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0일
교회 개혁을 위한 아주 작은 실천 방안
돈 전혀 들지 않는 교회 개혁 방안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돈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나 단체에 교회가 돈을 전달할 일이 있으면 담임목사가 아니라 재정담당 직원이 했으면 좋겠다. 전달식에 목사 대신 교회 직원이 왔으면. 사람들은 담임목사가 아니라 그 교회에,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사람이 영광받는 일이, 사람에게 영광돌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아프리카 등지의 어려운 현장을 돌아보는 일도 담임목사가 아니라 해외구호일을 제대로 배우거나 경험한 교인이 갔으면 좋겠다. 전문가가 담임목사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돌아오리라는 건 상식이다. 교회가 한 사람의 항공비를 추가로 부담할 수 있더라도, 그때도, 담임 목사가 아니라 해외구호에 <관심과 사명>이 있는 교인을 <한 명 더> 보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 둘은, 그러니까 그 <교회>는, 담임목사가 그 교회를 떠나고 새로운 목사로 바뀌더라도, 해외의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지혜로운 방법들을 축적시켜나가며 해나갈 것이다. 기독교 영화제 개막식에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와서 격려사를 하고 돈을 전달하는 일을 본 적이 있다. 그 행사에 큰 돈을 댄 그 목사는 그날 그 행사장에서 최고의 <귀빈>이었다.그런데, 그날 만약, 그 교회의 영화학과 교수나 연극 배우 교인이 그 행사장에 교회 대표로 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난 확신하건대, 그의 격려사는 지금 막 단편영화나 단막극을 만든 청년들에게 훨씬 더 <구체적인 도전과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식의, 그날 그 담임목사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넘어서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삶의 현장에, 다양한 요청과 다양한 요구에, 한 사람만 파송하는 건 어색하다. 만사형통(대통령의 형)이 문제를 일으켰듯 만사담통(담임목사)도 문제를 일으킨다. 각 영역의 대표자들이 - 실질적인 대표자들이- 많이 존재하는 교회는 세습도 잘 안 될 거라 믿는다. 오늘의 작은 결론. 돈은 직원이 전달하자. 목사는 자기 개인 돈 전달할 때만 참석하자. 목사의 해외 방문은 자비로 하자. 격려사도...더 구체적으로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이 하자.(2013.9.10)
2016년 9월 8일
대형교회
나는 종종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데 어느 날 내 삶 속에 대형교회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건 페이스북 친구 수였다 많아야 좋다고 생각해서 계속 늘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천오백이라는 수를 이번 주에 육백이십으로 줄였다 더 줄이려고 한다 성도들의 말을 다 들을 능력도 없으면서 계속 등록을 받는 대형교회가 나였다 누군가의 소중한 이야기를 스크롤 한다는 게 훑는다는 게 미안했다
2016년 9월 3일
『대지의 기둥』(켄 폴릿 지음, 문학동네)을 읽고.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대지의 기둥』은 12세기 영국에서 성당 건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어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스파이 소설인 『바늘 구멍』의 저자 켄 폴릿이 썼어요. 고등학교 때 켄 폴릿의 『바늘 구멍』을 읽고 그에게 반해 요즘도 이런 저런 인터넷 싸이트에서 닉네임을 요구하면 Ken이라고 적곤해요.
