이런 글은 사실 밤에 써야 하는데, 집에선 인터넷이 안 돼 회사에서 써요. 제게 상처를 줬던 분을 오늘 만났어요. 만나서 제가 3주 전에 받았던 상처를 이야기했어요. 차분하게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 거에요. 그래서 저도 그 분도 좀 당황했어요. 그 분은 진심으로 사과를 했어요. 전 감사하다고 했어요. 눈물이 흐를 때 순간적으로 당황했는데 회사에서 제가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인 건 아버님이 돌아가신 때가 유일했어요. 제 맘 속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 같아요 그때 루이스의 말이 떠올랐어요. 눈물을 흘린다는 건 영국신사답지는 않지만 그리스도다운 행동이다. 제 분노가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도 새벽에 잠이 깨 뒤척이다가, 그리고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주님. 당신의 연주를 저는 믿어요. 당신이 연주하는 제 삶. 상처받았음을 고백하는 게 약간 자존심 상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주세요. 상처 준 이와 대면할 용기, 증오보다는 용서를 택할 지혜를 주세요. 이번에도 역시 그분은 연주를 잘 하셨어요. 이번에도 기쁨과 평화의 곡이었어요. 그분과 이야기를 맺을 때,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다고, 그 시를 들려주었어요. 동료에게 화가 났다. 화가 났다 말했더니 화가 사라졌다. 원수에게 화가 났다. 화났다 말을 하지 않으니, 화가 더 커졌다. 나중에 쌀국수 한 번 같이 먹기로 했어요.  

2013년 11월 22일

The Other Shore by Gao Xingjian

Son sent me a message: Casted.
I sent him a message back : Expected : )

2013.11.22.

영화 < JFK > (1991)

어느날 저녁 영화가 하나 보고 싶었다. < JFK > 가 떠올랐다. 이미 개봉관에선 오래 전 종영을 했기에 그날 내가 영화를 본 곳은 신촌 전철역 근처에 있는, 철 지난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었다. 극장은 건물 10층에 위치했다. 표를 끊고 들어갔더니 신촌 일대가 내려다 보였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언론사 시험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발짝을 내딛는데 오른발에 채이는게 있었다. 아직도 콜라가 남아 있는 콜라캔이었다. 사람들을 따라서 출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출입문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난 줄에서 옆으로 빠져 나왔다. 사람들이 다 나가길 기다렸다가 무대 앞으로 갔다. 두군데 출입구를 통해서 밝은 빛과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어왔다. 빛과 소음 둘 모두 나 있는 곳까진 미치지 못하고 객석 중간에서 그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내가 서있는 곳은 어둡고 조용했다. 줄에서 빠져나온 난 외로웠다.

영화 말미에 감독은 자막을 통해 이 영화를 진실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난 확인해보고 싶었다. 진실을 다룬 영화를 본 이들의 삶이 얼마나 진실해졌는지. 객석들 사이로 걸으며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료수캔을 찾아 그 수를 헤아렸다. 객석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캔은 전부 마흔여덟 개가 있었다. 이듬해 봄 기독교방송에 입사했다.

2013.11.22.
케네디 사망 50주년 되는 날에
20년 전 내 모습을 추억함.

2013년 11월 17일

대형교회.세습.

며칠 전 장신대에서 청어람 양희송 대표와 명성교회 부목 김하나 목사가 '기독교 생태계, 가능한 이상인가?' 라는 주제로 대담을 했다. (하나의 큰 추세인 대형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로부터 이 주제와 관련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서로 질문,답변하는 자리였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묻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 <담임목사가 교인들의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목회는 가능한가? 왜, 어떻게.> 생태계는 일종의 흐름인데, 관계의 흐름에서 가장 기본이 '이름 부를 수 있기' ,'이름을 부르기 시작함' 이라고 믿기에. 김하나 목사 및 다른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 물음에 무엇이라 대답할지 궁금하다. 공격성 질문이 아니라 정말 <왜와 어떻게>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임. 기사를 보니 현장에서 세습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내 생각에 세습 반대와 더불어 강조해야 할 것은, 세습할 필요가 없는 교회 만들기.오히려 세습을 피하고 싶은 교회 만들기. 권력과 돈과 관련된 '메리트'가 전혀 없는 교회 만들기. 엄청난 대형 교회를 아들 목사가 아니라 제3자 목사가 맡았다고 치자. 아들 목사가 맡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지?

