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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31일

『삐딱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쾌한 희망사전(Wishful Thinking: A Seeker's ABC ) 』 (프레드릭 뷰크너 지음, 복 있는 사람)을 읽고.

1. 이 책은 사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62개 단어를 고른 후 저자가 아주 개인적인 설명을 달았다. 'ㅂ' 항목을 찾아보면 저자의 이름인 '뷰크너'도 등재돼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뷰크너(Buechner)'.  내 이름이다. 뷰크너라고 발음한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바보스럽게 잘못 발음하면 마치 내가 바보인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잊어버리면 마치 내가 잊혀진 것 같다. 내가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구석이 있듯이 내 이름에도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뭔가가 있다. 헬드라든가 메릴, 아니면 흘라바첵 같은 다른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일 내 이름이 달랐다면 나도 달라졌을 것이다. 내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상대방이 이전에 갖지 못했던 나에 대한 영향력을 넘겨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 이름을 부르면, 원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멈추고 바라보고 귀를 기울인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로 하나님은 마음 편할 날이 없으셨다. (p.75)

2.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연출을 맡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목사님 한 분을 뵈러 간 적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셨고 스탭들과 같이 갔다. 점심 초대였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드렸더니 목사님은 반가운 얼굴로  "어서와요, 박동주 피디". 그후 꽤 오랫동안 서운한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당시엔 그 분의 그 실수가 인간에 대한 결정적인 실수였다고 느껴졌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요즘은 그날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내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 실수는 결정적이지 않았다. 인간적인 실수였을 뿐이다. 이제는 누군가 실수로 나를 신동추 혹은 신통주,라고 부르더라도 웃으며 <정확한 발음>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3. 이 사전에 등재된 단어 중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또 하나의 단어가 있는데 그건 '역사'(History)이다. 저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 '역사' . 불교나 힌두교와는 달리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본을 좇아 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역사를 매우 의미 있게 여기셔서 그것을 시작하셨고, 그 속에 들어오셨고, 언젠가 의미 있는 결말을 맺으신다고 약속하셨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견뎌 내야만 하는 부조리도 아니고 거부해야 하는 환상도 아니며 해탈해야 하는 영겁의 순환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를 어딘가로 인도해 가기 위한 일련의 중대하고 반복될 수 없는 소중하고 유일한 순간들이다. 인류와 개인의 진정한 역사는 역사책이나 전기나 자서전에 수록된 정보와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역사는 영혼을 구원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에 대한 것인데, 이러한 역사는 자기 영혼이 위태로운 사람을 포함해 사람들 대다수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일어난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전환점은, 선거에 당선되거나 결혼식을 올린 날보다는 어떤 편지를 부치지 않기로 결정한 아침이나 눈이 소복이 쌓인 숲을 바라보던 오후일 수도 있다. 인류 역사에 있어 진정한 전환점은, 바퀴가 발명되거나 로마가 멸망한 날이 아니라 어느 유대인 부부에게 한 사내아이가 태어난 날일 수 있다. (p.125)

4. 저자에 대해서 짧게 소개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비크너는 1926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작가로서의 이력을 쌓고자 뉴욕에 체류하던 중, 예수님은 신자의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 가운데 신자의 마음에 즉위하신다는 내용의 설교를 듣다가 회심했다". 눈썰미가 있는 이라면 글 1번에서 '뷰크너'로 표기 됐던 저자의 이름이 지금 글 4번에선 '비크너'로 바뀐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그의 이름을 ‘뷔크너’, ‘뷰크너’, ‘뷔히너’, ‘부크너’ 등 다양하게 불러왔는데 저자가 원하는 발음은 '비크너'이다. 위키피디아와 '프레드릭 비크너 페이지'(https://www.frederickbuechner.com )에도 '비크너'(pronounced BEEK-ner)로 소개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읽은 비크너의 책은  그의 설교문 37편을 모아놓은  『어둠 속의 비밀(Secrets in the Dark)』 (프레드릭 비크너 지음, 홍종락 옮김, 포이에마)이었는데  - 방금 위에서 소개한 비크너의 회심 이야기는 이 책의 저자 소개문에 나온다 - 처음 읽으며 "이런 설교가 있을 수 있다니" 하며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도 북리뷰에서 비크너를 이렇게 소개했다. "비크너는 끝내 독자에게 항복 선언을 받아낸다. 독자를 웃게 함으로써, 때로는 경악한 나머지 거의 기도하게끔 함으로써, 가장 좋을 때는 둘 다 하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 죄, 참회, 구원에 관하여』 (비아)를 쓴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도 비크너를 언급하며 "단어의 힘을 망각한 나를 발견할 때, 나는 프레드릭 비크너를 읽는다"라고 말했다. 상투적인 설명과 설교에 지쳤다면 비크너 읽기를 추천한다. 비크너의 책에는 진부함이 없으니.

