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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6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13

첫 취재지는 성공회대성당으로 정했다. 6.10 항쟁 때 민주 시민들이 모였던 곳. 그때도 종을 쳤다고 들었다. 제대로 된 종소리와 교회 목소리,를 취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문을 보내 취재 허락을 받고 성당을 찾았다. 신부님의 안내를 받으며 종탑의 나선형 계단을 올가가는데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성적 흥분을 느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비밀한 곳. 너무 맘에 들었다. 종 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고 해서 일단 인터뷰부터 하기로 했다. 종탑 위에서 신부님을 인터뷰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이 근처를 지날 때, 지금 저기 저 종탑 종소리 들리지, 옛날에 아빠가 저 종탑에서 인터뷰 하면서 종탑 나무 틀 사이에 몰래 아빠 볼펜을 하나 숨겨 놨어, 지금도 그 자리에 아빠 볼펜이 있는 거야, 하면 아이가 얼마나 신기해할까. 신부님이 딴 곳을 볼 때 몰래 내 모나미 볼펜을 종을 매단 나무 틈 사이에 살짝 숨겼다. 가슴이 막 뛰었다. 신부님을 따라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차, 싶었다. 저 거대한 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엄청난 소리로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 바로 옆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는 내 볼펜은...그 소리에 영원히 시달리게 되고...벌써부터 내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볼펜을 이대로 놔두고 갈 수 없어, 이대로 가면 난 밤마다 종소리에 시달릴 거야...“저 신부님...” “왜 그러시나요?” “종의 구조를 다시 한 번 봐야 제대로 된 원고를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친절한 신부님과 함께 다시 한 번 긴 나선형 계단을 거쳐 종탑에 올랐다. 종 구조 살피는 척 하다가 신부님 몰래 볼펜을 다시 꺼냈다. 요즘도 시청 앞 대성당을 근처를 지날 때면 그 때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볼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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