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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회사 동료와 함께 5시 쯤에 종교인 동조 단식장에서 단식 중이신 방인성 목사님을 찾아뵈었어요 ^^ 방목사님은 그저께 뵈었을 때와는 달리 조금 피곤해보이셨어요. 오늘은, 저희 신학펀치의 패널이신 권연경 교수님도 함께 단식 중이셨어요. 어제는 녹화하면서, 오늘은, 단식장에서 뵈니 반가왔습니다. 권교수님과 회사 후배와 셋이서 5시반 경부터 시작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 시작하고 바로 한 여성 가수분이 노래를 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는데, 가사 시작하자 마자 갑자기 가슴이 찡하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길이 안 보인다면 제대로 걸어온거야". 이 가수분과 노래제목이 넘 궁금해서 범국민대책위에 페북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은 못 받았어요.ㅎㅎ 아시는 분 있으면 부디 알려주세요 ^^ 집회 마치고 귀가할 때 지하철을 잘못 타 난생 처음 와보는 청구 라는 곳에서일단 내렸어요. 저도 방향 관련 뇌부위를 100% 쓰고 싶어요 요한슨처럼요.어느 불꺼진 편의점 앞에서 ㅠㅠ

2014년 8월 21일

PD와 조연출

오늘 신학펀치 피디와 조연출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와서 
피디는 조연출에게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심부름 하나만 해줘. 이 책좀 발송해줘. 
주소는 안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놨어. / 피디는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 지하에 있는 교보에서 
폴 투르니에의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샀습니다. 포스트 잇에 조연출의 주소를 적었습니다. 
마지막에 조연출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마지막에 생일 축하해 ㅋㅋㅋ 라고 적었습니다 ^^

2014년 8월 14일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중 제3장과 제4장을 (다시) 읽고.

1. 메스로 환자의 배를 가르고 잘라내야 할 부위를 찾는다. 조심스럽게 소장을 들춰내자 곪은 부위가 눈에 띈다. 나직한 목소리로 “가위”하며 의사는 장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간호사 쪽으로 손을 내민다. 간호사가 가위를 건넨다. 의사는 날카로운 수술용 가위로 소장을 삭둑 잘라낸다. 날카로운 가위날에 의해 소장이 잘려나가는 그 절삭감은 의사의 손에 <그대로> 전달됐다. 이상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짧게 스케치해보았다. 하루에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 수만 건씩 벌어지는 이런 수술 장면은 마이클 폴라니(1891~1976)가 자신의 <인식론>을 구축하며 제시한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다. 폴라니는 상기 수술실에서 의사가 경험하는 인식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잘라내야 할 <장기에 대한> 인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장기를 자르는 <가위에 대한> 인식인데 , 폴라니에 따르면, 의사는 장기는 초점적(focal)으로 인식하고, 가위는 부차적(subsidiary)으로 인식한다.

2. 이런 <초점적-부차적 인식>의 이중구조는 실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망치로 못을 박을 때 망치를 쥔 손바닥에 전해지는 정보를 통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건 벽에 박히(고 있)는 못의 상태이지, 현재 쥐고 있는 망치 손잡이의 질감이 아니다. 우리는 못을 초점적으로 인식하고 망치의 손잡이를 부차적으로 인식한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짚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팡이의 손잡이는 부차적으로, 지팡이 끝을 통해 전달되는 지표면의 상황은 초점적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만약 상기 두 경우에서 초점적-부차적 인식 대상을 서로 뒤바꾸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즉, 망치 손잡이와 지팡이 손잡이를 부차적이 아니라 초점적으로 인식하고, 못과 지표면을 초점적이 아니라 부차적으로 인식하려 한다면? 의사가 수술실에서 장기를 부차적으로, 가위를 초점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못질은 빗나가고, 걸음걸이는 불안해지고, 장기는 제대로 절삭되지 못한다..