2.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이거였어요. 선한 사람은 점점 더 선해지고 나쁜 사람은 점점 더 나빠져요. 선인은, 처음에는 부족한 점 있어도, 점점 더 용감해지고, 더 너그럽고 지혜로워지고. 자기 일을 더 잘 하게 되고. 근데 악인은 더 자기중심적이 되고, 사람들을 더 이용하려고만 들고, 점점 더 <괴물>로 변해가요. C. S. 루이스가 어디선가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났어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우리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했을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은 방금 한 일보다 더 훌륭하고 덕스러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마음이다. 루이스는 또 어디선가, 지옥은 점점 더 자기 중심적으로 변모한 개인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죠. 타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집중하는 곳! 점점 자기 안으로 쪼그라들고 쭈그러드는, 그래서 지옥은 어떤 의미에서 광활하기보다는 하나의 점처럼 아주 작을 거라는 말은 한 게 기억나요. 여하튼 켄 폴릿도 이 장편 소설을 쓰면서 “몇 십 년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이 <성숙해감에 따라> 그들의 삶에 새로운 굴곡을 만들어 넣”는게 제일 어려웠다고 고백해요. (1권, 서문).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재미 포인트. 이 책의 저자 켄 폴릿은 기독교신자가 아니어요. 그런데 이 장편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수도원장이지요! 그래서 발생하는 켄 폴릿의 고민: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느님의 사람’에 속하는 부류여야 했다. 이 점은 내게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아마 상당수 독자들도 그럴테지만 내세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인물에 흥미를 갖는 일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거 같았다”. 제가 볼 때 켄 폴릿, 그 일을 무척 성공적으로 해내요. (비기독교 신자 켄 폴릿이 쓴 특정 문장을 읽다가 제 불신앙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어요.)
3. 미술, 건축, 조각, 미학에 나름 <조예(?)가 있는> 저로서는 (자뻑만렙-.-) 내심 성당 건축을 맡은 톰과 그의 의붓아들 잭이 <석재와 나무와 나누는 깊은 대화>를 기대했어요. 돌과 나무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숨겨진 최대치>를 보여주지 않잖아요. 상대가 정말 믿을만하다고 여겨질 때만 자신을 <만져도 된다고> 허락하죠. 근데 저자 폴릿은 톰과 잭이 <여자들과 나누는 육체적 대화>만 자꾸 들려주는 거예요. (베리댕큐하면서도 아쉬웠던 부분이에요). 엘렌과 앨리에너 두 여성의 절정을 묘사할 때만큼 돌이 흘리는 땀방울을...강한 바람을 맞을 때 성당의 목재가 휘는 그 긴장을, 그때 터져나오는 깊은 저음의 신음을....좀 더 자세히 들려주었더라면....(근데 이런 지적, 이 책에 대한 디스인가 낚시인가 -.-).
2016.9.3.
신동주
신동주
서플먼트
1) 지금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1권, 2권, 3권의 섹스씬을 다시 한 번 훑어보니 처음 읽을 때는 못봤던 특징 하나가 보인다. 거의 매 씬에 nipple이 등장한다. (켄의 개취존중 -.-). 일단 제3권에서만 한 군데 살펴보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젖가슴으로 가져갔다. (...)그가 그녀의 젖꼭지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 비틀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더니 그에게서 몸을 떼며 헐떡였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다. “내가 아프게 했나요?” 그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 게 아녜요!” (3권,p.151). 한편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센테스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물릴 줄 모르는 육체적 정열에 사로잡힌 신혼부부 같았다. 아마도 처음으로 잠글 수 있는 문이 달린 침실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터였다 (...) 이제는 아무에게도 들킬 염려 없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엘리에너는] 특별한 전율을 느꼈다. 지난 이 주 동안 자신과 잭이 했던 일 몇 가지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3권, p.495.) 나는 은근한 묘사를 좋아한다.(-.-)
1) 지금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1권, 2권, 3권의 섹스씬을 다시 한 번 훑어보니 처음 읽을 때는 못봤던 특징 하나가 보인다. 거의 매 씬에 nipple이 등장한다. (켄의 개취존중 -.-). 일단 제3권에서만 한 군데 살펴보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젖가슴으로 가져갔다. (...)그가 그녀의 젖꼭지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 비틀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더니 그에게서 몸을 떼며 헐떡였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다. “내가 아프게 했나요?” 그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 게 아녜요!” (3권,p.151). 한편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센테스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물릴 줄 모르는 육체적 정열에 사로잡힌 신혼부부 같았다. 아마도 처음으로 잠글 수 있는 문이 달린 침실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터였다 (...) 이제는 아무에게도 들킬 염려 없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엘리에너는] 특별한 전율을 느꼈다. 지난 이 주 동안 자신과 잭이 했던 일 몇 가지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3권, p.495.) 나는 은근한 묘사를 좋아한다.(-.-)
