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서 카톡을 확인했는데 좋아하는 지인의 아들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이 와있었다. 사진 속 신랑과 신부가 아름다웠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내 눈에는 신랑도 그렇게 보였다. 35년 전 내 모습도, 당시 50, 60대 분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까.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 간식과 커피, 어머니에게 드릴 수필집을 챙겨 요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만나 함께 근처 연어덮밥 집으로 갔다. 연어덮밥 세트 2개 주문. 이제 말 안 해도 사장님은 밥 양을 조금 줄여주신다. 어머니가 늘 과식을 하셔서 내가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참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나는 사이드로 나온 연어초밥의 밥은 남기고 연어만 벗겨먹었는데, 어머니는 통째로 다 드셨다. 점심을 먹고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탐앤탐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내가 사들고 간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맘에 들어하셨다. ---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어하신다. 20년 전부터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시집은 고사하고 아직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으니 아마 시집은 못 내고 돌아가실 것이다. 시집 출간에 대한 강렬한 소원이 있으신 어머니를 위해 지난 주 나는 "어머니, 시라는 게 사실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거라서 어쩌면 어머니에게 정신적인 부담만 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필은 어떠세요?" 라고 했다. ---- 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초등학교 일학년 때 반 전체가 갔던 봄 나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이야기, 50번을 들었을까, 60번을 들었을까. 봄 나들이 중에 초1이었던 7살 어머니가 언덕에 핀 꽃을 꺽어서 야마모토라는 일본 선생에게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손바닥으로 어머니 뺨을 쳤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뺨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동안 뺨을 50번 맞은 것일까, 60번 맞은 것일까. 이상하게 오늘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몰래 손가락으로 내 두 귀를 막고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손을 떼면 여전히 야마모토였다. 그러면 다시 음. --- 야마모토가 끝났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수필집 내시면 책 제목은 뭘로 하실래요? 안도현의 '사람'이 좋았으니까 어머니는 '인간' 어떠세요?"라고 했고 어머니는 웃으셨다. 나는 밀크티를 남겼는데 어머니는 머그컵에 나온 커피를 다 드셨다. 탐앤탐스를 나와 요양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출국일자를 세 번 물으셨다. 아니 네 번 물으셨다. 요양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신발을 갈아 신겨드리고 안아드리고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 요양원 앞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두 개 있다. 6211과 640. 요즘 어깨 통증 때문인지 두 주 가까이 매일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거의 6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다. 오늘은 밀크티 집에 들리지 않고 집에 가서 좀 자기로 했다. 내가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착해 보이는 젊은 커플이 버스에 올라왔다. 한 자리 좌석들만 있고 둘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앉았던 자리에서 미리 일어났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 전에 이들에게 내 자리를 주고 싶었다). 하차 카드를 찍고 출입구 앞에 섰는데 두 젊은 남녀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2025년 10월 25일
2025년 10월 24일
쇼츠, 신체검사, 하늘
오늘 우리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A와 함께 쇼츠를 만들었다. 편집 프로그램인 에디우스 기능 중에 내가 아는데 A가 모르는 게 있었고, A가 아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두 기능 모두 아주 요긴한 기능이었다. 서로 알려주며 많이 웃었다. 점심을 은행골에서 같이 먹고 오목공원을 오바퀴 했다. -- 오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미국 이민 비자를 위한 신체 검사를 받았다. 출국 일자가 미뤄지면서 올해 초에 받았던 신체 검사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바람에 다시 받는 검사였다. 