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인터뷰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아들과 통화하고 오목공원을 산책하고 편집을 하고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걸었다. 안양천을 걸으면서 로마서 말씀을 묵상했다.
거짓말을 배우는 곳
2025년 5월 28일
2025년 5월 25일
검은 용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다. 집에서 지하철 양평역까지 걸어가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공든 탑을 쌓는 게 아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우리가 넘어진다는 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게, 그래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게,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건 바울의 말처럼, 권연경 교수의 지적처럼, 달리기일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 다시 달려가면 된다. 넘어졌다고 다시 출발선까지 돌아가서 다시 달릴 필요가 없다. 이 생각이 내게 격려가 되었다. 아, 다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나를 얼마나 낙심케 해왔던가. 교회에 도착했는데 복도에 불판이 쌓여있었다. 아싸, 어쩌면 오늘 점심 때 고기를 먹는 건가!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 설교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예수님은 묻고 명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수없이 들은 설교였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네 자리'에 꽂혔다. 그 38년된 병자는, 병이 길어지자, 자기 자리에서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누렸을 것이다. 텀블러를 올려놓고, 핸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콘센트를 마련하고, 와이파이 비번을 알아두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니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잊어먹은 채, 쇼츠와 릴스를 보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하루종일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자기 자리를 들고 연못가에 가서 자리를 잡은 뒤, 사건과 변화 없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을 즐겼으리라 믿는다. 내 삶의 자리에서 쇼츠와 릴스와 온갖 오락을 치우고 불편한 자세로,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보겠다. 내 자리에 만족하지 않겠다. ---- 점심은 기대했던대로 삼겹살이었다! 삼겹살, 상추,깻잎,쌈장,오이고추,잘 익은 김치와 뜨거운 밥을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A와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나는 어떤 게임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주로 나의 질문과 A의 답변으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집을 짓는 거지?" "네". "자기 집을 짓는 과정 중에 어떤 고난이 있어? 그러니까 방해물이 존재해?" A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가방에서 마인크래프트 책자를 꺼내 방해자들의 리스트를 보여줬다. 다 영어 이름이라서 기억은 하지 못하는데 여러 종류의 나쁜 놈 캐릭터들이 있었다. 검은 용도 있었다. 설명을 듣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A는 지하에 집을 짓고 있다고 하면서 지하에 집을 지을 때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자기 집을 짓고 그 안에 머물면 정말 안정감이 들겠는데?" "예.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 같은 곳이예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나도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 난생 처음이었다). 지하에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실제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로그인한 후 그 안전한 은신처 - 이곳에는 당연히 책장이 있다! - 안에 있는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캐릭터로 변신해서 하루 10분~15분 정도 보내면 마음이 무척 안정될 거 같다. 거의 큐티를 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특히, 지지상의 하늘에선 검은 용이 날아다닌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위험이 존재해야 은신이 더 달콤한 법이다. "그런데, 캐릭터들끼리 대화도 가능하니?" "예, 가능해요".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기에 "그럼, 게임을 하다가 다른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니?" "예, 있어요" "오, 진짜! 누구랑? "엄마요. 엄마도 게임을 해요". A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완전히 한방 먹었다. "엄마는 아니지, 엄마 말고 ㅋㅋㅋ" 빵 터진 나는 웃고 있는 A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고 그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집에 와서 책을 좀 읽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아름답고 행복했다. 오늘은 특별히 더 그랬다.
2025년 5월 23일
내가 차지 않을 시계
내일 정말 몇년 만에 남서울교회 청년부 시절의 동기들을 점심 때 보기로 했기에 오늘 오전 반휴를 내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하루 미리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베트남쌀국수집 사장님은 이제 우리 모자와 친해졌고 또 우리 사정도 어느 정도 아시기에 "아, 다음 주에는 어머님께서 아들을 7일이 아니라 8일만에 보시겠군요"라고 웃으며 조크를 날리셨다. 어머니에게 간식과 믹스 커피와 빳데리를 간 손목 시계를 전해드리고 회사로 왔다. ---- 회사에 와서 권연경 교수 제2강 최종 가편을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잘잘법 커뮤니티에 상담 답변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권교수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 더 '큰 지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아, 역시 신학자는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권교수가 이 강의에서 그려주는 지도. 너무너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 편집을 하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복도에 나가서 받았다. "아들, 우리가 언제 만났지? 어제 만났나?" 오늘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놀라실 거 같아 나는 말을 바꿨다. "어머니, 혹시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들. 지금 내가 찬 이 시계,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장남에게 꼭 물려주고 싶어." 김영삼 대통령 싸인이 들어가 있는 청와대 시계였다.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셨다는 어머니의 기억은 맞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신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은색 시계를 차셨다. "예, 어머니, 다음 주 토요일에 제가 어머니 뵈면 그때 제가 잘 받아서 간직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시계. 시간. 기억. 그에게 맞았던 기억. 대걸레가 부러졌던 시간. ----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길, 안양천에 들려 한 시간 산책을 했다.