2) 섹스 묘사와 달리 켄 폴릿의 건축 묘사는 약간 아쉬웠다. 다양한 건축 사조와 기법이 등장하지만 난 그가 회반죽 한 번 해보지 않았다는 거에 오백 원 건다. 『대지의 기둥』을 읽는 동안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자서전『한나의 아이』를 동시에 읽었는데 예닐곱 살부터 벽돌 쌓는 조적공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던 스탠리의 묘사가 훨씬 - 당연히 - 더 실제적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묘사. “우리는 말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났다. 땀이 쉬어 공사 현장의 모든 사람이 악취를 풍겼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는데, 우리가 일을 잘 하고 있는지 감독하러 현장에 오는 사람들이 그 냄새 때문에 괴로워할 때 특히 좋았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으므로 우리는 계속 물을 마셔야 했다. 물은 나무 물통에 들어 있었고, 아침 일찍 그 안에 얼음을 넣었다. 얼음이 두어 시간 이상 가는 법이 없었지만 뜨거운 물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물을 마시러 갈 때는 조적공이 곧 찾게 될 물건을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조지 하퍼에게 배웠다. 한마디로, 움직임을 최소화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를 끝까지 버티기 힘들었다.”(p.74-75).
3) 나는, 공간과 건축은 사람에게 아주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그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짓는 거라고 믿는다. 교회 건축에 대해서 이전에 썼던 글 하나 첨부. 제목은 ‘교회의 크기와 언어’. http://holyfat.blogspot.kr/2013/12/blog-post.html
2016년 8월 14일
소송 비용 모금을 처음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이번 재판의 판결이 바로 내려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제가 소송 비용 모금을 제안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밝히려고 합니다. 모금을 제안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일도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원칙과 의지에 따른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1. 원고 송병현 교수가 피고 이성하 목사와 맹호성 이사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이 소송의 원고는 <한 명>이지만 피고는 <두 명이 넘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학서적 표절반대>(이하, <신표> ) 싸이트에서 한국 기독교 학문 세계의 정화와 성숙을 추구하는 <공익적 성격>을 봤고 그 공익적 성격에 <동의>해서 <신표>에 회원으로 가입, 활동해 온 저에게 <신표> 공동 관리자들의 피소는 <저에 대한 피소>와 다를 바 없었고, 더 나아가 <한국 기독교 학문장의 공익성> 자체의 피소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송 비용 모금은 우리 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추구, 보전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는 한 시민인 제게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행동( 더 나아가, 다수의 <신표> 회원들의 행동)을 "피고들의 선동"에 이끌린 행위라고 주장하는 원고 측 주장은 <사실>과 어긋나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전성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공익성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성>을 <폄훼>하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하겠습니다.
2. 저는 한국 기독교 학문장의 정화와 성숙이라는 <공익적 목표>를 위해 활동하는 <신표>의 이번 송병현 교수 건 문제 제기는 그 <공익적 성격> 때문에 개인들 사이의 <사적인 명예 훼손 행위>와는 달리 법률적 판단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법률신문>(2010.8.25)에서도 소개됐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표절 의혹 제기는 죄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 "음해 아니면 연구성과 비판 허용돼야" , 청주지법, 교수에 무죄선고 > 입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학술적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구성과에 대한 의혹 제기는 공적 관심 사안으로서 연구윤리 및 실적 평가의 공정성과 관련된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해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또 "피고인이 피해 교수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감사한 결과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일방적으로 적시했고, 오래전의 논문을 문제 삼았으며, 적시한 내용으로 침해되는 개인적 법익이 가볍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방의 목적은 부인된다"고 판시했습니다.
3. 이번 소송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학문적 정직과 성실성>이라는 공공적 가치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6.6.11.