올해 4월 처음 신체 검사를 받으려고 세브란스로 가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였는지 버스 속에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중가에 내려, 허겁지겁 약국을 찾아 두드러기 약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오늘도 또 몰라 두드러기 약을 한 알 갖고 갔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올해 초 나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내가 정녕 너를 이집트로 인도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이집트' 자리에 '미국'을 넣고 읽었다. 오늘 신체 검사를 받으며 그 말씀을 생각했다. --- 회사로 돌아와 오늘 중으로 작가에게 보내야 할 잘잘법 영상을 편집했다. 마음에 들게 됐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편성부의 B와 C가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이번 주 일요일 생방송 진행이 내 마지막 생방송 진행이야"라고 하자 B와 C가 많이 놀라주어서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방송 사고 한번 내볼까" 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좀 하다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왔다. (한 조직의 일원이기에 나눌 수 있는 이런 대화가 참 즐겁고 소중하고 감사했다). ---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하늘이 참 푸르렀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데 "지금 네가 원하는 건 000를 가까이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야"라는 부드러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들리는 거 같았다. (내가 최근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경고의 말씀 때문에 오늘 온종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25년 10월 22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황동규 시인의 산문을 읽다가 그가 브람스의 소나타를 묘사한 글을 읽고는 유튜브에서 브람스의 소나타를 찾아들었고 그러다가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총 16회를 울면서 봤다. 네 사람이 각각 '(그게 사람이든, 목표, 욕망이든) 자기만의 '내려놓음'을 통해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요즘 내게 내려놓음이 필요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제8화 중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박은빈과 박지현이 나눈 연주의 흐름과 확신에 대한 대화를 받아적었다 : 확신은 어떻게 해야 생길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답을 찾으시면 저한테도 알려주시겠어요? 네, 꼭 그럴게요. --- 네 사람 모두 진실하다는 것도 멋졌다. 진실하게 살기에 플레이하는 연주에, 하는 말에, 내리는 선택에 힘이 실렸다 --- 박지현은 어떻게 이렇게 우아할까.
2025년 10월 12일
신형철을 읽는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 평소와 달리 큰 갈등 없이 교회 가기로 결정함. (웃음포인트). 가면서 신형철이 32개의 시에 대해 해설한 <인생의 역사>를 읽으며 갔는데 너무 잘 써서 와,와 감탄 하면서 감. 오늘 예배 중에 와,와 한 적이 두 번 있었음. 참 아름다운 장면이었음. --- 오늘 성찬 봉사자는 내 대학 동기 P였음. 성찬을 다 받은 사람은 (앞에 나가 줄을 서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 후) 빈 포도주 잔을 봉사자가 들고 있는 함에 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음. 이것이 성찬의 절차인데, P의 아내가 성찬을 받는 모습이 눈에 띄였음. 포도주를 마신 그녀는 돌아서서 남편 쪽으로 걸어오더니 남편 P를 바라보며 남편을 향해 정말 부드러운 미소를 한번 지은 후에 포도주 잔을 함에 넣었음. 나중에 집에 가면 "P, 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문자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함. --- 성찬을 다 마치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음. 그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내 앞 쪽에 있던 두 젊은 부부가 손을 잡음. 참 아름다운 장면을 짧은 성찬 시간에 두 번 목격함. ---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가깝게 지내는 A와 차를 마시러 커피숍에 가서 주문하는 사이에 내가 "오늘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두 번 봤어요"라고 하며 P의 아내가 남편에게 지었던 미소 이야기를 했다. "아! 저도 봤어요!" "정말요!" 나는 P에게 문자를 보낼 거란 말을 했다 (ㅋㅋ) A가 "두 번째는 뭔가요!"라고 물어 내가 젊은 부부 얘기를 했더니 "아! 저도 봤어요!" (ㅋㅋㅋ) 이럴 수가! (ㅋㅋㅋ) 어쩌면 오늘 예배 중에 감동한 사람이 나와 A 둘만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2025년 10월 11일
<우리가 기댄 모든 것>(마쓰모토 도시히코,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김영사)을 읽고
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는데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에게는 술 외에도 도벽, 섹스, 과식 등의 의존증도 있(었)다.
모든 챕터가 흥미롭지는 않았다. 나는 제2장이 좋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나는 제2장만 좋았다. 2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몇 구절을 아래 정리한다.
