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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6일

포도주와 초콜릿













교회에 도착했다. 오늘 현관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사람은 A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남서울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친구다. 거기서 쭉 같이 조원->조장->'엘더'를 했던 친구였다. (엘더는 장로가 아니었다. 당시, 조장들을 위한 조장을 엘더라고 불렀다). 5년 전부터 이 루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오늘 그는 주보 봉사, 헌금함 봉사, 성찬식 포도주잔 봉사를 했다. 지난 주에 들었는데 자동차 봉사도 한다고 했다. 친구가 이 교회에 잘 정착한 거 같아 흐뭇했다. ---- 지난 주와 달리 나는 오늘은 성찬식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 떡도 빵도 둘 다 다 받았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몸입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피입니다". 설교도 좋지만 이런 성찬 예전에 매주 몸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 오늘 성찬식에서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이것이었다. 제일 마지막에 모녀가 함께 나왔다. 여자 아이는 너댓살로 돼 보였다. 아이는 포도주잔을 받자 뒤돌아서 교인들을 향한 후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히며 포도주를 원샷했다. 원샷을 한 후에도 잔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나머지 한 손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는 포도주잔 바닥을 탁탁 쳤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이는 입맛을 다시며 다 마셨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이가 300명 가까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펼친 이 행동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의 태도였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그녀 역시 300명 가까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가 하는 행동을 끝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아이가 모든 것을 마치자, 아이가 충분히 다 마시자, 아이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시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아마 내 손목을 잡고, 나를 끌고 자리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신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누군가의 집에 우리 집이 초대 받아 갔을 때 그 집 어머니(내 친구의 엄마)가 주신 초콜릿이 너무 맛있어 정신 없이 먹은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제야 어머니의 안색이 안 좋은 걸 알아차린 나는 불안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엄마가 아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 ". 오늘 성찬식에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원망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오늘 젊은 엄마에게 있었던 여유가 있었으면 어머니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72년 여름, 정신없이 초콜릿을 먹는 아이를  바라보던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주머니의 입가에도 분명 미소가 걸려 있었을 텐데. 마치 오늘 포도주를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던 모든 교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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