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 쎈텐스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학교에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장 칼뱅이 정착시킨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전통은 바로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이 책은, 이제는 은퇴한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신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드렸던 기도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니, 안 봐도 어떻게 했을지 뻔한 수업 시작 기도들을 책으로 냈다고?" 였다). 그리고 책을 폈다. 첫 기도는 이렇게 시작 됐다 : " 우리는 / 거룩하신 당신을 통제하기 위해 / (...) / 경건한 행위를 하고, 교리를 만들고 ... " .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가지 이유에서. (어떻게 이런 공중대표기도가 있을 수 있지? 그리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묘사했지?). 이 첫 기도문 끝에는 <구약학 수업, 1998.10.15>이라는 메모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 밑에, 내가 <따라 읽으며 기도드린> 날짜를 적었다. <특집부에 와서, 2021.1.12>. 올해 들어 <작은 전통>을 하나 만들었다. 회사 오면 일 시작하기 전에 이 기도문을 한 편씩 읽는 것. 얼마전 내가 2월22에 읽은 기도는, 월터 브루그만이 1998년 1월8일 수업 중에 드린 <끝없이 추락할 때>라는 기도였다. 기도문을 읽고 내가 읽은 날짜를 적었다. <2021.2.22.월. 지옥같은 금,토,일을 보내고 와서> . 기도는 이렇다. "주님, 우리에게는 몰락이 익숙합니다 / 삶의 중심을 대적하며 우리 자신을 파괴합니다 / (...) / 주님, 우리의 중심이 되소서 / 위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게 하소서 / 당신의 선한 질서에 저항하지 않게 하소서 (...) ". 나는 '위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게 하소서'를 읽을 때 '절망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바꿔 읽었다. 그래, 힘들지만, 과장하지는 말자. 고통스럽지만 과장하지는 말자. 그런 과장은 거짓말이 될 테니까. 내가 용기만 낸다면 다시 일어설 여지는 항상 있는 것이니까. 당신의 선한 질서에 저항하지 않게 하소서. (일주일이 지났고, 이제 다시 주말을 맞는다. 퇴근길에 기도문을 챙겼다).
2021년 2월 26일
2021년 2월 24일
『몸이라는 선물』 (폴 브랜드, 필립 얀시 지음, 두란노)을 읽는 중에
1. (인용)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장로교 목사 프레드 로저스가 미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로저스 아저씨네 동네>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로저스는 (...) 소품이나 첨단 장비를 별로 쓰지 않았다. 그저 마음씨 좋은 아저씨 인상을 풍기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다 (...) 그는 곧 유명해졌고 상도 많이 받으면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 강연도 시작했다. 그가 강연마다 어김없이 넣는 순서가 있었는데 바로 청중에게 2분 동안 침묵하며 각자 자기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을 한 사람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 그는 말했다. "매번 사람들이 [제 강연에서] 기억하는 것은 그 침묵의 시간입니다". (...) 한번은 백악관에서 열린 고위급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동 문제와 관련해 딱 8분 발언 시간을 얻었다. '짧디짧은 이 귀한 시간의 4분의 1을 꼭 침묵에 할애해야 할까?'.... " (그는 망설인다) (8분 중 2분 침묵은 오버일까?) (여기까지).
2021년 2월 22일
『제일신학』(케빈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IVP )의 제1장을 읽고.
1. 좋은 스테이크는 다 먹지 않고 한 입만 먹어봐도 알 수 있듯이, 『제일신학』(케빈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IVP )은 제1장만 <씹었는데도> - 논문집이라서 말 그대로 <씹어야> 한다 - <일등급 한우>로 만들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미국 신학자의 글은 한우에 비유하는 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라! (ㅋㅋ)) 밴후저는 각 시대마다 철학에서는 중요한 핵심 질문이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고대에는, 실재의 궁극적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가장 중요했는데 (예: 만물은 물로 돼 있다, 아니다, 공기다, 아니다, 불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만물이 '존재'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는데 여전히 사용하는 많은 범주인 실체(substance), 본질(essence), 실존(existence) 등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실재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 [즉, 형이상학이] 고대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 '제1철학(first philosophy)'이었다. 우리는 한 시대의 제1철학이 무엇인지를 확인함으로써 그 시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 12세기와 13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업과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중세의 많은 신학자가 형이상학을, 혹은 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1신학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p.28-29). 지적 허세 있는 나,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축약본까지 사서 읽었지만 아퀴나스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파고들었는지 그 <연유>를 몰랐는데 상기 설명이 참 <시원했다>.
2021년 2월 4일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벤 위더링턴 3세 지음, 이레서원)을 읽고
1.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1세기 고린도의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소설 형식으로 소개하는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흥미로웠던 대목 한 군데를 소개하면 이렇다. (총독 갈리오가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열리는 만찬회에 참석하려고 신전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신전 입구, 첫 번째 계단 옆에는 새 석판이 세워져 있고, 아스클레피오스 신과 이 신의 상징인 뱀이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만찬회에 늦은 갈리오는 급히 계단을 올라 신전으로 들어가면서 테라코타 봉헌물이 놓이 방을 지나갔다. 이 방에는 순례자들이 치유를 위한 봉헌과 기도 용도로 바친 여러 부위의 인체 모형들이 놓여 있었다" (테라코타는 점토로 형상을 빚은 후 구워서 만든 모형인데, 당시에는 병이 난 부위를 테라코타로 만들어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치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 여기까지 읽은 내 머릿속에선 <음란마귀>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안 좋아진 부위? 그럼, 그 봉헌 모형들 가운데는 <그 모형>도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쓰레기일까...흑흑흑" . 이어지는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갈리오는 팔과 다리 모형이 눈에 익은 모습으로 죽 늘어서 있는 것은 거의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가장 흔한 인체 부위 복제품인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는 늘 그랬듯 그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 휴. 나만 쓰레기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트리클리니움, 또는 식당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뒷편에 있었는데, 그런 연회에서 늘 그러듯 크게 떠드는 소리와 흥청거리며 노는 소리가 갈리오의 귀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