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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일

『정통』을 (오래 전에 두 번) 읽고.

1. 조우(遭遇)한다,는 말이 있다. 우연히 서로 만난다는 말.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 속 주인공 브라운 신부(가톨릭)와, 내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C.S. 루이스(개신교)가 그렇게 <조우>하는 순간을 목격한 적 있다. 루이스의 인터뷰 중에서: “워트: 어떤 기독교 작가들이 교수님에게 도움을 주었습니까? 루이스: 제게 가장 큰 도움을 준 현대의 책은 체스터튼의 『영원한 인간』입니다. 다른 책으로는 에드윈 비번의 『상징과 믿음』,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 그리고 도로시 세이어즈의 희곡들이 있습니다. (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 중 '16. 질의 응답' 중에서)”. 내가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던 체스터턴이 기독교 작품도 썼다니! 브라운 신부와 루이스가 G.K.체스터튼 안에서 이렇게 조우했다.
2. 『정통』(G.K.체스터튼 지음, 상상북스)을 읽으며 여러 번 웃음을 터트렸다. 내 웃음, 내 고정 관념이 깨지는 소리. <미친 사람에 대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은 그의 행동에 이유가 없다는 소리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 이유가 없는 행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취하는 사소한 행동들이다. 가령, 걸을 때 휘파람을 부는 행위나, 막대기로 잔디를 내리치는 행위나, 신발 뒤꿈치로 차는 행위나 손을 비비는 행위 같은 것들이다. 행복한 사람이라야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지, 병든 사람은 그런 한가한 짓을 할만큼 강하지가 않다. 미친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처럼 이유가 없는, 태평스러운 행동들이다. >(p.51, 제2장 ‘미치광이’ 중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나서 체스터튼은 이성과 믿음과 신앙의 관계로 넘어간다. <쑥 들어간다>. 당신과 내가 습관적으로 견지해온 <나태한 신념> 속으로. 그래서 필립 얀시는 『정통』이 자신의 영적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 했고, C.S.루이스는 혹 누군가 무신론자로 남고 싶다면 체스터튼의 책을 경계해야 한다 했다.
3.『정통』은 두 번 읽었다. 첫 완독은 강원도 예수원에서 했다. 처음 가 본 태백, 길눈 어두운 내가 간신히 예수원 가는 길목으로 들어섰을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내가 제작하던 <성서학당>에 고정 강사로 출연하고 있던 K교수였다. 어떤 일이신가요? 네, 제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하차해야 할 것 같아요. 쉼을 얻으러 가는 길에 걸려온 고정 출연자의 하차 소식.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했다. 대신 제가 괜찮은 사람 한 분 추천해 드릴께요. 아, 누군가요? 권연경 교수라고 계세요. 어떤 분이신가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짙은 안개에 가려 아직 예수원은 보이지 않았다.
2014. 8.2.
신동주
서플먼트
1) 체스터튼의 『Orthodoxy』는 2003년에 『오소독시』라는 제목으로 이미 한 번 나온 적 있음. 그 책으로도 읽으려 한 적 있으나 번역 때문에 중간에 포기. 완독은 홍병룡이 번역하고 상상북스에서 출간한 『정통』으로 했다. 당연히 후자를 추천한다. 2011.7.19 예수원에서 1독을 했고, 2011.8.29.에 2독.
2) 체스터튼은 ‘역설의 대가’라고 불리는데 역설과 비유의 진하기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루이스는 투샷, 체스터튼은 에스프레소, 톰 라이트는 - 굳이 여기에서까지 디스를 하다니, 나도 참 - 다 마신 커피 잔에 남은, 얼음 녹아 생긴 미지근한 물.
3) 필립 얀시에 따르면 체스터튼은 “100권도 넘는 책을 썼는데, 그 대부분을 비서에게 받아쓰게 하고 초고를 거의 고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작기 얀시, “몇 주 동안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아, 그래서 나에게도 여비서가 있어야 돼! 강추한다.
4) 그렇게 권연경 교수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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