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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2일

5년만에 나간 교회

오늘 난생 처음으로...이런 질문을 맘 속으로 했다...그날 밤에....예수님이 빵을 부수셔서 제자들에게 나눠 줄 때...베드로는 그 빵을.... 한 손으로 받았을까 두 손으로 받았을까...오늘은 교회에 일찍 도착했다. 처음 경험하는 성공회식 예배. 찬양과 기도,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성찬식 차례가 되었다. 줄을 섰고 내 차례가 되었다. 떨렸다. 내가 신부님이 건네시는 얇은 떡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갑자기 신부님이 떡을 든 당신의 손을 뒤로 빼셨다. 넘 놀랐다. 이어서 신부님이 " 두 손으로 받아야지" . 아...무안...ㅠㅠ "오늘 처음인가?" "세례는 받았고? " 엄청 정중한 태도로, 왼손을 오른쪽 팔꿈치에 댄 채, 조심스럽게 오른 손으로 떡을 잡는 중이었는데...ㅠㅠ 처음 알았다. 떡을 받는 더 높은 단계의 예법이 있다는 것을. 어렵게 받은 떡을 , 다른 사제가 들고 있는 포도주에 조금 적신 다음 입에 넣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ㅠㅠ ㅋㅋㅋ ,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아마 내 목덜미는 포도주보다 더 붉어졌을 것이다. 성찬이 끝나고 신부님이,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 떡을 받을 때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리고 받는 거라고 설명을 해주셨다...자리에서 혼자 맘 속으로 중얼거렸다. 몰라서 한 실수니까 괜찮아. 모르고 그런 건데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정말 부끄러운 건, 떡을 한 손(?)으로 받은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예수님의 몸과 희생을 가볍게 받는 거야.(그래서 부끄럽다). 예배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데 아까 그 신부님이 인사를 하셨다. 어디 사시나요. 식당에서 점심 먹고 가세요. 누가 이 분좀 식당으로 안내해 주세요. 아, 오늘은 제가 선약이 있어서. 담주에는 먹고 가겠습니다. 이상, 5년 간의 가나안(=안나가) 생활 마감하고 다시 교회를 찾은 첫날 경험한 앵글리칸처치 문화의 극히 일부 -.-
ps. 큰 애랑 통화했더니 웃는다. 아빠는 예전 때문에 성공회 나간다고 했는데 그 예전에 뒤통수 맞았네 ㅋㅋ 엄청 무안했겠는데 ㅋㅋㅋ 작은 애랑 통화하며 담주에는 새신자반 같은데 들어가서 성공회 예전을 배워볼 계획이라고 했더니, 오 아빠 무척 적극적인데 !

2015년 11월 16일

8년 전에 주신 말씀

1. 8년 전 아내가 두 아이(중1, 초5)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 무렵 나는 우리 회사 TV국 외주특집부 소속이었는데, 독일 베타필름에서 만든 <더 바이블>이라는 드라마 시리즈를 수급하여 번역과 더빙 과정을 거쳐 방송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총 25명의 성경 인물을 25편에 담은 드라마였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브라함 편이었다. 드라마상에서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낳은 뒤 많이 <달라졌다>. 화와 짜증을 쉽게 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인데, 난 이 묘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짜증내는 아브라함이라니.) 어느날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주인님, 요즘 이전과 다르게 많이 날카로워지신 거 같아요.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종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은, 미안해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엘리에셀, 미안하네. 내가 요즘 내가 생각해도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졌어. 이제 내가 나이 많아 언제 하나님 앞으로 불려갈지 모르는데, 저 어린 이삭에게 내가 죽기 전에 가르쳐줘야 할 게 아직도 너무 많아. 별자리 읽는 법, 사냥하는 법, 전쟁에서 싸우는 법....요즘 내가 무척 쫓기는 기분이네.” 아브라함의 그 초조함이 마음 속 깊이 이해되었다. 당시 나 또한 아브라함처럼 시간과 불안에 쫓기고 있었다. 출국일은 얼마 남지 않았고 아이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어렸다.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의 무게까지 잰다면 비행기는 뜨지 못했을 것이다.

2.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살 게 된 곳은 오래된 학교 기숙사였다. 원래는 군대 막사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아내와 두 아이의 입학 수속을 마쳤고, 이제 난 홀로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두고 떠나는 게 쉽지 않아 눈물을 많이 흘렸다.

