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A와 점심을 먹고 오목공원을 산책했다. 요즘 우리팀이 오공을 산책할 때는 미니멈 오바퀴이다. A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 가슴도 뛰었다. ---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안양천을 산책했다. 아들이 오면 같이 가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캔커피를 다 마셨는데 계속 들고 산책을 하기가 뭐해서 표지판 밑에 숨겨두었다가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다시 주워왔다.
2025년 4월 29일
2025년 4월 27일
떡의 위치
오늘 예배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을 불렀는데 참 좋았다. 경쾌한데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사 중에 "갈릴리로 가요", "죄로 상처나고 더러워진 모습 그대로 갈릴리로 가요"가 있었다. 정확한 제목을 몰라 내가 마음대로 붙여본 제목은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천사가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이전에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셔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찬양을 듣기, 찬양을 부르기, 말씀을 듣기, 성찬에 참여하기. 모든 예배 순서를 통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 오늘은 지난 주에 세례를 받은 A가 나와서 세례를 받은 소감을 나누었다. 소박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소감이었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특히, 어머님 장례에 참석해 준 교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를 표할 때 그의 마음과 진정이 느껴져서 감동이 됐다. 또 하나, 내 옆 자리의 나이드신 남자 분이 나이드신 아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 모습도 너무 아름다웠다.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린다는 건 타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서 혼자 푹(?) 쉴 때는 경험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감동들. ----- 주보에 오늘 점심 식사 후 설거지는 '50대'라고 나와 있어서, 그리고 내가 59세라서, 점심을 빨리 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50대 교우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7,8년 전 내가 루터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전 교인이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공동의회 시간에 나는 손을 들고 전 교인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는데, 오! 감동! 바로 채택이 됐다. 2주 전 종려주일 때마다 하는 교회 대청소는 가볍게 "쨌지만"(ㅋㅋ), 내가 제안했던 설거지를 쨀 수는 없는 일이었다 (ㅋㅋㅋ) -----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마음의 교우 A, 그리고 오늘 설교를 한 B 목사와 셋이서 정말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피와 살에서부터 자동청소기까지 정말 다양했다. 나는 전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루터교회 예배 시에 행하는 이런저런 전례들에 대해 궁금한 걸 다 물어봤다. 가톨릭과 루터회의 성호 긋는 방법의 차이,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례 형식도 하나 있었다. 루터회의 성찬식에서 목사가 교인에게 떡을 건넬 때 그 떡을 목사와 교인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주고 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B목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목사가 손을 쭉 뻗어 교인 손에 쥐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해요. 목사와 교인 딱 중간 지점에서 멈추고 거기서 떡을 건네요. 목사도, 교인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주님의 몸을 통해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거죠". 생각해 보니 오늘 떡을 건넨 B 목사, 지난 주에 떡을 건넨 C 목사 모두 그와 나 사이에서 떡을 건네 주었다. A 그리고 B 목사와 헤어져 지하철 역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대화를 들었으면 뭐라고 말하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 생각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다. "이런, 난 그날 밤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줬는데! ㅋㅋㅋ 그런데 지금 말을 듣고 보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애! 진작 알았다면 나도 그날 밤에 중간에서 건넬 걸 그랬네! ㅋㅋㅋ ". 물론 주님은 인간 목사가 아니니 중간에서 건네실 필요 없다. 팔 쭉 뻗어 건네셔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배의 동작과 형식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것이 하나의 전통, 전례가 될 때, 그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작은 동작과 행동 하나를 통해서도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거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사람들 앞에선 성호도 그어본 적이 없는 전례 초보자다. 천천히 전례를 배워가며 전례가 품고 있는 신앙의 신비 속으로 더 들어가보고 싶다. 지하철 안에서 B 목사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카페에서 들은 전례 이야기 넘 흥미진진했습니다! : ) 형식에 관한 전례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참 신비로워요 정말 인간은 몸,형식과 마음,믿음이 서로 깊이 연결된 존재같아요! 다음에도 또 알려주세요! : ) " ----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찬양과 관련된 짧은 글 하나를 첨부한다. 7년 전 쯤 <갈릴리>라는 짧은 글을 하나 블로그에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5년 4월 26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지음, IVP)를 읽고
1. 미생을 만화로도, 드라마로도 봤다. 누군가 내게 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냐고 묻는다면, 내겐 그건 다음 장면이다.
