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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2일

『제일신학』(케빈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IVP )의 제1장을 읽고.

1. 좋은 스테이크는 다 먹지 않고 한 입만 먹어봐도 알 수 있듯이, 『제일신학』(케빈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IVP )은 제1장만 <씹었는데도> - 논문집이라서 말 그대로 <씹어야> 한다 - <일등급 한우>로 만들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미국 신학자의 글은 한우에 비유하는 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라! (ㅋㅋ)) 밴후저는 각 시대마다 철학에서는 중요한 핵심 질문이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고대에는, 실재의 궁극적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가장 중요했는데 (예:  만물은 물로 돼 있다, 아니다, 공기다, 아니다, 불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만물이 '존재'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는데 여전히 사용하는 많은 범주인 실체(substance), 본질(essence), 실존(existence) 등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실재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 [즉, 형이상학이] 고대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 '제1철학(first philosophy)'이었다. 우리는 한 시대의 제1철학이 무엇인지를 확인함으로써 그 시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 12세기와 13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업과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중세의 많은 신학자가 형이상학을, 혹은 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1신학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p.28-29). 지적 허세 있는 나,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축약본까지 사서 읽었지만 아퀴나스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파고들었는지 그 <연유>를 몰랐는데 상기 설명이 참 <시원했다>.      


 2. 고대와 중세를 다뤘으니 그럼 이제 자연스럽게 <근대의 제1철학은 무엇이었나>를 묻게 되는데, 밴후저에 따르면 그것은 <인식론>이다. "이성의 시대에 뜨거운 쟁점은 인식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을까? 나의 신념이 단순한 견해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 (p.29)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된 <절차>이다. "어떤 주장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 이상 권위적인 자료들에 대한 호소"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객관적인 절차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철학의 우선 순위상의 이러한 변화는 르네 데카르트의 고전의 긴 제목전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제목은 『이성을 바르게 사용하여 학문 연구에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담론 』이다 (...) 이 점에 있어서는 자연과학의 성공이 전형적(paradigmatic)이다. 그리하여 과학적인 방법은 다른 학문 분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 근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용(matter)에 대한 방법의 우위이며, 형이상학에 대한 인식론의 우위이다". 반 하비(Van Harvey)는 그의 책 『역사가와 믿는 자(The Historian and the Believer)』에서 충분한 증거를 토대로 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를 믿는 것은 사실상 <부도덕>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모더니티를 변호한다. 하비는 우선적으로 역사가들에 대해 생각하지만, 동일한 요구 사항들이 주석가들이나 신학자들 또는 근대 시대의 다른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약 200년이 지난 후에도 많은 학문 종사자가 여전히 성경의 신빙성에 대한 <비평적 물음>들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다. " (p.29-30).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성경에 대한 <비평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지 그 <연유>를 몰랐는데 상기 설명이 참 <시원했다>. 나는 영락없는 <근대의 아들>이었다.    

3. 이어서 밴후저는 근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제1신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힌다. 그 내용이 이 제1장의 핵심을 이루지만 <개인 사정으로> 생략한다. (ㅋㅋ)  대신, 내 평생 잊지 못할 1장 결론부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밴후저는 우리가 <신학적 해석학> 작업을 수행하는 목적이 말씀을 따라 "살아감의 문제, 말씀을 행하는 문제"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 " 만일 우리가 본문을 따라서 (...) 살아가지도 않는다면, 성경 권위에 대한 우리의 교리들도 쓸모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값싼 무오론'과 더불어 남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쓴다. 값싼 무오론과 더불어 남게 될 것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누군가> 앞에서 내밀 수 있는 게 <값싼 무오론>과 <값싼 은혜>뿐이라면....  


<서플먼트> 

1) 내가 올리는 책 서평의 대부분은 일반 평신도를 위한 것인데, 이 책만큼은 <난이도>가 좀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은 밴후저가 이전에 쓴 12개의 논문을 모아서 출간한 논문집인데, 1장 중간중간에 화행이론(speech act theory)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했고, 낌새를 보니 앞으로는 더 자주 나올 것 같다. 평소 독서할 때 내가 제일 어려워하던 게 화행이론이었는데, 하나 이번에는 찬찬히 읽었더니 전체 요지를 파악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밴후저 덕분인 것 같다. 밴후저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렇기에 설명이 난해하지 않다. (모든 저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려운 개념이 나올 때 마다 꼼꼼한 역주를 달아주신 역자에게도 감사한다.  

2) 밴후저가 『제일신학』 제1장에서 제일 길게 인용한 글은 놀랍게도, 반갑게도,  C.S.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에 나오는 '공구실에서 한 생각'(Meditation in a Toolshed)이다. 밴후저에 따르면 루이스의 이 글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간략한 비유인데, 그 비유에서 루이스는 어두운 작업실에 들어가는 간단한 경험을 회상하면서 그 의미를 설명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세상을 전복시키는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루이스의 [이] 간략한 내러티브는 <근대라는 성전>에서 지식을 교환해 주는 자들의 <가판대>를 뒤엎는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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