19금적 표현

추워서 털모자쓰고 이불 목까지 끌어당긴채 침대에서 권연경 교수의 짧은 논문 < C.S. Lewis - 사실이 된 신화와 신화적 알레고리>읽고 있다. 지금 이런 말이 나옴. <아슬란[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왕]의 수난이 실제 복음서보다 더 감동을 주는 이유는 "독자들이 방심한 틈을 노리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선험적 강박관념이 오히려 감동을 막기 때문이다"> ( 따옴표 ,Killby 인용). <이렇게 보면 루이스가 채택한 "로맨스"(환상,신화)라는 장르는 "사람들 모르게 얼마든지 신학을 숨겨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위장"(cover)인 셈이다.>(따옴표 ,루이스 편지에서 인용). 이때 떠오른 생각. 19금적 표현도 위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밑바닥, 시장 바닥 용어 등장하는 철학과 신학 관련 글 써오고 있다. (이런! 제일 중요한 침대 위,가 빠졌군.) 다시. 그래서 밑바닥, 시장바닥, 침대 위 용어 등장하는. (생략) 

2013년 11월 16일

『 C.S. LEWIS - 별난 천재, 마지못해 나선 예언자』(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복있는 사람)

(1)루이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 그건 누군가 그의 '팬'이 되려고 하는 것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네 책에 열광하는 것을 너도 알지? " 루이스는 이렇게 답했다. " 그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네." (2) (인용)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던 랍비 라이브는 이런 말을 했다."내가 매기드(Maggid)를 찾는 이유는 그가 가르치는 율법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가 자기 신발 끈을 어떻게 풀고 다시 매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불완전함의 영성』,p.173). 나도 그렇다. 루이스가 동료들과 소설에 대해 토론하며 차를 마실 때 어떻게 찻잔을 드는지, 강연장에서 무신론자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전, 혹은 그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싶다. 그가 어떻게 신발끈을 매는지. 그렇게 지켜보고 동일시를 하다보면 스승을 조금은 닮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3) 루이스는 누군가 자신을 스승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손사래쳤을 것이다. 분명.

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자서전 ' 스티브 잡스' 편 (팟캐스트) - 6




[박샘의 위대한 수다 팟캐스트] 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 - 신동주 PD (듣기 클릭)

지난달 박샘이 아이폰 5S 출시 소식과 동시에 아이폰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신동주 피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방송으로 '스티브 잡스'를 다루겠다고 알려 왔습니다. 그렇게 두 분의 의견이 엇갈릴 것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방송이 진행됐습니다. 

기본적으로 신 피디는 스티브 잡스의 주장과 그의 행동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령,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를 주장했지만 실제로 그의 인문학은 아이폰 제조를 담당하는 팍스콘 노동자의 자살과는 무관했다는 것입니다. 또는 그가 디자인의 혁신을 주도했지만, 그 제조 과정까지 그렇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박샘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샘은 스티브 잡스가 일종의 예술가에 가깝고, 그러므로 그의 인격과 애플의 제품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방송에도 언급되는 '모짜르트'는 실제로 위대한 음악을 만들었지만, 삶은 방탕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잡스의 이중인격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제품은 별도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게 박샘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방송을 들어보시고, 잡스와 애플에 대한 두 분의 엇갈린 평가 속에 청취자분들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_ 팟캐스트 PD 정도령

* 방송 청취 방법
- 에디공 블로그(http://adzero.kr/264)
- 팟빵( http://www.podbbang.com/ch/3471)
- 아이튠즈(http://bit.ly/12Lezw1)
-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쥐약' 어플 설치 후 청취

2013년 11월 10일

『당신의 벗, 루이스』(C.S. 루이스 지음, 홍성사)

노보편집위원으로 있는 후배P가 원고료라고 하며 문화상품권을 갖고왔다. 난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전 다른 후배J로부터 원고료가 만 원밖에 안된단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후배P, "2만원인데요". 덥썩 받았다. 그 돈으로 지하에 있는 교보에 가서 C.S.루이스의 서간집 『당신의 벗, 루이스』(홍성사)를 샀다. 루이스의 편지 중 385통을 담았다. 뒤표지 중에서: "기도할 때 아무 느낌이 없어요", "총각이 숙녀에게 말씀드리려니 좀 이상하기 하지만 (...) 아이를 가지려면 쾌락이 따라야 (...) 하지만 그 쾌락이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지요." (1955년 2월19일). 안타깝지만 톰 라이트(Tom Wright)에게 없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신학이 아니라 문장이 버겁다.

