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21년 12월 28일

300년 전의 나

만56세가 되는 오늘 아침에도 난 장모님댁 뒤에 있는 불곡산을 오르며 내가 3백년 전에 태어났다면 <살기 위해> 불교 혹은 무속의 '어떤 말(가르침)'을 간절히 붙잡으려 했을까 생각해봤다. 종의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미천한 내 귀에까지 다다른 말은 가르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그런 수준의 것이었을 것이다. (내용과 분량과 전달 방식 모두에서. 전달자는 아마 주막집 주모나 머슴, 굿판의 무당이기 쉬웠을 것. 술주정에 가까운 형식을 통해. ) 주인으로 부터 모진 고문을 당할 때 내가 떠올린 말은 '마음이 정하면 악귀도 어쩌지 못한다' 였을까. (그 말은 내게 힘을 주었을까, 무력감을 주었을까). 자기 것 챙기기에 바쁜 하루하루 삶 속에서 내가 나를 다잡기 위해 가끔이나마 떠올린 말은 '베푼대로 돌아온다' 정도였겠지? (나는 불곡산 정상에 있는 정자에 도착했고 내 상상은 이어진다.) 정상에 있는 암자에 다다른 나는 노승에게 주인 마님이 전하라한 서찰을 건네고 돌아서기 전에 물 한 잔을 얻어 마신다. 왠일인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노승이 말을 건넨다. "깊은 산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무엇을 보았느뇨?" 내가 무엇을 보았을까? 앞길이 보이지 않는 종의 인생길. 나는 무엇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스님. 오는데 새 한 마리가 나무를 쪼고 있는 걸 봤습니다. 딱딱딱딱 나무를 쪼는데 유심히 바라보니까 제가 하는 망치질과 달랐습니다. 저는 못대가리를 망치로 한 번 치고는 다시 치기 위해 망치를 들어올려야 하는데 제가 본 새는 신기하게도, 조금의 시간 틈도 없이 나무를 딱딱딱딱 연이어 쪼더라구요. 신기해서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그러다가 새가 갑자기 멈추고는 더 깊은 숲으로 날아갔습니다. 다시 가던 길을 가는데 얼마쯤 걷다가 작은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를 바라보던 그 30분, 나는 나를 완전히 잊고 있었구나. 참 오래간만에 평안했구나. 그런데 스님, 평생 새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거겠지요?" (2021.12.28)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폴 니터 지음, 클리어마인드) #2012년4월8일에 1독. 지금 2독 중. #300년 전의 나와 다르게 경전과 주석을 양 손에 쥐고 있는 지금의 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올 해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