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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일

교회의 크기와 언어

1. 사랑의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 무척 놀랐다. 교회에 이렇게 멋진 ‘차 마시는 곳’이 있다니. 정문으로 들어서자 넓은 뜰이 있었고 오른편으로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넓직한 <커피숍 같은> 공간이 있었다. 교회가면 종이컵에 봉지 커피 넣고 뜨거운 주전자 물 넣어 마시기만 했던 나는, 아무 때나 삼삼오오 모여서 마음껏 <쉐어링>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처음 봤고, 무척 놀랐고, 무척 부러웠다. 내 나이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였다. 그 첫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내가 삼십대 후반에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어디로 갔을까?』(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이제이북스)라는 책을 읽을 때도, 제일 먼저 그 <커피숍 같은> 공간이 떠올랐을 정도였다.
2.저자들은 마지막 남은 언어 사용자들을 소개한다. 1972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아서 베넷이 죽었다. 그는 음바바람어를 몇 마디 이상 할 줄 아는 마지막 인물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20년 전에 세상을 뜬 뒤 그도 이 언어를 쓰지 않았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선 1년에 1개 이상의 원주민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환경은 보존하려 하면서 왜 언어는 보존하려 하지 않는가. 이렇게 저자들은 묻고 있었다. 그때 문득 특정 신앙의 언어도 사라질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교회들은 사라지고 몇몇 큰 교회만 남는다면 - 영어만 남고 소수 언어들이 사라지는 것 처럼 -작은 교회에서 사람들이 쓰던 대화도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닐까. 난 예배 후 교회 근처 스타벅스에( 큰 부담 느끼지 않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와 상가 교회 계단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 아빠가 요즘 일을 못 나가 민호가 그나마 딱 하나 하고 있던 영어 학습지도 끊었어요. 그런데도 자기는 성격이 좋아 미국만 가면 친구 충분히 사귈 수 있다고 막 큰소리 치는 거에요. 어미 맘 아플까봐 그러는 거 다 알죠. 이런 속 깊은 아들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아까 나와서 기도하는데 감사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어요". (하지만, 감사하다고 하는 A집사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이번에는 그룹이 너무 좋았어요. 3학년 겨울에 캐나다 처음 보냈을 땐 갔다와서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하더니, 우리 정우가 좀 내향적인 데가 있잖아요, 이번엔 교회 누나 형들이랑 같이 가서 외로움이 덜 했나 봐요. 내년에도 또 가겠대요. 여호수아처럼 믿음으로 가겠다고. 어제는 식사 때 온 가족이 영어로 기도하는데 왜 그렇게 감사하던지". (이렇게 고백하는 B집사 입가엔 미소가 걸린다.)
3. 교회의 부(富)와 크기는 언어의 톤에도 변화를 준다. 결정적인 변화를 준다. 예를 들어, ‘목사님’이라는 단어를 한 쪽에선 “목사님 그 쪽 좀 붙잡아 주세요. 아니요, 조금 더 위로 올려주세요. 조금만 더. 오케바리! ” 라는 톤으로 호(呼) 한다면, 한 쪽에선 "하나님" 할 때 톤으로 호한다. <그 쪽 좀 꽉 붙잡아 주세요 아니 남자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할 때의 톤을 <경험하지 못한> 교회 성도들은, 비록 에스컬레이터 설치된 대리석 건물 안에서 예배드리더라도, 실은 <헐벗은> 것이다. 사춘기 중학생 한 명이 토요일 오후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소파에 혼자 앉아 핸드폰 만지작 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건다. “목사님 뭐 하세요?” “말 시키지마라 게임한다 애니팡 ” “애니팡 재미 없는데. 최고 점수 얼마 나왔어요?”. 이런 대화 막는 목사의 스케줄, 교인의 수, 예배당 크기,를 <기독교적>이라 할 수 있을까.
2013. 12.1.
신동주

서플먼트
1) “공간은 인간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십 년 전에 읽은 한 외국 건축가의 글이 아직도 생각난다. 책과 음악과 친구 뿐만 아니라 공간도 인간 영성 깊숙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내가 건축에 대한 경구를 하나 짓는다면 이렇게 짓겠다. “건축가는 미래의 대화를 건축한다.”
2) 그렇기에 예배당 건축에 대해 고민할 때 우리가 1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건 소방법이나 건폐율이 아닌 심리학과 언어학이다. 이 공간 내에서 인간과 신(神)은, 성도와 성도는, 목회자와 비목회자는, 교인과 비교인은 어떤 종류의 대화를 나눌 가능성이 높은가. 다른 말로, 이번 건축은 언어적으로 우리를 부하게 하는가 가난하게 하는가.
3) 그럼, 예배당은 어느 정도 크기가 적당해? 네가 그렇게 강조하는 <심리학과 언어학>적으로 설명해봐, 한다면: 예배 후 교회에서 점심을 같이 먹을 때 "오늘은 국수가 너무 퍼졌어요" 하는 목사에게,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지난 주에는 싱겁다고 뭐라고 하더니!" 하며 주방에 있던 권사님이 핀잔 놓을 수 있는 크기. <핀잔>과 <예배당 크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있다. 우리가 자주 목도하지만, 예배당 크기가 일정 규모를 넘게 되면 담임 목사는 그 누구로부터도 꾸중을 듣지 않는다. 노인으로부터도.
4) “공간은 인간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한 건축가 이름을 찾으려고 한 시간 넘게 웹 검색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함. 그러다가 눈에 띈 윈스턴 처칠의 경구 하나. “우리가 건물을 짓지만 그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모양지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