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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7일

<신학이란 무엇인가> 를 읽고.

1. <신학이란 무엇인가>(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를 읽는 과정은 내게 있어 자전거 타기와 비슷했다. 자전거는 신비롭다. 희열이 오래 지속된다. 오르가즘은 7초면 끝나지만 자전거는 20분, 30분, 페달을 밟는 내내 동일한 쾌감을 선사한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한다는 이 책, 내게 한 달 넘게 지속되는 절정을 선사했다. 일반 ‘평신도’ 독자의 입장에서 평신도 동료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평가하자면: 쉽고, 깊고, 체계적이고, 재미있다. 마지막 1131쪽까지. 그렇다. 라스트 드롭(last drop)까지! 추천한다. 머스트-리드(must-read).머스트-드링크(must-drink). 

2. 마음에 드는 주제들을 먼저 찾아 읽었다. 제일 먼저 펴서 읽은 곳 중의 하나가 제10장 삼위일체론 이었다. 삼위일체 교리는 언제나 날 흥분시킨다. 그 이유를 3번 글에 썼다. 삼위일체론에 관심이 없다면 4번 글로 건너뛰어도 괜찮다.

3. C. S. 루이스가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만큼 - 기억에 의지하여 루이스가 한 말을 요약한다 - 비합리적인 교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데 걸림돌이었다. 하나 지금 이 교리는 내가 기독교 신앙을 진리라고 믿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됐다.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이 관계(혹은 사랑)란 얼마나 중요한 특질인가. 그렇다면 어떤 종교의 신관은 이 관계성이란 것이 우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신이 단일한 존재라면 - 즉, 신이 삼위일체나 이위일체나 사위일체가 아니라면 - 그의 본질에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관계를 맺는다는 속성이 포함돼 있지 않다. 우리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관계성이 신적인(절대적인) 기원을 갖추지 못하게 되고 ‘우연히’ 발생한 상태에 불과해진다. 삼위일체, 설명해내기 힘들지만, 그러나, 삼위일체야말로 인간의 삶 속의 관계성(사랑)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유일한 신관이다. 영원 전부터 서로 관계 맺고 서로 사랑해오던 삼위일체의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기에 인간은 관계 맺고 서로 사랑하게 됐다. 기독교가 일위일체의 신관을 주장했다면 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4. 구원이라는 ‘간단한(?)’ 교리에 대한 내 이해는 30년 전쯤 내가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을 무렵 수준에서 멈춘 것 같다. 그 상태에서 멈춘 이유는 내가 <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성경을 읽을 때나 신앙서적을 읽을 때나 내가 잘 아는 ‘구원’ 이라는 단어 앞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내 이해의 수준은 멈췄다. 요즘 다시 묻게 됐다. 어쩌면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 분이 나를 구원했다는 게 무슨 뜻일까. 2천년 전 한 ‘청년’이 흘린 피가 내게 왜, 어떤, 어떻게 - 구체적으로 어떻게! - 영향을 끼치나. 물론 보혈임을 믿는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냥 보혈이라고 외워왔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제13장 ‘그리스도 안의 구원’을 읽었다.

5. <교부시대의 신학자들>, <종교개혁>, <다른 종교와 구원의 가능성> 등 맥그래스가 다룬 다양한 주제, 항목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 하나하나에 대한 내 감상을 일일이 소개하면 지루해질 것 같아 대신 이 책 <신학이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했던 생각을 적으며 이 글을 맺을까 한다. 책을 덮는데 갑자기 한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바르트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너,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동성애,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 타인들의 정답 말고 - 너의 오답은 무엇이니? > . 읽는 건 쉽다. 아무리 책이 두꺼워도. 하나 생각하는 것, 특히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건 몹시 귀찮은 일이다. (그냥 정답을 빨리 얻고 싶다.) 하나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정답 속에서 영원히 빈약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학자들에게 나 대신 생각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귀찮지만 성경을 찾아보며 나 또한 생각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2014년 6월 24일, 그동안 맥그래스가 차지하고 있던 내 가방속 공간을 <표준새번역 성경>이 새롭게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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