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5년 4월 14일

아들의 광고

아들이, 배역 하나를 따서 광고에 출연하게 됐는데, 촬영을 마친 뒤 돌아와서, 아빠, 왜 배우들이 간혹 유명해지면 거만해지는지 약간 알 수 있었어, 난 광고 처음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나한테 개인 어시스턴트가 붙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더라구, 그리고 나는 그 얘기를 했다, 내가 성서학당 제작할 때, A 목사님 이야기...대기실에서 목사님 커피 한 잔 드릴까요, 했는데, 아니예요, 내가 타서 마실게요, 누가 타주는 거 자꾸 마시다보면, 내가 스포일될 거 같아서....(영어 쓰셨다 ^^;;)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말씀. 30초짜리 광고인데, 아들 장면은 마지막 1초이다...1시간 분량 되는 배우가 되었을 때에도 같은 마음을...https://youtu.be/sz0H9JN5bvA

 

2015년 4월 7일

위플래쉬를 보고

초등학교 2학년 때 토끼를 한 마리 키웠다. 토끼를 들 때 - 아기를 안 듯 - 두 손으로 토끼를 안아 올리면 아버지는, 두 귀를 잡는 거야, 토끼를 들 때는, 하셨다. 그 후로 살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는 두 마리 다 놓친다, 라는 말을 십만 번 이상 들었다. 그때마다 난 속으로, 아니야, 아니야, 시청률과 공익성, 실력과 인격, 카리스마와 친절,은 두 마리 토끼가 아니야. 한 마리 토끼에 달려있는 두 개의 귀야. 두 귀를 한꺼번에 잡는 거야, 토끼를 들 때는. 어느 날 여름 토끼가 목 말라 하는 거 같아 물을 많이 줬더니 토끼가 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토끼에겐 물을 주는 게 아니야, 당근과 채소 속에 수분이 이미 많아, 하셨다. - 위플래쉬를 보고 (1).

그쯤 했으니 됐어, 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둘 있으니, 한 명은 위플래쉬의 음악 선생이고 또 한 명은 그리스도입니다. 둘의 관심 영역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둘 모두 명확한 목표치가 있고 그 목표치에 이르기 전까지는, 만족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그 분은, 예를 들어 제가 매일 오피에 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오늘 제가 자주 가는 사이트 오유에서 ‘오피’라는 말을 처음 접했는데 그 뜻은 오피스텔 성매매.) 분명, 가지마, 라고 말씀 하실 것입니다. 시무룩하게, 알겠어요, 이제 안 갈께요, 됐죠? 그 분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십니다. 잘했어. 기쁘구나. 이제 컴 하드에 있는 동영상을 모두 지울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너에게 더 큰 쾌락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 (정말)시무룩하게, 알겠어요, (약간 짜증내며) 이제 됐나요? 수고했다, 나랑 같이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자꾸나. 그런데 그러기 전에 이제 마지막으로 너의....싫어요! 라고 저는 외칩니다. 싫어요! 제발 그만 하세요! 그 분은 제 비명과 항변을 묵묵히 들으십니다. 전 그에게, 나는 인간이예요, 신이 아니라구요. 하나 며칠 뒤 다시 이 주제로 대화를 할 때 제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져있었습니다. 난 네가 지고 있는 짐을 바꿔주고 싶어서 그래. 내가 갖고온 짐은 보기보다 무겁지 않아. 전 제 맘 속에서 일어하는 변화에 놀랍니다. 짐을 바꿔 져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저는 커피를 마시다가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의 입가에는 제가 처음 보는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그 미소는 최근 개봉한 한 영화에서 음악 선생이 마지막에 지었던 미소와 좀 달랐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그건, 너 아니어도 가능성 있는 애들 많아, 하는 대신.... - 위플래쉬를 보고 (2).

오래 전에, 남성다운 건 건 뭘까, 라는 생각을 하며 300을 봤다. 그래서(?), 안 나오는 장면이 뭘까,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300에서 한 번도 안 나오는 장면은, 밥 먹는 장면이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게 남성성을 해칠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에선 지겹도록 나온다. 싸우러 가기 전에 먹고, 싸우고 와서 먹는다. 각 영웅에게 주어지는 고기의 부위까지 설명한다. 위플래쉬를 보는데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도 안 나오는 장면이.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이 없었다. 자기가 하는 음악 때문에 행복해하는 학생이 한 명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음악 영화에서 - 아니, 음악 인생에서 - 웃음과 미소는 고뇌와 좌절만큼이나 - 왜 고뇌와 낙심과 좌절이 없겠는가, 완성을 추구해가는 삶에서. 그게 음악이든, 신앙이든, 성애이든, 흑흑흑 - 콘크리트한 것이다. (근데 왜 영어를 썼을까.) 내가 행복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음악을 하고 싶어, 라는 말은 한가한 소리가 아니라 건물의 철심이고, 뼈대이다. 피 흘리는 손만큼이나 미소 짓지 않는, 경련하는 입술도 섬뜩하다. 미소 없는 인생과 음악은 무너진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꿈)이 그 선생 밑에서 무너졌을까,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누군가 뺨을 맞으며 배운 음악을 나는 듣고 싶지 않다. - 위플래쉬를 보고 (3).

2015년 4월 6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3

첫 취재지는 성공회대성당으로 정했다. 6.10 항쟁 때 민주 시민들이 모였던 곳. 그때도 종을 쳤다고 들었다. 제대로 된 종소리와 교회 목소리,를 취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문을 보내 취재 허락을 받고 성당을 찾았다. 신부님의 안내를 받으며 종탑의 나선형 계단을 올가가는데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성적 흥분을 느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비밀한 곳. 너무 맘에 들었다. 종 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고 해서 일단 인터뷰부터 하기로 했다. 종탑 위에서 신부님을 인터뷰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이 근처를 지날 때, 지금 저기 저 종탑 종소리 들리지, 옛날에 아빠가 저 종탑에서 인터뷰 하면서 종탑 나무 틀 사이에 몰래 아빠 볼펜을 하나 숨겨 놨어, 지금도 그 자리에 아빠 볼펜이 있는 거야, 하면 아이가 얼마나 신기해할까. 신부님이 딴 곳을 볼 때 몰래 내 모나미 볼펜을 종을 매단 나무 틈 사이에 살짝 숨겼다. 가슴이 막 뛰었다. 신부님을 따라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차, 싶었다. 저 거대한 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엄청난 소리로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 바로 옆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는 내 볼펜은...그 소리에 영원히 시달리게 되고...벌써부터 내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볼펜을 이대로 놔두고 갈 수 없어, 이대로 가면 난 밤마다 종소리에 시달릴 거야...“저 신부님...” “왜 그러시나요?” “종의 구조를 다시 한 번 봐야 제대로 된 원고를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친절한 신부님과 함께 다시 한 번 긴 나선형 계단을 거쳐 종탑에 올랐다. 종 구조 살피는 척 하다가 신부님 몰래 볼펜을 다시 꺼냈다. 요즘도 시청 앞 대성당을 근처를 지날 때면 그 때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볼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