2021년 3월 15일

『성스러움의 의미 』(루돌프 오토 지음, 길희성 옮김, 분도출판사)를 읽는 중에

제4장 '두려운 신비'에는 <The Inquirer >(July 14, 1923 )에 실린 글이 한 대목 등장한다.  O.Schreiner 이 쓴 『Thoughts on South Africa』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키가 크고 힘세며 강인한 성격을 소유한, 말이 없는 보어인 한 사람이 말한 의미심장한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 책을 쓰는] 저자는, 그[보어인]가 고작해야 자기 양과 가축들, 혹은 그가 잘 알고 있는 표범들의 습성 외에는 거의 어떤 심오한 얘기라고는 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었다.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약 두 시간 가량이나 넓고 넓은 아프리카의 평원을 건너질러 간 후 그는 탈(Taal) 언어로 서서히 말했다. "한 가지 오랫동안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공부를 많이 하셨을테니까요. 이런 들에 혼자 있을 때, 그리고 태양이 잡목들에 내리쬐고 있을 때, 당신은 무엇인가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어떤 것은 아니지만 마치 내가 너무나 너무나 작아지는 듯하며 다른 어떤 것은 너무나 커지는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작은 일들이 모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집니다".

2021년 3월 9일

잘잘법 Ep. 61을 시청하고.

1. 잘잘법 Ep. 61 '비기독교인들에게 인간이 죄인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에서 김학철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이 일종의 <사투리>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교회 내부의 구성원들만 알아듣고, 교회 외부의 비기독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가 되었다는 뜻이죠. 잘잘법 이번 편에서는 <죄인>이란 말의 의미를 비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주고 있는데, 저는 <이런 작업>이 비기독인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교회 내부의 기독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단지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공기는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돼'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요. 내가 믿는 바를, 내 이웃에게, 내 이웃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저는 제가 <설명하는 바>를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잘잘법의 <이번 작업>은,  우리 기독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일' 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런 작업> 없이 너무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왔습니다.  

 
2. C.S. 루이스도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가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평범한 이웃>에게 설명해 보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루이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죠. "예를 들어, [우리 같은 기독교인들은] 대속(Atonement)이나 성직(Orders)이나 영감(Inspiration)에 대해 자신이 [어느 정도 확립된] 특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같은 부류에 속한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그 견해를 논하고 옹호합니다. 비판자들에게 답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여러 부분에서 다듬고,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는 듯한 기발한 비유들을 고안하고, 다른 견해들과 비교하여 대강의 '위치'를 가늠해 보[다보면] 자신의 견해가 일류 사상들 사이에서 확고히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신학적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지적인 기계공이나, 진지한 호기심은 있지만 겉으로는 상당히 불경해 보이는 학생에게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려고 해보십시오. (식자들 사이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을) 유치한 질문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검술의 첫 번째 원칙조차 모르는 상대의 칼에 어이없이 꿰뚫린 능숙한 검객의 신세가 됩니다. 상대의 유치한 질문은 치명적인 한 방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견해를 철저히,끝까지,'완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그 견해를 포기하거나 , 아니면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참을성과 통상적인 노련함을 발휘하는데도 분별 있는(들을 마음이 있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한 가지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 C.S.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  제2부 '의사소통의 전제 조건' 중에서 ). 

2021년 3월 2일

『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마오샤오원 지음, 글항아리)를 읽으며

 "정보망이 낙후되어 형편없었던 고대에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당나라 사람들은 기발한 수를 많이 개발했다. 그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시판(詩板)을 들 수 있다. 당나라 사람들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장의 상점이나 명승고적,역참, 사원 등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벽을 골라 회칠을 한 뒤에 자신의 시를 벽 위에 쓰고, 나머지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러나 벽은 유한하고 당나라 사람들의 시정(詩情)은 무한하여 벽이 금세 부족해졌다. 많은 지역에서 시인에게 나무 널빤지 하나를 제공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꾸었고 (...) 이 작은 널빤지가 바로 시판이다. (...) 시판을 쓰는 데 신분의 제약도 없었고 학력이 요구되지도 않았다. (...) 한족이나 이민족, 남녀노소 모두 시판 앞에서는 평등했다. 그러나 뛰어난 작품은 필시 매우 드물고 열등한 시판이 매우 많아지자 누군가 나서서 하늘을 대신해 정의를 행해야 했다. 유우석은 백제성을 떠날 때 시벽을 지나다가 엉망인 시가 무수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걸음을..." (여기까지)


"당나라 후기의 유명한 재상인 배도(裴度)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는데, 늦봄에 우연히 남쪽 정원을 노닐다 모란이 아직 피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난간에 기대어 유감을 금치 못했다. “내가 이 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니 슬프구나.” 그런데 이튿날 남쪽 정원에 한 무리의 모란이 먼저 피었다. 하인이 다급히 이 소식을 알리자 배도가 그 말을 듣고 마치 원진이 친한 친구인 백거이가 폄적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의 반응처럼 “죽을병에 걸렸다 놀라 일어나 앉아” 기를 쓰고 나가서 모란을 감상했다. 배도는 활짝 핀 모란을 보며 깊은 위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사흘 뒤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두 대목 모두 『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마오샤오원 지음, 글항아리)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