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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0일

쇼잉 업




영화 <쇼잉 업>을 봤다. 같이 본 사람들 때문에 영화 관람이 더 즐거웠다. 영화 속 여주인공 리지는 작품 전시회를 준비 중인데, 그녀는 찰흙을 빚어서 인물들을 만든다. 난 평소 내 글쓰기 방식이 조소(彫塑)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영화가 각별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퇴근 후에는 작업을 하고, 그 모든 과정 중에 아버지과 남동생을 신경써야 하는 리지를 보며 K-장녀를 떠올렸다. 예술가의 미학이 아니라 예술가의 일상을 보여주었던 것이 내게는 참 좋았다. 카메라가 분주하고 번잡한 일상을 살고 있는 리지를 보여주다가 가끔, 오륙 초 정도 씩, 그녀가 만들고 있는 작품을 잡는데, 나는 그게 또 좋았다. 전시장에 전시됐을 때보다, 그녀의 어지러운 일상 가운데 놓여있는 전시 전 작품들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리지가 조소한 인물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가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리지부터가 견디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영화 속 여주가 만든 작품들은 미국의 Cynthia Lahti 라는 작가의 작품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사진은 Lahti의 데뷔 솔로 전시회 작품인 <green leg> (2021). 

2025년 1월 19일

작업실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아들과 긴 통화를 하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모시고 근처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잘잘법 강연회 잠언 편 자막 작성을 하고 있다 -- 배 고파서 배민 통해 우렁된장찌게 백반을 하나 시켰는데 라이더가 음식을 다른 오피스텔 (같은 호수 앞)에 갖다 놓는 바람에 원하던 시간보다 약 15분 정도 늦게 저녁을 먹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배민 문의전화 담당자와 통화한 건 배민 사용 후 처음이었다 배는 고팠지만 바삐 배달하느라 오피스텔을 착각하는 라이더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기에 내 입에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 강풀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새벽 4시에 작업실에 도착하면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는 페북 카드뉴스 기사를 읽고는 바로 바탕화면으로 삼았다. 내가 지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애굽의 바로 왕이다. (썰렁) 한 단어를 신이 내게 선물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젊음 대신 바로 를 선택할 거 같다. 강풀 작가는 지금 십 년째 자신의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2025년 1월 18일

인물과 사상





















얼마 전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진중권 씨 얘기가 나왔다. 그 이름을 들으니까 옛날 생각이 났다. 30대 중반에 내가 자주 가던 사이트는 <안티 조선>과 <인물과 사상> 이었다. 어느 날 필명으로 인물과 사상 토론방에 남긴 글이다. 30대 중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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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얼마전 이 게시판에서
아이디 ‘문인’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쏟아진 그에 대한 비판의 글들도요.
그걸 보면서 제가 왜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권위주의'와 '파시즘'의 극복을 외치고 있지만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은 '폭력적'입니다.
이곳에선 말 그대로
100% 완전하게 비권위주의적이고,
100% 완전하게 진보적이고,
100% 완전하게 비가부장적이지 않으면
갈갈이 찢김을 당합니다.
여긴 일종의 연예계입니다.
다들 스타가 되려고 해요. 스타가 되는 방법은 뭐냐고요?
누군가 본인의 의견을 올렸을때
1.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먼저
2.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더 철저하게
3. 다른 어떤 사람 보다 더 가볍게, 즐거워하며
그 글에 존재하는 약점을 들춰내, 글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사람.
일종의 일진회죠. 누가 더 철저하게 '처리'를 하는지.
“나 오늘 권위주의 하나 죽였어(ㅋㅋㅋ)”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죽는 건 어떤 주장일까요, 그 주장을 했던 사람일까요.
그대는 사람은 다치지 않고
권위주의만 베는 방법을 배우셨나요?
우리가 소유한 진보성, 열린 사고, 개방성, 가벼울 수 있는 능력......
그걸 <자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들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서, 옆의 열려있는 친구에게서, 훌륭한 부모에게서.....
그런데 그들이 이런 '선물'들을 우리에게 줄 때
높은 위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땅바닥에 툭 던져주었던가요?
완전함이 이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요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계속해서 배워가야 하는 존재들이어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는 요즘 인터넷상의 글쓰기를
스타크래프트라고, 순발력의 글쓰기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글이란 쓰고(나서), 침묵하고(나서), 삶으로 살고,
그리고 다시 쓰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분 말씀이 불가(佛家)에는 이런 경구가 있다고 해요.
“아주 노력하면 '진리'에 이를 수는 있다고,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어리석음'에 이르지는 못한다.”
우리는 찢고, 분해하지만
그러나 그게 전체를 아는 방법은 아니라고. 그럼 놓친다고....
우린 너무 똑똑한 게 아닐까요.
99년 12월 6일
백 영 주 드림

2025년 1월 11일

전념














올해 내가 완독한 첫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라고 저자는 말한 적이 있다. 정말 밝고 반짝거린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은 거 같다. 인물을 너무 잘 묘사해서 웃음이 터지곤 했다. (제인 오스틴이 요즘의 나를 봤으면 어떻게 묘사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묘사는, 주인공 가정인 베넷 집안과 가까운 루카스라는 사람에 대해 묘사였다 : "롱본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베넷 집안과 각별히 가까운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왕년에 메리턴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거기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왕에게 소를 올려 기사 작위에 봉해졌다. 이 영예는 그에게 지나치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듯하다. 자신의 사업과 작은 장터 마을에 있던 거처가 싫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이 모두를 떠나 가족과 함께 메리턴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저택으로 옮겨가, 그때부터 그 저택을 루카스 로지라고 명명하고서 그곳에서 자신의 지체를 느긋이 즐기며 일에 매이지 않은 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일에만 전념했다." <오만과 편견>, p.28, 민음사 


#지나치게깊은감명 #예의바르게구는일 #전념

2025년 1월 5일

오만과 편견

 














오늘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갔다 왔다. 어머니께 드릴 1.(아내와 함께 산) 립스틱, 2. 손톱깍기, 3. 어머니가 쓰신 동화책 2권을 갖고 갔다. 보통 외출 허가를 받고 밖에 나가 점심을 같이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데, 요즘 독감이 유행해서 오늘은 외출 하지 않고, 파리바케트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요양원 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마셨다. 어머니 노트에 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찍었다. 어머니가 30대 중후반이었을 때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가는 밀크티집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엘리자베스(여주)와 다아시(남주) 사이의 오해가 풀리는 장면을 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나도 좀 당황했다.) 이 소설의 강점은 풍자에 있기에 내내 킥킥 웃으며 읽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나도 놀랐다. --- 나는 59세가 되기까지 오만과 편견을 읽으려는 시도를 적어도 세 번은 한 것 같다. 그때마다 두세 페이지 읽고는 더 못 읽었다.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갔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오만과 편견>에 관한 짦은 글을 하나 읽었는데 그 글을 읽고나서 다시 한번 오만과 편견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고 지금 완전히 빠져들어 읽고 있다. 그 짧은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들, 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는 오만과 편견을 철학적으로 파헤치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ㅠㅠ 이건 완전히 그냥 연애 소설이야. 오만해 보이는 미남 남주와 그 남자에 대해 편견 가졌던 여주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 이 말이 내 속에 어떤 작용을 불러일으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