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11:30에 요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 근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양원 입소 다음 주 첫 점심 외출 때 발견한 식당인데 그후로 지금까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이곳에서만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가 이 식당의 볶음밥을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그렇다. 식당 주인 부부가 참 정이 많으시고 음식 맛도 훌륭하다. 이 식당을 알게 된 게 참 감사하다. ---- 식사 후 파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가방을 여시더니 리츠 크래커 두 통을 꺼내 내게 주셨다. 나는 크래커를 안 먹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 통은 받기로 했다. "한 통은 어머니 드세요". 어머니는 내가 돌려드린 나머지 한 통을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잠시 뒤 어머니는 다시 리츠 크래커를 꺼내시고는 "그래도 더 큰 거를 아들한테 줘야지" 하시며 내게 주셨던 크래커통 위에 당신의 크래커통을 겹쳐 놓으신 뒤 길이를 재셨다. "2026.02.05. E" 라는 동일한 사용기일이 찍혀 나온 동일 회사, 동일 종류 크래커였으니 길이가 다를 수는 없었다. 크기가 같다는 걸 확인하신 어머니는 민망하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크기가 같구나" 라고 하시고는 당신의 크래커를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2분 쯤 흘렀을까. "그래도 아들한테 더 큰 걸 줘야지" 하시며 어머니는 다시 당신의 가방에서 당신의 크래커를 꺼내 아들의 크래커와 크기를 재셨다. "아, 크기가 같구나" 어머니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2,3분이 또 흘렀다. "그래도 아들이 더 큰 크래커를 갖고 가야지"........그리고 커피숍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오늘 어머니는 총 네 번 크래커 크기를 재셨다. 나는 한 번도 아까 재셨잖아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 가는 단골 찻집에 가서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한 잔 시키고 아침에 내가 챙겨간 고야 제3권을 꺼내 읽었다. 조용히 고야를 읽고있자니 다시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저자 홋타 요시에가 고야의 <5월 3일>을 일종의 종교화에 빗대 해설하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구글로 그림을 찾아 같이 보면서 읽었다. 찻집에서 제3권을 다 읽었다. (이제 마지막 제4권만 읽으면 된다.) 책 뒷표지에는 헤밍웨이가 고야에 대해 쓴 이런 글이 소개돼 있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처럼 이 글도 단문으로 돼 있다. "그는 검정과 회색을 믿었고, 그 뉘앙스를 믿었으며, 빛과 어둠을 믿었고,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도시들을 믿었다. 그는 시골과 마드리드를 믿었고, 운동을, 자신의 고환을 믿었다. 그림과 동판 부식을 믿었다. 그는 보고,느끼고,만지고,쥐고,냄새 맡고, 먹고, 마시고,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부러뜨리고, 함께 자고, 의심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증오하고,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멸시하고,경탄하고,파괴했던 것을 믿었다. 어떤 화가도 이 모든 것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야는 바로 이것을 시도했다." ----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숨 잤다. 고야 제4권의 1장을 읽었다. 지금은 저녁 7:54. 다음 주 수요일에 잘잘법 녹화가 있는데, 강사가 보내준 녹화 사전 원고를 이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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