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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8일

교회와 설거지

오늘 아침 교회 갈 때 처음 설거지를 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세례 받는 날처럼 약간 긴장됐다 점심을 빨리 먹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장로님 한 분과 한 조가 되어 설거지를 하는데 점심 메뉴가 카레였기에 그런지 세심하면서도 집요한 터치가 필요했다 -.- 설거지를 마치고 솥까지 다 씻고 났더니 뿌듯했다 내가 30대 초반에 듣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참 칭찬 받기 쉽다. 설거지를 한 번 하면, 커피를 한 번 타오면, 먹은 자리를 치우면, 뭔가 한 번만 해도 <매너> 좋다고 칭찬을 받는다....반면 그 일을 <매번> 하는 사람들은 <한 번만 안 해도> 여자가....하면서 비난 받는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수고했다는 말을 <여러번> 들어서 감사했지만 내가 더 바라고 기대하는 건 설거지 하는 남성들이 칭찬 받는 게 아니라.....설거지 안 하는 여성들이...안 해도...뭐라는 사람 없고 자연스러운....남자들처럼 <하고 싶은 날만> 이름 기입하는....그런 교회....( 이 글은 내가 다녔던, 지금 다니는, 앞으로 다닐지도 모를 모든 교회를 생각하며 쓴 글임) )

2016년 9월 10일

『참 재미없는 세상 』 (신동필 지음, 홍성사, 2016년 9월)을 읽고.

동생이 책을 냈어요. 나중에 제가 책을 내면 안 사주시더라도 제 동생 책은 많이 사랑해주세요! (꾸벅) 틈틈이 찍은 사진들에 짧은 시를 덧붙인 책입니다. '추천의 글'은 제가 썼습니다. ^^;; 

저는 한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저마다 사연을 지닌 분들의 출연 신청을 받습니다. 수북이 쌓인 사연들 중 하나를 채택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과 식사를 하다가 동생의 휴대폰에 담겨 있는 사진과 글을 보았습니다. 순간, 감춰져 있는 사진과 글을 세상에 꺼내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동생의 사진과 글을 보는 제 마음은 이중적이었습니다. 먼저, 동생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와 일상의 순간을 잡아내는 방식이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고, 그 새로움을 통해 독자로서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삶 가운데서 고난받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부디 이 책을 통해 주님 주시는 참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_신동주(CBS 기독교방송 프로듀서)

홍성사 링크 바로가기 http://goo.gl/abQNb9

교회 개혁을 위한 아주 작은 실천 방안

돈 전혀 들지 않는 교회 개혁 방안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돈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나 단체에 교회가 돈을 전달할 일이 있으면 담임목사가 아니라 재정담당 직원이 했으면 좋겠다. 전달식에 목사 대신 교회 직원이 왔으면. 사람들은 담임목사가 아니라 그 교회에,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사람이 영광받는 일이, 사람에게 영광돌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아프리카 등지의 어려운 현장을 돌아보는 일도 담임목사가 아니라 해외구호일을 제대로 배우거나 경험한 교인이 갔으면 좋겠다. 전문가가 담임목사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돌아오리라는 건 상식이다. 교회가 한 사람의 항공비를 추가로 부담할 수 있더라도, 그때도, 담임 목사가 아니라 해외구호에 <관심과 사명>이 있는 교인을 <한 명 더> 보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 둘은, 그러니까 그 <교회>는, 담임목사가 그 교회를 떠나고 새로운 목사로 바뀌더라도, 해외의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지혜로운 방법들을 축적시켜나가며 해나갈 것이다. 기독교 영화제 개막식에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와서 격려사를 하고 돈을 전달하는 일을 본 적이 있다. 그 행사에 큰 돈을 댄 그 목사는 그날 그 행사장에서 최고의 <귀빈>이었다.그런데, 그날 만약, 그 교회의 영화학과 교수나 연극 배우 교인이 그 행사장에 교회 대표로 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난 확신하건대, 그의 격려사는 지금 막 단편영화나 단막극을 만든 청년들에게 훨씬 더 <구체적인 도전과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식의, 그날 그 담임목사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넘어서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삶의 현장에, 다양한 요청과 다양한 요구에, 한 사람만 파송하는 건 어색하다. 만사형통(대통령의 형)이 문제를 일으켰듯 만사담통(담임목사)도 문제를 일으킨다. 각 영역의 대표자들이 - 실질적인 대표자들이- 많이 존재하는 교회는 세습도 잘 안 될 거라 믿는다. 오늘의 작은 결론. 돈은 직원이 전달하자. 목사는 자기 개인 돈 전달할 때만 참석하자. 목사의 해외 방문은 자비로 하자. 격려사도...더 구체적으로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이 하자.(2013.9.10)

2016년 9월 8일

대형교회

나는 종종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데 어느 날 내 삶 속에 대형교회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건 페이스북 친구 수였다 많아야 좋다고 생각해서 계속 늘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천오백이라는 수를 이번 주에 육백이십으로 줄였다 더 줄이려고 한다 성도들의 말을 다 들을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 등록을 받는 대형교회가 나였다 누군가의 소중한 이야기를 스크롤 한다는 게 훑는다는 게 미안했다

