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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2일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8

#라디오시절_이라는_퍼즐 – 8
처음 삼 년은 힘들었다. 첫 일 년은 특히 고되었다. 입사 동기 J와는 같은 동네에 살아 함께 퇴근할 때가 많았다. (아, 그녀는 2007년에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가 붙은 『침대와 책』을 냈다. 그녀의 첫 책이었다. 최근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그의 슬픔과 기쁨』과, 라디오 피디로 일하며 느낀 걸 쓴 『마술 라디오』를 동시에 냈다.) 둘 모두 피곤에 지쳐 버스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침을 흘리며 잤다.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건 큰 힘이었다. 어느날 자다 전화를 받았다. 새벽 2시였다. 오빠 나야. 무슨 일이야. 지금 집으로 와줄 수 있어? 평소와 다른 목소리였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누가 옆에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을 입었다. 옷을 입고 부엌으로 가 식칼을 챙겼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 신혼이었다. 나는 자고 있는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어쩌면 마지막 키스가 될지도 몰랐다. 옆 단지 J의 아파트로 갔다. 현관 손잡이를 돌렸더니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 거실에는 상이 쭉 펼쳐져 있었다. 이상하게 상마다 먹다 남긴 음식들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낮에 사무실에서 봤던 부장과 선배들이 일렬로 앉아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J가 미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식칼까지 가슴에 품던 수습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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