3. 캔자스는 돌풍으로 유명해서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에 무척 춥다. 출국 일을 며칠 앞두고 빈 기숙사에서 슬픔에 잠겨 혼자 시편을 읽고 있었는데 강한 바람에 나무로 만든 현관문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내 마음도 그렇게 흔들렸다. 문틈으로 찬 바람이 많이 들어왔다. 성경은 내가 한국에서 갖고 간 표준새번역 성경이었고 그날은 147편을 읽을 차례였다.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왔다. “주님이 네 문빗장을 단단히 잠그시고, 그 안에 있는 네 자녀에게 복을 내리셨다.” 그날 낯선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너무 안심이 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 신음과 기도를 들으시구나, 하나님은. 내 인생 가장 슬픈 순간 중 하나를 지나고 있었는데 주님이 그렇게 내가 웃을 수 있게 해주셨다. 성경을 읽는 내내 현관문은 덜컹거렸고 난 그 소리가 좋았다.

4. 지켜주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8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나님의 문빗장 안에서도(!) 아이들은 크고 작은 아픔을 여러번 경험했다. 지켜주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어쩌면 그 가운데 여럿은, 내가 8년 전에 읽었던 그 똑같은 시편을 읽었을 것이다.) 요즘은 시편 147편을 읽을 때마다 양가감정에 빠진다. 비록 내가 큰 힘을 얻은 말씀이긴 하지만, 어쩌면 나는 지켜주신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맘이 든다. 지켜주겠다. 아멘.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걸까.  

2015.11.16.

2015년 11월 1일

한 편의 시, 두 개의 번역

한 편의 시, 두 개의 번역
'The Apologist’s Evening Prayer' by C.S.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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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가의 저녁기도>
구원하소서. 제가 당한 쓰라린 패배들로부터, 아니,
제가 거둔 듯 보이는 모든 승리들로부터 더욱!
당신을 위한답시고 쏘아댔던 저의 영리한 말들,
청중은 웃었지만, 천사들은 울었지요.
표징을 보이시지 않는 당신이건만, 당신 신성을 입증해보이겠다며
제가 해보인 모든 증명들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
인간의 사상이란 그저 지어내는 말들일 뿐, 저로,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빈약한 이미지에 불과한 것들을 믿고 의지하지 말게 하소서.
오, 온당한 침묵이신 주님, 저를 엄습하시어, 저를
제가 가진 사상으로부터, 당신에 대해 가진 사상으로부터도 자유케하소서.
좁은 문과 바늘 귀의 주님,
잡동사니 같은 제 생각들을 모조리 치워주시어,
저로 그것들과 더불어 멸망 당하지 않게 하소서.
(번역: 이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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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가의 저녁 기도>
저의 온갖 초라한 패배와 오, 무엇보다
제가 거뒀다고 생각하는 온갖 승리와
당신을 대신한답시고 키워낸 영리한 논리,
청중은 웃기고 천사들은 울린 그 논리와
당신의 신성을 뒷받침하는 저의 온갖 증명으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 표적을 주시지 않는 주여.
생각은 동전에 불과한 것. 제가 당신 대신
당신의 얼굴이 새겨진 그 닳고 닳은 이미지를 신뢰하지 않게 하소서.
오 아름다운 침묵이시여, 이곳에 임하여 주소서. 오셔서
당신에 대한 생각을 비롯한
제 모든 생각에서 저를 자유케 하소서.
좁은 문과 바늘귀의 주인이시여,
제 안에서 모든 천박한 이론들을 제하시어 제가 멸망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번역: 홍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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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ologist’s Evening Prayer' by C.S.Lewis
From all my lame defeats and oh! much more
From all the victories that I seemed to score;
From cleverness shot forth on Thy behalf
At which, while angels weep, the audience laugh;
From all my proofs of Thy divinity,
Thou, who wouldst give no sign, deliver me.
Thoughts are but coins. Let me not trust, instead
of Thee, their thin-worn image of Thy head.
From all my thoughts,
even from my thoughts of Thee,
O thou fair Silence, fall, and set me free.
Lord of the narrow gate and the needle’s eye,
Take from me all my trumpery lest I die.
(출처: 청어람아카데미)

어젯밤에는 지인과 댓글로, 오늘은 아들과 전화로 이 시 이야기를 잠시 했다. 이상하게 이 시 처음 읽는데 힘이 났다. 착각하지 말고 본분과 실상을 바로 알라는 시,인데 왜 힘을 줄까. 피조물에게 그의 피조됨을 제대로 알려주는 건 힘을 빼는 행위가 아니라 힘을 주는 행위라는 생각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