신동주 드림 ( <신학서적 표절반대> 회원, CBS 기독교방송 프로듀서 )
신동주 드림 ( <신학서적 표절반대> 회원, CBS 기독교방송 프로듀서 )
2016년 8월 13일
어떤 싸이즈
1. 저는 대형 교회에 대해 엄청 반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정말 당혹스러웠을 때가 있었어요. 한 대형교회 목사가 교회를 반으로 나누겠다고 했을 때였는데요, 꽤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하는 거예요. 근데, 쪼개도 1만이에요, 그 교회는. 두 개로 나눌 게 아니라 백 개로 나눠야 해요. 그래야 한 팀이 200명이 되죠. (내 기준 -.-) 이렇게 대형 교회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제게 이번 주에 엄청난 <대형 사건>이 일어났으니....
2. 그저께 저녁에 페이스북에 올린 <새롭게하소서> 영상 하나가 도달 314만 명, 공유 17만4천회, 좋아요 2만7천명, 댓글 3천 개, 조회 149만 회를 기록한 거예요. 이러면서 제게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 ㅋ큐ㅠ(웃어야할지울어야할지). 평범한 숫자 감각을 잃어버린 거예요.
3. 최강희 제2편을 올렸는데, 제2편은 지금 공유 1497회, 좋아요 3386. 그런데 <이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사실 공유 1400개는 대단한 거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아, 이게 대형 교회 목사들이 느끼는 <갈증>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어느 순간, 한 명이 <목적>이 아니라 300만을 구성하는 <단위>로만 느껴지는....더 멀리가기 위해 되도록 빨리 넘어서야할 <단계>로만 느껴지는....200명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네, 제 마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대형 교회> <대형 집회>로 변해 있었어요....제 마음은 <잠실종합운동장>이었어요....
4. 주님, 공유가 많이 되는 간증과 공유가 적게 되는 간증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와 페북을 하는 유저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모두가 <크기>에 속지 않게 하여주십시오. 작은 누룩, 작은 씨, 작은 자 한 명, 작은 하나님 나라....
2016. 8. 12.
ps.
네가 페북에 올리지 않은 이야기...네가 올릴 수 없었던 그 포스팅...에 나 혼자 슬퍼요와 화나요 눌렀단다....죄송해요 주님....제 깔끔한 타임라인에 속지 않는 당신에게 이 시간.....
네가 페북에 올리지 않은 이야기...네가 올릴 수 없었던 그 포스팅...에 나 혼자 슬퍼요와 화나요 눌렀단다....죄송해요 주님....제 깔끔한 타임라인에 속지 않는 당신에게 이 시간.....
2016년 7월 28일
『천년 동안 백만 마일』(도널드 밀러, IVP)을 읽고.
1.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두 아들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얘들아, 이 세상에서 섹스를 완전하게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뭔 줄 아니? 관계를 갖고 난 후 의무적으로 느낀 점 써내라고 하는 거야, A4 용지 하나 가득. 일 년이면 이 세상에서 섹스 없어진다. 어, 아빠 말 안 믿냐? 독후감은 사라져야 해, 독후감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안 읽게 되는 거라고. 듣고 있니?
2. 인생에 제발 한 번만이라도 남을 위해 살아봐야겠다는 절박함에서 청소년 멘토링 NGO <러빙핸즈>에 가입하고 첫 교육을 받던 날이었어요. 교육 시작과 함께 진행자가 교육 과정 수료를 위해선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할 숙제가 있다는 거예요. 숙제? (음, 온라인으로 지원서 받을 땐 숙제 얘긴 없었는데 ㅠㅠ 궁시렁 궁시렁). 진행자의 말이 이어졌어요. 저 뒤에 있는 4권의 책 중 하나를 골라 독후감을 써주세요. (뭐라고? 독후감이라고?? 지금 그만두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겠지? ㅠㅠ ) 9시에 시작한 교육은 저녁 6시30분에 끝났고 저는 느릿느릿 독후감용 책이 전시돼 있는 사무실 뒷편으로 걸어갔어요. 이 중에서 고르면 되는 건가요? 네, 넷 중에서 마음대로 고르시면 됩니다. (마음대로가 아니라 의무적이겠지). 저는 기계적으로 제일 왼쪽에 있는 책부터 집었어요.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저는 나머지 셋은 보지도 않고 그 책을 샀어요. 어느새 제 불평은 멎었어요. 홍대역에서 전철에 오르자마자 책을 폈어요. 밀러는 제가 (하이네켄이나 칭따오만큼이나) 좋아하는 작가였어요. 뭐랄까, 횡재를 한 느낌이었어요.
