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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9일

『아담의 진화』(피터 엔즈 지음, 역자 밝히지 않겠음, CLC)를 읽고.

1. 출애굽은 중요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해 준. 출애굽기는 또 큐티하기도 좋다, 소위 ‘적용꺼리’가 많아서. 그런데 요즘 오십 평생, 성경 읽으며 별 관심 두지 않았던 사건에 점점 흥미가 간다. (관심 가져야만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기. 성경(이 갖고 있는 ‘문서’라는 특징)에 한정시켜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출애굽 사건보다 바빌론 포로 및 귀환 사건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창세기를 포함해 성경의 첫 다섯 권(흔히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 외 많은 성경 책들의 <최종적인 본문>이 포로기(주전 586- 444)를 전후해서야 <비로서> 완성됐다고 한다. 어떻게 선민이, 약속을 받은 민족이, 망해서 이방인의 포로가 될 수 있지? 기존의 신앙을 뿌리채 흔드는 질문 앞에서, 답이 안 보이는 곤혹스러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님 오기 불과 약 5백 년 전까지도 기존의 성경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편집되거나 수정되었다니!

기록된 것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제하는 걸 두려워하는 나였기에, 구약의 최종 편집자들의 이런 <반-요한계시록적> 행동(“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22:18)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게 구약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구약을 보고 바울은 <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이 책들을 보라>고 하였다. 또 바울은 얼마나 자주 자신의 논지를 펴기 위해 구약의 특정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몇 점 몇 획 변형 후> 인용했던가! 그런데 <교회>는 구약을 이렇게 <디스>한 그의 글을 <분서>하는 대신 <정경>으로 삼았다.

2. 욥기나 전도서, 잠언 등 소위 성경에 나오는 지혜 문학의 상당 부분은 - 오래 전 책에서 읽은 내 기억이 맞다면 약 70~80% - 당시 이집트 등 고대 근동의 지혜 문학 내용과 겹친다. 겹친다는 말은, 거기서 갖고 왔다는 말이다. 아, 그럼 다시 그 유명한 구약에 대한 바울의 평가는 어떻게 될까?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영어로 하면,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당혹스럽지만 바울은 지금 비기독교인으로부터 유래한 지혜서 70% 분량의 <이교 문장들>(pagan sentences)을 보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다고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동안 견지해왔던 <기독교-비기독교> 구분법은, 어쩌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감>을 담기엔 너무 좁은 것이었을 수 있단 생각이 요즘 든다. 이제 난 이렇게 생각한다. 성경 속 하나님의 신(holy spirit)은, 이집트의 어느 오래된 흙집 앞 의자에 앉은 노인이 인생을 돌아보며 겸손히 짧은 경구를 남길 때도, 그 옆에서 바람으로, 숨으로, 그의 얼굴을, 그의 문장을 간지러 주었을 것이라고.

3. 『아담의 진화』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을 쓴 피터 엔즈의 책이다. 두 책 모두 우리가 신앙의 근거 - 종종 타인에 대한 비판의 근거, 더 나아가 저주의 근거 - 로 삼는 성경, 이란 책이 <실제로는> 어떻게 쓰여진 책인가, 하는 점을 다루고 있다. 성경의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 무엇을 참고하는지, 천지창조와 홍수 이야기는 왜 그렇게 타 종교 신화와 유사한지, 왜 유사해도 되는지,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약을 얼마나 <자유롭게> 해석했는지,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지 등등 흥미로운 - 사실 우리에게 절박한 - 주제들에 대해 설득력 있게 해설했다. 비록 책 제목과 부제에 <진화>와 <인류의 기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성서학과 구약학을 다루고 있다. 훌륭한 입문서란 생각이 들어 강추한다.

4. 저자가 곁다리로 소개한 에피소드 하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디모데후서 3장8절은 모세 시대에 바로를 위해 활동했던 마술사의 이름을 ‘얀네’와 얌브레'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이름, 구약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여기에만 나온다. 진짜 3,4천 년 전에 살았던 두 사람의 이름 맞을까? 3,4천 년 동안 그 둘의 이름이 교회에 전승돼 왔다고 하는 주장을 펼 수도 있겠다. 하나 아닐 것이다. “익명의 인물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성경의 에피소드를 보다 구체화하려는 현상은 제2성전기에 흔한 일”(p.285)이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기입한 성경. 재차 묻게 된다. 성경은 어떤 책일까.

5. 옥에 티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번역. 개정판에선 문장을 많이 다듬어주기를 기대하며.

2014.9.9.
신동주

댓글 2개:

  1. 역자는 왜 밝히시지 않으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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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6번에서 밝혔듯이,번역이 넘 맘에 안 들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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