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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0일

알파고

1. 이세돌과 겨루는 알파고를 개발한 건  한국의 한 영세한 스타트업이었다. 올해 41세의 민기에게 알파고는 마지막 기회였다. 민기는 7년 전 연주와 결혼 했고 5살 된 딸이 있었다. 전세를 살고,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조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지인의 소개로 어렵게 이세돌을 섭외할 수 있었다. 한 판이라도 이겨야 했다. 알파고는, 마지막 기회였다.

2. 시합이 시작됐다. 후배가 불러주는 알파고의 착점이 리시버를 통해 민기의 귀에 들려왔다. 다섯 수까지는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는 후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기 선배, 작동을 안 해요. 알파고가 전혀 작동을 안 해요".

3. 바둑알을 쥔 민기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이세돌이 의아하다는 듯 민기를 바라봤다.

4. 할아버지가 깍아주시던 참외, 할아버지와 두던 오목,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두려워 하는 곳으로 가야한다, 민기아. 두려운 곳으로 가서 집을 만들어야 해 ". 바둑알을 쥔 민기의 손이 천천히 좌변 중앙 쪽으로 향했다.

5. 대국이 끝났다. 알파고를 설치해 놓았던 대국장 뒷편 방에서 아내가 후배와 나왔다.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선 말없이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여보..." 말을 잇지 못하는 여자의 눈엔 눈물이 맺혔다. 두 부부 옆으로 청색 수트를 입은 이세돌이 무언가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대국장을 취재하던 그날 언론은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알파고가 세계 챔피온을 상대로 거둔 1승을 대서특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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