3. 밀러가 쓴 첫번 째 책 『재즈처럼 하나님은』(복있는사람)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45주 이상 올랐을 정도로 성공적이었어요. 저도 읽었었는데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고백하는 이런 구절들이 아직도 기억나요. "내 시간의 95%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데 들어간다". 밀러는 C.S.루이스의 시(詩)도 한 편 인용하며 이런 말을 해요. "처음 읽었을 때 그 심정에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꼭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밀러가 인용한 루이스의 시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재즈처럼 하나님은』, p.32에 나와요.)
이 모두는 당신을 사랑함에 관한 번지르르한 궤변입니다.
태어나던 날부터 나는 이타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철두철미 속속들이 타산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나는 하나님,당신,모든 친구가 나를 챙겨 주기만을 바랍니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평온함,안심,즐거움입니다.
나는 내 살갗 밖으로 한 치도 기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을 말하지만 학자의 앵무새는 헬라어를 말하겠지요.
내 감옥에 갇힌 나는 언제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태어나던 날부터 나는 이타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철두철미 속속들이 타산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나는 하나님,당신,모든 친구가 나를 챙겨 주기만을 바랍니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평온함,안심,즐거움입니다.
나는 내 살갗 밖으로 한 치도 기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을 말하지만 학자의 앵무새는 헬라어를 말하겠지요.
내 감옥에 갇힌 나는 언제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부끄럽지만 이 시, 제게는 <시>가 아니라 저에 대한 <다큐>로 다가왔어요. 제가 추구하는 목표, 정확하게 "평온함, 안심, 즐거움", 이 셋(!)뿐이었어요.(여전히, 이예요.) 신의 은혜가 아니면, 신의 개입이 없으면, "내 살갗 밖으로 한 치도 기어 나올 수 없는" 내 인생. 밀러는 참 가벼운 필치로, 저를 깊이 찔렀어요. 밀러는 첫 책의 성공 이후 계속 해서 책을 냈어요. 하나 계속 실패했어요. "내가 몇 년 전에 쓴 그 책이 많이 팔렸고 그 때문에 나는 한동안 자만심에 젖어 내가 대단한 작가나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뒤로 쓴 책들이 잘 팔리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다시 정서가 불안해졌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천년 동안 백만 마일』,p.25). 여친과도 헤어졌지요. 영성에 대해 멋진 글을 썼던 밀러는 이제 아침이 와도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TV리모컨만 찾는 그런 사람으로 변했어요.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의 심정은 잘 모르지만, 무기력한 사내 심정은 잘 알아요). 그리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밀러에게 어느날 영화제작자 스티브와 벤이 찾아와요. 밀러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한 편 제작하고 싶다면서요.
