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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9일

사순절과 나귀(1)

한국 루터란아워 사순절 묵상집을 위해 제가 두번 째로 써야 했던 원고 주제는 <마귀>가 아니라 <나귀>였습니다 : )

3월1일 (마태복음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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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가 일하고 있는 방송사에 안토니오 구테헤스가 녹화를 위해 왔습니다. 구테헤스가 누구냐고요? 현 유엔사무총장입니다. 관례상 유엔사무총장은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국가 원수급 예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경호도 국가원수급 수준으로 하게 됩니다. 녹화를 하는 카메라 감독들은 물론이고 녹화 전 구테헤스의 메이크업을 맡은 분장실 여성들 인적 사항도 사전에 청와대로 넘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국가 수반급 인물이 저희 방송사에, 나귀를 타고 등장했다면 어떻게 보였을까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코믹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2천년 전 유대인들이었다면 의아하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큽니다. 당시에 왕이나 부자들은 대개 힘을 상징하는 노새를 탔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한 남자가 굳이 나귀를 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네 개의 복음서 모두에 나귀가 나오지만 예수님이 나귀를 선택하신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한 곳은 마태복음뿐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선택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겸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사람에 따라 겸손을 정의하는 방법은 다 다를 터인데 마태복음 저자를 보면 멍에라는 단어 없이는 겸손을 설명 못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12장에선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하네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내가 너희의 모든 멍에를 벗겨 주겠다’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 앞의 남자는 정반대입니다. ‘내 멍에를 메거라’. 우리의 상식과 예상과는 달리 예수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멍에를 멘 인간>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천국에서도 우리에겐 메야 할 멍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룩하라는 명령이 – 마음껏 음란하고 싶은 인간에게는 무거운 멍에처럼 느껴지지만 – 사실 그게 얼마나 가볍고, 적당하고, 즐거운 무게인지는, 음란 후에 찾아오는 허무와 죄책의 무게를 경험해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 겸손하다면 멍에가 우리를 살리는 줄 알기에 멍에 벗으려 발버둥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나귀처럼.

(기도)
나귀를 타고 오늘 제 앞으로 지나가시는 주님 앞에서 모든 멍에 벗어던지려고만 하는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하소서.
신동주 / CBS 기독교방송 TV제작국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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