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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9일

『터프 토픽스 Tough Topics : 기독교의 난제 25가지』(샘 스톰스 지음, 새물결플러스)를 읽다가.

지하철에서, 내 앞 여성의  <짧은 청 반바지>에서 급히 눈을 뗀 나는 손에 쥐고 있던『터프 토픽스 Tough Topics : 기독교의 난제 25가지』로 다시 눈을 돌렸다.샘 스톤스 저, 장혜영 역, 새물결플러스 간. 목차를 훑다가 제17장 <천국에도 섹스가 있을까?> 에 잠시 눈길을 두었지만 나는 평소 읽던 습관대로 제1장 첫 페이지를 폈다. 1장의 제목은 <성경은 무오한 책인가?>. 그리고 난 충격에 빠졌으니! 저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세 가지 권위의 근거가 있으니 어떤 이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어떤 이는 <성경>을, 무언가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 권위 출처로 삼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세 번째 출처를 인정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신앙과 삶의 모든 문제에 있어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이다”. 충격충격! “교회”(혹은 공동체 혹은 사회 혹은 전통)와 “개인”과 “성경”을 이렇게 독립적인, 서로 배타적인 관계로 보는 이런 주장이, 2016년 요즘도 나올 수 있다니! ‘인식론’을 조금만 공부해도 위 주장은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는데! 모든 성경은 ‘해석’해야만 하기에 자동적으로 <해석하는 개인>이 인식 과정에 들어가고, 개인은 무엇을 해석함에 있어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전통과 해석>에 무/의식적으로 의지하기에 <교회>(혹은 공동체 혹은 전통 혹은 사회)가 성경해석이란 과정에 필수적으로 침투하게 되는데. 이런 ‘인식의 실재’를 무시하고 <용감무식하게> 나는 당신이 <전통>이나 <개인>이 아니라 <성경>을 삶의 모든 문제의 최종적인 권위로 삼기를 바란다, 같은 주장을 2016년에도 여전히 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다). 이어서 저자는 그 다음 페이지에서 “예수님을 주님과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분이 성경에 대해 가르치신 바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은 구약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대하셨다”라고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샘(Sam) 네 생각일 뿐이지. 구약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고백하는 것이 내게는 가능하니. 그 좋은 예가 요나 이야기의 역사성. (여기에 대해 내가 이전에 쓴 글 첨부하면: 요나의 물고기를 좇다가 만난 질문들. http://holyfat.blogspot.kr/2014/05/blog-post_7.html ). 
이렇게 책을 사서 제1장 처음 몇 쪽 읽다가 ‘급피로’를 느낀 나는 잠시 17장을 열어 몇 줄 살펴보다가 그냥 책을 덮었으니. 지하철은 동작역을, 계절은 여름을 지나고 있었으니. 난제는 샘 바로 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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