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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9일

잘잘법 Ep. 61을 시청하고.

1. 잘잘법 Ep. 61 '비기독교인들에게 인간이 죄인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에서 김학철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이 일종의 <사투리>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교회 내부의 구성원들만 알아듣고, 교회 외부의 비기독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가 되었다는 뜻이죠. 잘잘법 이번 편에서는 <죄인>이란 말의 의미를 비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주고 있는데, 저는 <이런 작업>이 비기독인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교회 내부의 기독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단지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공기는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돼'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요. 내가 믿는 바를, 내 이웃에게, 내 이웃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저는 제가 <설명하는 바>를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잘잘법의 <이번 작업>은,  우리 기독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일' 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런 작업> 없이 너무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왔습니다.  

 
2. C.S. 루이스도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가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평범한 이웃>에게 설명해 보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루이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죠. "예를 들어, [우리 같은 기독교인들은] 대속(Atonement)이나 성직(Orders)이나 영감(Inspiration)에 대해 자신이 [어느 정도 확립된] 특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같은 부류에 속한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그 견해를 논하고 옹호합니다. 비판자들에게 답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여러 부분에서 다듬고,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는 듯한 기발한 비유들을 고안하고, 다른 견해들과 비교하여 대강의 '위치'를 가늠해 보[다보면] 자신의 견해가 일류 사상들 사이에서 확고히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신학적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지적인 기계공이나, 진지한 호기심은 있지만 겉으로는 상당히 불경해 보이는 학생에게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려고 해보십시오. (식자들 사이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을) 유치한 질문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검술의 첫 번째 원칙조차 모르는 상대의 칼에 어이없이 꿰뚫린 능숙한 검객의 신세가 됩니다. 상대의 유치한 질문은 치명적인 한 방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견해를 철저히,끝까지,'완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그 견해를 포기하거나 , 아니면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참을성과 통상적인 노련함을 발휘하는데도 분별 있는(들을 마음이 있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한 가지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 C.S.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  제2부 '의사소통의 전제 조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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