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6년 4월 4일

『신학용어사전』(후스토 L. 곤잘레스 지음, 그리심)을 읽고.

1. "어떤 교리에 관한 진짜 비판은 그 교리의 역사다"라는 경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경구다. 진짜 이 경구에 동의한다. 교리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종종 <지금 내가 꽂혀있는 이 교리>가 사실은 <간신히 합의>에 이른 교리라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나는 낙심된다기 보다는 기쁘다. 하나님은 교리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묵상할 수 있게 돼서 말이다. 이렇게 교리를 역사적으로 파들어가보는 지난한 작업을 후스토 곤잘레스는 <수백 개>의 <신학 용어들>을 두고 수행했다. (역사신학을 전공해서 가능했으리!) 곤잘레스의 『신학용어사전』을 읽으며 신학 용어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수 백번 만났...(오바 같다 -.-) "나의 신학 수업 첫 주는 흥분으로 시작되었다가 좌절로 끝이 났다. (...) 용어들은 항상 예상했던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 루터가 개신교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을 시작했지만 루터파(Lutheranism)는 개혁파(Reformed)가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 (곤잘레스, 『신학용어사전』 '들어가는 말' 중에서).

2. 곤잘레스는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신학 용어 약 300개(A~Z)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A 항목에 나오는 '적그리스도(Antichrist)' 라는 용어를 읽을 때 나는 알게 됐다. 아, 내가 이 책을, 이 사전을, 끝까지 읽겠구나! (좀 유치해보이는 용어에서 감명 받은 거 같아 좀 민망하다.) 곤잘레스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적그리스도라는 용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시작했다. " 적그리스도.신약성경에 5번만 나타나는 용어로 요한일서에 4번, 요한이서에 1번 나온다.그러나 기독교 종말론(Eschatology)에서는 매우 자주 논의되는 주제이다". 딱 두 줄이었지만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요한계시록에는 안 나오는구나. 당근 나올 줄 알았는데... -.- 그리고 이 용어를 둘러싸고 역사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하던 곤잘레스는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 이 모든 것들과 관련하여 지적되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요한서신에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는 최후의 적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 전부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요한일서 2장 18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났으니' " 그래서 나는 또 확실히 알게 됐다. 적그리스도는 복수(複數)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 예상은 다음 구절에서도 또 한 번 깨졌다. " 한편 그러한 악은 단순히 요란스럽게 참된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로 받아들여진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유사한 존재로 나타나며,이를 통해 기만하는 모든 세력들의 토대를 놓는다." (이 대목 읽을 때 목사 네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용해도 되는 건가, 혼자 자문했다.계속 자문 중.)

3. 하나 뭐니 뭐니 해도 역사신학자로서의 곤잘레스의 장기는 성찬 , 삼위일체 , 성육신 , 필리오케 등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었던 용어들을 소개할 때였다. 요즘 루터 교회를 출석하기에 '성찬' (Eucharist)을 주의 깊게 보았는데 흥미롭고 유익했다. 일단, 평신도에겐 포도주를 주지 않고 빵만 주는 시기가 있었다는 걸 알고- 나 혼자 책 앞에서- 충격에 휩싸였다.(평신도는 더 경건해서, 성직자와 달리, 피 없이 살만 먹어도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야, 혼자서 궁시렁궁시렁...-.- ). 초기 성찬은 "그의 나라에서 있을 최종 연회를 고대" 했기에 "기뻐"하는 시간이었다는 사실, "성찬식이 장례식 부위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중세 초기"라는 사실 등을 새로 알게 됐다. 화체설,실제적 임재설, 영적 임재설 등을 설명하다가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개신교 종교개혁이 예상하지도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던 하나의 결과는 수많은 종교개혁 전통에서 성찬이 매우 드물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전 형식의 글 속에, 이런 역설과 아이러니까지 빼놓지 않고 다 버무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4. 내가 특히 지적 쾌감을 느낄 때는 바로 그런 때였다. 역사학자로서 곤잘레스가, 큰 맥락이나 흐름에 대해 한마디 툭 코멘트 할 때. 논쟁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나올 때. "2세기 말엽까지 그리고 여러 세기가 흐르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점차 예수에게보다는 마리아(Mary)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동정녀 탄생). "의미심장하게도, 2세기에 일어났던 동정녀 탄생이라는 주제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예수가 처녀에게서 탄생하였다는 생각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가 탄생했다는 개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믿기가 어렵고 거북스러웠던 것은 처녀가 예수를 잉태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황송하옵게도 여자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셨고 아기로 나셨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서, 현재 사도신경의 전신인 고대 로마 상징(Old Roman Symbol)은 예수에게 인간 아버지가 있다고 주장하던 자들에게 반대해서가 아니라, 예수가 탄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고백된 것이다". (동정녀, 한 번 더 -.- ). "이러한 근거에서 최근의 많은 성경학자들은 성경의 '권위'(authority)에 관한 논의보다 해석학에 초점을 둔다 " (성경). "의미심장하게도 전반적으로 헬라 문화권 교회의 절대 다수는 휘포스타시스를 선호했고, 프로소폰이라는 용어를 거절했다." (인격, 위격)." 기독교가 처음 시작되던 때부터 기독교회는 세례 받은 기독교인들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다루어야만 했다" (해벌 解罰)

5. 마지막으로 '거룩한 변화'(Transignification)라는 용어를 보자.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1965년 교황 바울 6세는 자신의 교서 '미스테리움 피데이'(Mysterium Fidei)에서 거룩한 변화설을 이단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이에 대항하여 중요한 보류(coveat)를 선언하였다" (p.264). 『신학용어사전』는 내가 태어나서 완독한 최초의 사전임과 동시에,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비문과 오탈자가 제일 많은 책이었다. 경이로울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내가 읽으며 무척 많이 배운 이 책에 대해서, 절판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으나,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추천에 있어서만큼은, 중요한 보류(coveat)를 선언하....-.-

2016.4.4.

* 요즘도 책을 읽다가 곤잘레스의 이름이 나오면 반갑다. 제일 최근에 그를 다시 만난 건 『기독교 교리와 해석학』 (앤서니 C. 티슬턴 지음, 새물결플러스)을 읽던 때였다. "역시 곤잘레스야!"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곤잘레스는 예컨대 기독교의 창조론이 처음 세상의 기원에 대한 물음을 묻는 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는 인간의 생명과 실존에 대한 감사에서, 유한성과 피조성과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에 대한 인간의 자각에서, 그리고 인간의 선물과 세상의 선함에 대한 그분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려는 욕구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p.40).

2021. 4. 4.

** 오늘 쓴 서평을 처음 페북에 올린 때는 2016.4.4. 그후 2018.4.4 에 수정본 올림. 그리고 2021. 4.4 오늘 재수정본 올림. 내게 4월4일은 곤잘레스의 날. 썰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