"왜 일부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고 특정 약물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도박이나 게임에 집착해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해버리는 걸까요? 생각건대, 그들을 약물로 몰아넣는 것은 쾌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쾌감이라면 금방 싫증이 날 테니까요. 아마도 그것은 쾌감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가 아닐까요? 즉, 사람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아찔한 쾌감을 얻으려 약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겪어온 고통이 그 약물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라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에 빠지는 것입니다. 쾌감이라면 질리겠지만, 고통의 완화는 질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그 고통의 완화를 놓을 수 없게 되겠지요." (p.37)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들게 되는 데는 반드시 위기가 존재합니다. 그것이 소중한 관계의 상실이나 파탄 같은 중대한 사건일 수도 있고, 조금 무리를 하거나 현재 있는 곳이 왠지 불편하다는 정도의 작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것이 위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p.38).
"이 서신 교환을 통해 '끊는다/끊지 못한다'라는 단순한 의존증 담론을 넘어,의존증 이면에 있는 심연에 줄을 드리워 들어가보고자 합니다." (p.39)
내게 있어 '오래전부터 겪어온 고통'은 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위기가 반드시 중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교회에서 참 만족스러운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후에도 의존증이 발생한다면, 예배도 내게 진정한 치유가 아니었던 건가.
헤밍웨이가 멈추라고 한 곳에서 멈췄다
2025년 10월 6일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민음사)를 읽으며.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야의 이리'라는 별명을 가진 하리 할러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일터에서 오시는 길인가 보지요? 그래요, 그 방면에 대해선 나는 아는 게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나는 좀 옆 길에, 이를테면 가장자리에 살고 있지요." (p.26)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일터'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나는 책 제일 뒷장에 연필로 이런 메모를 남겼다. "일터에서, 그러니까 직장 생활 가운데서 가장자리 삶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등장해도 좋을 거 같음".
(참고) 주제 의식은 좋았으나 글의 전개 방식이 내 취향이 전혀 아니어서 읽기 중단.
2025년 9월 17일
로버트 레드퍼드 (1936~2025)
부끄럽게도 난 참 오랫동안 누군가의 부고를 들을 때 "그는 죽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지"라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 했던 거 같다.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 느낀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그렇게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내가 처음에 언급한 그런 '안심'과 '우월의식(?)"이라는 틀 안에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생각은 차츰 바뀌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더 낫다거나, 더 나은 무언가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것을 나이 많이 들어서야 깨닫다니 부끄럽다). '충만히' 세상을 살고 떠난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읽을 때, 누군가의 부고 기사에서 '사랑과 도전'이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이제 나는 우월의식 대신 부러움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혹은 피조물로서의) 사명을 다 이룬 삶이 몹시 부럽다. 한 사람의 부고 기사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그날 일기보다 더 생명으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는 걸 요즘 느낀다. 평생의 연기와 그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열과 꿈을 선물로 준 로버트 레드퍼드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부럽고, 감사하다.
- - - - - -
‘선댄스 키드’ 로버트 레드퍼드 별세…향년 89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로 스타덤
‘스팅’ ‘추억’ 등서 활약한 ‘할리우드 전설’
선댄스영화제 창립·환경운동도 펼쳐
미국 할리우드 스타이자 영화감독, 제작자이며 선댄스영화제의 설립자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별세했다. 향년 89. 뉴욕타임스는 16일(현지시각) 레드퍼드가 미국 유타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이날 보도했다. 젊은 시절 가장 미국적인 미남 배우로 사랑받았던 찰스 로버트 레드퍼드 주니어는 193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 야구와 미술 등에 두각을 나타내며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뒤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1960년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1969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평단의 찬사와 흥행 성공까지 거머쥐면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를 열어젖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단숨에 스타 배우로 부상했다. 훗날 그가 설립한 ‘선댄스영화제’는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했던 인물 ‘선댄스 키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후 ‘스팅’(1973), ‘추억’(1973)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레드퍼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추억’과 ‘코드네임 콘돌’(1975),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등 많은 명작을 함께 만들어낸 시드니 폴락 감독은 평생의 친구이기도 했다. 또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보통 사람들’로 198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브래드 핏이 ‘제2의 로버트 레드퍼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 출세한 ‘흐르는 강물처럼’을 감독, 제작해 큰 호평을 받았다. 2017년에는 제인 폰다와 함께 황혼의 로맨스를 연기한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에 출연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함께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년에 들어서며 레드퍼드는 영화감독과 제작자뿐 아니라 환경보호 운동가로도 활동했다. 1980년에는 신진 영화인을 위해 선댄스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독립영화의 제작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곳에서 그가 창립한 선댄스영화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젊고 영향력 있는 영화제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꿈의 영화제가 되었다. (한겨레 신문) 김은형 선임기자
2025년 9월 13일
나쓰메 소세키를 읽고.