2013년 11월 5일

기독교 방송에서 성을 다루기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 <현대문학>엔 '죽비소리'가 있다. 죽비소리는 현대문학이 97년 7월호부터 새로 마련한 서평란 이름이다. 공동 서평자들의 이름이 서두에 나오지만, 각각의 서평을 누가 썼는지는 모르게 되어있다. 이 죽비소리가 제21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김호경의 <낯선 천국>에 대해 '습작 수준도 안된다, 출판사의 이벤트 마인드가 만들어 낸 상품에 불과하다'라고 썼다.
2. CBS 기독교방송엔 <모니터보고서>가 있다. 내가 제작하고 있는 < 정오의 문화저널 > 8월 21일치 모니터평을 그대로 옮겨보면: “극단 이데아의 작품인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을 소개했는데 (.....) ‘밤일’,‘색마’ 등의 성적인 노골적인 느낌이 강했다. 또한 진행에 있어서 진행자들간의 노골적인 표현에 대한 웃음이 많아 진지함이 떨어지는 인상을 주었다.”
그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난 한 모니터요원을 생각했다. 그는 몇살일까? 남자일까,여자일까? 결혼은 했을까? 그는 ‘진지함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었다’라고 썼다. 지하철이 서울대역을 지날 무렵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진지한 신음’이란 것이 존재할까? ‘그(!) 신음’조차 진지하게 내야 하는 곳, 그곳은 과연 뭐라고 불러야 하는 곳일까?
3. 성폭력과 낙태가 수없이 일어나는 사회. 그리고 그런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성 관련특집 프로그램 또한 수없이 제작되는 우리 사회. 진지한 시그널 음악이 깔리고 ‘특집방송 청소년의 성, 이대로 둘 것인가’ 같은 타이틀을 사회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읊는다. 그런 특집, 방송 백 번 해도 말짱 황이다. 방송 중엔 섹스 이야기를 하지만 방송만 끝나면 클리토리스, 피스톤 운동,주름,신음이란 말 쓰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 이런, 한 시간 짜리 특집 방송이 방금 끝났는데도 우린 조금도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
4. 이항규 박사가 쓴 책 <대학 없애야 우리가 산다>. 대학제도에 대해서 다루다가 불쑥 저자가 한 독일가정에서 점심 먹던 이야기가 등장한다. 15살 된 아들이 밥을 먹다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 클리토리스가 뭐예요?” (시그널 음악도 없었다 ). 다른 친지들도 있는데 그 엄마, 낯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그건 여자의 성기 윗 부분에 있는 아주 예민한 성감대야. 너도 나중에 여자 친구와 섹스 할 때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그런 곳이야. 그렇지만 그 부분의 느낌은 여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기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는 없고, 하여튼 그 느낌에 대해서는 여자 친구와 항상 대화를 해 가면서 그녀의 느낌에 보조를 맞춰가는 게 중요하단다. ” 아들이 짓궂게 또 묻는다. “여자들 모두가 다 똑같은 게 아니라면 그럼 엄마의 경우는 어떤데?” 그러자 그녀, “그건 아버지만 아시는 비밀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되는....”하며 미소로 받아 넘긴다. 이항규 씨의 이어지는 얘기: “그날 점심 시간에 제일 얼떨떨해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5. 26년의 긴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 교회가 나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자연스러움>. 난 그 책에 등장한 그 자연스러운 대화를 난 읽고 또 읽었다. 그 대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다, 맥락이 중요하다.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자신의 몸과 욕망과 쾌감에 대해서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태도가. 그 사십대 후반의 여인을 게스트로 초청할 수있다면. 그 여인을 초청할 수만 있다면!
6. 그날 연극 평론가 이영미 씨와 장주희 아나운서는 완벽했다. 두 사람은 더듬거리지 않았다. 긴장하지 않았다. 두 여자가 자연스럽게 웃는 웃음소리를 스튜디오 안에서 들으며 난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그래, 지금 이 웃음 소리, 몇 개의 성 문제 특집 방송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중이야! 이 웃음 소리! 이 자연스러움! ’
7. 지하철이 사당역을 지나고 있었고, 난 여전히 ‘신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여섯 번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외에 , 여섯 째날 밤과 일곱째 날 아침 사이에 들어가야 할 새로운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듣기에 좋았더라>. 여섯째날 밤 에덴 동산에서 들렸을 <그 소리>가 그분의 귀에 좋게 들렸던 단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건 그 소리가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담과 이브, 요셉과 마리아. 그들이 항상 진지하진 않았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기독교는 밤에 진지하지 않다. (1997.9.1.)
* 피디 4년차, 서른 초반에, CBS 노동조합 노보에 기고한 글.