2025년 4월 25일
달력
회사에서 안 쓰는 달력을 하나 챙겼다. 내일 토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뵈면 드리려고 챙겼다. 요즘 어머니의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셔서 오늘이 며칠인지도 말씀하지 못하신다. 요일도 마찬가지다. 달력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쳐나가면 그날 날짜와 요일을 알 수 있으실 테고, 그러면 어머니의 자신감도 좀 더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 ----- 집에 와서 달력 오늘 날짜에 미리 동그라미 하나를 치는데 문득, 정말 문득, 내가 옛날에 달력을 한번 그린 적 있다는 기억이 났다. 내가 20대 중반일 때 부모님이 카자흐스탄으로 발령 받아 떠나셨다. 어머니 생일은 10월 2일이고, 그해 10월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 생각이 나서 10월달 달력을 그렸다. 눈물을 통해 2일을 보는 장면과 2일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그렸다. ---- 달력을 그리던 그날은 몹시 슬펐다. 오늘 집에 와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칠 땐 이상하게 거의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인생에서 달력이 나를 두 번 찾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4월 23일
출애굽
2025년 4월 13일
소년이 부러웠다
2025년 4월 12일
신의 자비하심
아침부터 누군가에 대한 섭섭함, 분노, 원망이 생겨 어머니와 요양원에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편지를 썼다. 완벽하게 썼다. 나는 괜찮은 사람,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완벽한 글을 썼다. 읽으면 읽을 수록 그는 잘못했고, 나는 잘못한 게 없어지는 글.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쓴 것에 나도 설득이 됐다. 하지만 전송을 누를 수는 없었다. 이 말이 기억나서였다."겨울에 나무를 베지 말라. 하강의 시기에 결정을 내리지 말라". 내 마음이 가장 밑바닥일 때 누군가와의 관계에 영향을 줄 결정을 내리는 건 어리석었다. ----- 알고 지낸 지 꽤 되는 타부서 직원이었다. 그가 한 말에 내 자존심이 상해서 생긴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내 섭섭함을 과장하고 극대화하고 있었다. 그가 한 말 중에 맞는 말은, 맞는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에게 고마워 해야 할 부분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 마음이 순간 들었고, 나는 신이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비를, 내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거부하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반드시 붙잡고 싶다). 내가 처음에 기억했던 글의 후반부는 이렇다. "기분이 최저로 내려갔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라. 기다리라. 참을성을 가져라. 폭풍우는 지나간다. 봄이 올 것이다. - 로버트 슐러". 내가 12년 전에 처음 본 글인데, 계속 기억이 나고 계속 나를 도와준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으로.
2025년 4월 7일
2025년 4월 6일
포도주와 초콜릿
교회에 도착했다. 오늘 현관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사람은 A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남서울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친구다. 거기서 쭉 같이 조원->조장->'엘더'를 했던 친구였다. (엘더는 장로가 아니었다. 당시, 조장들을 위한 조장을 엘더라고 불렀다). 5년 전부터 이 루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오늘 그는 주보 봉사, 헌금함 봉사, 성찬식 포도주잔 봉사를 했다. 지난 주에 들었는데 자동차 봉사도 한다고 했다. 친구가 이 교회에 잘 정착한 거 같아 흐뭇했다. ---- 지난 주와 달리 나는 오늘은 성찬식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 떡도 빵도 둘 다 다 받았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몸입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피입니다". 설교도 좋지만 이런 성찬 예전에 매주 몸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 오늘 성찬식에서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이것이었다. 제일 마지막에 모녀가 함께 나왔다. 여자 아이는 너댓살로 돼 보였다. 아이는 포도주잔을 받자 뒤돌아서 교인들을 향한 후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히며 포도주를 원샷했다. 원샷을 한 후에도 잔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나머지 한 손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는 포도주잔 바닥을 탁탁 쳤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이는 입맛을 다시며 다 마셨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이가 300명 가까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펼친 이 행동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의 태도였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그녀 역시 300명 가까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가 하는 행동을 끝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아이가 모든 것을 마치자, 아이가 충분히 다 마시자, 아이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시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아마 내 손목을 잡고, 나를 끌고 자리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신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누군가의 집에 우리 집이 초대 받아 갔을 때 그 집 어머니(내 친구의 엄마)가 주신 초콜릿이 너무 맛있어 정신 없이 먹은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제야 어머니의 안색이 안 좋은 걸 알아차린 나는 불안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엄마가 아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 ". 오늘 성찬식에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원망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오늘 젊은 엄마에게 있었던 여유가 있었으면 어머니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72년 여름, 정신없이 초콜릿을 먹는 아이를 바라보던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주머니의 입가에도 분명 미소가 걸려 있었을 텐데. 마치 오늘 포도주를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던 모든 교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듯이.
2025년 4월 3일
카레라이스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