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나는 우리말 중에서 "봉투"라는 말을 좋아한다. 은근해서 그렇다. "선물을 사려다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용돈 좀 넣었습니다"는 너무 노골적이다. 반면에 "어버이날이어서 봉투 좀 마련했습니다"라는 말은 얼마나 은근하고 은은한가. 돈냄새가 아니라 봉투의 한지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말을 사용할 때마다 나 스스로 흡족해서 속으로 미소짓는다. 장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신 게 분명하다. 문제의 봉투를 드렸을 때 아주 기뻐하셨으니. ------ 어버이날엔 찾아뵙지 못할 거 같아 오늘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뵙고 왔다. 장모님은 내가 사간 꽃을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 현관에서 한 번, 식탁에 올려놓자 또 한 번, 그리고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한 번 더 너무 예쁘고 너무 맘에 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세 번 장모님이 오늘 점심 때 끓여주신 아욱국이 맛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밥 먹으면서 한 번, 다 먹고 소파에 앉아서 한 번, 장모님댁에서 나와 오목교 내 단골 카페에서 고야 제4권을 한 시간 정도가 읽다가 집에 돌아와서 장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전화로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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