3. 폴라니는 여기서 우리가 가위를 초점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의사가 가위의 성능을 의심하며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 즉, 초점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 결함을 발견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나 폴라니가 여기서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의사가 환자의 장기를 초점적으로 인식하며 절삭이라는 의미있는 행동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부차적 인식 대상인 가위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은『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레슬리 뉴비긴 지음, IVP)에서 마이클 폴라니의 인식론을 소개하면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제대로 집어내고 있다. (1) 의사들은 학생시절 수많은 의료 기구들의 사용법을 배우는데 “처음 배웠을 때에는 그 기구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숙련된 외과 의사가 된 다음에는 그것을 <암묵적으로> 의식할 뿐이고, 의식의 초점은 그것을 통해 발견하는 것에 맞추어질 것이다”. (2) 한편 의사가 가위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은 그 기구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그것이 적절한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을 버리고 다른 기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한 그것을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것을 신뢰하는 동시에 의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그것을 <무비판적>(a-critical)으로 사용한다. (p.74~75에서 인용했고 꺽쇠는 내가 첨가했다.)

4.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불기시작한 ‘기독교세계관운동’을 잠시 언급하자면 이렇다. 나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을 <‘세계관’을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초점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의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하나 <의미있는 대화>는 자신의 ‘기독교세계관’조차도 <부차적>으로, <암묵적>으로 취급하면서, 오직 상대와 그리고 세상과 나누는 이야기를 <초점적으로> 주목할 때 - 그런 모험(?)을 감수할 때 - 비로서 가능하다. 그 순간은, 내가 나의 ‘기독교세계관’과 상대의 ‘비-기독교세계관’에 무비판적(a-critical)이 되는 순간이다. <이야기에만 주목하는 순간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무비판적인 순간에 내 기독교가 상대의 비기독교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이미 <완벽한 안전을 제공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이 있다는 환상에 오염된 생각>이라고 본다. 세월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어떤 오염은 <어떤 성숙>이다.

서플먼트

1) 나는 위에서 마이클 폴라니의 방대한 사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개념 중 하나를 간략하게 <스케치>했다. 다시 읽어보니 스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캐리커처처럼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 못지않게 내 속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폴라니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천구백 년대에 태어난 현대인의 어리석은 교만이었겠지만 난 한때 천팔백 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오래됐다고’ 무시하고 깔봤다. C.S.루이스(1898~1963)와 마이클 폴라니(1891~1976)를 읽으며 나의 이런 교만이 깨졌다. 

2) 폴라니의 책 가운데 세 권이 우리말로 번역됐는데 - 『개인적 지식』(Personal Knowledge),『지적 자유와 의미』(Meaning),『과학,신념,사회』(Science,Faith,And Society) - 세 번역본 모두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번역서를 모두 읽었으되 이해를 할 수 없어 다시 영어로 읽은 경험이 있다.) 폴라니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추천하는 순서는 이렇다. 먼저 레슬리 뉴비긴의『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제3장과 제4장을 읽은 뒤에 영문판 『Meaning』을 읽기. 그의 주저 『개인적 지식』은 입문자가 읽기에는 벅차다. 『Meaning』은 폴라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인데 언어, 예술, 종교, 과학, 사회에 대한 그의 방대한 사상이 잘 요약돼 있다. 13장으로 이뤄져 있고 난 13번의 절정을 경험했다. 

2014년 8월 2일

『정통』을 (오래 전에 두 번) 읽고.