2016년 9월 3일

『대지의 기둥』(켄 폴릿 지음, 문학동네)을 읽고.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대지의 기둥』은 12세기 영국에서 성당 건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어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스파이 소설인 『바늘 구멍』의 저자 켄 폴릿이 썼어요. 고등학교 때 켄 폴릿의 『바늘 구멍』을 읽고 그에게 반해 요즘도 이런 저런 인터넷 싸이트에서 닉네임을 요구하면 Ken이라고 적곤해요.
2.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이거였어요. 선한 사람은 점점 더 선해지고 나쁜 사람은 점점 더 나빠져요. 선인은, 처음에는 부족한 점 있어도, 점점 더 용감해지고, 더 너그럽고 지혜로워지고. 자기 일을 더 잘 하게 되고. 근데 악인은 더 자기중심적이 되고, 사람들을 더 이용하려고만 들고, 점점 더 <괴물>로 변해가요. C. S. 루이스가 어디선가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났어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우리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했을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은 방금 한 일보다 더 훌륭하고 덕스러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마음이다. 루이스는 또 어디선가, 지옥은 점점 더 자기 중심적으로 변모한 개인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죠. 타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집중하는 곳! 점점 자기 안으로 쪼그라들고 쭈그러드는, 그래서 지옥은 어떤 의미에서 광활하기보다는 하나의 점처럼 아주 작을 거라는 말은 한 게 기억나요. 여하튼 켄 폴릿도 이 장편 소설을 쓰면서 “몇 십 년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이 <성숙해감에 따라> 그들의 삶에 새로운 굴곡을 만들어 넣”는게 제일 어려웠다고 고백해요. (1권, 서문).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재미 포인트. 이 책의 저자 켄 폴릿은 기독교신자가 아니어요. 그런데 이 장편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수도원장이지요! 그래서 발생하는 켄 폴릿의 고민: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느님의 사람’에 속하는 부류여야 했다. 이 점은 내게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아마 상당수 독자들도 그럴테지만 내세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인물에 흥미를 갖는 일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거 같았다”. 제가 볼 때 켄 폴릿, 그 일을 무척 성공적으로 해내요. (비기독교 신자 켄 폴릿이 쓴 특정 문장을 읽다가 제 불신앙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어요.)
3. 미술, 건축, 조각, 미학에 나름 <조예(?)가 있는> 저로서는 (자뻑만렙-.-) 내심 성당 건축을 맡은 톰과 그의 의붓아들 잭이 <석재와 나무와 나누는 깊은 대화>를 기대했어요. 돌과 나무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숨겨진 최대치>를 보여주지 않잖아요. 상대가 정말 믿을만하다고 여겨질 때만 자신을 <만져도 된다고> 허락하죠. 근데 저자 폴릿은 톰과 잭이 <여자들과 나누는 육체적 대화>만 자꾸 들려주는 거예요. (베리댕큐하면서도 아쉬웠던 부분이에요). 엘렌과 앨리에너 두 여성의 절정을 묘사할 때만큼 돌이 흘리는 땀방울을...강한 바람을 맞을 때 성당의 목재가 휘는 그 긴장을, 그때 터져나오는 깊은 저음의 신음을....좀 더 자세히 들려주었더라면....(근데 이런 지적, 이 책에 대한 디스인가 낚시인가 -.-).
2016.9.3.
신동주
서플먼트
1) 지금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1권, 2권, 3권의 섹스씬을 다시 한 번 훑어보니 처음 읽을 때는 못봤던 특징 하나가 보인다. 거의 매 씬에 nipple이 등장한다. (켄의 개취존중 -.-). 일단 제3권에서만 한 군데 살펴보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젖가슴으로 가져갔다. (...)그가 그녀의 젖꼭지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 비틀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더니 그에게서 몸을 떼며 헐떡였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다. “내가 아프게 했나요?” 그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 게 아녜요!” (3권,p.151). 한편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센테스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물릴 줄 모르는 육체적 정열에 사로잡힌 신혼부부 같았다. 아마도 처음으로 잠글 수 있는 문이 달린 침실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터였다 (...) 이제는 아무에게도 들킬 염려 없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엘리에너는] 특별한 전율을 느꼈다. 지난 이 주 동안 자신과 잭이 했던 일 몇 가지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3권, p.495.) 나는 은근한 묘사를 좋아한다.(-.-)
2) 섹스 묘사와 달리 켄 폴릿의 건축 묘사는 약간 아쉬웠다. 다양한 건축 사조와 기법이 등장하지만 난 그가 회반죽 한 번 해보지 않았다는 거에 오백 원 건다. 『대지의 기둥』을 읽는 동안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자서전『한나의 아이』를 동시에 읽었는데 예닐곱 살부터 벽돌 쌓는 조적공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던 스탠리의 묘사가 훨씬 - 당연히 - 더 실제적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묘사. “우리는 말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났다. 땀이 쉬어 공사 현장의 모든 사람이 악취를 풍겼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는데, 우리가 일을 잘 하고 있는지 감독하러 현장에 오는 사람들이 그 냄새 때문에 괴로워할 때 특히 좋았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으므로 우리는 계속 물을 마셔야 했다. 물은 나무 물통에 들어 있었고, 아침 일찍 그 안에 얼음을 넣었다. 얼음이 두어 시간 이상 가는 법이 없었지만 뜨거운 물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물을 마시러 갈 때는 조적공이 곧 찾게 될 물건을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조지 하퍼에게 배웠다. 한마디로, 움직임을 최소화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를 끝까지 버티기 힘들었다.”(p.74-75).
3) 나는, 공간과 건축은 사람에게 아주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그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짓는 거라고 믿는다. 교회 건축에 대해서 이전에 썼던 글 하나 첨부. 제목은 ‘교회의 크기와 언어’. http://holyfat.blogspot.kr/2013/12/blog-pos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