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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9일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유디트 바니스텐달 지음, 미메시스)를 읽고.

1. < 혼밥생활자의 책장>이라는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후배 K가 선배, 이 책 한번 읽어보세요, 30분이면 다 봐요, 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빨려들어가서 30분만에 다 봤다. 2012년 「보도이(BoDoi)」 선정 〈올해 최고의 만화〉와「그래픽노블 리포터」선정 〈2012년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뽑힐만 했다. 다비드라는 남자가 두 딸과 두 번째 아내를 남겨놓고 암에 걸려 죽는 이야기다.
2. 나는 마지막 컷이 제일 좋았다. 방금 막 숨을 거둔 다비드가, 과거로 돌아가 우리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컷이었다. 병색이 완연한 ,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약물 치료 받는, 점점 말라가서 뼈만 앙상한 다비드가 아니라 처음으로 <다비드의 원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 왜 그렇게 끌렸는지 모르겠다. 아주 젊은 얼굴도 아니었다. 하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얼굴에선 내 부러움을 자극하는 그 어떤 싱그러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작가는 다비드의 이 <진짜 모습>을 - 이 그래픽노블 한 권을 작화하는 내내 - 이미 <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도 잊지 않고. 혹시 제일 먼저 그리지는 않았을까? C.S.루이스는 『영광의 무게』에서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영원한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신이나 여신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더없이 우둔하고 지루한 사람이라도 언젠가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미래의 그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무릎 꿇고 경배하고 싶어질 존재가 되거나, 지금으로선 악몽에서나 만날 만한 소름끼치고 타락한 존재가 되거나. (...) 우리가 농담을 주고받고, 같이 일하고, 결혼하고,무시하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들입니다. 불멸의 소름끼치는 존재가 되거나 영원한 광채가 될 이들입니다." 마지막 컷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루이스가 떠올랐는지, 루이스를 읽었기에 마지막 컷이 그렇게 좋았는지, 잘 모르겠다.
201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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