2025년 5월 22일
복된 하루
2025년 5월 18일
여성용 스킨 로션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매주 일요일 두 교회의 주일예배를 생중계하는데 오늘은 내가 주조 근무 당번이었다. 10시부터 꿈의교회 예배를 생중계하고, 11시부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생중계했다. ---- 진행 당번인 피디들은 9시까지 출근한다. 주조와 부조 상황을 미리 점검해야 해서 그렇다. 9시 반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내 방에 스킨로션이 하나 있는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어머니, 어머니 세수하고 쓰시라고 제가 어제 드린 거예요." "그렇구나. 아들 고마워. 잘 쓸게". --- 생중계 당번은 서너 달에 한 번 돌아오는데 아마 퇴직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게 될 거 같다. 12시에 생중계를 마치고 점심은 오목공원 옆에 있는 셱셱버거에서 먹었다. 너무 좋은 날씨였고 나는 점심을 먹은 뒤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다음 주에 있을 미대사관 비자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무척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는 내 카톡 상태 메시지를 '차근차근'으로 바꿨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를 한글로 발급 받은 뒤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했다.외교부 사이트에서 '증명서 용어 번역 가이드'를 하나 다운 받은 후 참고하면서 증명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완성했더니 뿌듯했고, 이런 때 스스로 내게 주는 선물은 단골 밀크티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찻집에 도착해서 밀크티를 시키고 갖고 간 시집을 읽었다. (나는 요즘 시집 읽는 데 푹 빠져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빠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시집을 읽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나가서 받았다. "예, 어머니". "아들, 누가 내 방에 스킨 로션을 하나 갖다 놨는데 누가 갖다 놨을까?"
차를 한 번만 마셨다, 처음으로
2025년 5월 16일
퇴근길
퇴근길에 어머니와 통화했다. 어머니의 몸에서 점점 힘이 없어진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십자가를 손에 쥐고 걸으며 기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도가 나왔다. 지난 60년간 이 여성과 나눈 시간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서로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나눈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고통 없지 않은 그 모든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저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제 모습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려요. 그러니, 이 여성과 나눈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합니다 ㅡㅡ 낮에 회사 사무실에 이규현 목사의 설교가 나왔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설교이다.
아들과의 통화, 성물(聖物)
회사 1층 로비에 있는 우리은행 앞에서 아들과 긴 통화를 했다. 아들은 지금 하는 경험을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들려 줄 실패가 있는 삶은 얼마나 축복인가. 실패가 없어 승리만을 들려줘야 하는 삶은 얼마나 가난한가. ----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에 갔을 때 내 자리에 A가 주는 선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 십자가를 손에 쥘 때 두 가지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평화가 제게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가 제가 아는 이웃에게 임하게 하소서"
2025년 5월 15일
2025년 5월 14일
드라마틱한 오전
오늘 셰익스피어 희곡 3권(맥베스,리어왕,햄릿)을 갖고 가서 잘잘법팀원 세 명에게 나누어주었다 ---- 개인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했던 일은 오전에 일어났다. 사무실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조연출 A가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피디님, 편집실에 벌레가 나타났어요". 나는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세 번 정도 빠르게 풀어 손에 쥐고는 편집실에 가서 커텐 뒤에 숨어 있는 바퀴벌레 닮은 벌레를 막대기로 쳐서 떨어뜨린 다음 휴지로 꽉 누르며 그대로 휴지로 싸서 내 자리로 돌아와 내 책상 옆 휴지통에 버렸다. 원샷원킬 스킬로 조연출 두 사람을 찐 감동시켰고, 편집실 문을 열고 나올 때 숨죽이고 안의 상황을 살피던 편성부원 둘의 박수를 받았던, 오늘 오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