2013년 11월 4일

마흔 후반에 옷을 벗다

CBS 노보 / 마흔 후반에 옷을 벗다 ( CBS 선교TV본부 선교제작국 신동주PD)
 
1. 인터넷에서 낯선 이와 쪽지를 주고 받다가 야심한 시간에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무엇을 하려고? 번섹? (이라는 단어가 마침내 CBS노보에 등장했다ㅋㅋ) 노노노. 남자들과 <수다>를 떨려고. 그렇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라는 팟캐스트에 6개월째 출연하고 있다. 박샘과 정도령과 신피디 이렇게 3명의 남자가 한 달에 한 번 모여 책 한 권을 놓고 수다를 떤다. 지금까지 내가 정해서 같이 수다 떤 회차 제목을 살펴보면: 1)내가 버린 책들 2) 불완전한 책들 3) 정기적으로 읽는 책들 4) 내가 끊은 남성잡지들 5) 38년만에 다시 읽은 책들 6) 내 직업을 결정해준 책, 되겠다.

2. 휴직을 하고 미국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그랬다. 아빠는 나중에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어. 동네 아이들에게. 다시 복직하자 그게 쉽지 않았다. 그때 팟캐스트에서 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내 신학과 어울렸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는 게 신이 기뻐하는 일이다, 라는 신학. 그래서 팟캐스트 녹음을 시작했는데 하면서 배우고 있는 것 한 가지는, 불완전한 나를 포장하지 않고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 나는 <완벽한 글>로만 - 그러니까 완벽하게 컨트롤된 상태에서만 - 사람들을 만났는데 <녹음>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민망한 포즈가 많이 생기는지 ㅠㅠ. 녹음 끝내면 한 이틀은 혼자 있어도 민망하다. 그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 “괜찮아, 괜찮아.도덕적인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뭐ㅠㅠ 첫 녹음 끝내고 쓴 일기 보니 ,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할까”. 4, 5회 끝내고 쓴 글 읽어봐도 왜 난 이렇게 말을...”. (잠깐. 난 지금 정말 잘 못하는 걸 하고 있구나! 그럼 이 팟캐스트,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건데! ㅠㅠ ) 하나, 이렇게 <잘 못하는 걸>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 <이상하게> 누군가 위로를 받았다고 연락을 해주어서. 연락은 주로 메시지로 온다. 주로 여성이다. 흠흠. 마흔 후반에 불완전한 내 솔직한 모습 드러내는 걸 배우고 있다. 불완전함도 도움이 된다는 걸 배우고 있다.
 
3. 녹음을 끝내면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제일 인상적인 댓글을 단 사람에게 내가 갖고 있는 책 한 권 < 내가 우편료 내서 > 보내주는 것. ㅋㅋ 어떤 때는 28천원짜리 책- 지금은 더 이상 안 보는 - 을 발송하기도 한다. 이상하게 그러고 싶었다. 누군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기쁘겠는가!) 이전에 라디오PD시절 취재하다가 한 엘리베이터에서 발견한 글귀. “오늘, 미친척 하고 친절을 베풀라”. 십 수년 전에 본 그 말을 요즘 자주 생각, 실천(?)하고 있다. ㅋㅋ 우리 CBS 선후배 동료들의 불완전함이 - 완전함이 아니라! - 우리 이웃을 놀라게- 그러니까, 기쁘게 -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다같이 완전함의 옷을 벗어버려요! 더 많은 민망함을 경험해봐요! ().
 
(각주)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는 팟빵과 아이튠즈에서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된다. 총신대에서 신학, 한양대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한 박샘박준용 씨(사회), 중앙대 문화연구학과에서 정신분석학 관련 논문을 쓰고 있는 정재원 씨(PD),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 대중영화의 상호 알리바이체계 : 동시대 한국영화의 상대주의적 소통방식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청어람아카데미 영화이론 강좌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최은 영화평론가(게스트), 그리고 비쥬얼(^^;;)의 신모 피디(게스트) 출연하여 매주 고전, 연극, 영화, 화제의 책을 놓고 수다 떨고 있다. 이 수다(www.adzero.kr)는 방송 후 기독교웹진 크로스로(www.crosslow.com)에 텍스트로 실리고 있다.
 

2013년 11월 3일

나는 새디스트

오늘 결국 못 참고 강남에 갔다. 밖에 서서 출입구를 쳐다봤다. 들어갈까. 들어갔다. 첫경험. 실내 풍경이 낯설었다. 사진을 찍어도 된다 해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30분 넘게 둘러보고 그냥 나오려는데 그녀가 말을 걸었다.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그린비, 강대진 지음). 2만천원 정가책을 9천4백원에. 알라딘중고서점 강남점. 지금 그녀와 함께 침대 위. 난 새디스트. 모든 여성을 난폭하게 다룬다. 마구 긋고 쓰고 접는다. 내가 함부로 대하지 않는 여성은 딱 한 명. 성경. 어떤 줄도 치지 않는다. 줄은 치면, 줄 친 부분을 읽다보면 옛 기억과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