최근 한 달 사이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5권을 읽었다. 먼저 <도련님>(1906), 이어서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산시로>(1908),<그후>(1909), <문>(1910)을 읽었다. 이어서 <마음>(1914)과 (큰애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 <명암>(1916)을 읽으려 했는데, <마음>만 읽고 멈췄다.
오래 살다보니, 살면 살 수록, 용기가 절실하다. 용기가 없어서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사람은 아무리 무서워도, 아무리 부끄러워도,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그 사실을 무서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소세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건 인간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용기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의 결과들을 대처함에 있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결과를 직시할 용기, 그 결과의 한계 내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소세키가 그리는 또 다른 주인공의 얘기를 한 번 더 들을 마음과 시간이 내게는 없다.
2025년 9월 1일
퇴직 6개월 전에 하는 생각
오늘은 9월 1일. 정확하게 퇴직(2026.2.28) 6개월 전이다. 사랑하는 일, 애정하는 가까운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은 통증에 가까운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새벽에 눈을 떴을 때도 그런 통증이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 보고 싶을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고, 그러자 통증이 사라졌다.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나에게는 "내 모든 걸 쏟아부어 본 시간"들이 있다. 내게는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를 주고 받는 동료들"이 있다. 만약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런 관계들이 없었다면 내 재직 기간은 커다란 공허로 다가왔을 것이고, 남은 6개월은 그 공허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며, 퇴직은 정녕 날카로운 비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감사하게도 내 지난 30년은 "채워져"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떠남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퇴직을 앞 둔 이에게는 남은 기간보다 받은 은혜를 돌아보는 게 더 필요하구나.
"5년이 더 주어진다면 좋겠니?"라는 질문도 내게 도움이 됐다. 아니오,가 내 대답이었다. 나는 나의 재직 기간을 더 완전하게 <보수>하기 위해 시간을 더 요청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는, 즉 피조물이다. 유한한 상태에서 입사했다가 유한한 상태로 퇴직하는 유한한 피조물이다. 5년이 더 내게 주어지더라도 그 5년 때문에 내가 지금의 나보다 완전한 존재가 될 거 같지는 않다. 불완전한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보수될 거 같지도 않다. 어떤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 퇴직을 꿈꾼다면, 그러지 못함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어리석고 건강하지 못한 생각일 거 같다. 늘 그래왔듯이, 나는 아쉬움도 느끼겠지만 '괜찮다'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함께 경험할 것이며, 그분께 또 한 번, 나의 <완벽하지 않은 퇴직 후 계획>을 들려드릴 것이다. 1993년 한 명의 어리숙한 신입사원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그분께서는 2026년, 이번에는 (여전히 어리숙한ㅠㅠ) 한 명의 퇴직자를 또 한 번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것이다.
남은 6개월이, 한 명의 피조물이 완전해지려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한계까지도 향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2025.9.1.
신동주 드림
* '내 자신의 결핍을 향유함'이란 말은 도심 속 수도 교회 '신비와 저항'의 박총 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2025.8.18)에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