4.『천년 동안 백만 마일』은 영화를 한 편 찍으려다보니까 다시 바빠졌고, 바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됐다, 라는 얘길하는 책이 아니어요. 다시 바빠짐. 다시 주목 받음. 다시 화려해짐은 사실 변화가 아니잖아요. 단순한 커버링이지요. 그저 잠시 미뤄두기이지요. <낸시랭의 신학펀치>라는 엄청난(?) 성공을 경험한 뒤에도 (중복이라 시전한 <썰렁> 조크 -.- ) 저라는 사람은 여전히 저 한 사람 안에 갇혀 있고, 지금 비록 틈틈이 펀치 시즌2를 준비하고 있지만, 혹 시즌2가 성공하더라도, 그 성공이 저를 <진짜>로 만들어주지 못할 거란 것, 너무 잘 알아요. (그런데 저는 진짜로 진짜가 되고 싶어요. ) 그래서 저는 밀러와 함께, 정말 밀러와 <함께> , 제 삶이라는 스토리에 <빠져있는 게> 뭘까, 절박하게 물었어요. 예, 밀러의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밀러가 되었어요. 왜 나는 진짜를 살고 있지 못할까. 제가 묻자, 스티브와 벤이 제게 말했어요. "우린 지금 이야기의 갈등을 구상하는 중이에요 (...) 진짜 갈등다운 갈등이어야 해요. 좋은 이야기가 되려면 도널드는 자기가 부딪치기 싫은 일에 부딪쳐야 합니다".(p.80). 여기에 대한 저와 도널드의 생각? " 나는 (...) 쉬운 이야기를 바랐다. 하지만 쉬운 이야기는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p.48). 밀러의 다음 고백은 제 고백이나 마찬가지예요. " 어떤 이야기가 나를 부르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더 나은 이야기를 사는데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더 나은 이야기를 살지 않는 것은 죽기로 작정하는 것과 같다. (...) 죽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p.82).
5. 평온함, 안심, 즐거움, 이 셋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불쌍한 사내가 한국에 한 명 있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가 기꺼이 갈등에 부딪치고 <더 나은 이야기>를 선택하게 하소서. 그 새 이야기에선, 불쌍한 주인공이 1센티라도 자신을 뚫고 나올 수 있게 하소서. 1센티라도 이전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다가가게 하소서.
2016. 7.28.
신동주
2016년 7월 26일
2016년 7월 19일
『터프 토픽스 Tough Topics : 기독교의 난제 25가지』(샘 스톰스 지음, 새물결플러스)를 읽다가.
지하철에서, 내 앞 여성의 <짧은 청 반바지>에서 급히 눈을 뗀 나는 손에 쥐고 있던『터프 토픽스 Tough Topics : 기독교의 난제 25가지』로 다시 눈을 돌렸다.샘 스톤스 저, 장혜영 역, 새물결플러스 간. 목차를 훑다가 제17장 <천국에도 섹스가 있을까?> 에 잠시 눈길을 두었지만 나는 평소 읽던 습관대로 제1장 첫 페이지를 폈다. 1장의 제목은 <성경은 무오한 책인가?>. 그리고 난 충격에 빠졌으니! 저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세 가지 권위의 근거가 있으니 어떤 이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어떤 이는 <성경>을, 무언가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 권위 출처로 삼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세 번째 출처를 인정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신앙과 삶의 모든 문제에 있어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이다”. 충격충격! “교회”(혹은 공동체 혹은 사회 혹은 전통)와 “개인”과 “성경”을 이렇게 독립적인, 서로 배타적인 관계로 보는 이런 주장이, 2016년 요즘도 나올 수 있다니! ‘인식론’을 조금만 공부해도 위 주장은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는데! 모든 성경은 ‘해석’해야만 하기에 자동적으로 <해석하는 개인>이 인식 과정에 들어가고, 개인은 무엇을 해석함에 있어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전통과 해석>에 무/의식적으로 의지하기에 <교회>(혹은 공동체 혹은 전통 혹은 사회)가 성경해석이란 과정에 필수적으로 침투하게 되는데. 이런 ‘인식의 실재’를 무시하고 <용감무식하게> 나는 당신이 <전통>이나 <개인>이 아니라 <성경>을 삶의 모든 문제의 최종적인 권위로 삼기를 바란다, 같은 주장을 2016년에도 여전히 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다). 이어서 저자는 그 다음 페이지에서 “예수님을 주님과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분이 성경에 대해 가르치신 바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은 구약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대하셨다”라고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샘(Sam) 네 생각일 뿐이지. 구약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고백하는 것이 내게는 가능하니. 그 좋은 예가 요나 이야기의 역사성. (여기에 대해 내가 이전에 쓴 글 첨부하면: 요나의 물고기를 좇다가 만난 질문들. http://holyfat.blogspot.kr/2014/05/blog-post_7.html ).