1. 조우(遭遇)한다,는 말이 있다. 우연히 서로 만난다는 말.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 속 주인공 브라운 신부(가톨릭)와, 내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C.S. 루이스(개신교)가 그렇게 <조우>하는 순간을 목격한 적 있다. 루이스의 인터뷰 중에서: “워트: 어떤 기독교 작가들이 교수님에게 도움을 주었습니까? 루이스: 제게 가장 큰 도움을 준 현대의 책은 체스터튼의 『영원한 인간』입니다. 다른 책으로는 에드윈 비번의 『상징과 믿음』,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 그리고 도로시 세이어즈의 희곡들이 있습니다. (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 중 '16. 질의 응답' 중에서)”. 내가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던 체스터턴이 기독교 작품도 썼다니! 브라운 신부와 루이스가 G.K.체스터튼 안에서 이렇게 조우했다.
2. 『정통』(G.K.체스터튼 지음, 상상북스)을 읽으며 여러 번 웃음을 터트렸다. 내 웃음, 내 고정 관념이 깨지는 소리. <미친 사람에 대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은 그의 행동에 이유가 없다는 소리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 이유가 없는 행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취하는 사소한 행동들이다. 가령, 걸을 때 휘파람을 부는 행위나, 막대기로 잔디를 내리치는 행위나, 신발 뒤꿈치로 차는 행위나 손을 비비는 행위 같은 것들이다. 행복한 사람이라야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지, 병든 사람은 그런 한가한 짓을 할만큼 강하지가 않다. 미친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처럼 이유가 없는, 태평스러운 행동들이다. >(p.51, 제2장 ‘미치광이’ 중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나서 체스터튼은 이성과 믿음과 신앙의 관계로 넘어간다. <쑥 들어간다>. 당신과 내가 습관적으로 견지해온 <나태한 신념> 속으로. 그래서 필립 얀시는 『정통』이 자신의 영적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 했고, C.S.루이스는 혹 누군가 무신론자로 남고 싶다면 체스터튼의 책을 경계해야 한다 했다.
3.『정통』은 두 번 읽었다. 첫 완독은 강원도 예수원에서 했다. 처음 가 본 태백, 길눈 어두운 내가 간신히 예수원 가는 길목으로 들어섰을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내가 제작하던 <성서학당>에 고정 강사로 출연하고 있던 K교수였다. 어떤 일이신가요? 네, 제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하차해야 할 것 같아요. 쉼을 얻으러 가는 길에 걸려온 고정 출연자의 하차 소식.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했다. 대신 제가 괜찮은 사람 한 분 추천해 드릴께요. 아, 누군가요? 권연경 교수라고 계세요. 어떤 분이신가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짙은 안개에 가려 아직 예수원은 보이지 않았다.
2014. 8.2.
신동주
서플먼트
1) 체스터튼의 『Orthodoxy』는 2003년에 『오소독시』라는 제목으로 이미 한 번 나온 적 있음. 그 책으로도 읽으려 한 적 있으나 번역 때문에 중간에 포기. 완독은 홍병룡이 번역하고 상상북스에서 출간한 『정통』으로 했다. 당연히 후자를 추천한다. 2011.7.19 예수원에서 1독을 했고, 2011.8.29.에 2독.
2) 체스터튼은 ‘역설의 대가’라고 불리는데 역설과 비유의 진하기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루이스는 투샷, 체스터튼은 에스프레소, 톰 라이트는 - 굳이 여기에서까지 디스를 하다니, 나도 참 - 다 마신 커피 잔에 남은, 얼음 녹아 생긴 미지근한 물.
3) 필립 얀시에 따르면 체스터튼은 “100권도 넘는 책을 썼는데, 그 대부분을 비서에게 받아쓰게 하고 초고를 거의 고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작기 얀시, “몇 주 동안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아, 그래서 나에게도 여비서가 있어야 돼! 강추한다.
4) 그렇게 권연경 교수와 조우했다.

2014년 8월 1일

낸시랭의 신학펀치 공개방송 D-Day








오늘 프로그램 공개방송이 있었다. 페북에 참석자들의 기념 사진이 올라왔다. 이런! 정말 정신이 없어 스탭끼리 기념 사진 찍는 것도 잊었다. 한 참석자가 올린 이 사진이 강사 엠씨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 될 것 같다. 고생한 조연출과 작가와도 한장 찍었어야 했는데! 공개방송을 준비하던 어느 날 저녁 사진으로 대신 기념을 삼는다. 오늘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그분들의 - 우리들의 - 질문이 중요하다. 신학펀치는 거들뿐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한다. 신학펀치는 답이 아니고 답을 주지 않는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신학펀치의 답>이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