이렇게 책을 사서 제1장 처음 몇 쪽 읽다가 ‘급피로’를 느낀 나는 잠시 17장을 열어 몇 줄 살펴보다가 그냥 책을 덮었으니. 지하철은 동작역을, 계절은 여름을 지나고 있었으니. 난제는 샘 바로 너이니.
2016년 7월 8일
『신학자가 풀어 쓴 유교이야기 』(배요한 지음, IVP)의 서론을 읽고.
배요한 교수가 쓴 『신학자가 풀어 쓴 유교이야기 』(IVP)의 서론을 읽고 있는데 넘 좋아요. 신학교를 졸업하고 유교를 <제대로>공부하고 싶어 성균관대학교에 또 들어간 일 등 자신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진실성과 성실성이 느껴졌어요.(신학교와 성균관대 양쪽에서 적지 않은 오해 비난을 받았다고 하세요 ㅠㅠ) . 다음 구절을 읽는데 가슴이 찡. "그후 박사과정을 위해 유학길에 오른 저는 2002년 4월11일 동양사상과 기독교 신학의 비교 연구로 명성이 자자했던 보스턴 대학교의 총장이자 제 지도교수가 될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을 만났습니다. 네빌은 이 분야에 있어 미국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분으로, 청교도 신앙 위에 세워진 도시 보스턴의 대표적인 대학교 학장답게 비교종교라는 학문적 방법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뛰어난 신학자입니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가 제게 했던 질문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짧게 인사를 나눈 그는 다그치듯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 자네는 한문을 독해하고 한문으로 된 고전을 읽을 수 있나?" "심성론에서 퇴계와 율곡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나?" 저는 단호한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네빌은, 자신은 지금까지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학생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며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습니다." (p.14) 이상하게 옛날부터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이야기는 로맨스 소설보다 더 제 마음을 뛰게 만듭니다. " 마지막으로 다른 종교를 공부하기 전에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질과 본질을 비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모든 종교는 하나의 종교 전통으로 사회 속에서 그 종교의 본질적 측면과 비본질적 측면 혹은 왜곡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 (p.22)
(서플먼트)!
내 몸의 두 배는 돼 보이는 거구의 헤비 (N.T. Heavy) 교수가 내게 물었다. "동주, 자네는 헬라어를 독해하고 헬라어로 된 1세기 자료들을 읽을 수 있는가?" "자네는 구원론에 있어서 바울과 당시 1세기 유대교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나?"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very negative"라고 대....(여기까지)
2016년 5월 28일
'표절' 여부 관련 첫 재판을 앞두고.
1. 최근 개신교 신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사건 하나가 있는데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백석대학교 송병현 교수가 자신의 저서 <엑스포지멘터리>에 대한 '표절 의혹' 문제를 제기한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와 맹호성 이사(알맹2) 때문에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두 사람에게 각각 1억원 씩 총 2억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한편 송병현 교수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지자 국내외의 <신학서적 표절반대> 그룹 회원들 수백명은, 이번 소송 사건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한국 신학계에 바른 연구 풍토가 세워지기를 바라면서, 피고 이성하 목사와 맹호성 이사의 재판 비용을 모금하는 운동을 벌였고, 자발적인 이 운동을 통해 9,987,113원(2016.5.2.현재)의 재판 비용이 모였다. 민사 소송 건 첫 공판은 6월 10일 오후 2시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2. 지난 며칠 동안 나는 한국의 개신교 신학교 교수들에게 <호소문> 하나를 쓰고 있는데 아직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 어떻게 이번 사건의 실상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신학자들이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이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있지, 라는 생각에 약간 분노에 차서 격정적으로 썼다. 호소문의 마지막에선 에스더 4장에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하는 말을 인용할 생각이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4: 13-14). 하나 점점 쓰다보니, 이런 글을 써도 아무 손해 보지 않는 나와, <입장 표명>을 하게 되면 이런저런 유형무형의 손해, 피해, 고통을 당할 신학 교수들의 처지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적하려고만 했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내가 <그 위치>에 있다면 과연 용기 있게 행동할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썼던 글을 지우고, 신학 교수들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호소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기에 아래 글은, 미래의 내가 어느날 오늘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꼭 용기를 내라고 나에게 쓰는 글이다. 정말 상식 수준의 이 글을, 지금 고민 중인 분들에게 생각을 정리하는 작은 메모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부끄럽지만 나누려고 한다.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다.
● <매일 얼굴 보는 사람>.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볼 사람>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더 생각해보지도 않고,"그걸 어떻게 해!"하며 바로 못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대와 마주치는 일은 몹시 불편할 수는 있어도 죽는 일은 아니다. 이번 주 이렇게 <얼굴>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릴 때는 매일 보는 동료 원고/ 피고의 얼굴도 생각해야겠지만, 다른 <두 얼굴>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면해야 할 <하나님의 얼굴>. 그리고 내가 아침 저녁 거울을 통해서 마주 볼 <내 얼굴>. 결국,누구를 더 두려워할 것인가, 같다.
●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편견이 심한 곳이다. 마음 고생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잃는 것만 있을까? 얻는 것은 없을까? 내가 만약 입장 표명을 한다면, 사회적으로, 혹은 학내에서, 유형무형의 핍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나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 또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눈빛>. 내 수업 시간 내 교실에서 나는 <진짜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총장(비유적 표현이다)의 사랑과는 다른. 어느 것을 더 귀히 여길 것인가. 역시 선택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총장의 사랑과 제자들의 존경을 동시에 받으려는 건 실현 불가능한 욕심일 것이다.
3. 이번 글처럼 쓰면서 스스로 겸연쩍고 부끄러운 경우도 없었다. 의를 위해서 핍박 받아본 일 없는 사람이 지금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의를 위해 핍박 받으라고 하고 있으니. 몹시부끄럽다.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내가 부디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를 위해 기도드릴 뿐이다. 나는 언제쯤나,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나와는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 이 의와 박해라는 단어와 친해질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016.5.28.
<참고>
1) <신학서적 표절반대>에 '피고' 한 분이 올린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1) <신학서적 표절반대>에 '피고' 한 분이 올린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첫째, 좋은 판사들 만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부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재판 과정을 통해서 표절의 문제를 정확하게 판결할 수 있는 정의로운 그런 판사를 만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의 힘이 부탁합니다.
둘째, 이 재판 과정을 통해서 한국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신학교, 그리고 그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정의가 뭔지 깨닫고, 양심이 회복되는 기회가 되도록 위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뉴스앤조이>에서 상기 사건을 소개한 내용입니다.
- 베스트셀러 구약 백과사전, '짜깁기 표절' 의혹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9259
- 베스트셀러 구약 백과사전, '짜깁기 표절' 의혹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9259
송병현 교수, '표절 반대' 운영진에 2억 손해배상 청구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415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415
3) 신학서적 표절반대(https://www.facebook.com/groups/1602665126689416/)는
공개 페이지입니다. 이곳에 오시면, 지금까지의 사건의 진행 상황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개 페이지입니다. 이곳에 오시면, 지금까지의 사건의 진행 상황 등을 알 수 있습니다.
4) 첫 공판 시간과 장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시 2016년 6월 10일 오후 2:30
장소 서울중앙지방법원 (교대역 11번 출구방향)
여러분이 함께 방청으로 참여해주신다면, 재판에 임하는 이성하 목사, 맹호성 이사 두 분에게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시 2016년 6월 10일 오후 2:30
장소 서울중앙지방법원 (교대역 11번 출구방향)
여러분이 함께 방청으로 참여해주신다면, 재판에 임하는 이성하 목사, 맹호성 이사 두 분에게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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